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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츠나 Aug 20. 2024

자전거와 캠핑 짐과 아기, 바다를 건너다

안녕, 우리는 진짜 갑니다! 일본, 하카타로.

"엄마, 엄마!"


잘 준비를 마치고 동화책을 읽으려던 순간. 집게손가락을 머리 위로 가리킨 딸아이가 잊고 있던 일이 있었다는 듯 방문 앞으로 향한다.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거실로 나와보니 잊었던 것이 '흔들목마'였나보다. 우와와와하며 놀이공간으로 가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장난감이 있을 때 마음껏 놀아라.



자전거와 캠핑 짐, 돌 아기를 가지고 부산으로


출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아이 수면 교육을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울더라도 매일 반복했던 수면 준비 과정의 고삐를 늦췄다. 경험상 어차피 여행을 떠나면 그동안의 '성과'들은 모래알처럼 사라진다. 시차가 심한 곳으로 갔을 때도, 이동 시간이 너무 길었을 때도 그랬다. 단지 지난한 적응 과정이 있을 뿐이고 그 대부분은 각자의 몫이 있다. 그동안 쌓인 경험으로 조금쯤 도울 수는 있을지언정 결국 아이의 몫은 아이가 감당해야 한다. 출발 후 적응까지 좀 더 괜찮은 몸 상태일 수 있도록 먹고 자는 일을 더 살피면 더는 할 게 없다. 그냥 그간의 노력을 망치는 미안함을 덜기위해 더 힘차게 놀아줄 뿐.


결국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여행의 시작'에 해당하는 '이동'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계획한 순간부터 치열하게 현지로 향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아직은 아이의 낮잠과 낮잠 사이의 '깨어있는 시간'이 최대 3시간 정도가 이상적이라 더 어려웠다. 사실 가장 간단하고 편한(?) 방법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로 일본까지 이동하는 방법이다. 자전거 짐을 자전거에 실은 채로 이동할 수 있는 데다, '자전거 분해 조립'이라는 큰 산을 피할 수 있으니. 두 번째 편한 방법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부산까지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한국 기차는 몇 년 전 '자전거 거치대'를 완전히 없애면서, 규정상 자전거의 정상적인 탑승을 막았다.


그다음은 모든 짐을 분해, 포장해서 수화물 규정에 맞춰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제일 간단한 방법이지만,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짐이 문제였다. 이를 어쩌나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식탁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니, 친정엄마는 "제일 편한 집에 있는 거"라며 그럴듯한 의견을 내놨다. 세월로 단련된 현명함에 맞설 더 괜찮은 논리는 없지만, 그래도 가긴 가야한다. 남편에게 묻자 "비행기를 타는 게 제일 빠르고 제일 싼 방법일 것 같아."한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이 된 내가 여행 경비를 감당하게 될 것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을 고르는 연습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을 때, 가장 마음 아프게 고민했던 것이 있다. 아이를 위해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줄 수 있나. 아이가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을 선택하도록 가르칠 수 있나 하는 것들. 내 삶을 돌이켜보면 나쁜 것 중에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때가 많았는데, 현실적인 결정을 하느라 내 마음에 물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여행만큼은 연습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결론이 '모든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당연한 왜 그렇게 비장했는지 모르겠다. '재미'만 생각하고 고르라고 하니 남편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것을 골랐다.


그렇게 우리는 착착 준비를 시작했다. 기차와 배편을 예약하고, 자전거를 완전히 분해해 포장한 후 부산항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택배 영업소로 보냈다. 친정엄마는 잔소리를 퍼붓고도 도무지 분이 풀리지 않는 듯했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를 위해 영양 가득한 이유식을 만들어 싸주었다. 자전거와 함께 먼저 보낸 짐을 제외하고도 또 산 같은 짐과 아이 트레일러, 도시락을 들고 드디어 집을 나섰다. 가까스로 역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는 순간, '휴, 해냈다!' 싶었는데,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늘 '여행은 이게 마지막이야.' 해놓고는 또 짐을 들고 나서는 나 자신이 미워지려고 한다.


자리에 앉아 짐을 정리한 후, 우리는 언제나처럼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서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이자, 서로의 안전과 몸과 마음의 안녕을 기원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서로 더 깊이 고개를 숙이며 여러 번 인사하며 너스레를 떨다가, 진지하게 눈을 마주 보며 서로 어깨를 토닥인다. 늘 그랬지만 이번 40여 일의 여행길은 서로의 희생과 양보 없이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직은 초보 부모. 아무것도 안 해도 그럴진데, 서로의 밑바닥을 샅샅이 보게 되는 자전거 여행이니까. 우리가 묘한 긴장감에 싸여있을 때, 아이는 창문에 매달려 우와와와 한다. 너도 잘 부탁한다, 아가야.



바다 건너 일본 규슈, 하카타로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택배 영업소로 향했다. 아이 트레일러에 짐을 싣고, 아이는 안고 걸었다. 그래도 짐보다는 7.4킬로그램짜리 아이가 가벼우니까. 날씨 탓인지 어딘가 스산한 영업소에서는 돌 아기를 안은 우리가 불쌍했는지 트럭 뒤 한쪽을 내주었다. 부산은 남쪽이니 따뜻할 줄 알았건만 바람은 차고 곧 비가 올 기세다. 아이는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도망을 시도했다. 한 명은 오로지 아이를 안고 있어야 하니 자전거 조립은 꽤 시간이 걸렸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어르며 근처를 돌고 남편은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맞추는데, 뭐가 좋은지 웃고 있다. "행복?"하고 묻자 "행복!"하고 밝고 높은 답이 빠르게 돌아온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트레일러에 아이를 태우고 배를 향해 달리는데, 배도 고프고 지친다. 아이는 어차피 도시락으로 받은 친정엄마표 이유식을 먹이니 우리는 끼니 챙기기가 쉽지 않다. 자전거 트레일러에 아이를 태운 모습이 낯설어서인지 우리가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인파가 몰린다. 관심과 응원이 감사하기도 하고, 아이가 낮잠을 이룰 수 없어 괴롭기도 하다. 트윈 침대가 두 개 있는 개인실로 하길 잘했다. 보안검색을 위해 모든 짐을 다 내렸다가 다시 싣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일 줄 알았는데. 아이는 몇 살인지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끝도 없는 질문에 답하다 도망치듯 선실에 들어오니 '후-'하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루가 참, 길었다.


멀어지는 부산의 밤 풍경이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 같다. 배 특유의 네모난 창문은 액자처럼 그 빛을 담아내고, 내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 속에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미술품이라도 보듯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으니 어릴 때 본 어느 애니메이션이 떠오른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주인공이 보고 싶었던 그림 앞에서 삶을 마감하는. 내가 죽음을 앞둔다면 마지막으로 보고싶을 그림은 바로 이 순간일 것 같다. 없는 줄 알았던 산타할아버지를 만나 수십 년 치 선물을 한 번에 받은 듯한 행복이 밀려온다. 행복이 마음의 접시에 가득 담겨 흘러넘치는데, 왜인지 조금 쓸쓸하다. 배가 일으킨 물비늘에 말뚝이라도 박아 흐르는 시간을 묶어두고 싶다.



하지만 시간은 가고, 우리가 탄 배는 부지런히 바다를 건너 내일에 닿았다.



(왼쪽) 아이 트레일러에 짐을 가득 싣고 택배 영업소에 도착  (오른쪽) 자전거를 조립한 후 트레일러를 연결했다.
(왼쪽) 종일 붙들려있던 아이는 방에 와서야 침대를 붙들고 혼자 제 발로 걸음을 옮겼다.  (오른쪽) 움직이는 배에서 부산항을 바라보는 딸과 남편. 창밖에는 비가 시작됐다. 




뒤에 오시는 분을 위해,


출발 교통편은 가능하면 오후가 좋아요!

아이를 위한 필수품은 보통 전날 밤이나 당일 일어나서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 물건을 챙길 시간이 넉넉하면 마음도 넉넉합니다.


아무리 짐이 많아도 이것만은 챙겨야 해요. (중요도순)

(여행 지역의 대사관/영사관 연락처, 여행자보험 콜센터 전화번호) 체온계, 상비약, 애착 인형, 좋아하는 간식, 이유식, 빨대 물병, 수면 루틴용 동화책, 사용하던 아기 이불/담요, 사용하던 백색소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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