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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Love and

말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

by 안종현

내 친구 놈 하나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참 지루한 것들을 좋아하는 거 같아."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말이 맞다. 나는 대체로 지루한 물건이나 일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남들이 관심을 잘 가져주지 않는 것들이 좋다. 가끔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꼭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뭔가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마치 자정을 지나 거울을 쳐다보는 것만 같다. 조금만 손보면 괜찮을 외모(대상)를 보는 것만 같다.


얼마 전에 고든버그(Gothenburg)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 근처에 있던 식물원엘 갔다. 유리 온실에는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이런 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저렇게 다양한 식물들, 그곳을 둘러보면서 언젠가 내가 살 집을 설계하게 된다면, 작은 유리온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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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초록 초록하고 말하지 않는 것들 속을 걷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누가 말을 걸어올까 봐 괜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들 중에는 말이 너무 많은 애들이 있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딴생각에 빠져들고 만다. 듣는 둥 마는 둥 그들의 말을 다 듣고 나면 친구들은 이런 말을 한다.

"넌 참 애가 다정해. 친구들 말, 속사정 다 들어주잖아."

나는 조금 능청스럽게 답한다.

"친구야. 당연한 거 아냐? 뭐 그런 일쯤이야. 언제든지 내가 영광이지."

그들은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을 때, '제발 좀 닥쳐줘.'라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외쳐되었는지를. 뭐가 그리 억울한 게 많은 건지.


해변을 걸었다. 스웨덴도 요즘 날씨가 무척이나 덥다. 한국보다 덥지는 않지만, 보통 선풍기나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 가정집에서 32도로 올라가는 더위를 겪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밖이 시원하다. 조금만 걸어도 쉽게 해변을, 풀들을, 나무들을, 들꽃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좋은 건, 이처럼 말하지 않는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스웨덴 사람들도 뭔가 이상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구석이 있다. 그들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면이 있다. 물론 그들도 술을 마시면 미치광이처럼 돌변하고 세상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 되지만... 그들은 유독 식물 가꾸기를 좋아한다. 아마 지독히도 우울한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스웨덴 친구네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좁은 학생 방은 온갖 식물들로 가득했다. 그는 아직도 이국적인 식물들을 각 지역의 식물원을 돌아다니며 사들이고 있다. 아마 그들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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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일어나, 인사와 커피를 주문한 것들을 빼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러다 안 그래도 짧은 혀가 퇴화할 것만 같지만, 말하지 것들에 둘러싸이지 않아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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