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gregation: 길 위의 삶
Segregation
양곤의 세그리게이션은 심각한 수준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두 세계가 한 도시에 분명하게 그리고 또렷이 공존하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상당히 많다.
1. 집값
양곤에서 처음 집값을 알아보던 때를 떠올려보자. 무슨 거지 같은 방이 한 달에 300, 400달러는 기본이고, 창문이 없어 거기 살다가는 우울증으로 내 양곤 생활을 마감할 거 같았던 방도 버젓이 비싼 가격에 올라와 있었다. 스웨덴에서 살던 방보다 더 좋지 않으면서 더 비싼 돈을 내야 할 지경이었다.
'무슨 개발도상국의 집값이 이렇게 비싸?'
근데, 물어보니 양곤의 집값은 비싸기로 이미 유명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저소득 국가이니 그렇게 비싸지는 않겠지라고 늦장 부리다 변변치 못한 집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이유다.
2. 가난한 자의 소득
양곤의 빈부격차는 참 재미있게 심하다. 여기서 잘 사는 사람은 오지게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오지게 못 산다.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모습이긴 하지만, 해가 지면 길거리에서 자신의 자판 위에서 잠을 자는 행상인, 자신의 자전거에서 자는 릭샤꾼들이 다운타운에는 많다. 미얀마 소득 하위권은 한 달에 100~150달러의 소득을 벌어들인다. 한 끼에 500 원하는 국수도 어쩌면 그들에겐 버거운 비용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현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야채만 먹어야 돼. 그나마 싸니까..."
3. 심지어 헬스장조차도 Segregation
우리에게 익숙한 조금 위생적이고 조금이라도 잘 갖춰진 곳에서 서비스를 받으려면 그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러니까 좋은 서비스는 과하게 비싸다.
처음 양곤에 와서 동네 헬스장을 알아볼 때의 일이다. 한 곳은 월 3만 5천 원짜리.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만 한 크기로 좁아터졌다. 샤워실도 없고, 러닝머신은 2대가 있다. 좁은 곳에 그 큰 운동기구들을 들여놨으니 이용자는 자리 잡고 운동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스웨덴의 넓고 넓은 헬스장을 이용하다가 이런 곳에서 운동하려니, 급 추락한 듯한 내 신세가 서글펐다. 역시 올라간 곳에서 내려오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다른 곳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 헬스장은 정말 럭셔리함 자체였다. 선진국 헬스장과 견주어도 전혀 꿀리지 않는 크기며 시설, 스팀 사우나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다. 월 150달러! 스웨덴에서 1년 (물론 학생 할인을 받았지만) 멤버쉽으로 지불한 비용이 약 200달러인 것을 생각하면 이건 미친 가격이다.
이처럼 양곤에서 조금 나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우리나라 혹은 선진국보다 훨씬 그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다. 어쨌든 한 달에 150달러를 헬스장에 쏟아부을 돈이 없는 가난한 학생이기에 어쩔 수 없이 월 3만짜리 좁아터진 헬스장을 지금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싸구려 헬스장이 생각보다 의외로 괜찮았다. 심지어 그 좁은 곳에 트레이너가 3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지 않더라도 운동법을 코치받을 수 있다. 물론 이 헬스장에 외국인은 나 혼자이지만 말이다.
4. 다운타운의 오명; 위험하고 더럽운 곳, 그리고 이민자들의 천국
잘 사는 현지인을 한 명 알고 지낸다. 미국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미얀마 일등 기업에서 근무하는 28살의 젊은 친구다. 한 마디로 엘리트 현지인이다. 이름은 앤디 (Andy).
그 친구와 나는 늘 현지 문화체험을 하러 다운타운 곳곳을 돌아다닌다. 예를 들어, 길거리 음식 먹기 투어 같은 것을 한다. 그러니까 그 상류층 친구는 자라면서 부모님 때문에 지저분한 다운타운은 올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길거리 음식은 더더군다나 먹어본 경험이 손에 꼽힐 정도란다. 그러니 나와 함께 자주 현지인 체험을 하러 다니는 게 외국인이 미얀마에서 흥미로운 문화체험을 하는 것 마냥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자기도 현지인인 주제에 말이다.
그 친구에게 들은 재미있는 양곤의 세그리게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내가 살고 있는 다운타운은 위험한 지역이다. 수많은 이민자(인도, 아랍, 중국인 등)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앤디는 이제까지 딱 3번만 다운타운에 와봤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다운타운에서 살고 있는 앤디를 보고, 어머니는 아주 질색하는 모양이었다. 위험하고 더럽다고 말이다. 어서 다른 곳으로 집 알아보고 거기서 하루빨리 나오라는 게 부모님의 주문이다. 그런데 살고 보니, 앤디는 다운타운이 조금 더럽기는 하지만, 위험한 곳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그는 아직도 길을 걷다 생쥐가 나오면 폴짝폴짝 뛰며 질색을 한다. 도로를 건널 때도 신호체계 없이 달려드는 수많은 차 앞에서 건널 타이밍을 못 잡고 아직도 어색해 하지만 말이다.
5. 상류층과 영어
미얀마에는 약 300 종류의 민족이 살고 있지만 다들 공통된 언어를 사용한다. 물론 중국인 혈통의 현지인은 중국어를 사용할 줄도 알지만 그래도 버미즈(Burmese)를 모두 말할 줄 안다. 그럼에도 상류층 사람들은 지네들끼리 영어로만 대화한다. 그리고 음식점이나 다른 상점에 갔을 때도 영어로 주문한다. 현지어로 소통이 얼마든지 가능함에도 말이다. 이는, 자신을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계층과 분리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그리고 못 사는 사람들과 섞이고 싶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앤디는 상류층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러 갔단다. 그리고 웨이터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 놓기에, 미국에서 배웠던 매너대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Thank you"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이런 말을 했단다.
"그런 말 하지 마!"
그러니까 친구들은 (자신보다 낮은) 저런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런 위치에 있음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처사다. 물론 그들의 변명은, 영어로 주문을 하면 보통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개발도상국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는 자기 문화 혹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자기 비하"의 삐뚤어진 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양곤, 이곳은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삶들이 많다. 그리고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누리는 자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