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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별 – 2권 1부 20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20)

by 태양을 품은 별

KBS3채널 ‘딩동댕유치원’이 첫 방송을 하루 앞둔 일요일, 문승협은 그룹사운드윙스공연날이어서 아침부터 긴장하였다. 멤버들 모두 악기와 장비를 나르느라 정신없었다. 무대세팅에 리허설준비로 바삐 움직였다. 공연의상으로 청바지에 흰색맨투맨티셔츠를 입고, 올해를 끝으로 사라질 교모를 착용했다. 공통된 정체성의 표식인 일제식 교복을 벗고 교모를 씀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였다. 내년 본격시행될 교복자율화를 알리면서 자유와 억압을 표현했다.

점심을 간단히 먹은 뒤 공연순서대로 시뮬레이션하였다. 공연시간은 2시부터 4시까지였다. 6시에 영훈고그룹사운드‘영웅들’ 공연이 예정되어 리허설부터 장비철수까지 일사천리로 마쳐야 했다.

1시 30분부터 관객을 입장시켰다. 윙스멤버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최종점검하였다. 문승협은 김철종에게 부탁한 행사진행을 확인하며 공연전체시나리오를 되새겨보았다. 공연마지막에 있을 끝인사말과 행운권추첨행사도 확인했다.

윙스멤버들이 공연을 10분 앞두고 장막으로 가려진 무대에 모였다. 마침내 2시가 되었다. 김철종이 아직 50여 명 정도가 입장 중이라며 10분 후 공연을 시작하겠다고 안내멘트를 하였다. 멤버들이 긴장하여 경직돼 있었다. 서로 눈을 맞춰가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파이팅으로 격려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윽고 김철종이 무대막 앞에서 공연개시를 알렸다. 문일고재단이사장을 대신하여 참석한 교감선생을 소개했다. 비교적 짧은 인사말이었음에도 관객들이 빨리 공연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지라우?”

“네!”

“허허허, 기다리게 해서 허벌라게 죄송합니다잉.”

“호호호, 하하하.”

“자, 지금부터 공연을 시작하겄습니다. 여러분께 문일고그룹사운드윙스3기를 소개합니다.”

동시에 우상호의 드럼연주를 시그널로 장막이 올라갔다. 무대막이 다 올라갈 즈음 공연인트로곡이 끝났다. 문승협이 무대중앙에 자리한 마이크 앞에 섰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짝짝짝짝짝.”

“잘생겼다!”

“멋지다!”

공연을 기대하는 박수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수줍어하며 소극적인 관객이 있는가 하면, 몇몇 관객은 용기 내어 소리 질렀다.

“본 공연에 앞서 그룹사운드윙스3기 멤버를 한 명씩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리더이자 베이스기타 강동우.”

“짝짝짝, 휘익!”

강동우부터 키보드 이민상과 퍼스트기타 장홍기에 이어 드럼 우상호까지, 문승협이 소개한 순서대로 각자 준비한 시그니처음악을 연주하며 인사했다. 관객들이 멤버들 소개 때마다 박수와 휘파람소리로 반겼다.

“저는 세컨드기타와 싱어를 맡은 문승협입니다.”

“아따 무자게 반갑소!”

“허허허, 호호호.”

“1절만 하고 언능 공연합시다!”

“하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가 이번 공연을 열심히 준비하였지만, 인생 첫 공연이라 실수도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 드립니다.”

“박수, 박수, 짝짝짝짝짝.”

“먼저 옥슨81의 날개, 블랙테트라의 구름과 나 그리고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를 준비했습니다.”

문승협이 전반부 공연곡을 소개하자, 멤버들 시선이 키보드 이민상에게 모였다. 다들 얼마나 떨리는지 심호흡을 하며 키보드 위에 놓인 이민상의 손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이민상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건반을 눌렀다. 드럼과 베이스가 들어가면서 리듬을 탔다. 퍼스트기타가 가락을 입혀 사운드가 융합되었다. 한바탕 전주가 이어지고 베이스기타의 ‘다다당’음률을 신호로 문승협이 노래를 시작하였다.

‘희미한 빗줄기 속으로 바라보아요, 황금빛 비상은 무얼 의미하는지. 바람에 실려가나 너 작은 날개여, 대지를 떠나 날아올라요~’

본격적으로 합주와 노래가 어우러졌다. 이민상은 피아노콩쿠르대회에 참가한 경력이 많아 침착했으나, 멤버들은 생애 첫 무대여서 집중에 또 집중하였다. 합창대회참가 경험이 있는 문승협도 다를 바 없었다. 사실 멤버소개 때부터 심장이 터질듯한 무대공포증이 엄습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조명에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면서는 박자에 몰두하느라 주위를 살펴볼 경황조차 없었다. 1절이 끝 나갈 즈음 관객들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드문드문 반짝거렸다. 2절 후렴에 다다라서야 객석윤곽이 보였다. 점차 적응하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희망 찾아 나래를 펴요, 영혼 찾아 나래를 펴요, 여기에 있어요. 내 작은 소망이 내 빛나는 영혼이 있어요. 내 작은 소망이 내 빛나는 영혼이 있어요.’

멤버들 모두 후렴과 마지막소절을 합창했다. 우상호의 드럼연주를 끝으로 첫곡을 마쳤다. 관객들의 열렬한 함성과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윙스멤버들은 실수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첫곡을 순탄하게 마무리한 멤버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두 번째 곡 ‘블랙테트라의 구름과 나’를 준비하였다. 이민상이 잦아드는 박수소리에 키보드코드를 눌렀다. 드럼스틱을 부딪히는 우상호의 신호에 베이스기타와 퍼스트기타까지 연주에 들어갔다. 퍼스트기타 리프에 이어 노래도입부 ‘랄랄라라라’를 다 같이 불렀다. 문승협이 세컨드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바람에 흩어지는 한 올의 실구름아, 갈래갈래 내 나래는 토담 골로 하늘거린다. 바람에 일렁이는 철부지 먹구름아, 설레이는 가슴 안고 동구 밖으로 뛰어간다~’

문승협은 1절 후렴에서 기타 치던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였다. 간주에서 다시 세컨드기타를 쳤다. 주목된 관객들 시선을 이끌어 퍼스트기타에게 다가갔다. 장홍기가 기타 애드리브로 실력을 뽐냈다. 문승협이 간주가 끝나가자 중앙마이크로 이동해 후렴을 불렀다.

‘구름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 나는 달린다 하얀 고향으로. 처음 외쳤던 그곳, 그곳에 내가 있단다. 젊음이여 푸르름이여, 젊음이여 뜨거움이여 달려간다.’

관객들이 하나 둘 따라 불렀다. 눈부신 조명에 익숙해지면서 객석윤곽이 문승협눈에 들어왔다. 관객들이 1층 좌석을 꽉 메우고 통로까지 빼곡했다. 2층 관객석은 안전사고예방차원에서 폐쇄하였음에도 꽤 많은 관객이 앉아있었다. 두 번째 곡이 끝나고 멤버들뿐 아니라 관객들도 서서히 열기가 달아올랐다.

키보드를 시작으로 퍼스트기타가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를 애잔한 선율로 연주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여기저기 관객들이 따라 불렀다.

‘내 사랑하는 그대여 정말 가려나, 내 가슴속에 외로움 남겨둔 채로. 내 사랑하는 그대여 정말 가려나, 내 가슴속에 서글픔 남겨둔 채로. 떨어지는 저 꽃잎은 봄이면 피지만, 내 사랑 그대 떠나면 언제 오려나. 날아가는 저 철새도 봄이면 오지만, 내 사랑 그대 떠나면 언제~’

문승협이 네 소절을 부른데 이어 이민상이 노래하였다. 몰입한 관객들이 목소리를 높여 합창했다. 관객들 표정이 애틋하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애걸하는 것 같았다.

‘그대로 그렇게 떠나간다면 난 정말 어찌하라고. 그대로 그렇게 떠나간다면 난 정말 울어 버릴걸. 오 그대여 한 마디만 해주고 떠나요, 지금까지 나를 정말 사랑했다고. 오 그대여 이 한마디 잊지 말아요, 나는 오직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걸.’

간주가 시작되고 남학생들이 하나 둘 일어나 춤췄다. 여학생들은 양팔꿈치를 겨드랑이에 부딪히며 날갯짓하듯 율동했다. 소극적 관객들도 박자에 맞춰 손뼉 치며 후렴을 목청이 터져라 불렀다. 중앙좌석 중간쯤 앉은 2학년 4반 강원종과 강덕구 등 학교친구들이 신나 있었다. 흥분한 관객들 얼굴이 문승협눈에 또렷하였다.

노래가 끝나고 강당이 떠나갈듯한 함성과 박수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밴드와 관객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문승협이 전반부곡 정리와 중반부곡을 이어가려고 멘트를 했다.

“감사, 감사합니다. 여러분 괜찮았나요?”

“네! 멋져 부러!”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옥슨81 날개를 첫 곡으로 시작한 건, 저희 그룹사운드이름인 윙스를 해석하면 날개라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윙스 상징곡처럼 매 공연 때마다 포함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라믄 그룹 윙스 주제곡이그만요?”

“하하, 네, 그런 셈이죠.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대로 그렇게라는 노래에 너무 열광적이어서 제가 다 감동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넣어둬 불고, 다음 곡으로 이어갑시다.”

“네, 다음 곡은 옥슨80의 불놀이야와 팝송으로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 그리고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 라이너스의 연까지 네 곡을 이어가겠습니다. 뜨거운 박수 부탁합니다.”

“짝짝짝짝짝.”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멤버들은 우상호손에 잡힌 드럼스틱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드럼반주와 함께 독특한 기타 리프가 더해졌다. 이 노래의 백미인 베이스기타 연주가 이어지자 관객들 고개가 들썩였다.

‘저녁노을 지고, 달빛 흐를 때. 작은 불꽃으로, 내 마음을 날려봐~’

베이스기타 줄을 잡아 뜯는 초퍼주법으로 반복되는 펑키리듬이 관객들의 몸을 가만두지 않았다. 강동우가 흡족한 표정으로 연주에 몰입하였다. 간주에서 능숙한 장홍기의 기타 리프가 더해져 흥을 돋았다. 문승협도 춤추듯 활발히 움직였다. 관객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중앙좌석 앞자리에 앉은 손명옥음악선생과 홍익대그룹사운드 성정규가 문승협을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마지막 후렴은 여지없이 다 같이 합창하였다.

‘저 들판 사이로 가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문승협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깐 사이에 장내가 다소 진정되었다. 장홍기와 이민상이 눈짓으로 문승협에게 준비됐는지 확인했다. 노래가 더 주목되는 팝송 ‘Living Next Door To Alice’를 함께 연주하였다. 문승협이 솔로로 앞 소절을 부르고 후렴부터는 멤버들 전원이 불렀다.

‘Sally called, when she got the word. And she said I suppose you've heard, about alice. Well I rushed to the window, and I looked outside. But I could hardly believe my eyes, as a big limousine rolled up, into alice's drive. Oh I don't know why she's leaving or where she's gonna go. I guess she's got her reasons but I just don't want to know. Cause for twenty four years I've been living next door to alice. Twenty four years just waiting for a chance, to tell her how I feel and maybe get a second glance. Now I've got to get used to not living next door to alice~’

관객들이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물결치며 동참했다. 문승협은 조금 여유가 생겨 노래 부르면서 관객을 살폈다. 이곡을 추천해 주고 악보도 보내줬던 이자연과 눈이 마주쳤다. 전혀 뜻밖이라 놀란 표정으로 웃었다. 이자연이 손을 흔들어 알은체하였다. 문승협의 시선을 따라간 몇몇 사람들이 이자연을 쳐다보았다. 이자연을 본 사람 중에는 한자리 건너 앉은 남강과 박현이 있었다. 뒤늦게 이자연이 가요제에 나온 가수라는 걸 알아봤다. 문승협이 노래종반부를 부르며 좌측좌석 앞자리에 앉은 김부일과 채영이, 채정이와 그 친구들인 중학생 서너 명을 발견했다. 김부일일행 쪽을 바라보며 노래 마지막소절을 마무리하였다. 채정이와 그 친구들이 일어나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다음곡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은 가슴을 파고드는 퍼스트기타 리프로 시작되었다.

‘부는 바람아 너는 나의 힘, 모든 슬픔을 거둬 가다오. 광활한 대지에 끝없는 바다에, 오오 바람이 분다. 가는 구름아 너는 나의 꿈, 높은 저곳에 데려가다오. 푸른 창공으로 영원한 곳으로, 오오 구름이 간다. 나도 따라서 갈래, 머나먼 저곳으로. 나의 꿈을 따라서, 멀리 머나먼 곳에. 부는 바람아 너는 나의 힘, 가는 구름아 너는 나의 꿈. 푸른 희망 속에 끝없이 달리는, 오오 바람과 구름’

문승협의 노래에 이어 멤버들이 후렴에서 백코러스를 더하였다. 관객들이 박수와 함께 떼창으로 응답했다. 문승협은 고조된 분위기에 자극받아 약간 흥분하였다. 좌측좌석 중간자리에 앉아 해맑게 열창하는 덕일중학교동창 못난이형제들을 보았다. 순간 중학교담임이었던 서수연선생이 떠올랐다. 복받치는 슬픔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조명에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뜬금없는 서수연선생생각에 목이 메었다. 노래를 부를 수 없어 입만 벙긋거렸다. 공연 중에 크나큰 실수였다. 다행히 멤버들 백코러스와 관객들 떼창으로 위기를 넘겼다. 가까스로 감정을 추슬러 노래를 마무리했다.

멤버들이 중반부 마지막곡을 이어가려다 괜찮은지 눈으로 물었다. 문승협이 손을 가슴에 댔다가 멤버들에게 손바닥을 펴 보이며 괜찮다고 신호를 보냈다. 이민상이 키보드를 눌러 ‘라이너스의 연’을 연주하였다.

‘동네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문승협이 노래하면서 객석을 향해 박수를 유도했다. 앞곡을 부를 때 조명과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던 우측좌석 쪽으로 움직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자리에 이정주와 김일한, 차여선과 제갈민주 등 국민학교동창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최선경이 떠올라 울컥하였다.

‘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하늘높이 날아라 내 마음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한 점이 되어라 한 점이 되어라 내 마음속에 한 점이 되어라’

문승협은 두 번 실수할 수 없어 핑 도는 눈물을 참아내며 노래를 이어갔다. 이민상이 키보드사운드중심인 간주 이후에 화음을 넣어 불러 끝부분을 멋지게 장식했다. 역시나 관객들이 박수로 성원하였다.

“네, 감사합니다. 아까 바람과 구름을 노래하다, 저쪽에 앉은 중학교동창들과 눈이 마주쳤어요. 저까지 포함해서 못난이5형제라고 불렸죠.”

“허허허, 호호호, 못난이5형제.”

“원래 꼬마5형제였는데, 아주 예쁜 선생님이 못난이5형제로 바꿔줬거든요. 저 못난이형제들을 보니까, 재작년 5.18 이후 소식이 끊긴 그 은사님이 갑자기 생각났어요. 노래 부르다 목이 메어 혼났습니다.”

관객들이 처음에는 웃으면서 못난이5형제라 말하며 중학교동창들을 쳐다봤지만, 소식을 모른다는 서수연선생이야기를 듣고는 숙연한 표정으로 다시 바라보았다.

“마지막 연을 부를 때는, 저기 앉아있는 국민학교동창들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다가 먼저 하늘로 간 국민학교동창생각에 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우울한 이야긴가요?”

“괜찮해.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여기에 계신 관객 여러분들도 그만한 추억 하나쯤 갖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각자 갖고 있는 추억을 응원하면서, 저희가 준비한 나머지 세 곡을 이어가겠습니다.”

“짝짝짝짝짝.”

“분위기가 다운됐는데요, 신나는 노래로 반전에 도전하겠습니다. 이어질 세 곡은 건아들의 젊은 미소와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Robert Palmer의 Bad Case Of Loving You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문승협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상호가 드럼을 힘차게 두들겼다. 관객들이 박자에 맞춰 다시 손뼉 쳤다. 이민상이 리듬 타는 제스처로 키보드를 연주해 주목 끌었다.

‘나의 꿈 나의 모든 것, 어여쁜 꽃 한 송이. 모진 바람 불어와서, 내 꿈을 데려갔네~’

후렴에 들어서 문승협이 마이크를 빼들었다. 관객들 합창으로 분위기가 다시 후끈 달아올랐다. 간주에서 퍼스트기타 장홍기가 과장된 모션으로 애드리브를 쳤다. 베이스기타 강동우가 마주 보고 안정되게 박자를 잡았다. 문승협이 세컨드기타를 풀어놓고 무대좌우를 오가며 노래했다. 무대우측좌석앞자리에 천영기와 이담 커플들과 같이 앉아 있는 정난희를 보았다. 천영기와 이담 커플들이 큰 동작으로 박수를 치고 노래 부르며 적극 동조하였다. 정난희는 주위를 의식한 듯 입술을 다물고 마지못해 손뼉만 쳤다.

‘너와 나의 두 마음 영원한 약속인데 나만을 홀로 두고서 저 멀리 떠나갔나, 젊음아 퍼져라 내 꿈 다시 피어나면 너와 나의 영원한 젊은 미소 밝은 내일 약속하리라’

문승협은 열광적인 관객들 환호에 힘입어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이어갔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홍지아가 중앙좌석 둘째 자리서 일어나 고모와 엄마에 아랑곳없이 흥겨워했다. 그 옆에는 장기원이 김달우와 김영후 등과 함께 들썩거렸다.

마지막 곡 ‘Bad Case Of Loving You’가 연주되면서 관객들 열기가 절정에 달하였다.

‘워우오우어. A hot summer night, fell like a net. I've gotta find, my baby yet. I need you, to soothe my head. Turn my blue, heart to red~’

문승협이 헤비메탈락커처럼 무대를 종횡무진했다. 앞에서부터 맨 뒷자리까지 관객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는 기교까지 부렸다.

‘Doctor Doctor, give me the news I've got a, bad case of lovin' you. No pills' gonna cure my ill I got a, bad case of lovin' you~’

윙스멤버들 모두 과장된 몸짓을 하며 열창하였다. 관객들도 혼연일체 되어 목청이 터져라 떼창으로 부응했다. 노래가 끝나자 강당이 떠나갈듯한 환호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객들이 한층 상승된 여운을 이어가려고 이구동성으로 앙코르를 외쳤다. 문승협이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풀어 논 세컨드기타를 다시 어깨에 멨다. 이민상이 멤버들을 쳐다보며 키보드를 눌렀다. 관객들이 키보드소리에 함성을 더 크게 질렀다.

‘아침햇살에 놀란 아이눈을 보아요 파란 가을하늘이 그 눈 속에 있어요. 애처로운 듯 푸른 아이들의 눈에선 거짓을 새긴 눈물은 아마 흐르지 않을 거야. 세상사에 시달려가며 자꾸 흐려지는 내 눈을 보면 이미 지나버린 나의 어린 시절 꿈이 생각나. 난어른이 되어도 하늘빛 고운 눈망울 간직하리라 던 나의 꿈 어린 꿈이 생각~’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시절에 들었노라. 만수산을 떠나간 그 내 님을 오늘 날 만날 수 있다면. 고락에 겨운 내 입술로 모든 얘기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앙코르곡으로 준비한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과 ‘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까지, 관객들이 노래에 매료되어 계속 따라 불렀다. 우상호의 드럼 기각기에 맞춰 연주를 끝냈다.

“부족한 저희 공연을 끝까지 응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저희가 준비한 곡은 여기까지입니다. 끝으로 이번 저희 공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문일고등학교 손명옥음악선생님의 마무리 인사말이 있겠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문승협의 소개멘트를 들은 손명옥선생이 단상으로 올라오는 사이, 관객들이 박수는 치지 않고 웅성거렸다. 못난이형제들이 눈치를 보다 앙코르를 외치자, 모든 관객들이 따라 외쳤다. 마이크를 받아 든 손명옥선생이 난감한 표정으로 문승협을 불렀다.

“승협아, 어떡하지?”

“네?”

“아니, 관객들이 계속 앵콜을 외치는데?”

“잠시만요.”

문승협이 멤버들과 의논하려고 돌아섰다. 강동우가 밴드결성 뒤 첫 연습곡인 ‘휘버스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을 속삭였다. 문승협이 손명옥선생에게서 마이크를 다시 받아 들었다. 눈치 빠른 관객들이 박수로 동요하였다. 드럼 우상호가 크래쉬심벌 가장자리를 잔잔하게 두들겼다. 이를 신호로 앙코르곡을 연주했다. 문승협이 ‘허’라고 외치자, 관객들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쳤다.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구름 사이로 떠오네, 떠나가 버린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라져 버린 그 사람, 다시는 못 올 머나먼 길 떠나갔다네.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온 세상을 사랑하다, 날리는 낙엽 따라서 떠나가 버렸네. 울어봐도 오지 않네, 불러봐도 대답 없네, 흙 속에서 영원히 잠이 들었네~’

문승협노래에 이상민의 코러스가 더해지면서 관객모두 합창하였다. 1절이 끝나고 한 명 두 명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후렴에서 관객들의 목청이 더욱 커졌다. 간주 이후 반복된 후렴을 부를 때는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훔쳤다. 관객들 눈물에 갖가지 사연이 있겠으나, 말 못 하고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광주5.18민주항쟁의 희생이었다. 누군가는 함께하지 못한 부채의식과 미안함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의 눈물에는 공감과 존중이 담겨있었다. 마지막 소절과 함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친 마음을 정리하라는 듯, 노래종결을 알리는 음률이 세 번 반복되었다. 연주가 끝나는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강당을 울렸다.

문승협에게는 국민학교5학년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이 자리한 무대였다. 강당에 울려 퍼지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점점 잦아들어 사라지듯이 그렇게 과거와 헤어지는 중이었다.

손명옥선생이 끝인사를 마쳤다. 윙스멤버의 지인들이 첫 공연을 기념하러 우르르 무대로 올라갔다. 김철종이 문승협을 대신하여 재빨리 행운권추첨을 진행했다. 한쪽에서는 행운권당첨으로 환호하고, 한쪽에서는 축하인사로 바쁘게 움직였다. 문승협도 꽃다발을 받느라 정신없었다. 이자연이 반갑게 포옹해 주며 기뻐하였다. 윙스2기 남강과 박현이 김용남과 현기정 등 국민학교동창들과 함께 축하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동창 못난이형제들이 마치 자기들이 공연한 마냥 좋아했지만, 아직까지 서수연선생의 소식이 없다는 말에 잠시 슬퍼하였다. 명성윤과 조운대 등 고등학교친구들이 장난스레 꽃술을 마구 뿌렸다. 무대 위는 축제분위기였다. 장기원이 무슨 꿍꿍인지 홍지아가족을 문승협에게 안내했다. 홍지아엄마가 ‘우리 사위 멋져 부러’라며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먼발치서 정난희가 문승협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승협은 기념사진촬영과 축하인사로 정난희를 의식하지 못하였다. 강동우가 행운권추첨에 방해된다며 대기실로 가자고 했다. 이자연은 광주로 돌아가야 해서 차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 채 서둘러 갔다. 손명옥선생과 성정규 등 공연관계자와 윙스2기 선배들은 뒤풀이장소로 먼저 이동하였다. 축하인사를 마친 문승협의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끼리끼리 돌아갔다. 아직 축하인사를 못다 한 지인들이 대기실로 뒤따랐다. 김부일과 채영이도 채정이와 그 친구들을 앞세워 대기실로 향했다.

“승협이 오빠. 오라버니.”

“어, 정이야. 너희들도 같이 왔구나.”

“오빠, 공연 축하해요.”

“오라버니, 멋져붑디다잉, 정이가 으째서 오빠를 좋아한 지 인자 알겄소.”

“승협아 축하해, 진짜 노래 잘하드라잉.”

“아야 공연 잘 봤다잉,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하하, 고생은 뭐. 부일아 와줘서 고맙다, 영이야 고마워, 정이랑 너희들도.”

“오라버니, 우리 다 같이 사진 한방 찍읍시다.”

문승협은 건네받은 꽃다발을 품고 함께 사진 찍었다. 그러는 사이 천영기와 이담이 여자친구들과 들어섰다. 뒤에는 정난희가 어색한 모습으로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문승협과 사진을 찍은 채정이의 친구 조여주와 공현정이 목화여중선배 정난희를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정난희는 어정쩡한 태도로 인사를 받았다. 순간 채정이와 정난희 둘 사이에 묘한 눈빛이 오갔다. 그 광경을 포착한 천영기가 너스레 떨면서 여자친구 팔을 밀어 눈짓하였다. 류연경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문승협에게 안겼다.

“승협아, 니 가수 할 생각 없냐, 내가 우리 외삼촌한테 말해서 매니지먼트하께.”

“긍께 말이어, 나는 진짜 니가 노래 잘할 줄 몰랐다잉.”

“하하, 쑥스럽게 왜들 이러셔.”

“나는 승협이 노래실력을 국민학교 때 소풍 가서 알았제, 그때 대단했어.”

“철종이 왔구나, 수고했어, 밖에 행사는 다 끝났냐?”

“잉, 잘 마무리했어. 승협아, 니를 좋아하는 극성팬들 모셔왔다.”

“승협오빠, 나 기억하요?”

때마침 김철종이 행운권추첨을 마치고 박진숙자매들을 대기실로 데려왔다.

“그럼, 기억하지. 넌 박선숙이고, 너는 박미숙.”

“것 봐라, 내가 뭐 라드냐, 승협이 오빠가 기억할 거라고 했제?”

“그래, 니 똥 굵다.”

“허허, 아그들은 입장불가인디 어뜨크롬 들어왔으까?”

“저것들이 데꼬 가라고 난리부르스를 쳐서, 내가 철종이한테 부탁했어.”

“진숙이 처형이 부탁한께, 내가 빽 좀 썼다.”

“아야, 빽 써준 건 고마운디, 으째 내가 니 처형이대?”

“아따 니는 그렇게 눈치가 없냐, 선숙이하고 미숙이 둘 중에 한 명은 나한테 시집오겄제.”

“염병, 니는 느자구 없는 것이 여전하다잉.”

“사람이 갑자기 변하믄 죽어, 그런 말은 하덜덜 말어.”

“철종오빠, 우리 데꼬 온 거는 감사한디, 나는 승협이 오빠한테 시집갈란께 헛물 키지마쑈.”

“뭔 소리까, 승협이 오빠는 내 서방인디? 승협오빠, 내가 얼마든 기둘릴 텐께, 나랑 결혼하기 전까지는 딴 여자들 많이 사귀쑈, 내가 다 이해하께라.”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대? 아따 우리 자매님들 으째 그라요, 자매님들 땜시 내가 쪽팔려서 디져불겄소. 느그는 사춘기도 없냐, 으째 부끄러운 줄도 모르까잉.”

“하하, 진숙아 괜찮아. 동생들이 장난으로 그러는 건데, 네가 그렇게 정색하면 어떡하냐?”

“연설하네, 니는 저 진지한 자매님들 표정이 안 보여? 이것도 다 너 땜시 그래, 괜히 헛바람 넣어서는 그냥.”

벌써 6년이 지났는데도 박선숙과 박미숙은 문승협과 추억을 또렷이 기억했다. 문승협은 박선숙과 박미숙을 보면서 같은 또래 여동생인 문현아와 문윤아가 생각났다. 비록 입장불가고 공연사실을 집에 비밀로 하였으나, 여동생들을 몰래 라도 데려올 것을 후회했다.

“여러분들, 축하는 이쯤 하고, 다음 손님들 생각해서 대기실을 비워줍시다.”

“아쉽긴 한디, 그렇게 합시다. 승협아, 나중에 보자잉.”

김철종이 북적대는 대기실을 살피더니 문승협의 지인들을 대기실 밖으로 이끌었다. 천영기가 공조하여 몰고 나갔다. 다들 아쉬운 표정으로 문승협에게 손인사를 하였다. 정난희가 일행들 뒤를 따라가다 멈칫멈칫했다. 천영기가 마지막에 나가면서도 정난희를 관섭하지 않았다. 문승협이 정난희에게 다가갔다.

“왔어?”

“응.”

“공연 어땠어?”

“괜찮았어. 이거.”

“와, 꽃 예쁘다.”

“별거 아냐, 꽃집에서 아무거나 골라 담은 거야.”

“하하, 아무거나 치곤 너무 예쁜데?”

“왜, 더 예쁜 꽃다발 많이 받았잖아?”

“그래도, 네가 준 것만 하겠어?”

“장모님이 준 꽃다발도 있고, 모델이 준 꽃다발도 있고, 아까 꽃다발 준 예쁘게 생긴 얘가 채정이 맞지?”

“하하, 봤어?”

“그래, 웃음이 나오겠지. 좋아해 주는 여자들이 엄청 왔으니, 좋아할 만도 하겠다.”

“그런 거 아냐, 네가 와줘서 기뻐서 그래.”

“이번 주 지나고 다음 주는 시험이니까, 시험 끝난 일요일 두 시에 독일제과에서 봐.”

한 무리 사람들이 대기실로 들어오자, 정난희가 다음 약속을 일방통보하고 서둘러 빠져나갔다. 문승협은 정난희의 생각과 감정을 좀처럼 간파하기 어려웠다.

방금 들어온 한 무리는 다음공연을 할 영훈고그룹사운드 ‘영웅들’이었다. 국민학교동창 김주동이 베이스기타를 치는 ‘영웅들’ 멤버였다. 리허설을 해야 하니 협조해 달라고 하였다. 윙스멤버들이 바삐 움직여 악기를 옮겼다. 의미있는 꽃다발을 챙겨 뒤풀이장소로 갔다.

손명옥선생과 성정규가 수고를 격려했다. 삼겹살을 굽고 선지해장국을 먹으며 간단하게나마 공연품평을 하였다. 다들 최대 600명 정도 관객을 예상했었다.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000명 가까이 입장하여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이전까지는 고등학생그룹사운드가 없던 데다 공연자체가 어려운 사회여건이었기에, 어찌 보면 고교생들이 거의 처음 접하는 그룹사운드공연이어서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수준 높은 기성그룹사운드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완성도가 높은 연주였다.


윙스멤버들은 첫 공연을 마치고 유명세를 치르는 등 후유증이 있었으나, 문승협은 이틀 만에 일상으로 돌아왔다.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라도 월말고사를 준비하려고 독서실을 찾았다. 천영기가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칸막이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야, 독서실에 왔음 공부를 해야지, 초저녁부터 자냐?”

“시방 몇 시냐?”

“11시.”

“야자 끝나고 바로 왔냐?”

“응. 다음 주부터 시험인데, 얼른 일어나 공부해라.”

“아야, 잠 깨게 바람이나 쐬러 나가자.”

문승협은 자리에 가방을 놓고 천영기를 따라 독서실옥상으로 올라갔다. 반짝이는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저녁 묵고 와서 공부하다가 깜박 잠들었다야.”

“뭐야, 오늘 학교 안 갔어?”

“잉, 오늘 우리 학교 귀빠진 날이어.”

“아, 개교기념일,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았다야.”

“공연하느라 힘들었을 텐디, 좀 쉬지 그랬냐?”

“다음 주에 시험인데, 불안해서 쉴 수가 있어야지. 담이는 오늘 안 오냐?”

“그 시끼는 학교 끝나고, 현진이랑 만나서 올 것이다.”

“둘이 학교가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그런 건 좋겠다.”

“그나저나, 니는 정난희랑 으짤래?”

“뭘?”

“아니, 내가 본께 느그들은 안 되겄드라.”

“뭐가?”

“까놓고 말하믄, 정난희 걔는 싹수가 노랗드라, 순진한 니를 갖고 놀잖애.”

“뭔 소리야, 내가 이해하면 되는 거지, 별소릴 다한다.”

“아야, 니가 거지냐, 사랑을 구걸하게?”

“야, 너 말이 심하다.”

“답답한께 한 말이어, 이 순진한 놈아.”

“돈을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인데 뭐 어때?”

“니 방금 뭐라 했냐, 사랑? 니 정난희 사랑하냐?”

“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사람을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판단하지 마라고.”

“내가 눈에 뭐가 씌었는지, 정난희를 니한테 소개하다니, 후회막급이다야.”

“내가 싫다고 할 때는 만나보라고 주구장창 떠들더니, 이제 와서 훼방이냐?”

“정난희가 그렇게 싸가지없을 줄은 몰랐제, 이리도 착한 놈을 괴롭히다니 말이여.”

“영기야, 내가 알아서 할게, 그냥 나한테 맡겨주라.”

“아니, 시방이라도 딴 가시나 소개시켜 주께야?”

“됐어, 이제 와서 무슨. 의리가 있지, 배신할 수 없어.”

“염병하네, 둘이 뭔 일 있는 것도 아니고, 뭔 사랑과 전쟁 같은 영화 찍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그러냐, 남자로서 책임감이지.”

“니 혹시, 벌써 그 여시한테 넘어가갖고 뭔 일 저지른 거 아니제? 그런 거여?”

“아냐, 아무 일 없어, 아직 사귀자는 말도 못 했는데 뭐.”

“그라믄 잘 됐네, 내가 다시 새로 소개시켜 주께, 가시나들이 니 소개시켜달라고 줄 섰단께?”

천영기는 도도한 태도로 안하무인 하고 자존심까지 세게 부리는 정난희를 몹시 못마땅해하였다. 교만하고 건방진 것은 차치하더라도 문승협을 업신여기며 안절부절못하게 하여 싫어했다. 나중 옥상으로 올라온 이담도 천영기의견에 동조해 정난희를 부정적으로 말하였다.

“됐어, 됐다고. 담이야, 내가 알아서 할게.”

“당사자가 좋다믄야 할 수 없제, 승협이 니 의사를 존중해야제 우리가 별수 있냐?”

“이해해 줘서 고맙다, 내가 감당하기 힘들면 말할게.”

“그래, 혹시 또 아냐, 정난희가 니 만나서 개과천선할지도 모르잖애?”

“하하, 아무튼 너희 생각은 알았어. 그리고, 나랑 난희랑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야.”

“알았다 알았어, 잘 생각해서 해라, 니 맘 다칠까 비 걱정돼서 한 말인께.”

“담이야, 네 여자친구는 어디 갔어?”

“현진이? 현진이는 아래 독서실서 공부하제. 우리도 내려가서 공부나 하자.”

“그래, 승협이 연애관섭은 여기까지 하고, 내려가자.”

천영기와 이담이 언급한 정난희문제를 문승협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월말고사에 집중하여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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