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평가가 이렇게 나온 이유가 뭔가요? 인사팀에서 점수를 깎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평가 시즌이 끝나면 해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질문이다. 채용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도, 협상장에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때도, 불만은 인사팀으로 향한다. 이상한 일이다. 인사팀은 모든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에는 언제나 권력의 전면에 서 있는 집단처럼 비친다.
인사팀은 회사의 제도와 절차를 관리하는 부서다. 그러나 제도는 언제나 사람의 삶과 부딪힌다. 숫자로 계산된 평가 결과, 기준에 맞춰 배분된 보상, 규정에 따라 처리되는 징계와 발령은 모두 현실의 감정과 충돌한다. 그 사이에서 인사팀은 설명자이자 전달자의 역할을 맡지만, 전달하는 순간 곧 책임자로 지목된다.
그래서 인사팀은 늘 애매한 자리에 놓인다. 직원 앞에서는 모든 권한을 쥔 듯 보이지만, 경영진 앞에서는 수많은 지침과 승인에 묶인 집행자다. 앞에서는 갑이고 뒤에서는 을, 그 이중적 위치가 인사팀의 숙명이다. 오해와 불만은 바로 그 틈에서 생겨난다.
이 글은 그 모순을 탐구하는 기록이다. 인사팀을 둘러싼 불만에는 단순한 오해만 있는 것도, 전적으로 정당한 이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왜 늘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가, 그 욕에는 어떤 오해와 어떤 진실이 섞여 있는가.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나는 인사팀의 자리에 앉아 직접 경험한 장면과 감정을 바탕으로 그 답을 하나씩 더듬어가려 한다.
인사팀은 왜 ‘갑’으로 보이는가, 그리고 실제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겉보기엔 인사팀이 모든 권력을 쥔 듯하지만 실제 작동은 다르다. 채용에서 합격 여부를 통보하고, 평가 시즌에는 점수를 정리하며, 연봉 협상에서는 보상을 설명한다. 징계와 발령도 인사팀을 거치고, 협상 자리에서는 회사의 얼굴로 앉는다. 직원들이 보는 인사팀은 늘 권력의 전면에 서 있다. 그러나 보이는 권력과 실제 권력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이 인사팀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든다.
채용 ― 결정권자의 얼굴로 보이는 조율자
채용은 단순한 인력 충원이 아니라 조직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이다. 누구를 들이느냐에 따라 팀의 분위기, 회사의 속도, 장기적 경쟁력이 달라진다. 많은 기업은 채용을 ‘조직 문화의 첫걸음’으로 본다. 오늘날에는 공채보다 경력직 중심으로 바뀌면서 절차가 복잡해졌다. 실무·임원·교차부서 면접과 평판 확인이 이어지고, 인사팀은 이 모든 과정을 조율하며 마지막 통보까지 담당한다.
문제는 때때로 그 통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원하는 후보자가 탈락하면 팀장은 인사팀을 원망하고,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지원자 역시 인사팀을 최종 결정권자로 본다. 실제로는 대표이사나 임원이 승인권을 쥐고 있지만, 전달자의 위치 때문에 인사팀은 권력이 커 보인다. 그 순간 인사팀은 결정의 얼굴이 된다.
평가와 보상 ― 불만이 집중되는 창구
평가는 곧 보상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정교한 제도여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때 불만은 곧장 인사팀으로 향한다. “점수를 깎았다”, “보상을 줄였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실제로 인사팀은 점수를 직접 매기지 않는다. 각 부서의 결과를 취합하고 회사가 정한 분배 원칙에 맞춰 정리할 뿐이다. 보상 역시 총액과 인상률은 이미 경영진과 재무 부서가 정한다. 인사팀은 그 범위 안에서 계산과 설명을 담당한다. 하지만 직원 눈에는 결과를 설명하는 사람이 곧 책임자다. 규정을 그대로 전달하면 냉정하다는 비난을, 조금이라도 조정하면 불공정하다는 비난을 듣는다.
평가와 보상에서 반복되는 오해의 핵심은 ‘투명성’과 ‘형평성’이다. 제도는 수학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일엔 맥락이 있다. 숫자와 맥락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인사팀은 원칙의 관리자이자 감정의 완충지대가 된다.
징계와 발령 ― 불리한 결정을 전달하는 숙명
징계와 발령은 개인의 커리어와 삶에 직접적 흔적을 남긴다. 사건이 발생하면 인사팀은 사실 확인, 면담, 증거 수집, 징계위원회 소집을 주도한다. 발령 역시 경영 전략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지만, 실행과 통보는 인사팀의 몫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인사팀을 판결을 내리는 권력자로 본다. 그러나 실제 징계 수위는 위원회와 대표이사가, 발령의 큰 방향은 경영진이 결정한다. 인사팀은 절차를 집행하는 관리자지만,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을 좌우한 존재처럼 보인다. 원치 않는 발령이나 중징계를 통보하는 순간, 인사팀은 결정의 얼굴이 된다.
단체협상 ― 사측의 얼굴로 서는 자리
노사 협상에서 인사팀은 언제나 ‘사측’이라 불린다. 형식은 대등해 보여도 임금·근로조건은 이미 정해진 범위 안에서 논의된다. 인사팀은 그 범위를 명확히 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협상장에서 “예산을 넘는다”거나 “원칙상 어렵다”는 말을 꺼내면, 상대는 그것을 인사팀의 결정으로 받아들인다.
갈등이 격화될수록 눈앞의 인물이 권력자로 보인다. 본사의 지침과 재무의 판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협상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수록 인사팀은 가장 손쉬운 비난의 표적이 된다. 보이는 권력은 과장되어 드러난다.
보이는 권력과 실제 권력의 간극
채용, 평가와 보상, 징계와 발령, 협상. 인사팀은 회사의 핵심 절차마다 권력을 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 권한은 대부분 경영진과 제도에 분산돼 있다. 인사팀은 결정을 절차화해 전달하는 집행자다. 그러나 통보의 순간에는 권력의 얼굴이 된다.
이 간극은 조직 구조의 필연이다. 회사가 커질수록 절차는 복잡해지고, 인사팀은 그 절차를 관리하는 부서로 존재감을 키운다. 직원은 눈앞의 인사팀을 권력자로 보지만 실제 결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그 결과 인사팀은 직원 앞에서는 갑, 경영진 앞에서는 을에 선다.
푸코는 권력을 물건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보았고, 아렌트는 권력이 지시보다 집행 구조 전체에서 성립한다고 보았다. 인사팀이 욕을 먹는 이유도 같다. 실제 권한은 제한적이지만, 보이는 권력은 전달의 순간에 증폭된다.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와 언어의 문제
의사결정의 기원은 보이지 않고 메시지의 종착점만 보인다. 회의와 협의는 닫힌 공간에서 이뤄지고, 최종 메시지는 인사팀의 안내문으로 전달된다. 압축된 언어는 이유를 지우고 결론만 남긴다. “원칙상 어렵다”는 사실상 “제도와 예산, 리스크를 고려하면 불가능하다”의 축약이다. 그러나 상대는 단순한 거절로만 듣는다. 언어의 압축이 오해를 만들고, 오해가 권력의 과잉 인식을 강화한다.
심리의 역학과 제도의 한계
사람은 눈앞의 대상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가시성 편향이라 한다. 통제감이 위협받으면 책임 소재를 단순화해 불안을 줄인다. 평가 결과, 보상 수준, 발령 통보, 협상 타결 여부는 모두 개인의 통제 밖에서 결정되는 성격이 강하다. 이때 눈앞에서 설명하는 인사팀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제도 역시 공정과 유연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다. 규정이 촘촘할수록 임의성은 줄지만 예외를 다루기 어렵다. 반대로 재량이 넓어지면 형평성 논란이 커진다. 인사팀은 이 경계에서 매일 선을 긋는다. 그래서 언어는 건조해지고, 겉으로는 권력의 엄격함으로 읽힌다.
결 ―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
간극을 없앨 수는 없지만 좁힐 수는 있다. 의사결정의 맥락을 가능한 범위에서 공유하고, 규정의 취지를 안내하며, 거절의 언어를 절차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다. “안 됩니다” 대신 “이 기준을 충족하면 가능합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 그렇다. 인사팀은 절차의 수문장이면서도 설명의 번역가여야 한다. 회사는 인사팀을 방패로 세우지 말고 결정의 출처를 함께 서명해야 한다. 그럴 때 보이는 권력과 실제 권력의 간극은 작아진다.
정리
인사팀은 권력을 쥔 듯 보이지만 실제론 권력의 매개자다. 채용과 평가, 보상과 징계, 협상 자리에서 인사팀이 비난을 받는 까닭은 구조적 간극 때문이다. 이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사팀은 늘 오해받고, 그 오해는 곧 원망으로 굳어진다. 인사팀은 앞으로도 욕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욕이 구조를 이해한 뒤 나온다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제도 개선과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개인적 경험 ― 인사팀 안에서의 딜레마
인사팀에 오래 앉아 있으면 권력을 쥐고 있다는 착각과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동시에 느낀다. 직원 앞에서는 “갑”처럼 보이지만, 경영진 앞에서는 언제나 “을”이었다. 그 모순 속에서 나는 수없이 흔들렸다.
한번은 평가 시즌에 한 직원이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밤낮없이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스스로도 성과가 뛰어났다고 믿었다. 그러나 받은 평가는 기대 이하였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인사팀이 제 점수를 깎았잖아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차마 ‘우리가 점수를 깎은 건 아니다’라는 변명조차 입 밖에 내기 어려웠다. 제도가 정해놓은 상대평가 비율, 부서장들의 판단, 경영진의 합의가 얽힌 결과라는 사실을 설명해도, 그의 눈에는 내가 권력자였다. 그날 퇴근길, 나는 그 직원의 분노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결국 제도의 벽을 향한 것임을 알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채용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팀장이 직접 뽑고 싶어 했던 후보자가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 그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제가 데리고 일할 사람인데, 왜 인사팀이 막아요?”라고 따졌다. 사실 우리는 막은 것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자와 경영진의 판단을 조율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인사팀이 최종 결정권자였다. 나는 그 순간, 우리가 조율자이자 전달자에 불과하다는 현실과, 동시에 결정의 얼굴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다시 확인했다.
노조와 마주한 자리에서는 더 복잡했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순간 나는 개인으로서의 이름을 잃고 ‘사측’이 된다. 나 역시 노동자였지만, 그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노조는 나의 진심을 믿지 않았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도 “저 속에 다른 계산이 있을 것”이라 의심하는 눈빛이 돌아왔다. 때로는 모욕적인 언사도 감내해야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노조의 주장에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내 입에서는 언제나 “원칙상 어렵습니다”라는 말이 나와야 했다. 개인의 성향과 직업적 역할 사이에서 갈라지는 목소리를 붙잡는 일은 늘 고통스러웠다.
돌이켜보면 인사팀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양가감정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를 돕고 싶어도 제도가 막았고, 제도의 이름으로 결정을 내리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 직원들에게는 권력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경영진과 제도의 그늘에 가려진 전달자였다. 그 간극 속에서 느낀 감정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나를 끊임없이 흔드는 근본적인 딜레마였다.
그래서 나는 인사팀을 이야기할 때 늘 냉정한 제도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사람과 제도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진폭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진폭을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인사팀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인사팀도 욕을 먹을 만한 이유가 있다
위에서는 인사팀을 둘러싼 오해와 구조적 한계를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사팀에도 비난을 받을 만한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가장 흔한 모습은 규정 뒤에 숨는 태도다. “원칙상 어렵습니다”라는 말이 습관처럼 반복될 때, 직원이 느끼는 것은 공정함이 아니라 무책임이다. 권위를 앞세워 대화를 차단할 때도 마찬가지다. “회사 방침”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 설명이 통제로 들린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공감 능력의 결여다. 사람을 다루는 부서라면 제도와 절차를 관리하는 동시에 상대의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인사팀은 숫자와 절차에만 몰두하다가 눈앞의 감정을 놓친다. 내가 목격한 갈등의 상당수는 바로 이 무심함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인사팀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도의 엄격함, 다른 하나는 사람을 이해하는 유연함. 어느 한쪽만 강조되면 인사팀은 냉정한 집행자이거나 무책임한 방관자가 될 뿐이다.
결국 인사팀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그러나 그 욕이 전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규정 뒤에 숨거나 권위를 남용하는 순간, 인사팀은 욕을 먹어도 싸다. 중요한 것은 비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비판을 듣고 개선의 계기로 삼는 일이다. 그래야 인사팀은 욕을 먹으면서도 조직을 지탱하는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사팀은 어떻게 욕을 먹어야 할까? 부당한 오해로 인한 원망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 끝에 나오는 비판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변화를 촉발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인사팀이 감내해야 할 몫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욕을 먹더라도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