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17)
얼마 전부터 세간에 이상한 말이 떠돌았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신문지상 한 귀퉁이에 짧게 보도된 사고소식이 실상과 다르다는 소문이었다. 유언비어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지난 2월 5일 공군 C-123 수송기가 악천후로 한라산개미등계곡에 추락하였다. 탑승했던 대한민국 공군장병과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대대소속장병 등 53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서슬 퍼런 신군부독재의 감시 속에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뒤늦게 특전사와 국방부가 대간첩작전훈련 중 발생한 사고라고 했다. 이 또한 제주도사람들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와 전혀 딴판이었다.
2월 6일에 제주공항 신활주로건설준공식이 예정되었다. 행사에 참석할 전두환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707특임대원들과 공군 C-123 수송기 3대를 동원하였다. 이른바 ‘봉황새 1호 작전’이라 명명한 경호작전이었다. 사고는 상부의 잘못에서 기인한 인재였다. 출발지인 제15특수임무비행단은 물론 도착지인 제주공항 역시 눈이 내리는 악천후로 곤란을 겪었다. 강설이 계속되어 성남서울공항통제국은 모든 항공기이륙을 통제했다. 제5전술공수비행단에서조차 이륙이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2번씩이나 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닥치고 안되면 되게 하라’였다. 결국 무리한 운항 끝에 C-123 선두기가 사라졌다. 당시 사고현장을 상세히 찍은 사진자료들이 있었으나, 신군부정권의 언론검열로 신문에 실리지 못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 대다수도 신군부에 압수되어 단신으로 보도됐다. 1980년대 대한민국국군의 전근대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흑역사였다. 더욱이 전두환대통령이 제주를 떠날 무렵 분향소에 들러 ‘이번 사건은 조종사의 조종미숙으로 발생했다,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하였다. 조종사와 하늘에 책임을 떠넘기고 서울로 가버려 유가족들을 분노케 했다. 특전사의 명예와 자존심은 바닥을 쳤다. 진실을 은폐해 유가족들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정권과 군당국의 추악한 면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며, 아직 완전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현재진행형이었다.
정부가 ‘정부종합청사 재배치계획’을 발표하였다. 법무부 등 5개 부처를 과천청사로 이전하고 구중앙청건물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한다는 계획이었다.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이 터졌다. 부산지역대학생들이 전두환신군부의 군대동원을 용인하여 5·18 광주학살을 방관한 미국정부를 비판하며 부산대청동 미국문화원에 방화했다. 2년 전 같은 이유로 운동권 내에 반미정서가 폭발하면서 광주미국문화원방화사건이 발생했었다. 부산지역대학생들도 똑같은 계획을 하였다. 1982년 3월 18일 낮 12시경 부산미국문화원문을 공구로 뜯어내고 휘발유로 불을 질렀다. 다른 팀은 동시에 국도극장과 유나백화점건물 위에서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살포했다. 유인물이 일본쓰시마섬까지 날아갔다는 풍문도 있었다. 전두환신군부정권은 북한의 테러로 선동하고 수사기관에 비상근무명령과 체포담화문을 발표하였다. 현상금 3천만 원을 걸고 수배령을 내렸다. 전국 각지 주민들도 반상회를 열어 경찰에 신고하도록 독려했다.
“무슨 간첩이냐, 현상금을 걸게. 뻔뻔하게 또 담화문은 뭐여, 썩을 놈들.”
“한국과 미국은 우방이고 형제라믄서, 5.18 때는 모른체끼하드만, 속이다 시원하다야.”
“아야, 사람이 한 명 죽고 세 명이 부상했다 안 하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다치게 하믄 못써.”
“큰일 하다 보믄 작은 일을 무시하제, 세상일이 그래.”
“연설하네, 사람목심을 중시해야제, 니도 전두환이랑 똑같은 소리 한다잉.”
“뭣이 똑같애야?”
“광주사태를 폭도들이니 북한군이니 거짓갈로 몰아서 시민들을 학살했잖애.”
“긍께 말이어, 잡히지 말았으믄 쓰겄다, 나한테 오믄 내가 숨겨줄 것인디.”
“염병, 숨겨줄 데는 있고?”
“맘이 그렇다는 것이어 맘이.”
“언젠가는 실상이 밝혀지고, 꼭 평가받을 거다.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는 역사가 있으니까.”
“다들 살기 바쁜디, 누가 기록한다냐?”
“네가, 내가, 우리 모두가 다 산 증인이야. 죽은 자도 어딘가에 흔적을 남겼을 거고.”
“에이, 전두환신군부가 저러코롬 서슬 퍼런디 되겄냐, 텍도 없는 소리 말어.”
“가당찮은 말 같겠지만, 5.18이 2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무언가가 기록되고 있잖아.”
“언젠간 밝혀지까, 진짜 그라까?”
“그럼, 반드시 밝혀져야지. 단죄하고 사죄도 받아야지, 그게 나라고 역사야.”
“심란한 소리 그만하고, 언능 팜플렛이나 확정하자.”
윙스멤버들이 한 달 뒤로 다가온 공연준비를 위해 아침부터 모였다.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과 5.18 광주민주항쟁을 이야기하였다. 리더 강동우가 공연팸플릿인쇄에 앞서 최종점검을 하자고 했다. 팸플릿앞쪽부터 학교재단이사장인사말과 교장초대말, 그룹사운드 윙스 소개와 멤버들 사진, 공연곡 소개, 후원찬조협찬순으로 구성하였다. 큰 틀에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세부적인 두 부분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먼저 멤버들 사진배열을 놓고 의논했다. 다들 자기 사진을 맨 위쪽에 실어 주인공이 되고픈 심산이었으나, 심리전만 펼칠 뿐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이건 내 생각인데, 동우가 리더니까 위에 하고, 나머지는 가나다순으로 하면 어떨까?”
“어짜피 강동우가 맨 위네 뭐, 그렇게 하자 그라믄.”
“아니어, 그래도 승협이가 리드싱어고 우리 윙스의 얼굴인디, 웃짝에다 실어야제.”
“아냐, 난 맨 밑에도 괜찮아, 같은 페이지인데 뭐.”
“됐어, 이의 있는 사람?”
리더를 배려하자는 문승협의 제안에 장홍기가 뜨뜻미지근하게 동조하였지만, 강동우가 메인보컬을 내세우자며 양보했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동의를 구하였다.
이어서 멤버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모집한 후원찬조협찬명단을 놓고 다시 신경전을 벌였다. 아는 사람, 친척, 누구의 누구, 사회적 지위 등을 이유로 앞에 또는 크게 배치토록 요구했다. 갑론을박하다 개인적 친분과 지위는 배제하기로 조율하였다.
“이것도 후원찬조협찬내용과 상관없이 가나다순으로 하자. 모두 같은 마음으로 도움을 줬는데, 금액가치에 따라 정하면 차별일 것 같아.”
“승협이 말도 일리는 있는디, 큰 금액을 지원해 준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만일 거여.”
“돈 많이 낸 사람들의 가오는 세워줘야제, 적게 낸 사람하고 똑같으믄 그것도 역차별이어.”
“맞어, 그런 대우를 해줘야 다음에 또 해주제.”
“금액 순으로 하되, 박스크기는 같게 하는 건 어때?”
“홍보박스나 글자크기도 달랐으믄 좋겄지만, 그걸로 대충 합의하자.”
“시간이 얼마 없은께, 팜플렛인쇄하고 티켓판매를 서둘러야쓰겄다.”
“인쇄는 반나절이면 나올 거야, 영기네 인쇄소에서 해주기로 했어,”
“영기네가 인쇄소 하냐?”
“응, 공짜로 해준다고 했으니까, 후원명단에 넣자.”
“그람, 당연히 그래야제.”
“근디, 티켓하고 팜플렛 값이 너무 싼 거 아니어?”
“아야, 신삥들 첫 공연을 1,000원이라믄 오겄냐?”
“허허, 듣고 보니 또 그런다잉.”
“공연티켓은 500원이고 팜플렛은 200원, 맞냐?”
“잉. 그란디, 공연티켓하고 팜플렛을 같이 사믄 600원으로 하자.”
“그라자, 그래야 쪼깐이라도 더 팔제.”
“공연 후에 행운권추첨해서 선물을 주면 어떨까?”
“그거 좋겄다야. 근디, 행운권을 어뜨크롬 해야 쓰까?”
“티켓모서리에 넘버링해서, 관객입장 때 자르면 돼.”
공연 티켓과 팸플릿을 하나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공짜로 인쇄하는 미안한 마음에 손이 덜 가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비싸서 안 팔릴 수도 있다는 말에 제외됐다. 티켓과 팸플릿 판매처는 악기와 전축음향기기 판매점, 제과점,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전파사와 레코드판매점, 서점과 음악다방 등으로 정하였다. 각 고등학교학생회에 협조를 구하고 초대하기로 했다. 공연장은 목포대학교강당으로 확정되었다. 공연장임대료와 제비용을 제외한 남은 수익은 자매결연고아원과 문일고에 신설된 권투부 선수들의 장비구입비로 기부키로 하였다. 공연사회와 공연장입장 등 진행요원섭외는 문승협에게 맡겨졌다. 공연 티켓과 팸플릿 준비로 멤버들 간에 또다시 작은 갈등이 일었으나, 이번에도 설득과 합의를 통해 나름 슬기롭게 넘어갔다.
리더 강동우가 결정된 그룹사운드윙스공연계획을 학교에 보고하여 승인받았다. 문승협은 동기들과 후배들로 공연진행요원을 섭외하였다. 공연사회를 장기원에게 부탁했지만, 홍지아를 소개해달라는 조건을 붙여서 직접 맡기로 하였다. 공연 티켓과 팸플릿 인쇄를 부탁하러 천영기집으로 갔다.
“요번 월말고사 끝나고 가시나들이랑 같이 놀자, 정난희한테 연락해라.”
“영기씨,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만.”
“아직 2주나 시간 있잖애, 담이한테도 말해놨단께?”
“아니 그게 아니고, 좀 곤란해서.”
“뭣이 곤란해, 성이 말하믄 네하고 따라야제.”
“하하, 그게 좀, 나는 빼주라.”
“그라믄 내가 난희한테 연락하까?”
“아 알았어, 내가 전화해서 한번 물어볼게.”
“뭘 물어보긴 물어봐야, 서방님이 나와라 하믄, 여자가 네하고 냉큼 나와야제.”
“야, 그건 네 생각이고.”
“뭔 소리까, 여필종부라는 말도 있는디?”
“연설하네, 난희가 무슨 내 부인이냐?”
“니 정난희 교육 잘 시켜라잉, 까딱하다 잡혀 살어.”
문승협은 천영기이벤트를 반기지 못했다. 정난희성격상 싫어할 것이 뻔한 데다 전화하기조차 거북스러웠다. 그렇다고 천영기가 연락하게 방관할 수 없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천영기집을 나서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월말고사가 다가오는데 공부할 틈이 없었다. 정난희와 통화도 고민됐다. 공연연습하랴, 인쇄된 공연 티켓과 팸플릿 배달하랴, 행운권선물 사랴 바쁘게 돌아다녔다.
월말고사를 치르고 걱정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망친 시험에 성적하락을 직감하였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시험이 끝난 해방감에 교정을 뛰노는 친구들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어깨가 축 처져 땅만 보고 걸어 교문을 나섰다. 버스정류소 신문가판대에 일간스포츠가 진열되어 있었다. 한국프로야구 공식출범과 첫 개막식을 서울운동장야구장에서 개최했다는 헤드라인을 실어 대서특필하였다. 야구를 무척 좋아함에도 별감흥이 없었다. 제1회 서울국제마라톤대회가 서울여의도일대에서 열렸다는 기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공중전화박스로 시선이 갔다. 부담되는 천영기와 약속을 무시할지, 정난희에게 전화하여 친구계획에 부응할지 생각했다.
‘영기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만든 약속이니 모른척할까? 그래도 여자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는 건데 한번 전화해 볼까? 전화하면 난희가 싫어하지 않을까? 만난 지 3주가 되어가니 혹시 내 전화를 기다리진 않을까? 함부로 집에 전화하지 마라고 했는데.’
여러 생각이 뒤엉켰다. 용기내기도 포기하기도 쉽지 않아 한참 망설였다. 호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운명일지 스쳐가는 우연일지 시험해 보자는 충동이 일었다. 숫자가 나오면 전화하기로 하였다. 동전을 튕겨 손바닥에 받아 덮었다. 정난희와 통화를 바랐는지 내심 숫자이길 기대했다. 덮은 손바닥을 슬며시 들쳐봤다. 숫자‘100’이 눈에 선명히 들어와 미소 지었다. 100이라는 숫자에 100% 확실하다는 해석을 하나 더 덧붙였다. 동전으로 결정한 의지라는 부끄러움과 아무려면 어때 라는 합리화가 충돌하였다.
막상 공중전화박스에 들어서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전화기를 쥐고 심호흡을 했다. 외웠던 정난희집전화번호를 되뇐 뒤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렸다. 통화연결음에 또다시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죽여 기다렸다. 한참 신호 가는데도 받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문승협이라고 합니다.”
“아, 승협이 형?”
“네? 아, 동생 훈희, 정훈희?”
“예.”
“오랜만이에요, 잘 있었어요?”
“예. 누나 집에 없는디요?”
“아, 그래 알았어요, 전화 왔었다고 전해줘요.”
“저기, 이따가 다섯 시 넘어서 전화하쑈, 누나한테 말해 놀 텐께라우.”
“알았어요, 고마워요.”
“말 놓으쑈, 여자친구 동생인디.”
“하하, 그럴까? 시험 마지막 날이라서 일찍 왔구나?”
“예, 형은 시험 잘 쳤소?”
“나 완전히 망쳤어, 이번 시험 망했어.”
“으짜스까, 우리 누난 공부 못한 남자는 싫어한디.”
“하하, 훈희는 중학교 첫 시험인데, 잘 봤어?”
“엄마 들어오요, 먼저 끊으요잉.”
문승협은 황급히 끊긴 전화에 뻘쭘하였으나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을 알려주며 다시 전화하라 하고, 여자친구동생이라는 말에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피식 웃으며 공중전화박스를 나왔다.
정난희남동생 정훈희는 청호중학교에 갓 입학했다. 부모에게 엄히 단속받는 누나 편에서 눈치껏 메신저역할을 하였다. 때론 까탈스러운 정난희에게 오버하다 혼나기도 했다. 하나뿐인 누나라 애정이 깊었다. 정난희 또한 남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에 끔찍이 챙겼다.
문승협이 버스정류장으로 가다 명성윤과 조운대를 만났다. 둘은 2학년에도 같은 반이 되어 여전히 친하였다. 다른 반이 된 문승협과는 예전만큼 가깝게 지내지 못해 서먹했다. 버스에 올라 시험문제를 거론하며 하나 틀렸느니 두 개 틀렸느니 속삭였다. 1학년 같은 반이었을 때는 시험이 끝나면 같이 답을 맞혀보았던 친구들인데, 둘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한 문승협은 소외감을 느꼈다. 둘은 시험이 끝난 날인데도 독서실에 간다며 먼저 내렸다. 문승협은 며칠 뒤면 받아볼 시험성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갑자기 친구들에게 뒤처졌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버스에서 내려 음악학원에 들어가면서 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 넘어 전화하라던 정훈희말을 상기하였다.
윙스멤버들이 2주 뒤로 다가온 공연연습을 시작했다. 공연곡을 전∙중∙후반부로 나눴다. 전반부는 ‘옥슨81의 날개, 블랙테트라의 구름과 나,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중반부는 ‘옥슨80의 불놀이야,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 라이너스의 연’, 후반부는 ‘건아들의 젊은 미소,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Robert Palmer의 Bad Case Of Loving You’를 차례대로 연습하였다. 마지막 앙코르대비곡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 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도 맞췄다. 다섯 시 조금 넘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문승협이 휴식시간과 동시에 부리나케 공중전화박스로 달렸다. 불안과 떨리는 마음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첫 신호가 다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아 흠칫 놀랐다.
“여보세요?”
“난희니?”
“응.”
“통화 괜찮아?”
“응, 말해.”
“전화 많이 기다렸어?”
“아니, 내가 왜?”
“아 아니, 훈희가 말 안 했어?”
“했어.”
문승협은 전화를 기다렸는지 모른척하는 것인지 헷갈렸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타이밍에 만나자고 말할지 기회를 포착하는데 집중했다.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목소리는 왜 그래?”
“왜, 이상해?”
“응, 목소리가 좀 쉬었나?”
“아, 노래 연습 때문에 약간.”
“공연 얼마 안 남았는데, 목 관리 잘해야지.”
“응, 그럴게,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나 오빠 걱정 안 해,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그 그래.”
“그래, 중요한 건 뭐야?”
“아, 다름이 아니고, 식목일에 시간 있어?”
“왜?”
“시간 있으면 볼까 해서.”
“몇 시?”
“한 시쯤?”
“두 시.”
“그래 그럼, 두 시에 석빙고 어때?”
“알았어.”
“근데 그날 있잖아.”
“엄마 들어온다, 끊어.”
정난희는 마침 집에 혼자 있어 편하게 통화하였으나, 시장 갔다 들어오는 엄마에게 들킬까 봐 다급히 끊었다. 문승협은 이해되면서도 갑작스러워 당황했다. 전화가 끊겼는지 재차 확인하고서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친구들과 친구들의 여자친구도 같이 만난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해 찜찜하였다. 나중에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무사히 연락되어 그나마 안심되었다. 왜 전화하였냐고 화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겼다. 만나자는 말에 선뜻 응해준 정난희에게 감사했다.
음악학원으로 돌아가면서, 천영기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데다, 정난희를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한편으로는 정난희마음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전화를 안 기다린척하였다가, 통화중간엔 약간 쉰 목소리를 다정스레 걱정해 주더니, 끊을 땐 또 냉정했다. 여자마음은 갈대와 갔다는 말을 실감케 하였다.
윙스멤버들은 주말 내내 공연연습에 몰두했다. 실제 공연하듯 시뮬레이션하며 부족하고 빠진 부분을 추가하였다. 문승협은 목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식목일인 월요일하루는 쉬기로 했다. 윙스멤버들도 공연을 앞둔 리드싱어의 목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흔쾌히 허락하였다.
휴일인 식목일아침이라 늦잠을 잘법했으나, 일찍 외출하는 아버지 문경준 때문에 다들 모여 조용히 아침식사에 열중하였다. 밥보다 잠을 선택한 작은 고모 문희경만 빠졌다. TV에서 나오는 뉴스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조선중기작품인 미인도가 윤선도 고택 녹우당에서 발견되어……, 문교부장관은 전국대학 총학장회의에서 학생지도와 좌경 이데올로기 비판교육강화를 촉구했으며……, 재일 프로바둑기사 조치훈이 십단위전 결승에서 오다케히데오를 꺾어 3관왕을 달성…….’
“승협이는 바둑 좋아하냐?”
“네.”
“둬봤어?”
“네.”
“누구랑?”
“친구랑이요.”
“어디서 배웠는데?”
“그냥 책보고요.”
“너는 아빠가 물어보면 매번 단답식이냐?”
“죄 죄송합니다.”
“참, 성적표는 안 나왔어?”
“네, 다음 주쯤 나올 거예요.”
“아따, 오랜만에 다 같이 밥 먹는데, 자꾸 밥상머리에서 뭐라 하요.”
“어허, 남편이 말하는데 왜 또 끼어드냐?”
“오메 깜짝이야, 아따 밥 먹다 언치겄소.”
문현아와 문윤아가 문경준의 버럭에 깜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치 보며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문승협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밥알만 쳐다보며 먹었다.
“너 성적 떨어지면, 딴따라 한다고 지랄하지 말고 당장 그만둬, 알았냐?”
“그만 좀 하쑈, 애가 주눅 들어서 어디 밥 먹겄소?”
엄마 이항리가 한마디 더 참견하면서 밥상머리교육으로 분란이 일었다. 남편권위를 무시하였다는 이유로 부부간 언쟁이 점점 커졌다. 일촉즉발 몸싸움으로 번지려는 순간, 막내 문윤아가 재빨리 이항리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누그러지는듯하던 문경준이 분에 못 이겨 밥상을 거세게 밀쳐내고 일어났다. 문승협과 문현아는 겁먹은 표정으로 국과 반찬이 엎어져 뒤범벅된 안방을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문경준이 씩씩거리며 나가고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문승협과 문현아가 주섬주섬 쏟아진 음식물을 그릇에 담았다. 둘은 아무 말 없었지만 슬픔이 가득했다. 곧이어 이항리와 문윤아가 행주와 걸레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이항리가 같이 치우면서 그냥 따로 대충 먹을 걸 그랬다며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렸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한다고 괜히 이것저것 차렸다가 이 사달이 났다며 한탄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남편 문경준의 언행을 뒷담화하며 욕하였다. 문승협이 듣고 있을 동생들 생각에 그만하라고 하자, 이항리가 만류에 화가 복받쳐 느닷없이 문경준에게 당한 분풀이를 쏟아냈다. 문승협은 자신에게 불똥이 튀어 억울했으나 묵묵히 받아들였다. 동생들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고 서글펐다.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죄책감이 폐부 깊숙이 밀려왔다. 아버지분노를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언젠가는 이유를 꼭 물어보고 싶었다. 괴로움을 감당키 힘든 자신도 자신이지만 사춘기 동생들 생각하니 마음 아팠다. 다들 심란한 마음을 떨치려고 각자 할 일을 찾았다. 이항리는 부부싸움 후유증으로 드러누웠다. 한바탕 소란이 있었음에도 작은 고모 문희경은 꿈나라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문승협이 라면을 끓였다. 상심해 있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었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떨치려 밝게 물었다.
“윤아야 어때, 맛있어?”
“라면이 다 그렇지 뭐.”
“치, 오빠가 모처럼 끓여준 건데, 맛있다고 좀 해주라.”
“그래, 맛있다 맛있어, 됐지?”
“네, 엎드려 절 받았네요. 현아는 어때, 맛있어?”
“응, 오빠도 얼른 먹어, 퍼지겠다.”
“하하, 그래,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
“저기 말이야, 아빠가 그러는 거 이해하자,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거야.”
“안 좋은 일 있으면 그래도 돼?”
“그 그러면 안 되지,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가 가족이니까 이해할 순 있잖아.”
“오빠, 가족은 소중하다며, 근데 왜 아빠는 우릴 소중히 여기기 않아?”
“맞아, 소중하면 잘해줘야지, 왜 막하는 거야?”
“그러게, 오빠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너희도 가족이면서 싸우기도 하잖아.”
“그거랑 같아? 아빠는 우리의 아빠고, 또 어른이잖아?”
“아니면, 가족이라는 관계가 웬만해선 깨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일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무슨 뜻이야?”
“아 아니다, 그냥 라면 먹자.”
문승협은 동생들 마음을 풀어주려다 뜻밖의 질문에 당황하였다. 적절한 대답을 해주고 싶었으나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한 뼘 더 성장해 있는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때로는 가족이 더 큰 상처를 준단다, 아빠도 그 피해자지만 오늘은 가해자일 뿐이야. 사람 누구에게나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화내는 마음이 공존해, 아빠도 마찬가지야’라고 말하려다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런 뻔한 말로 일반화하여 동생들을 이해시키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고, 무조건적으로 이해를 강요받는, 그러면서도 계속 봐야 한다는 무기력한 말로 동생들을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동안 교육을 통해서 가족을 가장 소중이 여기라고 배웠기에,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야 할 가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들이 몹시 측은하였다. 최대한 빨리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라도 예의 없는 사랑은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