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과 놀이기구
얼마 전에 캐나다인 친구가 양곤에 놀러 왔다. 이 친구는 미얀마에 오기 전부터 고생했고 와서도 고생만 하다가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면서 나에게 남긴 말은 이렇다.
친구, 여기서 사는 너를 진심 존경한다
무슨 소린가? 난 나름 여기서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친구가 놀러 왔을 때, 때마침 보름달 뜬 기념 현지 축제가 있었다. 내가 사는 다운타운에 야시장이 열였는데 밤새도록 사람들이 그쪽으로 향해 가고, 차는 오지게 막히고, 사람들은 떠돌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느 날 밤 구경에 나섰다.
그리고 나도 여기서 살고 있는 나를 진심 존경하기로 했다.
야시장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 진주 유등축제를 가면 길을 따라 잡다한 물건과 음식을 파는 그런 모습과 비슷했다. 길거리에 자판이 열리고 꼬치구이, 중국식 샤브샤브 (hot pot), 시계도 팔고 그림도 팔고 했다. 이런 야시장이 시내 한복판에서 새벽 2~3시까지 벌어져서 일대는 교통혼잡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다 여기서 한 달간 살다가 처음으로 문화 충격이라는 것을 받았다.
처음으로 문화충격을 받았다.
길을 가는데, 문신 가게가 있었다. 2명의 사람이 문신을 받고 있었는데 문신을 직접 보는 것도 처음인지라 궁금해서 잠시 그곳에서 서서 그 풍경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문신 아티스트는 문신을 하면서도 계속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문신의 모양은 비뚤어졌다. 그리고 또 가만히 보니 저들은 문신에 쓰이는 바늘을 바꾸지도 않았고 두 사람의 것을 공동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사진 속 두 명은 지금 바늘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저걸 위생에 대해 무지하다고 해야 할까? 아님, 엄청나게 용기가 있다고 말해야 할까? 도대체 왜 그들은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은 문신 때문에 그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걸까?
한 사람의 문신이 끝나고 가격을 약 2만 원 정도 지불하고 자리를 나섰다. 그리고 자세히 챙겨봤는데 바늘은 여전히 바꾸지 않았다. 아마 저 바늘로 이번 축제 기간 내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신의 충격을 뒤로하고, 조금 더 깊숙이 야시장으로 들어가니 놀이기구가 보였다.
어린아이들이 조르고 아버지나 어머니들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기구에 아이를 조심히 올려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은 어느 나라나 비슷해 보였다.
작은 놀이기구도 있고, 조금 큰 놀이기구도 있다. 런던 아이 (London Eye)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나름 미얀마 아이 (Myanmar Eye)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저 놀이기구들은 모두 사람이 돌린다. 그러니까 전기 없이 몇 사람이 힘껏 돌리거나 기구의 무게 균형을 이용해 한쪽으로 이동해 무게에 치우치면 돌아가는 그런 원리다.
저렇게 뱅글뱅글 돌아가는 원형 쳇바퀴 안에서 자칫 타이밍을 놓쳐서 내려오지 못하는 큰 사고가 날 것만 같다. 위의 사진처럼 4명의 아이들이 기구가 돌아갈 때까지 재빠르게 움직였다가 땅으로 내려온다.
저렇게 2~3분 정도 돌리다 끝이 난다.
야시장 구경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음이라는 걸 모르고 지은 공사업체 덕에 밖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소리가 밤늦게까지 내 침대까지 들린다.
국제개발(internatioanl development)을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개발"은 참 어려운 단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땐 다소 히피스러웠던 나를 기억하면), 개발도상국가의 현지인들이 이미 행복하게 사는데 왜 우리가 간섭을 하며, 개발이라는 외지의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서 조금 좌에서 우로 옮겨가는 사상 때문일까? 개발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여전히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문득 캐나다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여기서 사는 나도 내가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