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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강 (2)

스리랑카 건축여행기 #4

by 안종현
루누강가
인간의 손을 더한, 원시림의 정원



루누강가(Lunugana), 소금의 강이랑 뜻이다. 현지어로 소금을 뜻하는 루누(Lunu)와 강을 뜻하는 강가(Ganga)가 합쳐진 말이다. 강이 바다와 만나기 때문에 가끔 소금물이 강 상류까지 올라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소금의 강은 바와의 정원 앞을 가로질러서 벤토타 지류까지 흐른다.

소금의 강, 루누강가라는 이름에는 아주 솔직하게, 그 강의 성격을 잘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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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바와가 건축을 실험했던 장소


바와의 정원은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소금의 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아주 적막하고 아주 고요하다. 마치 이곳이 딴 세상인 것만 같이 느껴질 정도로 이제까지 내가 스리랑카에서 봐왔던 번잡하고 소음으로 가득찬 도시의 모습하고는 전혀 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잃어버린 정원이 이곳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에게 버려진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장소를 발견한 것만 같다. 그가 가장 사랑한 곳, 그가 가장 오랜 기간을 다듬고 다듬은 곳. 바로 이곳은 바와의 오랜 건축실험의 장이자 휴식처였다.


이곳은 인간이 꿈꿀수 있는 완벽한 공간에 가깝다. 마치 우리가 알던 세상과 선을 긋고 여기서 부터는 다른 곳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유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변호사를 꿈꾸던 한 젊은이는 어떻게 건축가가 되었을까?


바와는 법률을 공부했고,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누구나 원하는 엘리트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문득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을 유럽을 여행하며 젊음의 시간을 소비했다. 마치 먼 미래 따위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그리고 다시는 따분한 삶을 살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여러 곳을 방문하던 그는 이탈리아의 한 정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바와는 그 정원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바와는 후에 스리랑카로 돌아가면 이탈리아식 정원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반한 정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정원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스리랑카에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이 원하던 장소, 지금의 루누강가를 친형의 소개로 발견하게 된다. 이곳을 방문하자마자 그는 이곳이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정원을 만들 유일한 장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와는 땅을 사들였다. 그러나 그에겐 문제가 있었다. 그건 그가 건축과 관련된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고심 끝에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닌, 건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건축가를 배출한 영국의 AA스쿨에서 바와는 건축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왔다.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그건 바로, 이탈리아식 정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정원인 루누강가가 만들어졌다.


자신이 원하던 완벽한 장소에서, 바와는 자신이 머릿속으로만 구상해 왔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 단순하고 간절했던 소망은 그를 건축가의 길로 이끌었다. 잘나가던 변호사에서 직업을 바꿔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그를 건축가가 되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루누강가다. 한 개인의 전설과 작은 역사를 간직한 정원은 그 이름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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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나무 농장이 정원이 되기까지...


1948년 바와가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고무나무 농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후 언덕을 조성하고, 경사지를 다듬고, 나무를 심었다. 대지는 사람의 걸음걸이에 알맞게 조성되었다. 오래된 농장의 길은 묻혔고, 새로운 길이 열렸다. 모든 것은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고 다듬어져 갔다. 마치 땅이 풍화되어 대지의 형태가 바뀌듯이. 아주 천천히, 자연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려는 듯이, 조금씩 조금씩 정원은 가꾸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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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압도하지 않는 바와의 건축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모호하다. 건축물의 대부분이 경사에 순응하고 있으며, 자연을 압도하지 않을 정도로 규모도 작다. 마치 이곳의 주인은 건축물이 아니라, 밖으로 열린 자연인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낮게 자란 풀 위에 나무가 오브제를 이루고, 지평선에 닿는 강과 강 건너의 산이 바라보는 곳으로 창을 열리고 경계가 생겨났다. 이전부터 있었던 자연의 풍경이었지만 그의 손이 더해지자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는 자연을 돋보이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 장소에 어떻게 건물이 생겨나야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곳을 걸었다. 바와가 다듬은 루누강가를 걸었다.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쳤다면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적막한 정원을 혼자서 걷고 있었다. 다행히 누구도 나의 감정 골에 접근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얼굴을 들어 그 바람에 얼굴의 온기를 식혀냈다. 감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을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무언가 서글펐다. 건축을 포기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그의 정원을 걸으면서, 계속되는 후회가 밀려왔다. 첫째로 난 그처럼 멋진 건축을 할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좌절이었고, 둘째로 건축을 포기한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 매력적인 건축의 세계를 떠나온 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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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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