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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Sep 23. 2024

단테의 별 - 1권 2부 1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풋사랑인가? - (15)

문승협과 방송반아이들이 아침교내방송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다른 반은 교실문과 창문을 열어놓은 채 아침자습 중인 반면, 6학년 3반은 모든 문을 닫아놓은 채로 단체기합을 받고 있었다. 최선경과 이정주가 걱정스럽게 문승협을 바라보았다.

문승협은 개학한 지 두 달여간 여러 번 단체기합을 받았다. 적응되기는커녕 받을 때마다 가슴 졸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교실문을 열었다. 담임에게 목례한 후 자연스럽게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 끊고 두 손을 들었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엄정한선생이 문승협을 째려보며 반장책임이 버겁냐고 호통쳤다. 반장역할을 못할 거면 그만두든지 방송부를 그만두든지 하라고 하였다. 한 번만 더 아침자습태도가이런 식이면 수업 없이 하루 종일 기합만 주겠다고 엄포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문승협의 다짐을 받고서야 단체기합을 풀었다. 문승협이 손을 내리며 뒷줄 대각선방향에서 벌 받는 김철종을 쳐다보았다. 김철종이 고달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승협은 교내방송으로 아침자습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담임이 책상에 앉아 교실을 지키고 있어 짝꿍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2교시 쉬는 시간에 김철종이 담임눈치를 살피며 화장실에 가자고 하였다. 부반장 홍동길과 학습부장 한봉석도 조용한 교실을 빠져나와 문승협을 뒤따랐다.

“아야 승협아, 이러다 숨 막혀서 디저불겄다.”

“맞어, 교실인지 감옥인지 분간이 안 간단께.”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매일 방과 후 교실청소 때마다, 학습부장이 다음날 아침자습용 산수문제를 칠판에 써놓아야 했다. 이 또한 엄정한선생의 학습방침이었다. 하필 어제 한봉석이 조퇴하는 바람에 적어놓지 못하였다. 반아이들이 아침자습이라도 조용히 했다면 그나마 탈이 없을 텐데, 웅성웅성 떠들다 담임에게 걸려 단체기합을 받았다.

“우리 둘 다 마대자루로 다섯 대씩 얻어터져 부렀다야, 아직도 여그 방뎅이가 얼얼해.”

“나는 부반장이라고 맞어 불고, 봉석이는 학습부장이라고 맞어 불고.”

“앞으로 으째야 쓸란가 모르겄다 진짜.”

“내가 좀 생각해 볼 테니까, 점심시간에 반아이들하고 이야기 한번 해보자.”

“꼰대가 점심시간에도 딱 지키고 있는 디야.”

“교무실로 점심 먹으러 가시잖아.”

“너는 어제 점심방송 가느라 못 봤는가 본디, 어제는 도시락을 싸갖고 와서 지 책상에 앉아 묵드라.”

“그래? 화장실에라도 잠깐 가시겠지. 아무튼, 선생님이 안 계시는 틈에 이야기하자.”

다행히 점심시간이 되어 엄정한선생이 도시락을 들고 교실을 나갔다. 문승협이 재빨리 교탁 앞에 섰다. 김철종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교실창문 쪽으로 가 빼꼼히 열고 망봤다.

“얘들아,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

“반장, 밥이나 좀 묵고 하자.”

“그냥 먹으면서 들어. 언제 선생님이 오실지 모르니까, 빨리 이야기할게.”

“아야, 너도 빨리 밥묵고 방송교대하러 가야잖애.”

“괜찮아, 한 끼 굶는다고 안 죽어.”

“뭔 야그인디 그냐?”

“먼저 너희들에게 사과할게, 반장인 내가 잘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문승협은 일단 아침자습용 산수문제를 빠트리지 않도록 보완해야 했다. 재발방지를 위하여 당번이 하교 전에 반드시 확인해 이상유무를 반장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덧붙여 아침자습시간에 떠들지 말자며 신신당부했다.

반아이들이 잘 알겠고 그리 따르겠다면서도, 갑자기 한탄과 원망을 섞어 그동안 겪은 고충을 쏟아냈다.

아무리 학교생활이 단체생활일지라도 시도 때도 없이 단체기합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불평이었다. 도난사건과 담배소지를 확인하는 소지품검사는 그나마 이해되지만, 하물며 혼식검사와 손톱위생검사까지 한 명이든 열명이든 걸리면 무조건 단체기합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불만이었다. 그만큼 단체 기합과 체벌에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심한 고통과 압박을 받았다.

점점 커지던 반아이들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모아졌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까지 담임이 교실을 지키고 앉아 공부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한다며 지옥도 이런 생지옥이 없을 거라고 토로했다. 반장이 대표해서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담임에게 건의해 달라고 하였다. 문승협도 어찌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가정방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몇몇 학부모들이 월말고사성적순 좌석배치문제와 단체기합에 체벌 문제를 간접적으로나마 이의를 제기하였다. 엄정한선생은 그때마다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켜 좋은 중학교에 많이 보내려면 자극이 필요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담배를 피우는 등 불량학생으로 빠지지 않게 하려 매를 든 거라며 사랑의 매로 이해해 달라고 하였다. 대부분 학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4월 월말고사가 사흘간 치러졌다. 등사판에 철필로 긁은 뒤 등사기를 밀어 만든 시험지였다. 흐릿하여 잘 안 보이면 불러주거나 바꿔주었다. 그리고 며칠뒤 성적이 나왔다.

문승협과 김철종은 과외 탓인지 담임의 교육효과인지 반에서 3등과 8등으로 성적이 올랐다.

3반 성적도 6학년 10개 반에서 3등으로 상승했다. 반 성적향상은 엄정한선생에게 더욱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엄정한선생이 개인성적에 따라 자리를 다시 배치하였다. 이번에는 꼴찌부터 앞 좌석에 배정했다. 수업에 집중토록 한 배려라고 하였다. 또한 이미 천명한 대로 전월말고사성적보다 떨어진 아이들을 과목별로 하락한 점수만큼 매를 때리고, 반평균이하 아이들을 운동장에 집합시켜 단체기합을 줬다.

반성적을 더 끌어올리려는 욕심에 전보다 강하게 체벌했다. 과목점수가 떨어진 강모세와 홍동길이 매를 맞다 피하고 막으면서 손과 허리를 다쳤다. 단체기합을 받는 아이들은 무릎이 까지고 흙과 땀으로 범벅이었다.

학생들이 부상당하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멍든 상처와 흙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귀가하자, 학부모들이 자식들 모습에 격분하여 학교를 찾았다. 때를 같이 하는 부모들도 있었고, 시간차를 두고 교무실과 교장실로 들이닥쳤다.

강모세아버지는 깁스한 아들을 가리키며, 아무리 성적이 중요해도 팔이 부러질 정도로 때릴 수 있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홍동길아버지는 저번에 98점이 이번에 94점이면 실수로 틀릴 수도 있는데, 점수가 좀 떨어졌다는 이유로 이렇게 피 멍들게 때리면 어쩌자는 거냐며 흥분하였다. 다른 부모들도 반평균이하면 이렇게 모욕을 받아도 되느냐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엄정한선생과 교장선생은 곤혹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학부모들 항의는 육성회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교장선생이 나서 6학년 3반 학생들에게 소원수리를 받기에 이르렀다. 결과에 따라 엄정한선생이 문책을 받아야 하는 사면초과에 처하였다.

문승협은 반장으로서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방과 후 교실문을 닫아걸고 반아이들과 대책을 숙의했다. 반아이들은 바른생활과 성적향상을 위한 담임의 노력과 열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과도한 엄격함에 견디기 힘들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문승협은 아이들의 마음과 의견을 종합하고 깊은 고민 끝에 엄정한선생을 찾아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괜찮다만, 괜찮으면 이상한 거겠지.”

“선생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반아이들 생각도 같아요.”

“그래, 무슨 일이냐?”

“저희끼리 이야기해서 의견을 모아봤습니다.”

“의견?”

“방금 말씀드린 대로, 선생님이 저희를 위해 노력하시고,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희가 받아들이고 견뎌내기엔 조금 힘겹다는 의견입니다.”

“그래, 내가 너무 의욕만 앞선 것 같다, 나같이 부족한 선생을 만난 너희들에게 미안하구나.”

엄정한선생이 선생 2년 차에 담임도 처음이어서 모든 게 서툴렀다며 스스로 인정하였다. 반아이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불안해할까 봐 나름 강한 척도 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체육교육과출신이라 십여 개나 되는 교과목을 어찌 가르쳐야 되는지 몰라서,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전 과목 교사용 지도서를 참고하여 밤새워 교안을 짰고, 다음날 수업을 위해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노력했다고 하였다.

“네, 저희도 선생님의 노력과 열정을 압니다. 저희도 잘 따라가려 했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을 다 받아들이기엔 아직 어린것 같습니다. 선생님, 반아이들 입장에서 한 말씀드려도 될까요?”

엄정한선생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자, 문승협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자기 성적을 친구들이 아는 걸 죽을 만큼 싫어합니다. 그런데 성적을 공개하고 성적순자리가 눈으로까지 확인되니까,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더욱 비참해집니다, 중상위권 아이들도 심한 경쟁에 정신적 압박이 크고요. 과외받는 것을 부러워하고 불공평하다면서 가정환경을 탓하는 등 아이들도 생겼어요. 단체기합과 체벌에 대해서도 고통스러워합니다. 정도를 넘어서면 감정 섞인 폭력으로 느껴지고, 비록 어리지만 자존심에 상처받아 굴욕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에게 학교가 지옥처럼 느껴져서 다니기 싫어져요, 학교가 전부인 학생에게는 심각한 생존문제입니다. 학생에게 행복은 성적이 아님을 헤아려주세요.”

문승협은 ‘어떤 상황에서도 법과 자율이 중요하며, 적어도 사회에서 발휘되는 힘은 정의로운 법으로 공인되어야 한다’는 학생회장선거 때 했던 엄정한선생말을 꺼내며 학생자율을 고민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학생자율?”

“네, 저희들의 자율을 한번 생각해 주세요.”

“어떤?”

“저도 잘은 모르지만, 저희들 스스로 해보고 싶은 그런 겁니다.”

“스스로 해보고 싶다?”

“네, 선생님은 말씀하신 교사용 지도서와 교안에 따라 수업목적과 방향에 맞춰 기본을 가르쳐주시고, 저희가 분단 별로 토론하여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또 답을 찾는 그런.”

“하하, 너희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 수 있을까?”

“분단도 스스로 정하게 해서 책임과 의무를 동시에 부여해 주시고, 분단 별 종합성적으로 경쟁을 하도록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글쎄, 가능하겠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 저희를 믿고 지도해 주시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

“그리고, 선생님의 직접체벌대신 저희들 스스로가 상벌을 정하게 해 주세요. 아무리 사랑의 매라지만 맞는 우리도 고통이고, 선생님도 저희들 때리면서 힘들어하시는 거 알아요.”

“그래, 사실 너희들 때리는 게 가장 힘들다.”

“저의 개인생각을 말씀드린 겁니다, 선생님께서 고민하셔서 확장시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엄정한선생은 문승협말을 듣다 ‘진정한 교육자는 늘 고민하고 확장시켜야 한다’는 말이 기억났다. 대학 다닐 때 존경한 교육학교수의 가르침이었다. 어린 제자로부터 잊고 있었던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를 다시 떠올렸다.

문승협을 돌려보내고 대학에서 교육학리포트를 작성하여 발표하던 날을 생각했다. 학교와 가정과 사회의 교육이 병립이 아닌 삼위일체 되었을 때 가장 이상적 교육이라는 부분에서 호평받았었다. 이상적인 참교육자가 되겠다고 꿈을 키우며 열정을 불태웠던 시기였다.

막상 현실에 닥친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지금 교육자가 된 자신은 눈앞에 놓인 성과에 쫓겨 지나친 성적중심교육을 하고 있었다. 규율과 규제 교육으로 이론과 실천에 괴리가 있었다. 수직이 아닌 수평적 교육, 교육자로서 실천적 교육, 열린 교육, 미래를 생각한 교육을 했어야 했다며 자신을 책망하고 반성하였다.

엄정한선생은 교육자로서 게을리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사회정의성추구에 교육목적을 두고 먹이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결심하였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사회를 살아가는 교육을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엄정한선생의 깊은 각성에도 불구하고 교사징계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엄정한선생의 소명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엄정한선생을 내보내고 상해입은 학생들과 반장 문승협을 출석시켜 증인처럼 심문하였다. 강모세와 홍동길 등은 다친 경위와 정도를 묻는 교장선생의 질문을 받았다. 담임선생의 단체기합과 체벌이 과했지만 다른 선생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제자입장에서 스승이 잘못했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말을 끝으로 입을 굳게 닫았다. 이는 문승협과 반아이들이 사전에 상의한 대로 이뤄진 행동이었다.

교장선생이 재차 질문에도 대답 없는 학생들을 내보냈다. 어이없어하는 징계위원들 시선이 문승협에게 집중되었다. 교장선생이 문승협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문승협이 개인이 아닌 반아이들의 의견을 말하겠다며 끝까지 들어주기를 부탁했다.

“저희 6학년 3반 아이들이 생각하는 엄정한선생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엄정한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처럼 성적제일주의학교방침에 충실히 따라 학교만 바라보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엄정한선생님은 당장 제자들의 성적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고, 학교보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가르쳤어야 했다며 반성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체벌할 때마다 괴로운 만큼 아이들의 고통을 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제자들에게 사과하셨습니다. 저희들이 느끼기에는 제자들을 위해 자존심도 버리신 분입니다. 적어도 엄정한선생님은 스승이라는 권위와 상관없이 제자들과 대화가 가능한, 제자의 이야기를 들어준 용기 있는 선생님입니다. 일반교육대학이 아닌 체육교육과출신 교사 2년 차 엄정한선생님은 생전 처음 6학년담임을 맡게 되자, 전 과목 교사용 지도서를 밤새워 공부하셨습니다. 또 부족한 자기로 인해 제자들이 다른 반에 성적이 뒤질까 근심하여, 매일 수업과목을 공부해 와서 열성적으로 수업하셨습니다. 여기 선생님들 중에 처음부터 다 알고 다 잘하시는 선생님이 계신가요? 선생님도 처음이라 배워가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어찌 보면 선생님도 피해자며, 가장 순수하게 제자를 사랑하신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6학년 3반 전원은 엄정한선생님의 징계를 반대합니다.”

“…….”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육성회장님. 저희들 의견을 존중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았어. 알았은께, 인자 너는 나가봐라.”

“정 안된다면, 저희 반이 5월 월말고사에서 일등 할 테니 징계를 철회해 주세요. 저희가 1등 해서 꼭 저희 진심을 보여드릴게요, 제발 그때까지만이라도 징계를 연기해 주세요. 용남이 어머니, 도와주세요.”

“문승협! 문승협! 문승협!”

학생들이 회의실 문밖에서 문승협의 이름을 부르며 동조하였다. 엄정한선생을 징계하라던 학생들도 마음이 돌아서 문승협의 이름을 함께 외쳤다.

문승협이 회의장 밖으로 나가자, 김용남이 문승협어깨를 감싸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어제 김용남이 문승협에게 돕고 싶다며 찾아왔었다. 문승협이 자신의 발언을 육성회장인 김용남어머니에게 지지해 달라는 부탁과 아이들을 회의실 앞에 데려와서 엄정한선생의 징계반대를 외쳐달라 했다.

“승협아, 수고했다.”

“아냐, 수고는 뭐.”

“으째, 잘될 것 같냐?”

“아직 모르겠어, 잘 돼야지.”

“울엄니가 뭐라디? 내가 엄니한테 말하긴 했는디.”

“응, 고개를 끄떡여 주셨어. 근데 엄정한선생님 이름을 외쳐야지, 내 이름을 외치면 어떡하냐?”

“아따 아그들이 그렇게 외쳐 분디 으짜겄냐.”

문승협이 징계위원회 안에서 엄정한선생을 대변하였다면, 6학년 3반 아이들뿐 아니라 김용남과 김일한, 최선경과 차여선, 이정주와 조동구까지 나서 여론전에 들어갔다. 덕분에 엄정한선생의 징계반대분위기가 삽시간에 전교생들에게 퍼졌다. 이외에도 반아이들과 문승협은 체벌로 다친 아이들 집에도 찾아가 부모들을 이미 설득해 놓았다. 진외가 할아버지인 태선화학 박동후회장에게도 부탁을 염두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교를 벗어난 배경을 이용한 청탁에 가까워 최후수단으로 아껴두었다.

이날 징계위원회는 이해당사자인 6학년 3반 학생들이 담임선생의 징계를 반대해 징계여부에 갑론을박하였다. 다행히 육성회장 김용남어머니가 6학년 3반 아이들 주장에 힘을 실어준 발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징계결론을 한 달 뒤로 미뤘다.

엄정한선생은 교감선생에게 징계결정이 연기되었다는 소식과 징계위원회에서 문승협발언을 전해 듣고 눈물이 날뻔했다. 다시 한번 반성과 참다운 교육자가 되어야겠다고 각오하였다. 논란이 시작됐을 때는 그만둘까도 했었다. 징계위원회를 통하여 제자들 마음을 알게 되면서 그냥 그만둔다면 제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며 현실도피라고 생각하였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제자들을 위해서라도 현실을 마주하여 감당키로 마음먹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반아이들에게 향했다. 교실문 앞에서 묘한 떨림에 잠깐 주춤하였다.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교실로 들어가 교탁 앞에 섰다. 용기를 준 제자들과 한 명씩 눈을 맞췄다. 징계위원회에서 반아이들의 의견이라며 했다던 문승협말을 떠올렸다.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좋은 제자들이 있으니, 좋은 스승이 돼야겠다’는 말로 종례를 대신하였다.

문승협은 반아이들을 통제하여 선생님께 경례로 예를 표했다. 반아이들이 진심을 담아 인사하였다.

김용남과 최선경 등 몇몇 아이들이 옆반에서 문승협을 기다리고 있었다.

“승협아, 징계결정이 한 달 뒤로 미뤄졌다드라. 쫌 아까 울엄니한테 들었어.”

“그래? 그나마 다행이다.”

“그것도 울엄니 땜시 그런거다잉.”

“용남이 느그 엄니가 뭐라 그랬대?”

“6학년 3반 아그들이 피해당사자인디, 즈그반 담임을 징계 말아달라고 사정하는 마당에 징계를 강행하믄, 아그들이 이중으로 상처를 받는다고. 적어도 6학년 3반 아그들의 진심을 확인하고 징계를 결정해도 늦지않다믄서, 5월 월말고사에서 1등으로 진심을 확인시킨다고 했은께, 그때까지 징계결정을 미루자고 했다드라.”

“너희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라.”

“아따 그래도, 육성회장 빽이 쎄긴 쎄다잉.”

“그럼 5월 월말고사에서 3반이 1등 해야 되잖아?”

“아야, 느그들 반에서 시험을 조져 부러, 그라믄 우리 반이 자연히 1등 하겄제.”

“으이그, 철종이 너다운 생각이다. 정정당하게 해야지, 그리고 그게 말처럼 쉽니?”

“선경이 말이 맞아, 그건 좀 비겁하잖아.”

“염병 누가 모르냐, 나도 까깝스런께 하는 말이어.”

문승협은 5월 월말고사에서 1등을 해야 하는 부담이 급증했다. 모두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문승협을 바라봤다.

다음날 엄정한선생이 성적순자리배치를 무효화하였다. 반장을 주축으로 상의해 원하는 방식으로 결정하라고 했다. 개인생각이라며 고민해 달라는 문승협의 부탁을 실천하려는 학생자율의 첫 시도였다.

문승협이 주도하여 반아이들끼리 자율적 합의에 의해, 성적 상위자와 하위자가 골고루 분포되게 8명씩 8분단으로 나눠 앉았다. 한 분단에 8명씩 구성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친한 친구와 인기 있는 친구를 찾는 이기심으로 다소 소란이 일었다. 이 또한 스스로 의논하는 과정이었고 결국 잘 타협해 정리하였다. 한발 더 나아가 분단별로 분단장과 부분단장을 뽑게 하고 분단별로 5월 월말고사목표성적을 설정토록 했다. 목표성적합산점수는 지난 월말고사합산성적보다 최소 1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만 주었다. 또한 분단별로 분단 내 성과에 따라 상벌을 만들고 분단별 종합성과에 따른 반전체 상벌을 정했다. 1등 분단은 한 달 동안 청소열외, 꼴등분단은 한 달 동안 화장실청소, 이외에도 당번과 청소구역 조정, 점심시간에 운동장 쓰레기 줍기 등등 희생과 봉사 그리고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상벌을 결정하였다.

엄정한선생이 토론과 결정 과정을 지켜보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주고 추가로 제안했다. 매달 반에서 1등 한 분단에게 영화와 짜장면을 상으로 쏜다는 말에 반 아이들이 환호하였다.

문승협은 반아이들과 많은 학생들의 도움으로 담임의 징계위원회를 연기시키고 시간을 벌어 다행이었지만, 이 일이 과연 잘 될지 걱정되었다. 반친구들을 믿어볼 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엄정한선생은 기존의 일방적 교수법에서 탈피하여 기본원리와 과정을 이해시킨 후, 모범 문제를 주거나 주제를 주어 분단별로 토론해 해결하도록 수업방식에 변화를 줬다. 분단별로 문제를 만들어 다른 분단에게 문제를 내는 퀴즈방식도 도입하였다. 처음에는 속도가 느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했으나, 경험치가 쌓이면서 문제해결과 의사결정 시간이 짧아져 속도가 붙었다. 무엇보다 외우지 않아도 숙지가 잘되었다. 여전한 문제는 모든 제자들이 다 똑똑하지 못해 성적이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때려서라도 이끌어갈 엄정한선생이었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 제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비로소 꼴찌여도 예뻐 보였다.

드디어 발등에 떨어진 5월 월말고사날이 다가왔다. 6학년 3반뿐 아니라 다른 반아이들도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을 치렀다. 엄정한선생과 6학년 3반 아이들은 상상이상으로 잘 나온 결과에 모두 만족하였다. 하물며 6학년 다른 반 학생들조차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반 단합과 협력이 밑받침되어 개인성적상승이 분단성적으로 이어져 반성적까지 향상되었다. 6학년 3반이 6학년 전체에서 1등을 하였다.

문승협이 6학년 3반 학부모에게 알리고 엄정한선생의 징계반대서명서를 요청했다. 자식들의 일취월장한 성적에 크게 기뻐한 학부모들이 손으로 직접 쓴 징계반대서명서에 도장이나 지장을 흔쾌히 찍어줘서 교장선생에게 제출하였다.

다시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엄정한선생이 경고처분을 받았다. 교장선생은 교무회의에서 성적만 중시한 자신도 반성할 테니, 앞으로 과한 체벌을 근절하며 창의적인 교육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된 일요일, 엄정한선생이 약속한 대로 반에서 1등 한 8분단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짜장면을 사줬다. 다른 분단아이들은 부러움에 강한 경쟁심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승협이 속한 3분단이 꼴찌를 하여 화장실청소를 한 달 동안 도맡아야 했다. 8분단 아이들은 담임선생이 보여준 하이틴영화 ‘고교얄개’를 자랑삼아 한동안 이야기하였다. 다른 분단아이들이 다음 6월 월말고사를 기다리는 재미있는 상황도 연출되었다. 다른 반 다른 학년까지 즐거운 유행으로 점점 번져갔다.

중학교입학시험이 무시험추첨배정제도로 확정발표되고, 평준화와 의무교육 기틀이 마련됐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이에 따라 학생회와 방송부가 졸업 시까지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엄정한선생이 변화시킨 교육방식이 정착하는 또 하나의 계기였다. 학생들에게 자율바람은 씩씩한 새싹 같아서, 학생들 얼굴에 비로소 행복한 꽃이 폈다. 올바른 참 교육의 의미를 고민한 모범교육사례로 평가받아 공개참관수업까지 이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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