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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May 19. 2018

모든 걸 녹아낸 식민지 건축

라이트 하우스 호텔

라이트하우스 호텔  

Lighthouse Hotel 1995-1997, Galle, Sri Lanka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의 순으로 식민지를 경험한 골(Galle)의 길거리 풍경은 참 색다르다. 특히 그 절정을 보여주는 골 포트 안의 복잡한 길들을 걷고 있으면 요상한 기분마저 든다. 


여기가 스리랑카이든가, 유럽이든가. 유럽식도 아니고 스리랑카식도 아닌, 유럽의 양식이 스리랑카의 기후와 생활양식에 적응하면서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것저것이 섞여서 이상한 맛이 아니라, 이것저것이 지혜롭고 아름답게 진화했다. 새로운 혁신이 외부의 영향으로 동력을 찾았다면, 스리랑카의 도시와 건축도 이렇게 발전했을 지도 모른다. 이 작은 섬나라에 그런 지혜가 있을 줄이야. 혼혈 2세가 대부분 독특하게 아름답듯이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의 충돌이 색다른 모습으로 그려졌나 보다. 

이 아름답고 유명한 휴양지인 골은 유럽인들이 특히 사랑하는 곳이다. 자신이 살아온 유럽과 비슷한 풍경에서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스리랑카만의 독특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Oh, My God, I love Galle!  


골과 그 근처에는 유독 잘 노는 친구들이 많다.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친구들은 옆에만 가도 유쾌해지는 매력이 있다. 이 쾌활한 친구들 덕에 유난히도 골을 많이 찾아다녔다. 항상 친구들을 만나러 골 타운을 갈 때 지나치는 호텔이 있는데, 바로 이 라이트하우스 호텔이다. 버스 안에서 창밖의 남부해안을 보며 지루함을 달래다, 막 골 타운에 도착하기 몇 분전에 들어나는 호텔의 모습이 눈길을 끌지만, 라이트하우스 호텔에 실제로 방문한 것은 스리랑카에서 지내기 시작한지 일 년하고도 반년이 훌쩍 지난 뒤였다. 


골 타운이 아닌 골 포트와 라이트하우스 호텔에 방문한 뒤, 난 주출입구 에게 말했다. 

“Oh, My God, I love Galle!”


콜롬보에서 약 3시간 반을 해안 도로인 골 로드(Galle Road)를 달리다가, 골 타운에 도착하기 전에 라이트하우스 호텔이 보이는 곳에 멈춰달라고 버스 승차원에게 부탁했다. 이곳에서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누가 이 고급스러운 호텔에 버스를 타고 오겠는가. 홀로 버스에서 내렸다. 약간은 외진 해안가다. 도로와 바다 사이의 좁은 대지에 길쭉하게 생겨먹은 라이트하우스 호텔이 있다.  

건물은 2차선 고속도로에 빡빡하게 면해 있고, 주변에는 바위투성이인 못생긴 해변이 있다. 고운 고래로 덮인 해안가를 두고 하필 이런 곳에다 호텔을 지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주요 관광지인 콜 포트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다. 성질머리 없이 거친 파도만 철퍽이고 있다. 

‘땅 살 돈이 없었나?’ 

참 신기하게도 바와가 만들어 놓은 건물 중 상당수는 외부에서 바라본 모습이 조금은 실망스럽다. 그러나 내부 공간은 언제나 놀랍도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전개해 놓은 것인지 혹은 지형을 따라 건축물이 적응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는 지는 모르겠다. 

라이트하우스 호텔 역시 외부에서 보면, 별 볼일 없는 건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주변의 바위투성이 바닷가도 그렇고, 좁은 도로에 맞닿은 건물의 모습도 그렇다. 약간의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어쩌면 사람의 기대감을 조금은 낮추게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와는 영악한 노인네니까. 그의 건물 외부는 마치 연극의 장막과도 같다. 투박하고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진, 용도라곤 오로지 진짜를 감추어 두고, 나중에 속내를 드러내기 위한 장막 말이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 이제 곧 공개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이건 그저 장막일 뿐이야.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의 그 가림 막은 곧 사라지고, 진짜 쇼가 시작될 거니까. 너는 그냥 조금만 수고를 더해서 장막 속으로 걸어 들어오기만 해. 걱정은 하지마! 이곳은 딴 세상이야. 완전히...

  

벤토타 비치호텔에서도 사용되었던 투박한 쇄석으로 쌓은 출입구 벽은 골 포트의 형태를 연상시킨다. 상부가 약간 기울어진 모양새까지 닮았다. 마치 외부의 침입에 중압감을 주려는 듯, 그 튼튼한 성벽은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무뚝뚝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출입구와 리셉션 홀을 지나면, 원통의 계단실이 나타난다. 계단손잡이를 따라 설치된 작품은 바와의 오랜 친구인 라키 세나나야케(Laki Senanayake)가 네덜란드와 싱할라인의 전투(Battle of Randeniya)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마치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는 듯하다. 약간은 괴기스럽게 생긴 전투병들이 그 당시의 긴박함을 잘 그려내고 있다. 

계단 한 층을 올라가면, 왼편에 레스토랑과 편의시설이 있다. 오른편에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게 해안선을 따라 길쭉하게 객실을 배치해 놓았다.  

레스토랑은 바다를 향해 열려있다. 레스토랑과 이어지는 베란다가 넓다. 마치 골 포트에 오른 듯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아래의 바다가 색다르다. 이 호텔은 도로측면을 철저히 차단하고 바다를 향해 열어 놓아, 호텔 밖의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신기할 정도다. 그렇게 못나 보이던 바다도 이곳 초록 잔디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아름다웠다. 


바닷바람이 분다. 십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안경알에 묻은 수증기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다. 끈적한 열대의 해안가. 내 몸을 늘어지게 만드는 남부해안의 몬순기후와 눈의 초점을 풀리게 만드는 저 넓은 바다의 수평선. 저 멀리 골 포트가 보인다.  

분명 같은 바다일진데, 바와의 건물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왜 더 아름답게만 느껴질까? 왜 나의 가치를 더하게 만들까? 내 더 아련하게 다가올까? 마치 이곳에서 그렇게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졌던 것처럼, 뭔가를 계속 꼬물꼬물 곱씹게 만들까? 이렇게 사람의 감각은 쉽게 변하고, 주위의 환경에 쉽게 설득당하고 만다. 


다시 호텔 구경에 나섰다. 출입구와 메인 리셉션 공간, 중앙계단실, 레스토랑, 중정이 있는 공용공간은 해안가를 따라 북쪽으로 뻗은 두 개의 객실 건물과 연결된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객실 동은 수영장과 작고 경사진 산책로를 감싸고 있다.  


약간은 완성도가 아쉬운 건물의 디테일이 중간 중간에 보인다. 아무래도 바와가 원하는 완성도에 이르기에는 스리랑카의 건축기술이 부족했을 테고, 5성급 호텔에 걸맞은 고급가구와 고급 건축자재를 생산할 리 없었던 그 당시의 산업구조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건물은 아주 간결하게 지어졌다. 남부 해안지방의 몬순기후를 견뎌내기 위해 외부의 재료는 거칠고 투박하게 처리되었다. 중간 중간에 박혀 있는 바위가 과거 이곳이 바위투성이 땅이었음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좁은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잔디가 깔린 마당과 수영장이 보인다. 이 호텔에서 지내는 많은 투숙객들은 어디로 갔는지, 수영장 근처에는 빈 비치베드만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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