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떠진다. 탁자 위에서 충전 중인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5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 한 시간을 더 잘 수 있지만, 억지로 누워 있어도 다시 잠들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결국 휴대폰을 켠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과거의 오늘’을 훑는다. 3년 전 오늘은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남긴 기록이 보인다.
“지식 탐구를 통해 자신의 어떤 부분이 달라지는가? 지식이 깊어지면, 좀 더 섬세한 인식을 하게 된다.”
그 문장에 덧붙여 쓴 나의 메모도 남아 있다. “섬세한 인식의 중요성이 매일 체감되는 요즘. 상투적이고 흐릿한 말로 하루를 채우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오래된 기록을 다시 만날 때면, 그 시절의 내가 어떤 문장에 기대어 하루를 버텼는지 알게 되어 은근한 즐거움이 있다.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나온다. 아내를 깨우기엔 아직 이르다. ‘공부’라는 단어를 본 탓인지 아침 독서에 마음이 쏠린다. 한 시간 책을 읽고 출근할까, 아니면 회사에 일찍 가서 읽을까 잠시 망설인다. 교통 체증을 격렬히 싫어하는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한다. 마음을 정하자 곧장 주방으로 향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과 한 알을 꺼낸다. 언젠가부터 과일값이 너무 올라, 이제는 작은 사과 하나도 소중해 보인다. 여름이면 평소 먹던 부사 대신 아오리 사과를 고른다. (익으면 붉게 변하지만, 처음엔 연둣빛이 선명하다.) 사과를 천연 세정제를 푼 물에 잠시 담가 두고, 그 사이 프라이팬을 달군다. 흙을 닦아둔 감자는 오븐에 넣고, 냉동실에서 데쳐둔 당근과 씻어 얼린 블루베리를 꺼낸다.
믹서기에 사과 한 알, 당근 100g, 블루베리 50g, 마 가루 한 스푼, 그리고 물을 부어 갈아낸다. 눈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찬 성질의 블루베리와 사과, 더운 성질의 당근과 마가 균형을 맞춘 ‘명안주스’다. 컵에 주스를 따라 놓고, 뜨거워진 팬에 계란을 올린다. 아내는 반숙을 좋아하지만, 여름철에는 혹시 모를 신선도를 염려해 노른자까지 완전히 익힌다. 노릇하게 구운 계란 프라이에 오븐에서 꺼낸 감자를 곁들이니, 아침상이 완성된다. 일어난 지 꼭 30분 만이다.
내 몫으로 덜어낸 주스와 감자, 계란을 앞에 두고 클래식 FM 라디오를 켠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동안, 따뜻한 음식과 차가운 주스가 천천히 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6시 20분. 씻고 집을 나설 시간이다. 그전에 아내를 깨운다. 눈은 떴지만 한동안 이불속에서 늑장을 부리는 성향을 알기에, 준비 시간보다 조금 일찍 깨우는 편이다.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고, 오늘 준비한 아침 식사를 설명한다. 메뉴는 거의 비슷하지만, 서두르다 혹시 아침을 건너뛸까 염려돼 매번 설명하게 된다. 끝으로 안전운전을 당부하고 집을 나선다.
인덕원 근처 집에서 회사가 있는 분당 오리역까지는 20km가 채 되지 않는다. 이른 시간에 출발하면 30분 안팎이면 도착한다. 회사에 도착하니 7시 30분이 조금 넘었다. 공식 업무 시작은 8시 30분. 한 시간이 남지 않은 업무 시작 시간에 마음이 조급해져 책을 챙겨 들고 커피를 내려 회의실로 향한다. 불을 켜자 어제까지의 분주함이 가라앉은 회의실에는 약간의 먼지 냄새가 감돈다. 텅 빈 공간의 구석에 앉아 책을 펼친다. 오늘 아침의 책은 철학자 이정우의 『개념-뿌리들』이다.
이 책은 철학 입문서다. 일상 속에 익숙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개념들을 파고든다. 그동안 서양 철학의 큰 흐름을 공부해 왔던 터라, 이제는 기초 개념을 단단히 다지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일은 결국 기초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진다. 그래서 요즘 아침 독서로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적절한 판단이라 생각된다.
나는 하루 세 번의 독서를 지키려 한다. 출근 전 한 시간, 점심시간 한 시간, 퇴근 후 한 시간. 물론 점심 약속이 있거나 저녁에 술자리가 있으면 빼먹을 때도 있다. 아침에는 철학이나 물리처럼 난도가 있는 책을 읽는다. 집중력이 가장 높은 시간이라, 저녁 같으면 쉽게 놓칠 내용도 아침에는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렵게 읽은 만큼 만족감도 크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읽을 책을 기대하다가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다. 오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다. 점심에는 가벼운 책을 집는다. 식사 직후라 긴 호흡이 어렵기에 짧게 끊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구독 중인 『시사IN』을 본다. 저녁에는 소설을 읽는다. 서사가 이어지는 덕분에 집중력이 떨어져도 내용을 따라가기 쉽다. 그렇게 내 독서는 문학, 역사, 철학, 과학(특히 우주와 양자역학)으로 순환한다.
책에 몰입해 있던 순간, 나만큼이나 일찍 출근하는 연구소장이 회의실로 들어온다. 그는 순박한 성격에다 이해관계를 앞세우지 않는 드문 임원이라, 나는 그를 좋아한다. 잠시 후 그는 담배를 피우러 가자고 권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가끔 그의 제안에 응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침만큼은 예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초침은 업무 시작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책을 읽어야 해서요.”
나는 정중히 거절한다. 내 독서 습관을 잘 아는 그는 미소를 지으며 “역시 대단하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나간다. 회의실 문이 닫히자,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나는 책장을 펼쳐 들고, 방금 끊겼던 문장 속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8시 30분. 업무가 시작된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인사총무부문을 맡고 있는 내게는 인사팀에 세 명, 총무팀에 세 명과 함께 일한다. 그들과 가볍게 아침 인사를 나눈 뒤 컴퓨터를 켠다. 간밤에 쌓인 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의 첫 업무가 시작된다.
어느새 11시 30분. 앞자리에 앉은 총무팀 직원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인사팀 막내는 따로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나선다. 2001년생인 그녀는 회사 안에서도 인기가 많아 점심을 따로 먹는 일이 잦다.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함께 식당으로 향한다. 밥을 먹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총무 파트의 수장은 우리 회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그의 “나 때는 말이야”에는 묘한 무게가 실린다. 그런 그를 막내 직원이 “꼰대”라고 놀린다. 둘은 워낙 사이가 좋아 농담이 거침없다. 나는 그 풍경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점심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니, 함께 먹은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러 간다. 나에게는 함께 가자고 묻지 않는다. 상사라서 불편해서가 아니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는 내 습관을 배려하는 거라고 믿는다. 나는 준비해 둔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바보들에게 웃으며 하고 싶은 말』을 꺼내 복도로 향한다. 신발은 지압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우리 회사 건물은 본래 상업 시설이었다. 중앙에 중정이 있고, 그 주위를 둥그렇게 복도가 이어져 쇼핑몰 같은 구조다. 나는 그 복도를 돌며 책을 읽는다. 서너 바퀴쯤 지나면 몸에 열이 오르고 소화도 잘 된다. 직원들은 멀리서 그런 나를 보며 “괴짜 같다"라고 웃는다. 다른 층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날 모르는 탓에 이상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선택지가 없다. 걷기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여름철 더위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 이 복도야말로 최적의 공간이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 『밀크맨』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걸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적다고 해서 내가 틀렸다는 건 아니잖아. 만약 단 한 사람만 정상이고 나머지 전부가 그렇지 않다면, 집단의식은 그 한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 부를 거야. 그렇다고 그 사람이 정말 미친 걸까?”
이에 대한 소설 속 대답은 이렇다.
“응. 자기와 대립하는 세상에서 겹겹의 장애물을 맞닥뜨리면서도 자기 방식을 고집한다면 미친 거지.”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 역시 미친 사람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고집스러움이 내겐 만족으로 다가온다.
에코의 책은 이번 달부터 나가기 시작한 독서 모임의 지정 도서다. 예전에는 여러 모임에서 활동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 사라져 버렸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 새로 가입했다. 나는 독서 모임에 나가길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혼자 읽으면 편식에 빠지기 쉬운 독서 목록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같은 책을 읽어도 타인의 생각은 전혀 다르게 뻗어나간다.
한 번은 다른 모임에서 우주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어떤 회원이 그것을 ‘영혼의 결정론’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다소 유사과학에 기댄 해석이었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서 독서 모임은 혼자 읽을 때와는 다른 재미를 준다. 게다가 나는 아내와 함께 참여한다. 같은 책을 두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일이 우리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이 된다. 부부의 공통 취미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덕에 일찍 출근한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내 퇴근 시각은 오후 5시 30분이지만, 밀린 일을 처리하다 보면 6시는 넘겨야 컴퓨터를 닫는다. 오늘도 예상 범위 안에서 업무를 마무리했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주 2회 정도는 퇴근 후 회사 앞 탄천을 달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수영을 병행하면서 달리기 횟수가 줄기도 했지만, 한 주에 한 번은 빼먹지 않는 루틴이다. 작년 겨울에는 눈이 내려 노면이 미끄러울 때만 제외하고 거의 빠짐없이 달렸다. 그런 나를 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재미있다. 부럽다고 말하는 직원에게는 늘 함께 뛰자고 권한다.
운동에 자신 있는 나도 여름철 달리기 복장은 조금 부담스럽다. 싱글렛이라 불리는 민소매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는 운동에 맞춘 옷차림이지만, 사무실에서 갈아입고 직원들과 마주치기엔 민망하다. 그래서 출입구와 가까운 회의실에서 재빨리 갈아입고 곧장 밖으로 향한다. 오늘은 나가는 길에 막내 팀원과 마주쳤다. 그녀는 내 시원한 복장을 보고 눈으로 웃으며, 민망해하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자전거를 타는데 쫄쫄이 복장이 익숙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내 운동복과 사이클 복장은 전혀 다르다. 그걸 비슷하게 여기는 시선이 오히려 더 쑥스럽지만, 나는 웃으며 인사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회사 앞 길만 건너면 탄천 산책로의 시작점이 나온다.
오늘은 10km를 뛸 예정이다. 오는 9월에는 하프마라톤 두 개와 10km 대회 한 개를 앞두고 있다. 그중 하나는 2시간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한다. 올해 봄 정읍 동학 마라톤에서 하프코스로 뛰며 1시간 42분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두 번째 하프 도전에서 나온 기록이라 더 값졌다. 기세를 몰아 풀코스까지 준비했지만, 4월부터 장경인대 증후군으로 고생하며 지금은 기량을 천천히 회복하는 중이다. 부상은 나았지만 여름 더위 때문에 아직 속도는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나는 속력보다는 꾸준함을 중시한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에서 말했듯, 중요한 것은 매번 달리기를 마칠 때 느끼는 짜릿함이 다음 날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나 역시 거리에 집중하며 달리기를 이어가려 한다.
내가 즐겨 달리는 코스는 오리역 낙생교에서 시작해 탄천을 따라 서현역 부근까지 5km를 달린 뒤 원점으로 돌아오는 왕복 10km다. 집 앞 학의천 산책로보다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길이 넓어 부딪힐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아직은 더운 여름이지만, 저녁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순간만큼은 하루의 스트레스가 씻겨 내려간다. 그래서 내게 달리기는 독서만큼이나 소중하다.
달리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러닝 크루다. 첫 회사 입사 초 선배였던 민철이 형이 만든 모임으로, 지금은 아내와 나를 포함해 30명 이상이 활동 중이다. 5년째 이어지고 있는 크루는 민철이 형과 운영진의 성실한 관리 덕분에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초창기, 형과 나 단둘이 달리던 시절에는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각자 페이스에 맞춰 달린 뒤 흩어진다. 조건은 단 하나,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 첫 직장에서 만난 민철이 형, 다른 회사 동료들, 아내의 후배까지 합류하며 지금은 서로 가족처럼 지낸다. 러닝 크루 덕분에 내 삶은 훨씬 풍성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10km 골인 지점이 눈앞에 다가온다. 달리기는 움직이면서 하는 명상이다. 발걸음을 멈추면 땀으로 몸은 개운하고, 무엇보다 머릿속이 정리된 듯한 상쾌함이 남는다. 오늘도 달리기가 안겨준 만족을 느끼며 사무실에 들렀다 집으로 향한다.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덕에 길은 한결 여유롭다. 라디오에서는 마침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끝나가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운전해 집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서브웨이에 들러 샌드위치를 사 오라고 한다. 나는 참치 샌드위치를, 아내를 위해서는 소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포장한다. 집에 도착해 마주 앉아 샌드위치를 꺼낸다. 남은 화이트와인을 곁들이니 간단하지만 만족스러운 저녁상이 된다. 서브웨이 샌드위치는 채소가 풍부하고 양도 조절할 수 있어 달리기 후 간단히 먹기에 알맞다. 회식에서 고기를 자주 먹다 보니 평소엔 가급적 육류를 줄이는 편인데, 참치 샌드위치는 그런 내 식습관에 잘 맞는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를 나눈다. 아내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꼼꼼히 풀어놓고, 나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나 달리면서 떠올린 생각을 이야기한다. 자연스레 대화의 비중은 아내 쪽이 더 많다. 때로는 부당한 일을 겪었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다. 결국 서로의 하루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간이다.
저녁을 마치니 밤 9시를 넘겼다. 자기 전 다시 책을 읽을 시간이다. 나는 소파에 기대앉고,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 넷플릭스 드라마를 이어 본다. 거실 오디오에서 피아노 연주곡을 틀고 책장을 펼친다. 요즘 읽는 책은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다. 1996년 에베레스트 등반 참사를 직접 겪은 저자가 쓴 르포이자 회고록이다. 2017년 히말라야 5,000m 봉우리에 올랐던 나로서는, 책에 묘사되는 풍경과 인물들의 체험담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단순한 사고 기록을 넘어,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동시에 날씨가 선선해지면 해보고 싶은 지리산 화대 종주 계획도 머릿속에 그려본다. 책이든 사진이든, 산은 늘 나를 부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도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품으며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한 시간쯤 책을 읽고 침대로 향한다. 아내는 여전히 넷플릭스에 몰두해 있다. 나는 이제 불을 끄고 자자고 말하지만, 아내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드라마가 끝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생체 시계는 11시를 넘기지 않는다. 아내가 아직 TV를 끄지 않았는데도, 나는 이미 꿈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일찍 시작된 하루가 길게 이어져 마무리된다.
위에서 그린 나의 하루는 사실 지금의 현실이 아니다. 최근의 일상을 회사에 다니던 시절의 패턴에 겹쳐 놓은 픽션이다. 만약 지금도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아마 오늘도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도서관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며 글을 쓰고 책을 읽지만, 지난 15년간의 직장 생활은 대체로 저런 단조로운 리듬 속에서 이어졌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정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돌아보면 그 과정이 안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통해 내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누군가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어딘가에서 맞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면 충분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삶은 세세한 것들에 의해 허비된다. 단순하게 하라, 단순하게 하라.”
겉보기에 특별할 것 없는 하루지만, 그 단순함이야말로 나를 붙들어주었다. 반복되는 일정은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그 안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을 얻었다. 아내가 이 글을 본다면, 나와 함께 살아낸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머니가 읽는다면, 아들이 지켜온 단조로운 리듬이 결국 안정된 삶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할지도 모른다.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잘 드러나지 않던 작은 기록들이야말로, 삶을 곁에서 지켜본 이들과 가장 깊이 공명할 수 있는 흔적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일상의 기록을 남긴다. 그것은 자랑할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하고 반복되는 하루 속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지난 15년 동안 나는 하루의 삶을 페이스북에 기록으로 남겨왔다. 지금도 그 습관을 이어가고 있고, 시간이 흐른 뒤 그 기록들을 다시 읽어보는 즐거움은 꽤 크다. 한때는 스쳐 지나간 하루가, 다시 꺼내 읽을 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살아낸 하루가 누군가의 하루와 겹쳐질 때, 우리는 서로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괜찮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된다. 이것이 내가 건네고 싶은 일상으로의 초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