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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츠나 Aug 13. 2024

7.4킬로그램, 3시간에 한 번 자야 하는 자전거 짐

돌 아기를 데리고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가벼움. 그보다 더 간단하게 '자전거 여행'을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 내가 감당하기로 마음먹은 그 무게를, 자전거를 일으켜 세운 그 순간부터 도착해 내려놓을 때까지 견뎌야 하니 말이다. 그 '무게'에는 '짐'뿐 아니라 자전거 그 자체, 심지어 내 스스로의 무게까지 포함된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경량화'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자전거 여행, 길 위에 서면 알게 되는 것들


10여 년 전, 한국에서 도피 유학을 간 여자와 원래 한량의 삶을 살던 캐나다 남자가 일본에서 만났다. 그것도 '대자연' 그 자체가 가장 유명한 특산물인 홋카이도 지역에서. 난 당시에 한국에서 도망치고 싶은 아주 괴로운 일이 있었고, 남편은 애초에 그러려고(?) 도착한 곳. 우리가 텐트를 싣고 자전거를 타고 떠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몸이 괴로우면 마음은 괴로울 수 없다.'는 내 괴이한 가설이 나를 떠밀었고, 능숙한 조교(?), 남편이 나를 한계까지 이끌었다.


해보니 내 가설이 확실히 맞았다. 어딜 가나 곰이 나오는 깊은 산을 지나야 하는 홋카이도의 루트는 잡생각의 여유 따위 허락지 않았으니. 도중에 그만둘 방법이 없는 경로, 산속에서 어둠이 찾아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몸이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게 됐다. 두통이나 어지러움 같은 다양한 증상과 순식간에 바닥을 치는 '기분'. 그런 낯선 것들이 '나'를 알게 했다. 몸을 움직여 이동하고, 체력이 한계에 부딪히기 전에 부지런히 먹고, 안전한 잠자리를 마련하는 행동은 '작은 동물'이라는 내 하나의 정체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러다 임신과 출산으로 멈춰있던 자전거를 다시 끌고 나가기로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 묻자, 남편은 별 시덥잖은 걸 묻는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가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고, 아이는 태어났고, 이제 여행이 가능할 만큼 컸으니까 당연하지. 그거뿐이야."라고. 그래 사실 그거뿐이다. 이번에도 몸이 괴로울테니 마음은 괴로울 수 없을테고, 도무지 끝을 모르는 산후우울과 불안도 발디딜 틈 없어지지 않을까. 



아기를 '짐'으로 추가한다는 것은


간단한 운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도 '이러다 올림픽 나가게 되면 회사는 어쩌지?"하고 상상이 끝까지 가는 우리 부부. 아기를 갖기로 마음먹은 2년여 전 어느 늦봄, 일단 '태교 여행'을 떠나기로 했었다. 일주일 동안 하루 평균 30킬로미터 이동하는 느긋한 자전거 캠핑 여행이었다. 어느 강가를 달리며 "짐이 영 부족해서 꼭 하나 만들어야겠어?" 하고 묻자, 남편은 "YES!"하고 대답하며 바보같이 웃었다. 아기가 생기면 아주 무겁고 귀여운 자전거 액세서리가 새로 생기겠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진짜 태교 여행이긴 했다. 그리고 그 액세서리를 진짜 만들고보니 아차 싶다. 그냥 '짐'이 아니다. 지금껏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경량화'랍시며 텐트, 의자뿐 아니라 숟가락 하나까지 100그램이라도 더 가벼운 물건을 강박적으로 사 모은 것이 자못 허무해진다. 이번 여행 출발하던 날 아이 무게가 7.4킬로그램. 아기를 태울 트레일러가 15킬로그램. 거기에 아기의 옷, 식기류, 상비약, 체온계, 현지 이동까지 당장 먹일 음식과 간식, 온 보관 가능한 아기 비상식량, 기저귀, 누가 들어도 '필수품'에 해당하는 것들. 거기에 누가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릴 물건도 있다.


아이의 적응을 도울 쓰던 이불, 잘 때 늘 보던 동화책. 그뿐인가. 여행 기간 40일 동안 계절이 바뀌는 것과 일교차를 고려하니 아이 옷이 산더미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 캠핑 여행 9년 차이자, 임신 초기에도 텐트 싣고 자전거를 탔던 나조차 어디서도 본 적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짐 규모가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짐 운반을 위해 나귀라도 한 마리 끌고 다닐 판인데. 떠났다면 돌아올 때까지 내 몸으로 무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자전거 여행이라니. 자신감이 땅에 떨어져 뒹구는 듯하다. 



7.4킬로그램 아기와 40일간 934킬로미터


아기를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초경량'을 향한 습관적인 추구가 고개를 숙였다 한들, 움직일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대략의 루트 상 가장 긴 날을 감당할 정도까지는 짐을 줄여야한다. 한숨을 쉬며 내 긴 바지, 양말, 하다못해 속옷 여유분까지 뺐다. '빨아입지 뭐. 이것도 못 빨 정도 환경이면 어차피 애를 못 데리고 있으니까 괜찮아.'하며, 현란한 합리화가 나를 단벌신사로 만들었다. 그러고도 '아, 이거 필요할 것 같은데?' 하며 아이 장난감을 집어 들게 된다. 이런 게 부모가 되는 일인가 싶다. 누가 여행의 새로운 주인공 자리를 꿰찼는지 몸에 와닿는다.


새 주인공이 바꾼 것은 '무게'만이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여행 장소를 정하고 이동 경로를 짰다. 만일의 사태에도 부부 모두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일본으로 가자. 최대한 한적한 곳을 여유 있게 즐기자. 조건은 단순했지만 막상 세세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쉽지는 않았다. 우리 부부의 경우 보통 하루에 50~60킬로미터를 이동하면 '느긋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반인 30킬로미터를 하루 목표로 정했다. 온라인 지도에서 위성사진을 보면서 되도록 자전거길이 있고 차량 통행량이 적은 길을 고르고 골랐다. 잘 수 있을 만한 공원이나 놀이터, 공터도 위성사진으로 뒤졌다.


우리가 준비에 가장 오래 공들인 것은 '수어(手語)'다.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울음' 뿐이어서는 아이에게 너무 괴로울 같아서다. 눈을 마주치면서부터 말을 가르치듯이 가르쳤더니 정말 금세 몇 가지 표현을 쓸 수 있게 됐다. '주세요/해주세요/제발', '물', '우유', '음식/먹다', '더', '다 됐어요/끝/없어요'. 수어로 말하는 것이 가능해지니 의사 전달을 위해 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초보 엄마 아빠가 눈치채지 못해 답답할 일 없이, 이동 중에 원하는 게 생기면 말해주길. 길 위에서는 우리 셋이 한 팀이니 서로 이견을 조율해가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길.



3월 시작할 여행은 남쪽으로 향할수록 벚꽃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아기가 길 위에서 걸음마를 배우고, 내가 '엄마'라는 것도 알게 되겠지. 의외의 순간순간에 새로운 말을 하기 시작할 테고. 아이가 탄 트레일러와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패달을 밟아 짐의 무게를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행복해 눈물이 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떠나기로 한 순간부터 부푼 내 마음은 눈을 감으면 이미 그 길 위에 있었다.    


일본 큐슈의 하카타에서 출발해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마츠야마, 시모노세키를 거치는 934킬로미터. 모든 경로를 위성사진으로 보며 일정을 짰다. 
(왼쪽) 실온보관 가능한 이유식 파우치와 물에 타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오트밀 비상식량 (오른쪽) 아기를 트레일러에 태우고, 자전거에 연결해 달리는 연습을 자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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