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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Aug 12. 2024

단테의 별 - 1권 1부 4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무슨 감정일까? - (2)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학교스피커에서 동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승협남매가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크게 들려왔다. 마치 등굣길 발걸음에 맞추듯 울려 퍼져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가로질러 2학년교실로 갔다. 문승협은 교실에 들어가는 동생을 확인하고 자기 교실로 갔다. 가병수가 문승협을 뒤따라 왔다.

“어이 서울놈, 어제 동생이냐?”

“어제?”

“어제 2학년교실 쪽에서 나와갖고, 어떤 쪼매난 가시나  델고 운동장을 지나 가드만.”

“응, 동생이야, 왜?”

“왜는, 그냥 아는 체끼 한 거제. 근디 니 가방 좋다잉, 등에다도 메고. 그거 손에 들고 댕기는 건 뭐대?”

”신발주머니.”

“신발은 저그 신발장에 놔두믄 되제, 뭐더러 들고 댕긴대?”

“이건 실내화를 넣는 거야.”

“실내화? 실내화가 뭔디?”

“이거, 교실에 있을 때 신는 신발.”

“뭐여, 고무신도 아니고, 헝겊같이 요상스럽다잉.”

가병수가 교실에 들어와서도 자리까지 따라와 구시렁댔다.

“가분수,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니 자리로 가라잉.”

“오메 깜짝이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뭔 가시나가 아침부터 소리 지르고 지랄이다냐?”

“너 시방 뭐라 했어, 지랄?”

“아따, 가믄 될 거 아니어.”

먼저와 엎드려있던 박진숙이 몸을 일으켜 쏘아붙였다. 가병수가 도망치듯 자리로 가 앉았다. 박진숙이 다시 엎드리려다 문승협을 흘겨보았다.

“아야, 너도 사내새끼가 뭔 말이 그리 많냐?

“…….”

“그라고, 여기 이렇게 선 그어 놨은께, 절대 넘어오지 마라잉. 이선 넘어온 것은 다 내 것인께, 행여 나중에 딴소리하덜 말고, 알겄냐?”

“그럼, 네 물건이 내 쪽으로 넘어오면, 내가 다 가져도 되는 거야?”

“잉? 고건 아니제.”

“뭐야, 그런 법이 어디 있어. 공평해야지, 안 그래?”

“좋아, 그라믄 그렇게 한디, 절대 안 봐준다잉. 넘어오기만 해 봐, 내가 가만 안 둘 텐께.”

박진숙이 문승협을 만만하게 봤으나 호락호락하지 않아 당황했다. 조금 흥분해서 앞으로 두고 보자며 강렬히 째려봤다. 문승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를 본 박진숙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때마침 김용남이 선생님 오신다고 소리치며 들어왔다. 박진숙이 분을 삭이듯 한숨을 푹 쉬며 그냥 자리에 앉았다.

고삼랑선생이 간단하게 조회를 마쳤다.

“그라믄 1번부터 차례대로 면담할 텐께, 나머지는 산수책 펴고 조용히 자습한다, 알았냐?”

“예.”

“현기정이부터 선상님 자리로 온나.”

담임선생이 다른 아이들에게 안들릴정도 작은 목소리로 면담했다. 처음에 조용하던 교실에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 속삭이는 소리가 났다. 문승협이 산수문제를 풀다 책상에 그어놓은 선을 넘어가지 않도록 학용품을 정리면서 곁눈질로 박진숙을 보았다. 자는 것 같진 않은데 눈감고 엎드려 있어 이상했다.

‘쟤는 왜 늘 엎드려있을까? 항상 냄새가 나는데, 안 씻는 걸까?’

박진숙어깨가 들썩이자 지레 놀라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뒷자리 김철종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야 서울놈, 서울은 다 가방 메고 신발주머니도 들고 댕기냐?”

“응, 대부분 그래.”

“교실 하고 책걸상도 다르냐?”

“응, 자기 혼자 쓰는 1인용 책걸상이고, 교실바닥과 복도는 대리석 같은 거야.”

“서울학교가 다 그런다고?”

“다 그런지는 모르겠고, 내가 다닌 학교는 그랬어.”

“야, 그라믄 청소할 때 바닥에 초칠 같은 거 안 하겄다잉?”

“응, 대청소할 때만 물청소하고 훔치는 거야.”

“뭐? 뭣을 훔쳐야?”

“아니, 마대걸레 같은 것으로 닦는다고.”

“아, 난 또 뭐를 쌔빈다고. 서울은 좋겄다야, 여그는 토요일마다 수업 땡치믄 청소하느라 미처분다잉. 교실이랑 복도랑 마룻바닥에 광낸다고 초칠 하다 보믄 진이 빠진단께, 유리창까지 닦느라 날 새부러.”

“바닥에 광내는 것 빼고는 서울학교도 비슷해.”

박진숙이 불쑥 일어나 둘을 번갈아 째려보았다. 문승협과 김철종은 소곤거려서 그런 줄 알고 움찔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박진숙이 그대로 담임선생책상 옆에 준비된 의자에 가 앉았다. 어느새 다음이 문승협 차례였다. 문승협이 또 옆구리를 찌르는 김철종에게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다가온 순서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른손으로 심장을 누르며 어떤 면담일지 생각했다. 그동안 전학과 새 학기 때 경험으로 보면 뻔한 내용이었으나 떨리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박진숙의 면담분위기가 궁금해서 쳐다보니 조금 심각해 보였다. 담임선생님이 고개 숙인 박진숙에게 답변을 채근하는 것 같았다. 박진숙손이 자꾸 눈으로 가서 우는 것처럼 보였다. 박진숙이 눈가를 바삐 정리하며 자리로 돌아왔지만 충혈된 눈이었다. 담임선생이 문승협을 호명하고는 지휘봉을 쥐고 교탁으로 갔다. 문승협은 엉거주춤하다 서있었다. 담임선생이 지휘봉으로 칠판을 탕탕 쳤다.

“이느무 시끼들, 조용히 자습하라고 했는디, 도깨비시장처럼 떠든다 이거지? 단체기합 한번 받으까?”

“아니라우.”

“또 떠들믄 가차 없다잉?”

“예.”

“아야 반장, 떠든 사람 이름 적어서 이따 끝나믄 나한테 갖고 와, 쓰레기장 청소시킬란께.”

“예.”

“잉, 승협이, 거그 안거.”

“네.”

“긴장할 거 없어야, 가정방문 전에 간략하게 파악하는 것이어.”

“네.”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냐?”

“엄마아빠하고 여동생 둘이요.”

“그라믄 다섯 식구가 사는 건가?”

“아, 같이 사는 건, 할머니 하고 고모 둘 그리고 할아버지도요.”

“와따 대식구다잉.”

“근데, 아빠는 서울에 계시고요. 할아버지는 회사 때문에, 요즘은 두세 달에 한번 정도 집에 오세요.”

“아버지는 서울서 뭐 하신디?”

“회사에 다니세요.”

“근디 으째 같이 안 살고?”

“그게.”

“말하기 곤란허냐?”

“저는 잘 몰라서요.”

“그라믄 그건 놔두고, 으째서 전학을 이렇게 많이 다녔다냐?”

“…….”

“그래, 니가 아직 어린께 모를 수 있제. 그라믄 이것도 일단 놔두고. 뭐 불편한 건 없냐? 아니믄, 선상님이 도와주거나 알고 있었음 하는 거라든가. 괜찬해, 편하게 말해도 된단께.”

“특별한 건 없어요. 한 가지 있다면, 아이들이 서울놈이라고 놀려서 조금 그래요. 서울에서 목포촌놈이라고 놀리는 것보단 나은데, 자꾸 주목받게 돼서 불편해요.”

“그래, 좀 거시기 하긴 하겄다. 근디, 시간이 좀 지나믄 괜찬해. 생활기록부 본께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써졌드만. 암튼 내가 참고하께.”

“네.”

“내가 아그들한테 주의도 좀 주고 할 텐께, 너무 걱정 말어.”

“네, 감사합니다.”

“그래, 나중에 가정방문서 보자.”

“네.”

문승협이 일어나는데 1교시 마치는 종이 울렸다. 반아이들이 일제히 부산하게 움직였다. 화장실에 가거나 장난치며 까불었다. 일부는 모여서 웅성웅성 떠들었다. 와중에도 박진숙은 엎드려있었다.

문승협은 면담할 때마다 느끼는 찝찝하고 불편한 감정이 있었다. 속내를 말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들어내야 하고, 숨기는 게 없는데 숨기는 듯했다. 사실을 말하는데 거짓말하는 것 같고, 약점을 들켜 자신이 분해되는 기분이었다. 움츠러들어 답답하고 심란하면서 항상 마음속에 찌꺼기 같은 뭔가가 남았다.

2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담임면담이 계속되었다.

“문승협, 담탱이가 뭐 물어보디?”

“누구랑 사는지, 가족관계 같은 그런 거야.”

“뭐 딴 거는 없고?”

“응, 별거 없었어.”

김철종이 점점 자기 차례가 돌아오자 면담내용이 궁금해 문승협의 이름을 불렀다. 문승협은 자기 이름을 처음 불러준 고마운 마음에 돌아앉아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그런데 엎드려있던 박진숙이 언제 일어났는지 문승협의 뒤통수를 쳤다. 문승협은 황당하여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박진숙을 쏘아봤다. 박진숙이 인상 쓰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문승협의 연필이 있었다.

“웃기는 가시나네? 남의 뒤통수는 무담시 때린대?”

“니는 그냥 찌그러져 있어라잉. 서울놈, 내가 말했냐 안 했냐, 이 선 넘으믄 내 꺼라고 했어 안 했어?”

“하 하긴 했어.”

“그라믄, 이 연필은 더 말이 필요 없이 내 꺼제?”

“저 가시나 희한하다잉, 아야, 그런 법이 어딨대?”

“아야 김철종, 너는 찌그러져 있으란께. 서울놈, 으째, 할 말 있냐?”

“그래, 연필은 가져도 좋아. 그런데, 내 이름은 문승협이지 서울놈이 아니야, 알겠어?”

문승협이 김철종을 향해 돌아 앉을 때, 박진숙이 책상에 그어 놓은 선을 연필이 넘어갔다. 김철종이 문승협 편에서 따졌으나 막무가내로 연필을 가져갔다. 원리원칙과 합리성에 민감한 문승협이었지만, 박진숙에게는 왠지 따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단호히 말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은 박진숙이 밉지 않았다. 면담하면서 울던 박진숙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자기와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3교시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담임선생면담도 끝났다. 4교시에는 담임선생이 수업시간표를 알려주었다. 토요일에 1학기 반장을 선출할 거라며 누구를 뽑을지 잘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반아이들이 반장선거라는 말에 웅성거렸다. 담임선생이 지휘봉으로 교탁을 치며 조용히 하라고 한 뒤 가정통신문을 나눠줬다. 가정통신문은 주소, 전화번호, 혈액형, 키, 몸무게, 출생일, 나이, 취미, 특기, 성격, 좌우명, 가족관계, 학력, 직업, 직위, 월급, 가훈, 주거형태, TV, 전화, 냉장고 유무 등을 파악하는 학생들의 신상명세서이자 가정환경조사서였다. 담임선생이 중요하니 잘 들으라며 여러 번 강조해 가정통신문작성방법을 알려줬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만 추가한다면, 한가정의 정체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상세히 기록하게 돼있었다. 가정통신문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 제출하라고 하였다.


토요일 3교시가 끝났다. 고삼랑선생이 교재와 지휘봉을 주섬주섬 챙기며 공지한 바대로 4교시는 수업 없이 반장선거를 치른다고 하였다. 문승협은 선거를 앞둔 쉬는 시간인데도 너무 조용하여 의아했다. 화장실에 가는 아이들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적어도 반장선거 날만큼은 반아이들이 누구를 추천하고 뽑을 것인지 서로 의견을 나누며 수다 떨기 마련이었다.

수업종이 울리고, 고삼랑선생이 임시반장 김용남에게 반장선거진행을 맡겼다.

“기록할 서기가 있어야 한께, 강모세를 서기로 할까 한디, 문제 있으까요?”

“없어라우.”

“강모세는 나와서 서기를 맡아주쑈.”

“예.”

“인자부터 5학년 1반 1학기 반장선거를 시작할게요. 먼저 반장후보를 추천해주쑈.”

“저요.”

“가병수.”

“김용남을 추천하요.”

“가병수가 김용남을 추천했는디, 혹시 이의 있소?”

“없소.”

“다음 또 추천하쑈. 아무나 추천해도 되고요, 혹시 자기가 하고픈 사람도 괜찬한께, 부끄럼타지 말고 손드쑈.”

“저요.”

“강덕구.”

“나를 추천합니다, 히히히.”

“하하하, 호호호.”

“강덕구가 지자신을 추천했는디, 이의 있으까라우?”

“없어라우.”

“저요.”

“김철종.”

“진짜 아무나 추천해도 되지라?”

“예, 우리 반만 기믄 된단께요.”

“그라믄, 문승협을 추천할랍니다.”

강덕구가 장난스럽게 자기 자신을 추천하여 아이들이 웃음을 빵 터트렸으나, 김철종이 문승협을 추천하자 일순간 조용해졌다. 김용남이 미간을 찡그리더니 김철종을 노려보았다. 김철종은 흠칫 놀라 어물쩍 자리에 앉았다. 김용남은 이내 웃어 보이며 태연 한척했다. 누가 봐도 어색했다. 소곤거리던 아이들 중 몇 명의 시선이 김철종과 문승협에게 꽂혔다. 문승협은 아이들의 이상한 태도를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에 대한 거부감쯤으로 생각했다. 이를 수습하고자 김용남을 보며 손을 들었다.

“예, 문승협.”

“반장은 학우들을 잘 알아야 학급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추천해 준 김철종에게는 고맙고 또 미안하지만, 저는 전학 와서 학우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기권하겠습니다.”

김용남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담임선생을 바라봤다. 반장에 추천받고 기권하는 상황이 처음이었다. 지켜보던 담임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협이 말이 맞긴 한 디. 다들 새 학년이 되믄 아마도 서로 잘 모를 것이다, 안 그냐?”

“예, 그러지라우.”

“긍께, 본인이 하기 싫으믄 모르까, 학우들을 잘 몰라서 기권한다는 말은 좀 아니제. 내 생각에는 승협이도 서울서 반장 해봤은께, 학급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다가 참가했으믄 한디, 으짜냐?”

고삼랑선생과 김용남 그리고 반아이들 시선이 문승협에게 집중되어 답변을 재촉했다.

“뭐 평양감사도 지가 싫음 그만인께, 본인이 싫으믄 방법 없고.”

“그럼,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문승협이 망설이다 담임선생채근에 출마하기로 하였다. 더 이상 추천이나 출마자가 없어 후보자연설로 넘어갔다.

김용남이 환경미화와 공부하는 학습분위기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강덕구는 반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게 자기가 다 막아주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문승협은 필요할 때 도움이 되고 차별 없는 공평한 학급을 만들어 모두 친하도록 다하겠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호응과 박수소리만으로 이미 결정된 듯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김용남 49표, 강덕구 1표, 문승협 15표로 김용남이 반장에 뽑혔다. 그럼에도 김용남표정은 밝지 않았다.

담임선생이 전례에 따라 차점자인 문승협을 부반장에 임명했다. 나머지 학급임원을 반장과 부반장이 의논해 정하라고 하였다. 김용남이 상의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다른 임원을 이미 정해놨다며 오락부장만 추천하라고 하였다. 문승협은 투표로 선출된 반장 뜻이기에 반감 없이 김철종을 오락부장으로 추천했다. 김용남은 김철종이 맘에 안 들었으나 받아들였다. 담임선생이 학급임원명단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교탁으로 갔다.

“자 조용. 1학기 학급임원을 발표할 텐께, 나중에 환경미화할 때 조직표를 만들어서 붙이도록 해라잉.”

“예.”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온나. 반장 김용남, 부반장 겸 과학부장 문승협, 총무부장 현기정, 미화부장 가병수, 급식부장 강모세, 오락부장 김철종. 반년동안 우리 학급을 위해 수고할 임원들인께, 모두 박수. 니들도 인사하고.”

학급임원들이 반아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인사하고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담임선생이 반장에게 각 부장 밑에 차장을 한 명씩 더 정해서 명단을 가져오라고 한 뒤 대청소를 지시했다.

반장 김용남이 미화부장 가병수와 청소구역별로 반아이들을  배정했다. 구역별로 조장을 정해주고 청소가 끝나면 자기들에게 검사받으라고 하였다. 문승협과 김철종은 5학년이 한 주씩 반별로 돌아가며 담당하는 쓰레기장청소를 맡았다. 김철종이 김용남눈에 띄지 않게 고개 돌려 쓴웃음을 지었다. 쓰레기장으로 가면서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썩을 시끼, 쪼잔 하게시리 이런 것으로 보복한다냐.”

“무슨 말이야?”

“쓰레기장청소는 원래 다섯 명이어. 그라고 부반장은 교실청소나 감독하제, 쓰레기장청소는 안 해.”

“아니, 보복이라고 했잖아.”

“긍께. 내가 널 추천했고, 거그다 니가 15표나 받아 분께 저 시끼가 열받은 것이어. 그래서 너랑 나랑 둘만 쓰레기장청소로 빼분 거여.”

“설마 그럴라고?”

“아따, 니는 당하고도 모르겄냐? 하기사, 니가 첨이라 모르는 것이 당연하제만은, 용남이 그 시끼 음흉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어. 순한 아그들 보호해 준 척함시로, 뒤로는 별 것 다 받아 챙긴단께. 안 주믄 은근히 짓눌러 갖고, 결국은 받아내 부러. 용남이를 잘 모르는 것들은 용남이를 좋아하고 칭찬한디, 나는 못 속이제, 암은.”

“진짜? 로빈훗 같은? 아니다, 로빈훗은 나쁜 추기경에게 빼앗아 약자를 돕는 거니까, 임꺽정도 아니고.”

“로빈훗이 뭐대? 난 그런 거는 모르겄고, 김용남이 속에는 구렁이 몇 마리가 똬리를 딱 틀고 앉았단께.”

“천사의 탈을 쓴 악마 같은 건가? 에이 설마. 철종아, 확인되지 않은 일로 삼자에게 나쁜 선입관을 심는 거 좋지 않아, 그런 걸 뒷담화라고 하는 거야.”

“염병, 나한테 뒤다마 깐다고 욕해도 상관없어, 나는 실제를 말한 것인께. 그라고 너도 조심해라잉, 너도 밥이 될 수 있은께.”

“하하, 알았어.”

“아야, 웃을 일이 아니란께?”

“그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하지만, 나는 내가 본 것 만 믿어.”

김철종은 사실이라며 열성적으로 김용남의 실체에 대해 늘어놓았다. 청소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6학년부터 4학년까지 공부 잘하는 반장에 부유한 집 아이들 중심으로 조직된 학생회가 있었다. 지금 싸움짱인 전교회장 6학년 형이 있어서 그렇지 5학년에서는 김용남이 일인자라고 하였다. 몇 년 전 조동구가 사는 보육원형들이 아이들을 괴롭히며 삥 뜯었고, 학교선배들이 대항하려 뭉치면서 시작돼 지금까지 왔다고 하였다.


김철종이 주먹 쥐고 문승협을 향해 팔을 뻗었다 접었다 하면서 말했다. 권투시늉을 하며 폼 잡다가 갑자기 차려 자세로 누군가에게 인사했다.

“잉, 몇 반이냐?”

“1반 이어라.”

“너는 으째 선배를 보고도 목이 빳빳하냐?”

“야는 요번에 전학 왔어라우. 아야 뭐더냐, 얼른 인사해야? 6학년 회장 성님이어.”

“안녕하세요.”

“어서 왔는디?”

“서울이요.”

“으짠지, 희멀거니 못 보던 놈이다 했다. 이름이 뭐시여?”

“문승협이요.”

“그래, 또 보자잉.”

김철종이 다시 한번 허리 숙여 인사하고 문승협에게 속삭였다.

“아야, 지금은 그냥 찍 소리 말고 가만있어라잉, 좀 멀찍해지믄 말해 주께.”

“하하하, 그렇다고 그렇게 허리를 90도로 숙이냐, 좀 비굴해 보이는데?”

“염병, 존경의 표시여, 니는 존경과 아부도 구분 못하냐?”

“아까 말한 그 선배야? 전교회장에 학교 싸움 짱?”

“잉, 그 썩을 김용남이 뒤를 떡 허니 받쳐주는. 근디, 저 성님은 좋은 사람이어. 이름이 남강, 외자여.”

“남강이라, 그럼 별명은 북한강인가? 하하하.”

“뭔 소리, 오강이여.”

“진짜?”

“잉, 겁을 상실했으믄 모르까, 앞에서는 절대 못 부르제. 선도부장 성이 그렇게 부른 걸 보긴 봤어.”

“근데, 뭐가 어떻길래 좋은 사람이라는 거야?”

“유명한 일화가 있제, 아주 전설 같은 그런 사건, 내가 직접 본 거여.”


김철종이 4학년 때 축구하다 목격한 일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점심시간 운동장 한편에서 고무줄놀이를 했다. 지나가던 6학년 남학생 3명이 칼로 고무줄을 끊었다. 여자아이들 중 한 명이 욕하며 덤벼들었다. 그 6학년들이 여자아이치마를 내려버리고 발로 찼다. 이를 본 5학년 박현이 6학년들을 말리다 밀쳐 넘어트렸다. 급기야 싸움이 되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무서워 말릴 엄두를 못 냈으나, 5학년 남강이 대뜸 나섰다. 6학년들을 향해 비겁하게 그러지 말고 자기랑 맞짱 뜨자고 하였다. 그렇게 동산에 있는 방정환선생동상 앞으로 자리를 옮겨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표로 맞짱 뜨던 6학년이 밀리자 나머지 두 명까지 함께 덤볐지만, 남강의 주먹에 다 나가떨어졌다. 운동장에서 놀던 수많은 아이들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남강과 박현이 공부도 전교 1,2등에 싸움도 잘하는 데다 정의롭기까지 했다. 그 후 많은 아이들이 따르는 우상이 되었다. 둘은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가 됐다. 지금의 전교회장과 선도부장이었다. 그때 6학년 3명은 조동구와 함께 사는 보육원형들이었다. 김용남배경에 그런 남강이 있기에 조동구가 김용남에게 눌려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승협이 엄지를 곧추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대단한 선배들이다. 진짜 멋지다, 그치.”

“아야, 말해 뭣 하겄냐 입만 아프제. 근디야, 더 멋진 것이 뭔지 아냐?”

“뭔데?”

“나중에 교장선상님이 왜 그랬냐고 물은께는 아, 대답이 아주 죽여 부러.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안 하냐. 캬, 멋져부러. 잉, 멋져불제.”

“못 본체하는 비겁함이 싫었다는 거네. 그런 건 진짜 본받아야 하는데.”

“내 말이. 나도 누가 가시나치마 내리믄, 얼른 가서 돕고 영웅 되는 건디, 어디 없냐?”

심취해 듣던 문승협이 인기척에 놀라더니 멍해졌다.

“야 김철종, 너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치마라니, 왜, 치마를 어쩔라고?”

“아녀야, 그런 거 아니어.”

“아니긴 뭐가 아녀, 지 버릇 어디 가겄냐?”

“아야, 재잘재잘 재잘이, 니는 좀 빠져라잉.”

“뭐? 내가 으째 재잘이여, 내 이름은 제갈민주여.”

“뭔 소리냐, 재잘재잘 재잘아, 맨날 그렇게 재잘된께 재잘인디.”

“김철종, 까불지 말고 착하게 사려무나, 알았니? 내가 지켜보고 있다.”

“아따 가시나, 그런 거 아니란께는 참말로.”

문승협이 방앗간에서 만났었던 그 여자아이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최선경이었다. 아니 등교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들 시선에 들키지 않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찾았었다. 그런데 최선경이 김철종과 몇 마디 나누면서도 문승협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김철종에게 경고한 후 제갈민주라는 아이와 쓰레기통을 비우고 그냥 가버렸다.

“선경아, 철종이 옆에 있던 멀끔한 놈은 첨 본 거 같은디?”

“호호, 그래? 왜, 맘에 드니?”

“얼굴이 하얗고 뽀얀 것이, 여간 긴 있게 생겼드라.”

“호호, 너 그런 남자 좋아하는구나?”

“근디, 철종이랑 어울리믄 별 볼일 없겄다야.”

“왜? 철종이가 좀 까불고 그래서 그렇지, 착한 아이야, 마음은 엄청 선하다고요.”

“선한 놈이 여자치마나 까는, 그런 못된 썩을 짓을 말한다냐? 아니믄, 그 첨 본 놈이 그랬으까?”

“그러게, 나쁜 아이 같진 안던데, 그런 말을 하다니. 남자애들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여자에게 얼마나 치욕인지 모르나 봐?”

“긍께말이어.”

최선경은 방앗간에서 수줍어하며 눈도 못 마주치던 그 아이가 맞나 싶었다.

문승협은 쓰레기장 청소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면서, 최선경이 알은체를 안 한 것인지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골몰했다. 김철종은 아랑곳없이 김용남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갔다.

학생회학부모회가 육성회와 동일시된 지 오래됐다느니, 그런 육성회로부터 학교재정에 도움을 받는 학교가 학생회활동을 적극 장려하면서 학생회의 사적일탈행위를 모른척하기 시작했다느니, 김용남이 그것을 악용한다느니 그런 내용이었다.

“난 네가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다. 철종아,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

“그 남강성네 아부지는 쌀집하고, 박현성네 아부지는 구멍가게한디, 울 압씨랑 친하고 다 같은 동네여.”

“그게 뭐 어째서?”

“하, 답답한 시끼, 서울놈도 별거 없그만. 아야 생각 좀 해봐라, 머리는 뒀다가 어따 쓸래?”

“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간단히 말하께 잘 들어라잉. 육성회장은 항시 전교회장부모가 맡는디 돈이 솔찬히 들어간단 말이시, 그란디 지금 회장은 알다시피 부자가 아니잖애, 쌀집에 돈이 어딨겄냐. 그라믄 돈이 어디서 나오겄어, 누군가 대신 안 내겄냐, 그것이 김용남엄마여.”

“…….”

“뭐여, 아직도 모르겄냐?”

“아니야, 대충 이해했어. 근데, 그런 걸 너희 아빠가 말해준 거야?”

“염병, 그런 말을 나한테 하겄냐. 남강성네 아부지랑 박현성네 아부지가 우리 집에 와갖고, 쐬주 한잔 하믄서 한 야그를 내가 들었제.”

“그랬구나. 그런데 말이야, 어른 일은 어른이 하고, 우리는 우리 일을 하면 돼.”

“그것이 아니고야. 그란께 그것이, 김용남이가 즈그 엄마 빽 믿고 그런단 말이어.”

“그래, 알았어, 무슨 이유가 있겠지.”

“가만있어봐 봐, 조깐 있으믄 김용남이가 너한테도 다방면으로다가 접근할 것인께. 어찌 보믄 김용남이보다 차라리 조동구가 더 나을 수도 있다잉. 조동구멩키로 대놓고 하믄 피하기라도 할 것인디, 몰래한께 속이 안 보이잖애.”

“그럼, 김용남이는 그렇게 해서 뭘 얻는 걸까?”

“나는 모르제, 김용남이 속에 안 들어가 봤은께, 알믄 내가 이러고 있겄냐? 그라고, 언젠가는 김용남이하고 조동구하고, 둘이 크게 한판 한번 붙을 것이다.”

“근데, 쟤는 우리 반인데 청소는 안 하고, 아까부터 우리 주변을 맴도는 거 같다?”

“아야, 모른 체끼해. 저시끼 저거, 김용남이가 우리 감시하라고 붙인 놈인 거 같어.”

“뭐라고? 에이 그럴 리가.”

“나 시방까지 누구한테 뭔 말 한 거여. 너 나한테 뭔 야그 들었냐?”

“야, 그렇다고 인상까지 쓰냐?”

“어허, 그러고도 남을 놈이란께는 참말로, 너 진짜 조심하란께?”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한편 김용남은 김철종과 문승협을 쓰레기장으로 청소 보낸 뒤, 가병수와 강모세에게 반장투표 때 문승협을 찍은 15명을 색출해서 찍은 이유를 알아보라고 하였다. 가병수와 강모세가 각자 맡은 청소담당구역을 감독하면서 한 명씩 일일이 떠보며 확인했다. 그런데 15명 중에 문승협과 김철종으로 추정되는 2표를 제외한 11명의 표는 확인되었으나, 나머지 2명은 좀처럼 찾을 수 없어서 김용남에게 그대로 보고하였다. 조사한 바로는 문승협을 찍은 11명 모두가 문승협의 공약대로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처음 들어본 ‘차별 없는 공평한 학급을 만들어 모두가 친하게’라는 공약이 신선해서 찍었다고 했다. 김용남은 의외의 내용을 듣고 문승협의 공약을 되뇌어 보았으나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때 지나가던 박진숙이 멈춰 서더니, 김용남일행에게 한마디 툭 뱉고 갔다.

“나도 문승협 찍었어야, 보복할라믄 해라.”

“저 가시나가 시방 뭐라냐, 보복이라니, 뭔 말이어?”

“느그들 맘에 안 들믄 티 안 나게 따돌리고, 항상 그랬잖애? 그거 당하는 입장에서는 은근 사람 말려 죽이는 거여야? 티 나게 하믄 동정이라도 받제, 이건 뭐 피 말리듯이.”

“염병, 니가 디저불라고 지금 악쓰냐?”

“아야 그만해, 다들 조용히 자리에 안거 있어, 지금 선상님 모시고 올란께.”

박진숙이 자리로 가다 멈춰 서서 가병수말에 큰소리로 대꾸했다. 가병수가 화를 참지 못해 주먹 쥐고 박진숙을 향해 다가갔다. 김용남은 더 이상 말이 많아지면 안 되겠다 싶어 가병수를 제지했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 담임선생에게 청소검사를 받으러 교무실로 갔다.

잠시 뒤 문승협과 김철종이 교실에 들어섰다. 너무 조용해서 눈치를 살폈지만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담임선생의 종례가 끝나고, 김용남은 가병수와 강모세를 따로 불렀다. 문승협과 문승협을 찍은 아이들을 잘 지켜보라고 하였다. 가병수와 강모세는 둘이 나눠서 문승협과 13명을 지켜보기로 하고 학교를 나섰다.

“아야, 우리가 못 찾은 두 명중에 한 명은 박진숙이고, 나머지 한 명은 누구까?”

“그란께, 암만 생각해 봐도 모르겄어, 누구까잉.”

김용남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다 문승협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상대도 안 되는 가소로운 아이에게 신경 쓰여 웃겼다.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자신이 왜 문승협을 찍었나 생각하며 자전거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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