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오늘도 어김없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침 식탁을 차리기까지 30분 남았다. 늦어도 6시 30분에는 음식이 준비돼야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며 식사를 마칠 여유가 생긴다. 명안주스. 당근과 사과, 블루베리, 마를 갈아 만든 걸쭉한 이 주스는 결혼 11년 차인 우리가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아침식사의 중심이다. 감자를 굽거나 토스트를 곁들이는 날도 있지만, 명안주스만큼은 사시사철 빠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부부는 눈 건강을 지키는 데 진심이다. 아내는 유전적으로 시력 관련 질환에 취약하다. 친정엄마, 이모, 외할머니 모두 나이 들어 녹내장이나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결혼 당시 아내의 눈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노후를 미리 대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나에게 아내의 시력 보호는 하루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책을 오래 읽는 내게도 눈은 삶의 핵심이다. 이 필요로 우리는 아침 메뉴를 명안주스로 결정했다. 맛과 영양 모두를 만족시키는 배합이기도 하다.
결혼 전 식습관은 극과 극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던 나는 매일 아침을 챙겨 먹는 것이 당연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늘 건강하고 알찼다. 반면 아내는 제주를 떠나 혼자 산 지 오래였고, 잠이 많아 아침을 거르는 날이 잦았다. 저녁마저도 치킨이나 닭발 같은 즉흥적인 음식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삼시 세끼를 건강하게 먹어야 하는 내게는 상상하기 힘든 생활이었다.
결혼 후 나는 자연스럽게 아내의 아침을 책임졌다. 눈에 좋은 주스를 기본으로, 하루 필수 영양소를 바탕으로 아내에게 부족한 메뉴를 상황에 맞춰 준비했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에도 이 일만큼은 거르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아내의 건강이 곧 나의 삶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꾸준함 속에서, 이런 습관이야말로 건강한 결혼 생활이라는 믿음이 자라났다.
나는 아내를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와 떠난 여행 중 우연히 들른 펍에서였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순간 첫눈에 반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다가가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이런 무모함을 단칼에 거절했다. 나중에서야 들었지만, 당시 그녀는 비슷한 접근을 해오는 남자들에게 이미 지쳐 있었다고 한다. 시작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나는 조금씩 그녀의 삶에 내 자리를 넓혀 갔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른 뒤, 우리는 서둘러 결혼을 결정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결혼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이에 비해 평탄하지 않았던 삶과, 서로의 결정을 뒷받침할 만큼의 연애 경험이 확신을 더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달랐다. 욱하는 성격의 아버지를 닮아 한 성깔 하던 나를 걱정하던 엄마와 친척들은, 비슷하게 기가 센 아내를 보고 “적어도 1년은 만나보고 결혼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말을 했다. 아내를 딸처럼 키운 이모 역시 가진 것 하나 없는 나에게 조카를 보내는 걸 주저했다. 그들의 걱정을 이해했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결혼은 평생 함께해야 한다’는 전제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결혼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역시 20년 넘게 살았던 아버지와 이혼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양쪽 가족에게 말했다. “살아보고 아니면 이혼하면 되죠. 그게 무슨 죽을죄라고.” 다행히 아내도 내 생각에 동의했고, 우리는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결혼 전까지 내 인생의 무대는 나 혼자 주인공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함께 서야 했다. 그리고 그 다른 주인공은 나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소년·소녀 가장에 가까운 성장기를 보낸 우리는 그만큼 고집이 셌다. 의견이 부딪히면 싸움은 거칠었고, 나는 욱하는 성질을 참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결혼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언제든 끝낼 수 있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결말이 열려 있으니, 오히려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어느 날, 가까운 지인이 “결혼도 5년마다 자격 갱신을 하는 게 좋다"라는 말을 했다. 그래야 다음 갱신을 위해 서로 노력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 의견에 공감했다. 결혼이 삶의 족쇄가 되면 서로에게 무뎌지는 모습을, 나는 부모님에게서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비극적으로 헤어졌지만, 그 과정이 나에게는 반면교사가 됐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지금은 내가 일을 쉬고 있어 Double Income No Kids라는 ‘딩크족’의 정의에는 맞지 않지만, 결혼 전부터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각자 어린 시절, 가족을 부양하느라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었던 시간을 보냈기에 결혼 후에는 오롯이 자기 삶에 집중하자는 뜻이었다. 나 역시 그 고단함을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아내의 선택에 쉽게 동의했다. 오히려 아버지 없이 자란 어린 시절의 공백을 내가 채워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 없이 살아왔다.
아이 없는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마흔 중반이 된 지금, 육아에 지친 부부들을 볼 때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준비하거나 갓 결혼한 부부들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막연히 딩크족을 꿈꾼다면 아이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아이를 두지 않는 결정은 인생에서 매우 큰 선택이기에, 구체적인 목적과 확신 없이 내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부부는 이 선택에 확신이 있었고, 지금도 앞으로의 계획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만족을 지속하기 위해 나는 몇 가지 노력을 기울여왔다.
첫째, 아내와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 했다. 결혼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무게로 서로에게 무뎌지는 순간이 온다. 아이가 없는 부부는 이 부분에서 더 취약하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혼자 있을 때 결코 외롭지 않게 하자는 결심을 했다. 직장에 다닐 때도 일주일에 세 번은 꼭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일 특성상 저녁 술자리를 피하기 어려웠지만, 최소한 그 원칙은 지켰다. 피치 못하게 약속이 많을 때는 회사 저녁 모임에 아내를 초대하기도 했다. 덕분에 아내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대표, 영업팀장, 동료, 후배들과 모두 친분을 쌓았다. 아내의 사교적인 성격이 한몫했지만, 이 관계가 이어져 지금도 부부 동반 모임이나 동료들과의 자리가 잦다.
둘째, 결혼 후 10년 동안 함께할 취미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시작은 수영이었다. 나는 결혼식 성혼 선언문에 “신부는 신랑과 함께 수영을 배워 생존과 건강을 모두 챙길 것을 선서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제주도 출신임에도 수영을 전혀 못 하던 아내는 결혼 후 나와 함께 수영을 배우며 재미를 붙였다. 지금은 접영, 배영, 자유형, 평형을 모두 익혔고, 프리다이빙에도 관심을 보인다. 저녁 시간에 함께 다니는 수영 강습은 여전히 데이트처럼 즐겁다.
셋째, 독서모임을 함께 한다. 원래 각자 선호하는 분야가 달랐지만, 세계문학 읽기 모임을 시작으로 문학 취향이 넓어졌다. 지금은 부부 동반으로 나가는 독서모임이 여러 개다. 특히 나이가 있는 부부들이 우리를 더 부러워한다. 나이 들어서도 대화를 이어갈 주제가 무궁무진하다는 점, 같은 책을 나란히 읽는다는 점이 그들에게는 신선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세계관을 공유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얻었다.
이외에도 함께하는 취향은 많다. 달리기를 시작해 지금은 같은 러닝 크루에서 활동하며 대회에 출전하고, 때로는 운영진으로 참여한다. 자연을 좋아하는 아내와 산을 좋아하는 나는 등산도 즐긴다. 몇 년 전에는 함께 히말라야 해발 5,000미터 봉우리에 올랐고, 그때 느낀 아내에 대한 존경심은 아직도 생생하다. 새로운 시도는 대부분 아내와 함께했고, 그 덕분에 하루하루가 여전히 신나고 활기차다.
이런 결혼 생활은 나에게도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결혼 전 나는 제도 자체를 거부했다. 여러 번의 연애를 거치며 결국 모든 관계에서 지루함을 느꼈고, 새로운 만남이 주는 설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도적인 묶임 속에서 서로 의무로만 살아가는 모습이 두려웠다. 그런 생각이 굳어져, 나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말하고 다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내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런 둘이 결혼을 한다고 인사를 하니, 주변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결혼 11년 차가 된 지금, 나는 결혼 전의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한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 미래를 단정 짓는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지 알게 됐다. 그건 결혼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다.
또한 나는 결혼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새롭게 배웠다. 결혼 후 6개월쯤이 지나면 설렘을 비롯한 뜨거운 감정은 자연스럽게 옅어진다. 그때부터 내게 찾아온 것은 편안함과 함께,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안쓰럽다’는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이 유한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실존을 목적으로 몸부림치는 한 존재를 향한 연민, 그리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이런 감정은 가까운 가족인 어머니에게서도 느낄 수 있지만, 배우자를 통해 느끼는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런 나는 아내에게 어릴 때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보상하듯 좋은 옷과 차, 맛있는 음식을 아낌없이 선물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마음이 자식에게 느끼는 사랑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다시 태어나면 내 딸로 태어나”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결혼의 성공은 서로 잘 맞는 성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라고 말했다. 결혼을 제도 자체로 거부하던 나에게, 이 문장은 뒤늦게야 그 의미가 와닿았다. 우리는 서로 닮은 점 보다 다른 점이 훨씬 많았고,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법을 배우며 함께 살아왔다.
또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터뷰에서 결혼 생활을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긴 여정”에 비유했다. 나는 이 말을 명안주스처럼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행위 속에서 실감한다. 당근과 사과를 손질하고, 아내의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계를 확인하는 아침의 루틴은 단순한 집안일을 넘어, 관계를 이어가는 나만의 방식이 됐다.
유명인의 말과 일화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결혼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의 결을 맞춰가며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멋진 순간보다 지루해 보이는 날들의 누적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오늘 이렇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길게 글로 남기게 된 건, 곧 결혼을 앞둔 내가 좋아하는 후배 때문이다. 어제저녁, 그는 결혼에 대한 조언을 듣겠다며 나를 찾아왔다. 오래전 다녔던 회사에서 만난 그는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결이 비슷한 사람이다. 그리고 야무지고 알찬 아내를 만나 곧 부부가 될 예정이다. 우리는 네 사람이 함께 만나 금세 친해졌다. 성격도 좋고 예쁘기까지 한 그녀는, 우연히도 아내와 이름까지 같아 인연을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후배와, 곧 후배의 아내가 될 그녀는 우리 부부의 생활을 곁에서 보며 공경에 가까운 호감을 표현했고,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 부부의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오늘은 그 말을 글로 옮기고 싶었다.
아마 완성된 글을 읽은 아내는 나를 보며 “착하고 완벽한 척한다”라고 웃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이 틀렸다고는 못 하겠다. 내가 믿는 유일한 사실은, 나는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건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나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결혼에 대해 길게 써 내려간 이 글의 결론이자,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다.
여전히 금요일 아침이면 주말을 기다리며 설렌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주말만큼은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영이나 달리기를 하고, 낮잠을 잔 뒤 맛있는 저녁과 술 한 잔을 곁들이는 하루. 그런 소소한 일상이 매일을 즐겁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 결혼에 확신이 없거나 주저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우리 부부의 평범한 하루를 보여주고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매일의 반복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쌓아 올린 삶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그 일상의 표정으로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