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는가
아내가 스마트폰을 바꿨다. 지난 3년 동안 안드로이드 폰을 잘 써왔지만, 최근 들어 용량이 부족하다거나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등 자잘한 문제가 잦았다. 마침 애플에서 신제품이 출시되어 궁금하기도 했다. 주말 조깅을 다녀오는 길에 근처 번화가의 휴대폰 대리점에 들렀다.
“기존에 애플 계정이 있으신가요?”
“3년 전에는 아이폰을 썼으니 있을 거예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보시겠어요?”
“입력했는데, 이 번호로는 이중 인증 메시지를 받을 수 없다고 하네요.”
“애플 아이디가 다섯 개 이상 등록된 건 아닐까요?”
“그럴 리 없어요.”
“그럼 계정이 없는 걸까요?”
“어쨌든 로그인이 안 되네요.”
제품을 고른 뒤 계정 등록을 시도하던 아내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존 계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직원은 아이폰은 개인정보 관리가 엄격하다 보니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왜 이중 인증이 막히는지는 알지 못하는 듯했다.
대화는 점점 평행선을 그었다. 결국 내가 나섰다. 아이폰을 계속 써왔고 애플 생태계에 익숙한 내가 상대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직원은 친절히 설명했지만, 나 역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기술적 문제라기보다 소통이 매끄럽지 않은 이유가 더 크게 다가왔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는 상황은, 사실 일상에서 자주 겪는 일이기도 하다.
문득 나와 아내의 대화 성향 차이가 떠올랐다. 나는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중시하지만, 아내는 감정적 언어로 상황을 묘사한다. 예를 들어 전화를 걸어 길을 묻으면 아내는 “쭉 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보여”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기준점을 제시한다. “2번 출구로 나와 200미터 직진한 뒤, 첫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된다”라는 식이다. 우리 대화 방식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맥락까지 늘 다르다.
반대로 또 다른 극단도 있다. 지인 중에는 지나치게 정확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설명은 누구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앞에서 말을 하려면 긴장이 된다. 조금이라도 모호한 표현이 나오면 반드시 되묻기 때문이다. 정확성은 뛰어나지만 실용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그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라면 매 순간이 뾰족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그와의 경험 덕분에 나는 오히려 아내의 애매한 표현을 덜 지적하게 되었다.
아내와 나의 대화 방식의 차이는 단순한 습관의 차이가 아니었다. 문화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T. 홀이 말한 고맥락(high-context)과 저맥락(low-context) 커뮤니케이션의 전형적인 대비였다. 아내는 주변 상황과 맥락, 암묵적인 이해를 전제로 말하는 고맥락형 화자였다. “쭉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면 보여” 같은 표현은 관계 맺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반대로 나는 구체적이고 구조화된 언어를 선호하는 저맥락형 화자였다. “지하철 2번 출구에서 나와 200미터 직진한 뒤, 첫 번째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50미터 가면 보인다”가 나의 방식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길 찾기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 부부가 대화할 때, 직장에서 동료와 협업할 때, 혹은 낯선 사람과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드러난다. 고맥락 대화는 관계를 가깝게 만들지만 정확성이 부족해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저맥락 대화는 효율적이고 명확하지만 차갑고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결국 어느 쪽도 완벽하지 않다. 맥락에 따라 두 방식은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론의 요지였다.
생각해 보면 아내와 나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소한 불협화음이나 오늘처럼 타인과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른 의사소통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였다. 나는 정확성을 중시하며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싶어 했고, 아내는 관계와 상황을 우선시하며 더 인간적인 소통을 추구했다.
결국 중요한 건 한쪽 방식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는 일이다. 고맥락과 저맥락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잡는 것, 그게 진짜 소통의 기술 아닐까. 오늘처럼 휴대폰 매장에서 생긴 작은 사건조차도 그런 깨달음을 던져줬다. 서로 다르기에 대화가 이어지고,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대화가 통한다.
나와 아내는 대리점에서 한참을 머물렀지만 끝내 계정을 등록하지 못했다. 직원은 친절히 설명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다. 오늘 다시 애플 서비스 센터에 연락하니, 어제 반복된 시도로 인해 아내의 번호가 스팸으로 인식된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24시간이 지나면 정상 등록을 도와줄 수 있다며 내일 오전을 기다려 달라고 했다.
“자기, 이거 가져.” 예상치 못한 오류로 새 스마트폰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자,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짧게 말했다.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 아이폰이 무사히 개통되는 날까지는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나의 작은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