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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Sep 21. 2024

단테의 별 - 1권 1부 29화/1부 끝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풋사랑인가? - (14)

최선경이 박동후회장집 근처로 이사하고, 3월과 함께 신학기개학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유선국민학교 방송부 아나운서 문승협, 최선경입니다.”

정식 개국방송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첫 교내방송을 시작하였다. 모차르트의 세레나데(소야곡) 13번 1악장 ‘Eine kleine Nachtmusik’를 배경음악으로 방송계획과 개국방송일정 등 학교행사를 알렸다. 학교생활에서의 이슈, 선행 등 사연모집과 듣고 싶은 음악신청을 안내했다. 취재기자와 방송요원 오디션도 공지하였다. 방송마지막순서는 시낭송이었다. 간단한 내용이나마 첫 방송 치고는 무난히 잘 마무리되었다. 방송을 마치고 지켜보던 교장과 교감 등 몇몇 선생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오성희선생을 비롯한 방송부원들은 환호하며 서로 격려했다. 학생들이 예고 없던 깜짝 방송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방송실 주변으로 구경하러 모여들고 방송부인기가 급상승하였다.

문승협과 최선경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새로 배정받은 6학년교실로 갔다. 흥미로운 일이 기다렸다. 두 사람의 교실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데다, 복도창문을 열고 고개만 돌리면 서로 볼 수 있었다. 젊고 진취적이란 평가로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엄정한선생과 오성희선생이 문승협과 최선경의 담임이라는 사실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나흘뒤 월요일, 방송부 모두가 기다리고 가슴 떨려했던 개국방송도 계획한 대로 성황리에 마쳤다.

학교관계자를 위시한 지역유지 등 각계각층의 축하가 있었다.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큰 힘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방송을 신기해하며 방송실 주변을 서성거렸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까지 한동안 계속되었다. 선생들이 수시로 해산시켜 교실로 돌려보내기 바쁠 정도였다.


다음날 학생회대의원은 점심시간에 교무회의실로 모이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학생회 부회장 백도엽과 기획부장 부용경이 서울로 전학 가면서 결원된 학생회임원을 다시 뽑아야 했다.

부회장에 선도부장이던 김일한이, 선도부장에 감사였던 천영기가 뽑혔다. 자리이동으로 공석인 감사에 문승협이, 기획부장에 최선경이 새로 선출되었다.

차여선이 방송부차장을 맡고 있는 최선경을 기획부장겸직으로 선출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차여선을 제외한 전원동의로 통과되었다. 문승협도 감사로 선출됨에 있어 김용남의 방해가 있었지만 두 표차로 겨우 통과되었다. 바뀐 학생회조직은 학교게시판에 다시 공고되고, 교무실 학생회 조직도도 수정되었다.

문승협은 감사에 선출됨과 동시에 학생회와 감사 규정을 확인했다. 평소 생각하던 선도부사적동원금지와 학생회일탈행위방지를 구체화하였다. 김용남을 중심으로 한 세력해체에 기틀이 되는 새로운 학생회규정인 소위 ‘일그러진 영웅법’을 마련했다. 학생회 각부원의 자격을 제한해 4∙5학년인원을 축소함으로써 패거리문화를 없애려 하였다. 모임에는 항상 기록을 남겨서 부서고유한 일 이외의 사적행위를 근절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회계감사와 업무감사를 추가해 견제∙감독기능을 강화하는 골자로 감사규정의 제∙개정을 상정했다. 회장 김용남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부회장 김일한의 적극적 지지로 극적통과되었다. 이와 함께 학생회가 학생들 의견을 수렴하여 학생회장선거문제를 재차 건의했다. 교무회의에서 심각한 토론과 검토를 거쳐 최종 승인되었다. 3학년부터 투표권을 갖는 러닝메이트제도로 축제처럼 치르도록 변경됐다. 학생들 스스로 관철시켜 만든 학생민주주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터득해 갔다.


벌써 3주째 점심시간을 마치기 15분 전, 전교생이 운동장에 집합하였다. 정부가 국민건강증진목적으로 시행을 지시한 ‘국민체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엄정한선생이 시범을 보이면 전교생들이 따라 했다.

국민체조는 12가지 동작으로 구성되었다. 유신독재체제를 위한 국민통제목적으로 통일화, 획일화, 군대문화화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학교와 관공서는 물론 일반회사들도 거부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마다 엄정한선생 지도로 전교생들이 한 동작 한 동작 열심히 배웠다. 곧바로 정례화되어 매일 거행하였다. 국민체조를 하느라 점심시간에 놀 시간이 줄자, 학생들의 불평불만과 원성이 자자했으나 별소용이 없었다. 체육시간은 당연지사고, 비 오는 날에도 각반 교실에서 책상옆이나 복도까지 나와 실시하였다.


박진숙이 토요일 쉬는 시간에 동생 박선숙을 데리고 문승협의 교실로 찾아왔다. 박선숙이 학력평가를 받고 나이보다 한 학년 낮춰 2학년에 다니게 됐다며 인사시켰다. 박선숙이 밝아 보여 다행이었다.

“선숙아, 축하해.”

“잉, 고마워.”

“아야, 오빠한테 반말하믄 쓰냐.”

“괜찮아. 우리 같이 학교 잘 다니자, 알았지?”

“잉, 뭔 일 있으믄 오빠 찾아오믄 되제?”

“하하, 그래.”

문승협이 교실 앞에서 박진숙과 박선숙을 배웅하는데 담임 엄정한선생이 왔다.

“동생이냐?”

“아니요, 박진숙의 동생입니다. 이번에 2학년에 다니게 됐답니다.”

엄정한선생은 교사 2년 차로 처음 담임을 맡았다. 6학년 3반 학생들은 매사 의욕이 넘치고 인기 있는 엄정한선생을 담임으로 맞이하여 무척 좋아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일반적인 평가와 다르게 매우 엄격하였다. 청결에 민감해 결벽스러울 정도로 청소를 강조했다. 체육교육과 출신답게 학생들의 체력증진을 위하여 과도할 정도로 체육활동을 시켰다. 그러한 강압적인 지도방식에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에게 호랑이선생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청소불량은 물론이고 교실에서 떠들거나 한 학생만 잘못해도 무조건 단체기합을 줘서 두려움에 떠는 학생들이 점차 늘어갔다. 단체기합으로 엎드려뻗쳐는 다반사였다. 교실바닥에 대가리박기 같은 원산폭격을 시키거나,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의자를 들게 했다. 특히 복도창문을 열어놓은 채 단체기합을 주거나 매를 때릴 때면, 건너편 6학년 8반 여학생들이 쳐다봐서 6학년 3반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수치였다. 문승협도 마찬가지였다. 엄정한선생이 단체기합을 줄 때마다 반장 문승협과 부반장 홍동길에게 지휘책임을 물어 몽둥이로 엉덩이를 열대씩 때렸다. 문승협은 단체기합과 매 맞는 고통보다 건너편 교실에서 걱정스레 바라보는 최선경시선에 무척 창피하였다.

6학년 3반 학생들은 단체기합과 체벌도 괴로웠지만, 모레 월요일에 치러질 3월 월말고사가 큰 고민거리였다. 엄정한선생이 시험성적에 따라 앞자리부터 성적순으로 앉힌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문승협은 주말 밤늦게까지 시험공부하느라 잠을 설쳤다. 비몽사몽 간 아침을 먹으며 TV를 보았다. ‘테네리페 참사, 보잉 747 비행기 2대 활주에서 충돌, 600여 명 사상자 발생’이라는 자막이 떴다. 곧이어 긴급뉴스가 방영되었다.

등교한 학생들이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월말고사 첫날 시험을 치렀다.

저녁뉴스에서 보다 상세한 긴급속보가 나왔다. 다음날 아침에는 두장짜리 8면 신문에 외국소식을 1면에 싣고, 신문 안쪽면도 할애해 충격적 사건으로 대서특필하였다.


KLM소속 암스테르담발 그란카나리아섬행과 팬아메리칸항공소속 로스에인절레스발 그란카나리아섬행 보잉 747 비행기 2대가 로스로데오공항 활주로에서 충돌했다. 탑승객 614명(KLM234명, 팬암 380명)과 승무원 30명(KLM14명, 팬암 16명) 중 사망 583명에 부상 61명으로 항공사고사상 최악의 인명사고였다. 단일 사고에서 가장 많은 탑승객이 사망한 사고로 항공기탑승객사망순위 1위가 되었다.

‘테네리페’ 섬은 아프리카서쪽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에 위치한 제주도보다 조금 더 큰 섬이었다. 상주인구가 90만 명 정도에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인기휴양지였다. 섬 중앙에 3,718미터 높이의 스페인과 대서양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이 있었다.

사흘뒤에 KLM탑승객 중 1명이 사고를 피했다는 기사가 났다. 사고기가 로스로데오공항 이륙 전에 내린 여성승객이었다. 그녀는 원래목적지인 라스팔마스공항을 경유하여 암스테르담에 가려했다. 비행기가 겸사겸사 로스로데오에 도착하자, 로스로데오에 있는 남자친구집에 머물다 다음날 원래목적지로 가려고 중도에 내려 천우신조로 살았다.


3월 월말고사가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나흘간 치러졌었다. 성적발표를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식목일을 맞이한 교내식목행사는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식목행사는 김용남이 회장선거에서 공약한 대로, 김용남어머니가 육성회를 통해 기부한 묘목을 전교생이 교정과 동산에 나누어 심었다.

식목일이 지난 다음날, 엄정한선생이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줬다. 개인성적을 발표하고 성적순으로 앞자리부터 좌석을 다시 배치하였다. 웅성거리는 반아이들에게 몽둥이로 교탁을 두들기며 이미 고지한 사안이니 시끄럽게 떠들지 마라고 호통쳤다. 그러더니 반평균점수이하인 학생들을 호명하여 나오라고 했다. 앞으로 나온 학생들에게 ‘나는 반평균을 깎아먹은 기생충이다’를 외치게 하였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엎드려 벋치라 하여 몽둥이로 엉덩이를 세대씩 때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음 편을 예고했다. ‘이번에는 이걸로 끝내지만, 다음 월말고사부터는 전 월말고사 성적보다 점수가 떨어진 학생은 1점에 한 대씩, 반평균이하 학생은 별도로 운동장에서 기합을 준다’면서 눈을 부라렸다.

6학년 3반 아이들은 성적순으로 앉는 굴욕에 더해 참담한 체벌이 더해졌지만, 이것으로 3월 월말고사성적에 대한 처벌이 끝난 줄 알았다. 엄정한선생이 4교시 수업종료종이 울리자마자, 점심을 먹은 후 운동장에 전원 집합하라고 하였다. 6학년 10개 반에서 6등으로 중간에도 못 들었다며, 수많은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리걸음에 선착순 달리기와 어깨동무 멍석말이로 단체기합을 줬다.

단체기합이 끝나고 6학년 3반 교실은 공포분위기에 휩싸였다. 침통함에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도 떠들거나 놀지 못하고 책만 보았다.

문승협은 5등을 하여 앞자리에 앉았지만, 공포와 두려움은 상위성적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6학년 다른 반 학생들은 3반이 안 돼서 천만다행이라며 3반 아이들을 동정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뛰놀던 학생들이 3반 교실 앞을 지날 때는 조용히 지나갔다. 의식적으로 피해 다닐 정도였다. 최선경도 3반 반장인 문승협을 걱정하였다.

이는 유선국민학교를 명문학교로 만들려는 교장선생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선생들에게 학교학력향상으로 도내평가 상위성적달성과 중학교입학률 향상을 강력히 천명했다. 그 방법으로 각 학년끼리 반별성적경쟁을 부추겼다. 학교장의 방침에 따라 엄중한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어 학교전체가 긴장하였다. 그럼에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엄정한선생의 지도방침에 학생들뿐 아니라 몇몇 선생들도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6학년 3반은 면학을 넘어 침울한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그래도 6학년 3반을 제외한 다른 반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쉬는 시간에도 6학년 3반은 조용한 반면, 다른 반 아이들은 제약 없이 떠들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점심식사를 마친 6학년 3반 교실은 적막감이 감도는 독서실처럼 조용했다. 갑자기 김용남목소리가 복도를 울리자, 한참 시끄럽게 떠들던 다른 반 아이들 소리가 금세 조용해졌다.

“야, 다 들어가! 지금부터 교실 밖으로 나온 놈은 다 디진다, 빨리 들어가!”

선도부와 김용남이 5반 교실 앞에서 통제하였다. 복도에서 장난치며 뛰놀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교실로 사라졌다. 교실창문으로 몰래 내다보던 아이들이 속삭였다.

“아야, 뭔 일이다냐?”

“몰라, 용남이하고 조동구가 한판 붙을 모양인디?”

“저그 강덕구랑 이진구도 5반으로 뛰어간다, 오늘 진짜 싸움 나겄다.”

김용남은 5반에 들어가 모두 엎드리라고 했다. 선도부를 거느리고 뒷자리에 앉은 조동구 앞으로 갔다.

“아야 좃똥구, 느그 고아원새끼들이 우리 학교 아그들 삥 뜯고 때렸단디, 으짜끄나?”

“뭔 개소리어, 아구창 돌려 불기 전에 입 똑바로 놀려라잉.”

“하, 이 씨발 늠이 진짜 디질라고.”

“뭐여 느그, 선도부까지 끌고 와갖고 뭔 지랄이어?”

“아야, 느그 깡다구랑 짱구는 빠져라잉.”

“어허, 어이없네잉. 아야 천영기, 니가 지금 선도부장 됐다고 나한테 씨부리냐?”

“진짜 뽀사불기 전에, 아가리 닥쳐.”

김용남이 이진구멱살을 잡고 한대 칠 기세였다. 이진구도 김용남멱살을 잡으며 몸싸움했다. 선도부장 천영기와 선도부원들이 이진구를 떼어놓았다.

“이 쓰레기 고아시끼들이 악만 살아갖고, 겁도 없이 까부네잉.”

“뭐 이 씨발 놈아? 나는 고아원에 살아도 애비는 있는디, 니는 애비도 없잖애. 에미는 좃나 치맛바람이나 날리고 말이어.”

“뭐, 이 개새끼가 진짜.”

김용남이 앉아있는 조동구의 책상을 발로 차며 덤벼들었다. 조동구가 일어나 뒤로 물러나며 싸울 자세를 잡았다. 둘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씩씩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 싸움은 진전되지 않았다.

조동구는 고아라고 폄하하는 김용남말에 발끈했고, 김용남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들먹인 조동구말에 흥분하였다. 둘 다 갖고 있는 서로의 가장 큰 상처를 건드려 일촉즉발이었다.

문승협이 제지하는 선도부를 뿌리치고 5반 교실에 들어와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며 끼어들까 말까 망설였다.

다른 반 다른 학년인 조동구의 보육원생들과 김용남을 따르는 아이들이 몰려왔다.

문승협은 이대로 뒀다간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지리라는 생각에 개입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용남, 학생회장이 교실에서 이러면 안 되잖아. 싸움을 말려도 시원찮을 판에, 싸움에 휘말리면 말이 아니지. 조동구, 너도 애들 돌려보내라, 여기서 패싸움할 건 아니잖아.”

“째깐한 새끼가 또 끼어드네, 넌 좀 꺼져 새끼야.”

“아야, 낄 데 안 낄 데 구분 좀 해라 이 좃만아.”

“으째, 승협이가 맞는 말했는디.”

김용남과 조동구가 어이없어하며 문승협에게 욕을 했고, 김일한이 다가와 문승협 편에 섰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수업 끝난 후에 동산에서 다 같이 보자, 겁나면 피해도 상관없어.”

“누가 겁을 내?”

“피한다고? 누가?”

“그럼, 올 때 삥 뜯기고 맞은 애도 데려와, 서로 대질해보면 알겠지.”

문승협이 방과 후에 피해당사자를 데려와 서로 확인해 보자고 하였다. 그때 국민체조집합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서로 확실한 동의 없이 각자 운동장으로 나갔다.

최선경이 팔짱 낀 채 자기 반 교실문 앞에 서있었다. 5반 교실에서 나오는 문승협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흘겼다. 참견하지 말라는 자기 말을 안 들었다는 질책의 시선이었다.

방과 후, 문승협은 동산에 같이 가자고 찾아온 김일한을 따라갔다. 조동구를 위시한 쌈구일당과 보육원생들이 먼저 와있었다. 곧이어 김용남이 선도부와 따르는 아이들을 데려왔다.

문승협이 피해봤다는 5학년 학생 두 명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두들겨 맞고 돈을 뺏긴 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 학교 학생인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문승협이 인상착의를 다시 물었다. 머리에 동그랗게 구멍 난 땜통 머리라고 하였다. 강덕구가 누군지 알겠다며, 옆 동네 서해국민학교에 다니는 애들이라고 했다. 선도부장 천영기가 기억하는 아이의 이름을 말하니, 강덕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용남입장이 난처해졌다. 조동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김용남을 죽일 듯 쳐다보았다. 문승협이 한 가지 제안하였다. 강덕구랑 선도부장 천영기를 주축으로 우리 학교학생을 괴롭힌 아이를 찾아 대가를 치르게 하자고 했다. 조동구가 좋다고 동의하자 김용남도 기다렸다는 듯 동의하였다. 문승협은 피해본 아이들과 김일한에게도 동의받았다. 절대 폭력사용 없이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서해국민학교에 고발까지 만이라고 했으나, 똑같이 보복해야 한다는 아이들이 있었다.

“보복하고 싶은 너희들 마음 이해해, 하지만 폭력은 폭력을 불러. 자칫 서해국민학교 학생들이 오해하면, 학교 간 앙숙이 돼서 패싸움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그라믄 같이 맞붙으믄 되제.”

문승협이 재차 설득했지만, 일부 아이들이 계속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김일한이 선배들도 비슷한 일로 학교 간 패싸움으로 번졌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경찰서에 불려 가 곤욕을 치렀다며, 문승협 말대로 하자고 거듭 설득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문승협이 다시 김용남과 조동구를 직접 설득하였다. 둘이 동의하니 다른 아이들도 마지못해 따르기로 결정했다. 김일한이 해산하라고 하자 한 명 두 명 자리를 떠났다. 문승협이 김용남과 조동구를 불러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하였다. 김용남과 조동구가 어색한 태도로 다시 모였다.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려는 건 아니야, 알다시피 난 그럴 사람도 못돼. 하지만, 너희 둘이 이렇게 가버리면 앙금만 남잖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딱 한마디만 할게.”

“짤막하게 해라잉, 씨잘데없는 소리는 빼고.”

“귀신씻나락 까먹는 소리하믄 디진다잉.”

“난 부모가 있지만 자주 떨어져 살았어. 그래서, 전부는 아니어도 너희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너희는 서로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풀이로 해버렸어, 서로에게 아픔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말이야.”

“뭔 소리여 시방.”

“용남이 너는, 동구가 스스로도 금기시해서, 끔찍하게 싫어하는 고아라는 말로 공격했고. 동구 너는, 용남이가 꼭꼭 숨겼던, 일찍 돌아가신 용남이 아버지를 끄집어내 공격했어.”

“긍께 그것이 어쨌단 말이어?”

“동구야, 용남아.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너희는 결국 자기 자신을 욕한 거나 다름없어.”

“…….”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너희는 그 말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란 걸 알잖아.”

“…….”

“상처 주는 말이 틀리지 않을 때, 더 슬프고 가슴 아픈 거래. 먼저 갈 테니까, 둘이 화해하든 말든 해라.”

문승협이 둘에게 다음을 맡긴 채 내려갔다. 둘은 먼산과 땅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머뭇하다 거의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다.

조동구가 동산 쪽으로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동생과 나를 고아원에 팽개친 아부지가 밉긴 한디, 그래도 아부지가 살아있으믄 언젠간 다시 합쳐 산다는 희망이라도 있제만, 아부지가 없는 김용남은 그런 기회조차도 없겄네’

조동구는 갑자기 김용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학교에 치맛바람이라도 날리는 엄마랑 같이 사는 김용남이 부러웠다.

김용남도 운동장 쪽으로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사실 엄니치맛바람 땜시 친구들 보기에 무자게 쪽팔리긴 했어. 아부지 없는 무시나 설음을 받지 않게 할라는 엄니마음을 안께 그동안 참아왔는디’

김용남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아는 자신이 조동구에게 고아라는 말을 해버려서 후회스러웠다.

조동구와 김용남은 각자 돌이켜보며 생각하던 중에 깜짝 놀랐다. 자신들에게 이런 선량한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게 다 문승협에게 받은 선한 영향력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화가 났다.

문승협이 둘만 남겨놓은 채 내려오자, 혹시 무슨 일 있을까 봐 걱정스레 기다리던 김철종이 따라붙었다.

“뭔 말했냐?”

“화해의 장을 만들어 봤는데, 어쩔지 모르겠다.”

“둘이 화해하까?”

“쉽진 않겠지만, 서로 사과하고 화해해야지. 아마 잘될 거야.”

“음마, 둘 다 그냥 간디?”

“어쩌면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 돼서, 지금은 때가 아닐지도 몰라.”

“니 말대로 둘이 화해하믄, 진짜 기적이어 기적.”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고, 공동의 적이 생기면 화해와 동맹은 쉬워.”

“그건 또 뭔 소리 다냐?”

“적벽대전 몰라? 유비와 제갈공명이 손권과 주유를 설득한 동맹으로 조조에 대항해 승리했잖아.”

두 사람은 삼국지이야기를 하며 학교를 나섰다.

문승협은 지난날을 돌이켜보건대, 김용남과 조동구는 애당초 싸울 마음이 없었으며, 어찌 보면 각자 자리에서 서로를 지켜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둘이 부딪혀 하나가 쓰러지면, 쓰러지는 쪽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 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김용남은 ‘일그러진 영웅법’이라는 문승협에 의해 제정된 학생회규정으로 세력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힘의 균형상 화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해국민학교학생회장을 필두로 싸움 좀 한다는 학생들이 찾아왔다. 유선국민학교는 김용남과 조동구가 함께 대응하여 사건을 잘 마무리했다. 다시 조우한 김용남과 조동구는 극적화해로 협력과 공존공생을 택하였다.

며칠 후 조동구가 지나가는 문승협을 붙잡아 헤드록을 걸었다. 문승협은 싸움인 줄 알고 당황했으나 이어진 조동구말에 장난으로 받았다. 조동구가 ‘앞으로 너는 내 친구다잉’이라고 소리치며 주위에 은근히 알렸다.

김용남은 문승협을 찾아와 뜬금없는 고백을 하였다. 작년 5학년반장선거 때 문승협을 찍었다고 했다. 찍은 이유가 친구들 간 차별이 아닌 공평과 공정에 공감이 가서였다면서, 조동구와 화해하였으니 우리도 화해하자고 했다.

이로써 친구들 간 소소한 다툼 외에는 학교 내에 폭력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들에게 ‘갈등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론 갈등이 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이유 있는 나쁨과 이유 없는 선함이 대결하면, 결국엔 조금 더 참고 이겨내는 선함이 이긴다’는 교훈을 남겼다.


4월 월말고사가 가까워지는 날, 이정주가 중학교입시준비로 과외를 받는다며, 문승협에게 함께 하자고 했다. 김용남과 차여선을 포함한 최선경도 같이 한다고 하였다. 김철종도 동참하겠다고 해 6명이 그룹과외를 하게 되었다. 가병수가 뒤늦게 참여의사를 밝혔으나 인원초과로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과외 팀과 시간이 다를 뿐 같은 과외선생과 장소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과외를 받았기에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소소한 개인적 갈등은 남아있었지만 과외를 통해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주 교재는 동아전과와 과외선생이 직접 등사기를 밀어 만든 시험지였다. 과외시간은 주 3일에 오후 5시부터 6시 반까지 1시간 반이었으며, 과외장소는 과외선생집으로 이정주집과 무척 가까웠다.

이정주는 항상 가장 먼저와 예습하며 과외를 준비하였다. 매번 최선경 옆에 앉으려고 애썼다. 그런 의식적인 행동이 너무 티가 나 아이들이 금세 알아차렸다. 최선경이 문승협을 의식해 눈치 볼 정도였다. 모른 척하는 문승협도 점점 질투의 기미가 보였다.

과외선생이 등사기를 밀어 만든 시험지를 나눠주며 물었다.

“너희들 무등산타잔 박흥숙사건이란 뉴스 봤니?”

“예, 잠깐 봤어라우.”

“무슨 일인 거 같아?”

“살인마라 던디요, 으짜믄 사람이 그라까?”

“나는 잘 모르겄드라.”

“그럼, 사회교육 삼아 잠깐 설명해 줄까?”

“네.”

과외선생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부와 언론이 ‘박흥숙’을 무등산을 근거지로 무술을 수련한 괴력의 소유자라며 철거반원을 살해한 살인마라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하였다.

박흥숙은 가난한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친형마저 사망해 어려웠던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중학교에 합격했으나 돈이 없어 진학을 못하였다.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무등산자락에 무허가주택을 지어 일과 사법고시공부를 병행했다. 그런 그가 바로 엊그제 정부와 언론에 의해 난데없이 무등산타잔 살인마가 되었다고 하였다. 광주동구청이 무등산주변 무허가주택을 철거하면서 집에 불을 질렀다. 철거반원들이 지른 불에 박흥숙집이 불타면서 천장에 감춰 둔 돈 30만 원도 함께 탔다. 박흥숙의 여동생이 이사비용으로 쓰려고 엄마가 뼈 빠지게 모은 돈이라며 엄청 화내자, 박흥숙은 어른스럽게 여동생을 말렸다. 철거반원에게 저항하는 엄마를 달랠 때도, 철거반원들도 위에서 시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며 순순히 철거에 응했다. 박흥숙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쇠망치로 철거반원에게 맞서기 시작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철거반원에게 위쪽에 몸이 불편한 노부부가 사니, 거기는 제발 불 지르지 마라고 부탁했는데도 불을 지른 것이 화근이었다. 박흥숙이 끈으로 묶은 철거반원들에게 사과하라고 하였으나, 끈을 풀고 강하게 저항하는 철거반원과 실랑이하면서 4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라고 했다.

“아마, 오늘 저녁뉴스도 선생님이 설명해 준 내용과 다르게 방송될 거야.”

“선상님 말씀이 사실인디도 다르게 나온다고라우?”

“응, 틀림없어, 확인해 봐.”

“에이 설마, 무슨 방송이 거짓깔로 방송할랍디까.”

이 날밤 언론에서는 과외선생이 장담한 대로였다. 어떤 언론사는「사건 직후 언론을 통해 속속 밝혀지는 가운데, 무시무시한 살인범의 정체! 그는 광주무등산 중턱 무당촌을 근거지로 삼아 수련 중인 뒤틀린 영웅심의 소유자 23살 청년이며, 망치를 휘둘러 장정 넷을 살해하는 참극을 벌였고, ‘무등산 타잔, 무등산 이소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괴력의 살인마, 박흥숙!」이라고 떠들어댔다.

문승협이 저녁 먹으며 본 뉴스도 다를 바 없었다. 정의를 실현하는 검사를 꿈꾸던 사법시험준비생을 무예를 연마해 맨손으로 사람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로 묘사하였다. 과외선생님의 설명마지막 말에 깊이 공감되었다. ‘도시빈민에 대한 폭력적인 철거가 원인으로, 국가가 가난한 꿈 많은 한 청년을 살인자로 몰아세운 사건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국가의 도시계획과 건물철거를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을 저버리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폭력이 얼룩진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했었다.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방송에도 놀랐다. 공정방송 공정언론이라면서 언론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어진 뉴스에서 ‘길이 1,161미터 8차선으로 한강 11번째 다리 성수대교착공-1979년 10월 준공예정. 성동구성수동과 강남구압구정동 연결. 한강 다리 중 최초로 경관을 고려한 120미터 장경간으로, 상부는 강재 하부는 콘크리트로 설치하는 게르버트러스교량구조’라는 짤막한 브리핑과 TV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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