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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츠나 Aug 06. 2024

돌잡이로 자전거 핸들을 잡은 아기에 대하여

돌잔치 대신 자전거 캠핑 여행


"돌잔치? Stone party? 何それ?(그게 뭐야?)"


구불구불한 금발에 밝은 갈색 눈을 반짝이며 남편이 물었다. 어찌나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질문인지, 순간 '하아-'하고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또 시작이다. 남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고 또 한 다음,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서로 생각을 모으고, 활발한 토론(?) 끝에 조금 언성을 높이고, 우리는 어떻게 할지 정하는 '우리만의 절차'를 또 시작해야 한다.



오! 내 남편, 솔로몬인가?


돌다리뿐이랴. 쇠다리도 두들겨보고 만져보고 건너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인 나와 캐나다인인 남편이 일본에서 만나 결혼을 했으니. 세 나라의 언어와 문화가 섞여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분명 결혼할 때까지는 그것조차 참 재미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는 모든 게 달라졌다. 서로 '그러고 싶으니까.'라는 단순한 이유로도 곧잘 져주고 양보하는 것이 가능했던 우리가, '정말 그런지'를 따지기 시작했으니.


한국의 '공장제 결혼식 문화'와 '산후조리 문화'라는 큰 산을 넘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돌잔치'라는 큰 고비를 만났다. 예전에는 첫 생일을 맞이하기도 전에 다시 별이 되어 돌아가는 아기들이 많았기에 돌을 무사히 넘긴 것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열었다는 것. 열두 달을 한 바퀴 돈 '돌'에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고 가족, 이웃과 음식을 나눈다는 것. 돌잡이로 아이의 미래를 점치는 작은 이벤트도 있다는 것. 내 구구절절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남편. 또 눈을 빛내며, "그래서, 꼭 큰 파티를 열어서 선물도 돈도 받아야 한다고?"한다.


듣고 보니 그랬다. '우리만의 절차'에 따라 한국에서는 결혼식조차 하지 않기로 했으니, 핑계 김에 일가친척 함께해 식사도 하고 잔치도 하면 좋으련만. 또 굳이 스트레스받아 가며 모두 모여 겉으론 웃고 속으론 껄끄러울 건 또 뭘까. 부모가 뿌린 만큼 거둘 수 있도록 한 판 거하게 한다는 결혼식도 안 했으니, 돌잔치라도 할까 했더니 우리 부모님은 또 의외로 "편한대로 하라." 한다. 결혼식을 안하고 보니 의외로 편하셨던 걸까. 이미 금발 외국인을 사위로 두며 내려놓으신 걸까.



돌잡이에서 다 집어 던진 우리 아이


결국 돌에는 지역 장난감도서관에서 소품을 빌려 집에서 사진만 찍기로 했다. 열두 달 무사히 자라준 아이의 첫 생일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기념하기로 하고. 그것이 바로 '자전거 캠핑 여행'이었다. 돌 사진 찍고, 가까운 친척들과 식사만 한 후에 떠나자. 시간에 쫓기지 않게 넉넉하게 계획해서. 매일 갈 수 있는 만큼 가고, 적당한 곳에 텐트 치고 자자. 힘들면 호텔 가고, 아기 음식이 적당하지 않으면 공원에서라도 요리해 주자.


전설로 남은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말했다던가.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두들겨 맞기 전까지.'라고. 우리에게도 계획은 있었지만, 두들겨 맞았다.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내 딸은 사진만 찍고 돌잡이만 하려던 단순한 계획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촬영을 위해 쌓아둔 떡을 다 집어 던지더니 돌잡이 하라고 올려둔 물건도 뭐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착착 집어던졌다. 아이가 크면 "넌 돌잡이에서 ㅇㅇ를 잡았으니, ㅁㅁ한 사람이 될 거야."하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참 할 말이 없어졌다.


망연자실한 내게 남편은 "돌잔치 대신 자전거 여행을 떠날 거니까, 자전거 핸들을 잡은 걸로 하자!"며 킬킬 웃어댔다. 그래, 그런 거로 하자. 헛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보니 문득 불안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 사진 한 장 계획대로 못 찍는 아이를 데리고 괜찮을지. 갓 "엄마, 엄마"하고 말을 떼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우리 집 개를 손으로 가리키면서도 "엄마, 엄마"하는 내 아기. 이제 걸음마를 시작해 1초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를 길에서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지.



관심과 사랑은 감사하지만, 그래도 떠납니다


큰 결심을 했다면 비밀로 하라 했던가. 나도 이 말이 이렇게나 진리에 가까운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나의 비루한 인간관계 덕에 이 '결심'에 대해 말한 사람이라고는 친정엄마, 가장 친한 친구 두엇뿐이었는데도. "어린애 데리고 나가면 병 낸다. 다시 생각해." 친정엄마의 한마디에 "저주하는 거야?" 하며 달려들긴 했는데, 돌아서 생각하니 불안은 더욱 커졌다. 나와 남편의 철없는 망상과 이기심이 아이를 희생시키는 건 아닐지, 우리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자전거 트레일러에 태워져 긴 시간을, 그것도 텐트를 싣고가는 여행을 어린아이가 견뎌줄 수 있을지. 아직너무 어려 무엇도 기억하지 못할 아이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일지. 하지만 고민이 길어져도 답은 같았다. 집에만 머물며 아기 울타리에 가두어 두어야만 안전하게 크는 건 아닐 테니까. 우리는 아이를 낳기로 한 것이지 우리의 삶과 일상을 그만두기로 한 것도 아니고. '루틴'이라고 해서 정해진 하루 스케줄을 정확히 반복해 아이의 수면 습관, 식사 습관 같은 것을 잘 잡아두고 있던 게 어떻게 될지 걱정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루틴을 지키겠답시고 집에만 있을 것도 아니니까.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삶을 살고 저마다의 행복의 모양을 갖듯이, 우리 가족은 이런 모양의 삶과 행복을 원할 뿐이다. 길 위에서 만나게 될 불확실성에 움츠리게 되는 것이야 어린 아기를 둔 부모로서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언젠가는 집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야 한다면, 그게 지금이어야 한다. 이미 열두 달을 단단하게 살아남아 준 내 아이와, 아이를 키워낸 우리 부부에게 해낼 힘이 있음을 첫돌을 맞이하며 확인했으니.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조금씩 천천히, 필요한 것은 뭐든지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가지고. 그렇게 달팽이처럼 움직이면 되니까.



우리는 그렇게, 결국, 떠나기로 했다. 이 길 위에 우리 모두의 행복과 성장이 함께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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