스리랑카 건축여행기 #1
이 일은 스리랑카 콜롬보 한 카페에 앉아 있을 때의 일이다. 날씨는 무척 더웠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흰색 티셔츠 밑으로 등짝에서 흐르는 땀의 경로가 느껴진다. 조금 전까지 엄청난 비가 쏟아지더니, 다시 흐린 하늘이 점점 밝아져 오고 있었다. 한 낮이었지만 카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소란스럽다. 그 사이를 검정 앞치마를 두른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음식과 음료를 정확한 장소로 가져다 나르고 있었다.
이 공간, 그러니까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는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의 한 카페에서 난 내가 이제까지 배웠던 건축이라는 것을 죄다 뒤집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건축이 싫어졌다.
나는 어쩌다 이 곳에서 한국의 건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까?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건 조금은 건방진 이유에서 였다. 그러니까 나는 이곳에 한국 건축의 우수함을 알리고자 왔다. 건축을 전공한 나는 스리랑카의 한 대학교에 건축을 강의하러 온 봉사자였다. 그럴싸하게 대학교 강의였지만, 개뿔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은 그저 가난한 나라였고, 한국의 초등학교 보다도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환경에서 아이들은 미래를 꿈꾸며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한국의 아이들보다 밝았고, 꿈이 많았으며 겸손했다.
난 소위 못산다는 나라의 건축을 한껏 얕보았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들의 삶에 녹아가고 있었고, 그런 그들과 어울리며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건축을 가르치러 왔지만, 여기 낯선 나라에서 난 오히려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수다에 빠져있었고, 나는 처음 와본 카페의 공간에 빠져있었다. 그들을 남겨두고 독특한 카페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기로 했다. 깊은 처마를 가진 지붕은 한낮의 실내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기둥, 공간을 나누는 방법,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실내장식이 보였다. 유럽과 동양의 감각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리고 작은 마당과 공간들을 걸어 다닐수록 뭔가가 심상치 않았다.
‘어떻게 이런 나라에서, 이런 건축이 가능하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지역건축가 제프리 바와를 만나면서 스리랑카의 건축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이때까지 공부해 왔던 건축에 대한 방향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한국의 건축을 가르치러 찾은 스리랑카에서 어느덧 난 이곳의 건축에서 배움을 찾고 있었다. 냉각장치의 도움 없이도 시원하고 쾌적한 실내, 자연으로 한없이 열린 공간들, 햇빛이 잘 조절된 실내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체험하면서, 우리가 그토록 찾던 자연친화적, 혹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건축이 바로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못사는 나라에 와서 나는 오히려 겸손해졌다. 그리고 우리의 건축이 나아가야할 작은 조언도 얻었다. 늘 미국, 일본, 유럽과 같은 선진국의 사례만 들여다보려고 애쓰던 시절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연을 비롯해 인류가 아닌 생명체와도 어울려 살 줄 아는 위트가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의문만 생겼다.
‘이런 가난한 나라에, 어떻게 저런 여유와 포용력이 생겨날 수가 있는가?’
스리랑카의 건축, 가난한 나라의 건축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