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별 – 2권 3부 2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62)

by 태양을 품은 별

레이건미국대통령이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한미공조를 대내외과시하며 남북갈등차단에 힘을 실었다. 전두환대통령과 청와대서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휴전선최전방시찰에 나섰다. 한국군전투력증강지원 등 한미안보공동성명에 서명을 하고 떠났다.

KBS저녁뉴스는 레이건대통령방한결과를 조명했다. 미국의 한국특혜관세연장 등 한미고위급경협증진방안논의를 주요 성과로 꼽았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중단되고, 지난날을 되짚으며 특집보도하였다.

이산가족찾기프로그램은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38일간 453시간 45분으로 단일프로생방송기록상 세계최장시간이었다. KBS의 아나운서와 PD, 음향과 조명 스태프 등이 총동원됐다. 전화접수 대학생아르바이트를 합하면 외부인력도 1,000명에 육박했다. 이산가족 5만여 명이 여의도를 찾아 100,952건을 접수하였고, 53,536건이 방송되어 10,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이전 신문과 라디오의 이산가족상봉시도와 비교하면 엄청난 결과였다.

사실 이산가족찾기는 휴전 30주년 6.25 특집을 논의하다 파생된 스핀오프였다. KBS가 이산가족 라디오방송을 알음알음 주선해 왔다. 교류할 수 없는 소련령 사할린과 중공령 북간도가 대상이었다. 6.25주간 중 ‘아직도 내 가족을 못 찾았소’라는 라디오프로를 동포들과 방송하였다. 청취자반응이 뜨겁자, 공영미디어 TV파급력을 이용해 남한만이라도 이산가족을 찾아보잔 아이디어가 나왔다. ‘스튜디오 830’에 아홉 가족을 초대하지만, 단 한 명의 상봉도 이루지 못했다. 담당 PD가 자극받아 특집방송기획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시기도 적절하였다. 1980년 초 경찰보유 주민등록자료가 전산화되고, 1982년 치안본부가 이산가족희망자 이름검색서비스를 가동했다. 동명이인이 많아 희귀 성씨가 아닌 이상 찾기 어려웠다. 얼굴이나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였다. 마침 컬러방송이 시작되어 TV의 보급과 중계소가 늘어났다. 남한국토대비 가시청률이 90%대에 육박했다. 이산가족상봉프로그램의 성공여건이 충족되자마자 시작한 것과 다름없었다.

원래 단발성코너였다. 6.25 전쟁 33주년 특별기획 2부작‘지금도 이런 아픔이’ 중, 제2부‘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였다. 1시간 30분 진행 후, 마감뉴스를 끝으로 종료예정이었다. 사전신청받은 이산가족 중 150여 명을 공개홀에 모아놓고, 아나운서 두 사람이 한 분 한 분 사연을 상세히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각 지역국을 연결해서 양측 사연이 맞을 경우, 전화통화와 이원중계를 계획하였다.

6월 30일, 관계자들이 방송을 앞두고 과연 잘될지 노심초사했다. 9시 뉴스와 정규프로가 끝난 10시 15분, 부조정실큐사인과 함께 확장방식 120분짜리가 생방송되었다. 갑자기 KBS홀접수대에 상봉신청이 쇄도하였다. 밤 11시쯤에는 중앙홀이 꽉 찼다. 0시 15분에 마쳐야 할 방영을 끝낼 수 없어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일단 새벽 2시 30분까지 연장했다. ‘보도본부 24시’를 마지막으로 송출을 종료하였다.

4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신청자만 2천여 명에 달하고, 시청자반응이 뜨거웠다. 800명 넘게 몰려들어 방청석마저 이산가족들로 채워졌다. 아나운서를 비롯한 서브진행자들이 긴급 투입됐다. 스튜디오전화 10대는 물론이고, 781~784국으로 시작한 모든 KBS회선이 요란하게 울렸다. 서울과 지방대도시의 전화국에 전자교환기 DDD가 설치된 이래 초유사태였다. 한 자매의 첫 상봉으로 5시간가량 29 가족이 만났다. 이산가족들은 무작정 여의도를 찾았다. 아나운서멘트도 부추겼다. ‘빨리 KBS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통행금지가 해제됐으니 언제든 나오실 수 있어요’. 정보부족시대의 미디어위력에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동트기 전 1만여 명이 KBS 앞서 장사진 쳤다. 전날 방송되지 못하거나, 등록하러 달려온 이산가족들이었다. 풍찬노숙을 감행하면서 천막촌이 될 정도였다. 이산가족소식과 프로그램출연문의로 방송국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전화회선을 5대 더 늘렸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기존정규편성을 모두 취소하고, 새벽까지 방송한 아나운서들이 이날도 진행하였다. 공개홀이 비좁아지자 본관중앙홀에 좌석을 마련했다. 아나운서들을 추가투입해 여의도에서도 이원중계를 개시하였다. 시청자들은 방송을 보며 눈물로 밤샜다.

다음날 직장에 지각한 사람들이 속출했다. 토요일정오뉴스를 제외하고, 이산가족찾기생방송을 이어갔다. 오전근무반공일이라 시청률이 폭발하였다. 전국방송국에 수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애타게 가족을 찾는 마음에 노숙하다시피 했다. 진행자와 제작진들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5일 동안 밤낮으로 계속된 생방송시청률이 78%를 찍고, 500여 명이 상봉하였다. 신군부독재정권이 이런 호재를 그냥 넘길 리 만무했다. 정부개입에 북한압박내용이 들어가고, 칼 각 잡힌 군모를 쓴 직업군인도 두어 명씩 출연하였다. 가족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 와중에 빼놓지 않은 멘트가 있었다. ‘전두환대통령각하를 비롯한 기회를 주신 연대장님과 사단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전두환대통령이 KBS를 깜짝 방문한 장면도 방송을 탔다. ‘한 명이라도 더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오’. 국가원수특유의 숟가락 얻기였다.

해외반응도 타올랐다. KBS본관에 전 세계 25개국 기자들이 상주했다. 상봉소식을 실시간 전달하면서 국제사회관심이 집중됐다. 미국과 일본 등 세계최고매체들이 주요 토픽으로 다뤘다. UN사무총장이 이산가족비극에 깊은 동정과 이해를 표하였다. 제70차 IPU서울총회에 참석한 7개국 17명의 위원과 국제인권연맹이사일행이 현장을 방문했다. 레이건미국대통령도 연설을 통해 북한참여를 독려하였다. 냉전시대의 역사적 의미에 남북한이산가족문제가 국제이슈로 부각되었다. 대한적십자사총재가 이산가족문제해결을 미루지 말자며, 남북회담재개촉구담화문을 발표했다. 한미대통령이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적극 지지하였다.

일반국민들과 이산가족들은 정치적 미사여구에 관심 없었다. 오로지 어떻게 헤어졌고 어떻게 만났는지, 어서 빨리 만나 행복해지길 두 손 모아 빌었다.

기구한 이산가족사연들이 심금을 울렸다. 살아있는 어머니제사를 지낸 아들. 사는 건 걱정 말라는 형제. 부인이 찾아서 천신만고 끝에 만났지만, 30년 수절하다 재혼한 것을 알고 씁쓸히 발길을 돌린 남편. 전쟁의 비정함이 국민들 가슴을 후벼 팠다.

기분 좋은 행운도 있었다. 부산 사는 아들이 장모생일로 서울에 왔다가, 여의도광장서 우연히 아버지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고 형제를 찾았다. 어떤 가족은 접수하면서 딱 마주쳤다. 공개홀에서 서로의 사연소개팻말이 비슷한 것을 보고 상봉하게 된 오누이도 있었다. 한 자매는 전쟁 이후 각각 다른 집에 양녀로 보내졌는데, 한 명을 입양한 가정이 노천명시인이었다.

이산가족대부분이 어릴 적 헤어져 가족이름을 기억 못 하고, 본인이름조차 어렴풋이 아는 정도였다. 살았던 동네위치나 큰 나무 같은 상징적 추억을 기억해 냈다. 사마귀나 흉터 같은 신체특징들을 지역국 간 TV카메라에 보여주어 안타까웠다.

이전까지 KBS가 어용방송이란 오명을 들었으나, 4개월 보름가량 이산가족찾기생방송을 통하여 공영방송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받았다. 생방송종결은 아직 찾지 못한 이산가족들에게 청천벽력이었다. 방송을 이어가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였다. 엄청난 국민적 관심사였던 터라, 이산가족이 없는 국민들마저도 한마음한뜻이었다. 전과 다름없이 KBS주변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가족을 찾는 벽보가 계속 나붙었다. 국민들 관심도 식지 않았다. 오프닝타이틀곡‘패티김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와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을 들으면 이산가족상봉을 떠올렸다. 한국문화예술과 공감이라는 국민성 등 다양한 분야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다.


대입학력고사를 사흘 앞두고, 문교부가 1985년부터 중학교의무교육 단계적 실시를 공표했다. 문승협이 독서실로 가면서 천영기와 이담에게 상자를 건넸다.

“먹기 쉽게 포장한 갱엿이야, 시험 잘 쳐라.”

“뭐여, 엿 먹으란 말이어?”

“그래, 엿 먹어라.”

“허허허, 드디어 낼모레 지나믄 시험이다잉.”

“그러게, 너희들 내일도 독서실에 올 거야?”

“나는 오늘까정만 할라고, 낼은 집서 할란다.”

“난 낼도 올란다, 집에 있어봐야 속만 시끄럽고.”

“승협이 니는?”

“글쎄, 하루 더 공부한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닌데, 또 안 하자니 불안하고 그러네.”

“어차피 오늘 밤새서 공부하믄 낼인디 뭐.”

문승협은 마지막공부라 해서 특별히 잘되진 않았다. 여전히 책을 보면 머리가 아팠다. 시험 치를 때도 증상이 나타날까 봐 걱정됐다. 실전처럼 시간표에 맞춰 종합문제집을 풀어봤다. 그래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암기과목요약노트를 폈다. 몇 줄 훑어보다 어느새 잠들었다.

새벽녘 깨어보니 엎드려 자는 천영기와 이담만 있을 뿐, 수험생으로 가득 찼던 독서실이 텅 비어있었다.

동틀 무렵, 이담이 집에 가서 편히 자야겠다며 일어났다. 천영기와 문승협도 덩달아 독서실을 나섰다. 서로의 건투를 빌고 헤어졌다.

문승협이 집에 들어가니 모두 잠들어 조용하였다.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들어가 이부자리에 누웠다.

정오쯤 동생 문현아가 밥 먹으라며 흔들었다. 비몽사몽 일어나는 문승협에게 모찌떡을 내밀었다.

“오빠, 지금 이거 하나 먹어.”

“이따 먹으면 안 돼?”

“응 안돼, 받는 즉시 먹어야 효과가 있단 말이야.”

“밥 먹어야 하잖아.”

“어허, 빨리 먹어. 자, 아 해봐.”

“알았어, 내가 먹을게.”

“현아야, 엄마도 하나 주라.”

“엄마, 이거 오빠 시험 잘 보라고 주는 거야.”

“시험?”

“응, 모레 오빠 대학입학시험 치잖아?”

“대학시험이 모레야?”

“엄마, 오빠시험이 언제인지도 몰라?”

“모를 수도 있지, 대학시험이 별거냐?”

“와, 오빠한테 장남장남 할 때는 언제고, 장남 대학시험날짜도 모르다니 진짜 너무한다.”

“아이 시끄러, 그깟 시험 갖고 난리어.”

“그래, 엄마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다른 집 부모들은 자녀대학입시에 세심히 신경 썼지만, 이항리는 그다지 관심 없었다. 문승협은 별 기대 없이 그러려니 했으나, 아빠는 아는지 궁금하였다.

대학입학학력고사예비소집이 있는 날 아침, 아버지 문경준이 문승협과 식사하면서 한마디 언급하지 않았다. 안녕히 다녀오시란 인사에도 대꾸 없이 출근했다. 문승협은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84학년도 목포시 제3고사지구 대학입학학력고사 제2고사장’. 홍인고등학교정문 위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교문좌우에 각 고등학교후배들의 응원푯말들이 붙었다. ‘파이팅 문일고, 대한건아 문일고’. 문승협은 당장 시험 치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마구 뛰었다. 교문안쪽에 게시된 고사장배치도를 확인하고 운동장으로 이동하였다. 홍인고재학생들이 수험번호피켓을 들고 있었다. 수험생들은 수험번호를 찾아 줄 섰다. 선생들이 내일 시험칠 교실로 인솔했다. 수험생명부를 불러 출석을 파악하였다. 수험표를 교부하며 사진과 동일인지 일일이 대조했다. 시험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질의응답 후 끝마쳤다. 문승협은 첫 대입예비소집이라 긴장됐지만 겪어보니 별것 아니었다. 곧장 집으로 갔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도시락은 왜 안 가져가고?”

“오늘은 예비소집날이잖아, 내일이 시험이고.”

“그럼 내일은 도시락 어떡해?”

“오후 다섯 시 까지니까, 점심만 싸가면 돼요.”

문승협은 퉁명스레 답하였다. 수험생부모면서 그것도 모르냔 뜻이었다. 이항리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도시락을 한 개만 싸도 된다며 좋아했다. 문승협은 대입시험날짜조차 모른 어제와 지금의 엄마행동이 오버랩되었다. 그동안 엄마가 여느 부모 못지않게 공부에 심한 압박을 주었다. 그 부담이 고3병원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리도 무관심하다니 짜증 났다.

곰곰이 지난날을 회상해 보았다. 국민학교6학년부터 중학교 다닐 때, 엄마가 과외를 받게 해 줘서 고마웠다. 정부의 과외금지 이후는 딱히 사교육에 신경 써주지 않아도, 법이 그래서라 여겼다. 문득 당시 과외비를 마지못해서 준거란 생각이 들었다. 애정 어린 교육열이라기보다, 할머니한테 맡겨진 아들에게 미안해서 지원한 보상차원. 죄책감을 떨치고 스스로를 용서하려는 엄마이기심 같았다. 과외금지에도 단속을 피해 가며 비밀과외를 시키는 부모들이 많았다. 힘닿는 데까지 물심양면 자식들을 부양하였다. 문승협은 부모조력 없이도 원망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왔다. 모든 게 착각이자 엄마의 허울이었다는 현실이 황당했다.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억울하였다.

저녁에 예비소집을 스케치한 현장이 방송되었다. 절·교회·성당을 찾아가 촛불을 밝히며 기도하는 어머니들 모습이 나왔다. 문승협은 뉴스를 보고도 아무 동요 없는 엄마를 보면서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대입학력고사날은 수험생들의 한이 서린 입시한파로 몹시 추웠다. 문승협은 잘 다녀오란 동생들 응원을 등에 업고 집을 나섰다. 부모의 걱정 가득한 당부가 없어 서운하기보단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홍인고등학교정문에 어제보다 많은 응원현수막과 푯말이 나붙었다. 피켓을 들고 고득점을 기원한 후배들의 인사와 응원소리가 시끌벅적하였다. 군데군데 어머니들도 있었다. 시험 치러 들어가는 아들뒤통수를 바라보며 간절히 두 손 모은 어머니. 묵주를 만지며 눈물을 머금은 어머니. 교문과 담벼락에 엿을 붙이는 어머니.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시험대박을 염원했다. 문승협이 교문을 통과하면서 어머니들을 쳐다보았다. ‘저런 엄마를 둔 얘들은 어떤 기분일까?’. 지각수송작전에 투입된 오토바이와 경찰차가 연달아 도착하였다. 허겁지겁 뛰는 지각수험생에게 사람들이 박수로 격려했다. 뒤늦게 도시락을 들고 온 어머니가 고사장입장문제로 실랑이하였다. 다행히 맘씨 좋은 경비아저씨가 대신 전해주겠다며 수험생인적사항을 받아 적었다. 어머니가 못 미더운지 여러 번 반복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수험생들이 입실한 고사장은 적막하였다. 쌀쌀한 날씨와 긴장감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앉아있었다. 와중에도 몇몇은 문제집이나 요점정리노트를 펼쳤다.

8시 30분이 되자, 시험예비종이 울렸다. 잠시 후 시험감독관 두 명이 들어왔다. 출석확인에 이어 부정행위와 답안작성요령 등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질문사항을 확인한 뒤, OMR카드용 연필과 지우개를 제외한 모든 물품을 가방에 넣으라 하였다. 어떤 학생이 다급히 손들며 OMR연필이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문승협이 1자루를 건넸다. 어제 예비소집을 다녀오면서 4B연필 한 다스와 지우개 2개를 샀다.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연필을 깎아놓았다. 중요한 날에 뭔가 빠트리거나 과도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인사치레 할 사이도 없이 시험시작종이 울렸다. 감독관이 OMR카드를 배포하며 답안을 옮길 때 유의하라고 재차 주의를 주었다. OMR카드가 비싸서 모의고사 때 두 번 정도 해본 게 전부였다. 답안을 밀려 써 낭패 보는 경우가 여럿이었다. 반드시 마킹인식이 가능한 HB연필과 4B연필을 사용했다.

수험생들이 시험지를 넘겨받으며 손을 달달 떨었다. 감독관 중 한 명은 앞, 나머지 한 명은 뒤에 위치하였다. 질문하면 확인하고 가르쳐주거나 커닝을 감시했다.

홍인고등학교는 문과고사장이었다. 1교시 80분간 국어·한문·기술과 선택과목 공업. 시험지를 본 학생들 표정이 초조하였다. 문승협도 매한가지였다. 국어시험 첫 번째 지문을 읽으면서 현기증이 났다. 시험종료 10분을 남기고 OMR카드에 답을 옮겼다. 잘못 표기할까 봐 떨려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종이 울리자 여기저기 탄식이 쏟아졌다. 감독관이 강한 어조로 손을 머리에 올리라고 했다. 한 학생이 계속 ‘잠시만요’를 외치며 분주히 OMR카드에 답을 표시하였다.

다들 1교시시험이 끝나고 나니 다소 긴장이 풀린듯했다. 화장실을 오가며 서로 인사하거나 아는 사람을 찾았다. 문승협도 비로소 낯선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독였다.

2교시 종이 울렸다. 다른 시험감독관이 들어왔다. 고정감독관의 경우 발생할 부정행위를 막으려는 조처였다. 수험생확인에 이어 시험주의사항을 앵무새처럼 알려주었다. 2교시 95분간 국사·국민윤리·정치경제·수학. 문승협은 먼저 암기과목을 일사천리로 해결하였다. 수학문제풀여유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으나, 시간이 부족해 진땀을 흘리며 겨우 마쳤다.

2교시 종료 후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문승협이 도시락을 꺼내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시험 잘 봤소?”

“아, 네, 그냥저냥요.”

“아까는 고마웠소잉, OMR카드용 HB연필을 깜박해갖고 허벌나게 놀랐는디.”

“다행히 여분이 있었어요.”

“나도 혼자묵기 그런디, 같이 점심 묵읍시다.”

“네, 그래요.”

“거시기, 남강이랑 박현이 알지라?”

“네, 저희 학교 1년 선배예요.”

“내가 그 아그들 친구요. 문승협이지라우?”

“네. 선배신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라믄 말 편하게 하까?”

“선배님은 저를 어떻게 아세요?”

“아따, 우리 또래들 사이서 모르믄 간첩이제잉.”

“하하, 부끄럽네요.”

“뭐가 부끄러, 그만침 유명한께 그런디.”

“근데, 왜 이번에 시험을.”

“아, 쪼깐 쪽팔린디, 나 재수했어.”

“재수생이면 쪽팔리는 건가요?”

“아무래도 꼬라지가 긍께, 대학시험에 한번 떨어졌드만은 인생실패자가 돼불드라고.”

“그렇게 까지요? 그냥 시험을 다시 보는 거잖아요.”

“큭큭, 그렇긴 한디, 꼬나본 눈빛들이 앵간해야제. 죄인이 된 심정이고 다 자격지심이어.”

“이번에 시험 잘 봐서, 꼭 그 자격지심 버리세요.”

“허허, 그래야쓴디 잘 될까 모르겄네.”

“잘될 거예요, 우리 끝까지 힘내시죠.”

“근디, 시험날에 뭔 미역국이단가?”

“아, 그 그렇네요.”

“어허, 미끌거리는 음식을 먹으믄, 시험서 미끄러진다는 속설이 있는디 으짜쓰까잉.”

“하하, 제가 미역국을 엄청시리 좋아하거든요, 그 그래서 엄마가 싸주셨나 봐요.”

“하기사, 그것도 다 미신인께.”

“맞아요,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에 만든 징크스죠.”

“으짜든 힘내갖고, 그 나쁜 징크스를 물리쳐보세.”

“그래요, 발악을 해서라도 꼭.”

“허허, 식기 전에 언능 묵세.”

“네, 선배님도 맛있게 드세요.”

“어이, 여그 내 반찬도 편하게 묵어, 그래도 울 엄니가 나를 끔찍이 생각한단 말이시.”

문승협은 미역국을 엄마 나름의 배려라고 둘러댔지만, 마음 한 구석이 살짝 불편했다.

“정난희랑은 잘 만난가?”

“네?”

“뭘 그리 놀란가, 정난희랑 사귀는 거 다 안디.”

“아, 네에.”

“정난희가 우리 학년서도 꽤 인기가 많았어, 알제?”

“모 몰랐는데요?”

“근디 자네가 사귀어분께, 다들 포기하드라고. 요번에 정난희한테 엿이나 모찌 같은 거 받았겄네?”

“네? 하하, 남강선배랑 박현선배는 잘 지내시죠?”

“잉, 남강이는 경희대학교 신방과 갔고, 박현이는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갔어.”

“네 알아요, 못 본 지 오래돼서.”

문승협은 대입시험장에서 정난희이야기를 들을 줄 꿈에도 몰랐다. 당황한 티를 숨기며 황급히 선배들 안부로 말을 돌렸다. 대입고사를 치르는 마당에 정난희와 헤어졌다고 할 수 없었다. 계속 사귀었더라면 분명 시험 잘 치란 격려와 사탕이든 뭐든 받았을 텐데. 점심 먹는 내내 신경 쓰이고 속상하였다.

이름 모를 재수생선배가 도시락을 챙겨 넣고 소화시킨다며 운동장으로 나갔다. 문승협은 암기되지 않은 것을 메모해 둔 노트를 꺼냈다. 4교시 시험과목을 공부하려 했으나, 뜬금없는 정난희생각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시간 60분은 길지 않았다.

3교시 시험시작종이 울렸다. 80분간 영어시험이었다. 새로 들어온 감독관이 매서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 중에 수험생이 조금만 움직이면 경고하였다. 시험종료종이 울리고도 답안을 표기하는 학생의 OMR카드를 매몰차게 빼앗았다. 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인생이 걸렸는데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했다. 감독관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시간 미준수도 부정행위라며 냉정히 거절하였다. 몇몇 수험생들이 답안표기를 마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시간을 주라고 사정해도 무시했다.

쉬는 시간에 고사장별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름을 들먹거렸다. 어떤 껄렁한 재수생이 옆자리에 앉은 학생에게 커닝을 부탁하였다. 문제를 푼 뒤 시험지를 비스듬히 들어 보여달라 했다.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몰염치한 말까지 서슴없었다.

4교시는 사회문화·세계사·국토지리·인문지리와 문승협이 선택한 생물과목으로 95분간 치러졌다. 시험막바지에 와서야 다들 여유가 생겼다. 종료 15분을 앞뒀을 즈음, 앞뒤좌우 답을 묻고 답하며 소곤거렸다. 하루 종일 시험을 치르면서 수험생들끼리 안면이 생겨서였다. 감독관들이 시험끝자락이라 모른척하였다.

마침내 최후의 종이 울렸다. 온종일 치러진 1983년 대학입학학력고사가 마감됐다. 문승협교실에선 큰 말썽이 없었지만, 다른 곳은 부정행위사건을 두고 소란스러웠다. 책상에 칼을 꽂아놓고 잡을 테면 잡아라는 식. 시험지에 답을 표시해 놓은걸 무턱대고 가져다 베꼈다는 식. 지우개에 답을 써서 돌렸다는 식. 몇 번에 몇 번이라고 불러주는 식. 믿기지 않는 각양각색 커닝방법을 거론하며 목격담을 앞다퉜다.

고사장을 빠져나가는 수험생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일부수험생들은 해방감에 함성을 내질렀다. 고등학교 3년간 대학입학학력고사를 힘들게 준비한 긴 여정을 마쳤으니 후련할만했다.

문승협은 괴롭던 두통이 시험 끝과 동시에 말끔히 사라져 신기하였다. 고3병탈출이 형언할 수 없는 특이한 감정이었다. 서둘러 버스를 탔다. 버스 안 수험생들이 억눌린 굴레에서 막 벗어난 마냥 한층 들떴다. 시험을 마치고 만나기로 한 독서실 앞에 친구들이 와있었다.

“어이, 이담씨.”

아야 승협아, 니 목소리도 글고, 걸어오는 뽄새가 꼭 울타리를 벗어난 새끼염소 같다잉. 눈빛까정 초랑초랑한 것이 아조 영락없다야.”

“하하, 시험은 잘 쳤냐?”

“시험은 평소실력으로 치는 거여. 니는 잘 봤냐?”

“응, 시험지만 잘 봤어.”

“쩌그 영기 온다, 저시끼는 으째서 어깨가 축 처져갖고 저러까잉, 시험을 죽 쒔는갑다.”

“영기야, 왜 그래, 뭔 일 있어?”

“말 걸지 마라잉, 나 시방 고민이 많은께.”

“으째서?”

“OMR카드를 한 칸씩 밀려서 쓴 거 같은디 으짜스까.”

“연설하네, 벌써부터 점수 안 나올까 비 연막 치냐?”

“아따 시끼, 눈치는 빨러.”

“야, 나는 진짜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야.”

“와따, 우리 승협이 안색이 확 펴부렀네?”

“그러냐, 나도 왠지 약간 붕 뜬 기분이야.”

“인자 시험도 끝났은께, 본격적으로 놀아봐야제?”

“뭐부터 하까?”

“시험 끝난 축배를 들어야제, 안 그냐?”

“뭘로야?”

“뭐긴 뭐여, 맥주로 해야제.”

셋은 연쇄점을 찾았다. 천영기가 크라운맥주 3병과 말린 오징어를 집자, 이담이 10월 초 출시된 ‘꼬깔콘’을 가져와 계산했다. 맥주를 나눠 들고 옆골목으로 갔다.

“야, 병따개가 없는데?”

“아따 촌놈시끼들, 맥주 이리 줘봐. 병따개 없을 시 따는 방법을 갈쳐주께, 잘 봐라잉.”

천영기가 왼손에 맥주병을 쥐고, 다른 하나를 거꾸로 잡아서 병뚜껑끼리 맞댔다. 왼손검지손가락을 지렛대 삼아 젖히자 펑하고 소리가 났다. 두병째까진 똑같이 잘 땄으나, 마지막 맥주병을 어찌할지 망설였다.

“그 맥주병은 어떻게 딴대?”

“이것은 말이여, 여그 담벼락모서리에다 45도로 대고, 이러코롬 당수를 내리쳐.”

“야, 병목이 깨진 거 아냐?”

“아 시벌, 병목이 날아가부렀네.”

“내가 다시 가서 한 병 더 사 올게.”

“아니어, 그냥 마실란다.”

“그러다가 입 찔린단께?”

“괜찮하단께, 조심히 마시믄 돼.”

“위험해 보이는데 그러냐?”

“자, 건배하끄나? 우리의 거시기를 위하여.”

“거시기를 위하여.”

“크으, 아야, 그 스루메 쪼까 찢어주라잉.”

셋은 거시기의미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였다. 청춘을 위한 인생첫술이었다. 문승협이 오징어를 큼직하게 찢어 천영기와 이담에게 나눠줬다. 질겅질겅 씹으며 다시 맥주병을 부딪치고 또 한 모금 마셨다. 이담이 꼬깔콘과자를 손가락에 꽂아 내밀었다. 문승협과 천영기가 차례대로 받아먹었다. 서로 바라보며 킬킬댔다. 문승협은 세 모금째 마시자 취기가 돌았다. 어질어질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담은 얼굴이 빨개진 반면, 천영기는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얘졌다.

“아야 승협아, 거그서 뭐 하냐?”

“어, 영후야, 우리 시험 끝났다고 기분 내고 있어.”

“왐마, 니가 드디어 술을 마신다잉?”

“술을 마시니까 기분이 삼삼하다야. 근데 어디 가냐?”

“술이랑 안주 쪼까 살라고. 우리도 쩌그서 마시다가 방금 독서실로 들어갔어.”

“독서실에?”

“잉, 독서실아저씨가 놀이터서 마시믄 춥다고, 독서실에 들어와서 마시라드라.”

“와, 고3수험생마음을 헤아려주다니, 독서실아저씨가 그렇게 마음씨 좋았었나?”

“니 취했냐?”

“몰라, 이런 기분이 취한 건가?”

“우하하하, 얌마 그거 마시고 취하냐?”

“영후야, 누구랑 있어, 너랑 친한 얘들이야?”

“니랑도 다 알고 친한 아그들이어, 같이 뭉치끄나?”

“담이랑 영기, 너희들 괜찮으면 가고?”

“그라까? 그러자 그라믄.”

문승협은 김영후와 연쇄점에 들러 맥주와 안주거리를 더 샀다. 이담과 천영기를 데리고 독서실로 갔다. 대입학력고사가 끝난 날이라 텅 비어있었다. 김영후가 독서실입구에 있는 안내실문을 열었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얼굴들이 보였다. 문일고친구들과 홍인고 김달우 등 7명이 두런두런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호라, 여기서 다 만나네?”

“뭐여, 승협이 니도 술 마시냐?”

“야, 예전에 우리 캠핑 갔을 때도 마셨잖아? 그리고, 나는 마시지 말라는 법 있어?”

“연설하네, 고1 때 명사십리서는 마신 것도 아니어.”

“맞어, 니 그때 입만 댔는디도 취했잖애?”

“음마, 니 쪼까 취한 거 같은디?”

“짜샤들아 취하긴, 나 아직까정은 더 마실 수 있어, 나 맥주 한병도 다 안 마셨다.”

“에이, 취했그만 취했어.”

“너는 임창열이, 명성윤이, 조운대, 장기원이, 강원종, 유호창, 그리고 넌 김달우잖아.”

“허허허, 그래 안 취했다 안 취했어, 오늘 순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가불그만잉.”

“아참, 내가 예뻐라 하는 달우는 담이 알지?”

“잉, 같은 홍인고인께 잘 알제.”

“얘는 내 친한 친구 청화고 천영기야.”

“느그 항시 같이 댕기는 빼빼로삼총사라 알긴 한디, 나는 저그 담이란 친구도 잘 몰라야.”

“아 그렇지, 다 아는 줄로 착각했다, 인사들 해라.”

임창열, 강원종, 유호창은 천영기와 이담을 오가며 봐와서 얼굴만 알았다. 서로 악수하며 통성명했다. 맥주를 따라주고받으며 반가워하였다. 천영기는 활달한 성격에 금세 잘 어울렸지만, 이담은 살짝 낯가렸다.

“얘들아,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뭔디야.”

“병따개가 없는데 마지막 맥주병은 어떻게 따?”

“이리 줘봐, 내가 따줄 텐께.”

“뭐야, 방법이 있어?”

“먼저 딴 병에다가 병뚜껑을 다시 꽉 닫어, 그라고 아까멩키로 이렇게 제끼믄 되제.”

“우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

“허허허, 예끼 초짜시끼, 한참 배워야쓰겄다.”

“오늘 시험도 끝났은께, 죽지 않을 만큼만 마셔불자. 아야, 다들 종이컵에 술 채워.”

“영후야, 니가 건배사 한번 해라.”

“그라까? 자, 우리의 멋진 대학생활을 위하여.”

“위하여!”

“성윤이는 경찰대, 운대랑 기원이는 사관학교에 갈 것이고, 나머지는 으짤래?”

“창열이는 서울대 건축과, 영후는 서울대 경영학과에 지원하기로 했다믄서, 맞제?”

“잉, 달우 니는 결정했냐?”

“나는 한양대 공대에 쓸까 해. 원종이랑 호창이는?”

“난 서울대연고대 중에서 경제학과 지원할라고.”

“나도 그럴라고, 과는 정치외교학과.”

“승협이는 결정했냐?”

“나? 나는 아직, 그냥 눈치 봐서 점수 맞춰 갈란다.”

“염병, 어디서 뺑끼 쓰냐? 서울대 갈 거믄서 엄살은.”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결정 못했어, 진짜야.”

문승협은 학교친구들의 구체적 대학진학계획을 듣고 열등감을 느꼈다. 종이컵에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자괴감과 자책이 더해져 취기가 올라왔다. 안내실이 따뜻하여 노곤했다. 친구들이 맥주를 마시며 미래대학생활을 상상하다, 시시콜콜 지난 학교생활추억으로 넘어갔다. 문승협은 스르륵 눈이 감겼다.

새벽녘 깨어보니 천영기와 이담만 온데간데없었다. 잠자는 친구들 주변으로 맥주병이 수북하였다. 과자와 안주 부스러기들이 그대로 널 부러져있었다. 몇 시까지 얼마나 마셨는지 알 수 없었다.

동틀 때까지 있으려다 집에서 걱정할까 봐 독서실을 나섰다. 칠흑 같은 어둠과 쌀쌀한 날씨에 등골이 오싹했다. 안내실을 선뜻 내어준 독서실주인에게 절로 감사하였다. 문득 어제 술에 취해 비몽사몽 잠들 즈음 친구들끼리 나눈 대화들이 떠올랐다.

‘승협이는 겨우 맥주 반 병 마시고 취해서 잔다야.’

‘고등학교졸업할 때까정 술담배를 한 번도 안 한 놈은 저 시끼 밖에 없을 것이다.’

‘범생이도 저런 범생이가 없어, 순진해 빠져 갖고.’

‘그런 놈이 학력고사를 앞두고 으째 방황했으까?’

‘몸도 안 좋았고, 개인적으로다 뭔 일이 있었는 갑서.’

‘개인적으로?’

‘우리 나이에 뭐겄어, 가시나 아니믄 집안일이제.’

‘승협이네가 전라도갑부 태선화학집안인께, 집에는 별문제가 없을 텐디?’

‘지랄, 재벌집안도 문제가 있고, 고민거리가 많애.’

‘하기사, 테레비연속극을 그냥 만든 건 아닌께.’

‘그라믄 정난희 때문에 그랬으까?’

‘헤어졌단 말도 있드만, 시끼가 통 말을 안 한께.’

‘승협이가 전교 52등까지 떨어졌었제?’

‘그건 고2 때 윙스그룹사운드한다고 한번 그랬고, 항시 전교 10등 안에는 꼭 들었어.’

‘맞어 그랬어, 3학년 초까정은 잘했는디, 그 후부터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드란께.’

‘뭔 일이 있었길래 그랬으까, 궁금하긴 하다야.’

‘이담이랑 천영기한테 물어볼걸 그랬다잉.’

‘그 아그들은 갔냐?’

‘잉, 쪼까 전에 집에 간다고 갔어.’

‘그래도야, 승협이 한번 성질나믄 무섭다잉.’

‘그때가 언제여, 2학년 땐가, 학교동산서 깡패 우장일파랑 지대로 한판 붙었잖애.’

‘기생오랍씨멩키로 생긴 저 순둥순둥한 놈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겄어.’

‘긍께 말이어, 평상시는 완전 순해빠졌는디, 또 그럴 때는 눈빛이 확 달라지드란께.’

‘승협이가 외유내강형이여.’

‘아야, 자는 놈 야그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문승협은 스스로 느끼지 못한 이야기도 들었다.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는 친구들 관심에 고마우면서 민망했다. 자세히는 모를지언정 최근변화까지 눈치챘다. 부끄럽고 서글퍼 몸을 더욱 움츠렸다. 친구들은 나름대로 대학진학계획을 세웠으나, 생각조차 못하고 무력감에 빠진 자신이 싫었다. ‘그래, 어찌 보면 정난희가 나를 떠난 것이 당연해. 이렇게 못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웃긴 거지. 참나, 나 자신이 처량하다, 아직도 정난희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으니'.

조용히 대문을 열고 들어가 몸을 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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