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 작가의 책쓰기 수업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강원국 작가의 책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지난 4월 회사를 그만두고, 7월부터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왔지만 성과 없는 하루가 이어졌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갈 것 같아 두려움이 커졌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이 수업이었다. 강원국 작가는 나의 첫 직장 선배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가 중년이 되어 작가로 데뷔한 사람. 잠시 함께 다녔던 회사에서나, 이후 작가가 되어 이름을 알린 뒤의 모습까지 지켜보며, 나는 그의 삶이 글과 연결되는 방식을 닮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가 되겠다는 각오가 흔들릴 때, 나는 그의 강의실 문을 두드렸다.
지난주는 수업의 두 번째 시간이었다. 글쓰기에 필요한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큰 기대를 안고 온라인에 접속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강의를 들으며, 그동안 나의 글쓰기 방식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돌아보았다. 글을 배우지 않았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글을 읽어왔으니 글의 구성이나 배치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믿어왔던 것은 착각이었다. 쓰겠다는 전제를 두고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읽기는 전혀 달랐다. 나는 지금껏 ‘쓴다’는 가정을 하지 않은 채 막연히 읽어왔고, 수없이 읽은 글의 구성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강의에서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의 방법을 열여섯 가지로 정리해 설명했다. 열거 방식, 3단 글쓰기, 긴 글을 위한 6단 확장법, 현상·진단·해법, 기대효과까지 더한 글쓰기, 모방의 글쓰기, 3일 쓰기, 양 불리기, 붙이기, 초벌구이 쓰기, 자기감정을 쓰기, 마감을 정해 쓰기, 습관으로 쓰기, 말로 쓰기, 메모 쓰기, 첫 문장 쓰기가 그것이다. 각각의 방식은 실제 경험과 구체적 예시로 설명되었고, 복잡하게 느껴질 법한 기법들이 한눈에 이해되었다. 나는 이 귀한 노하우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또 나처럼 글쓰기를 배우려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 아래에 정리해 두기로 했다.
1. 열거 방식으로 글쓰기
열거 방식은 글의 핵심 내용을 ‘첫째, 둘째, 셋째’처럼 단계적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복잡한 주제를 구조화하고 논지를 정리할 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하다.
이 방식의 장점은 독자가 글의 흐름을 쉽게 따라온다는 점이다. 글쓴이가 미리 구조를 제시하니 독자는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예측하면서 읽을 수 있다. 논리를 단계별로 정리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아지고, 주장과 근거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래서 정책 제안, 기획안, 연설문, 칼럼처럼 복잡한 내용을 단순화해야 할 때 특히 유용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 방식을 자주 활용했다.
“첫째,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할 생각이 없습니다. 셋째,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 취임사 中
이처럼 주제를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면 정책 방향 같은 어려운 내용도 한눈에 정리된다. 독자는 질서 있게 이해할 수 있고, 글쓴이의 입장도 더욱 분명히 다가온다.
나 역시 주장을 뚜렷이 드러내야 할 때 열거 방식을 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세 가지로 정리하면 글의 구조가 선명해지고, 쓰는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신뢰가 중요한 이유”라는 글을 쓴다면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
“첫째, 협업이 원활해진다. 둘째, 갈등이 줄어든다. 셋째, 조직이 장기적으로 성장한다.”
열거 방식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 복잡한 사고를 질서 있게 정리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사고 도구다.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글쓰기의 출발점이다.
2. 3단 글쓰기
3단 글쓰기는 주장을 밝히고(1단), 그 이유를 설명하고(2단), 사례나 이론으로 뒷받침하는(3단) 방식이다. 간단하지만 설득력이 크고, 특히 연설이나 칼럼에서 자주 쓰인다.
이 방법은 글의 중심 논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독자가 그 근거와 사례를 차례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짧은 글에서도 힘이 있고, 논리적 흐름이 단순해 초보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주장이 막연한 주장으로 끝나지 않고, 이유와 근거가 함께 따라오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아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설과 글에서 이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연설을 준비할 때도 먼저 주장을 말로 밝히고, 이어서 이유와 사례를 덧붙이며 연설비서관과 대화를 나누었다. 실제로 그는 “지금은 적을 단계가 아니니 대화부터 하자”라며 글보다 말로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보였다. 이렇게 정리된 말이 곧 3단 구조의 글로 옮겨졌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말하기를 먼저 해보는 편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강조하고 싶은 주장이 무엇인지, 빠뜨린 근거는 없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조직에서 피드백이 중요한 이유”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면 이렇게 뼈대를 세운다.
1단(주장): 조직은 피드백을 통해 성장한다.
2단(이유): 피드백이 없으면 개인과 팀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3단(사례): 실제로 내가 경험한 한 프로젝트에서 피드백을 체계화했더니 협업 성과가 크게 높아졌다.
3단 글쓰기는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주장·이유·사례라는 기본 구도를 갖추면 짧은 글도 힘을 얻고, 독자에게 명확하게 다가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주 활용했듯, 일상의 글쓰기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방식이다.
3. 긴 글을 위한 6단 확장법
6단 확장법은 3단 글쓰기를 긴 글로 발전시킨 방식이다. 1단 주장, 2단 이유에 더해 3단은 반대 의견 소개, 4단은 그 의견에 대한 수용, 5단은 원래 주장과 반대 의견의 비교·분석, 6단은 절충안을 제시하며 결론을 맺는다.
이 방식은 글을 한쪽 주장만 강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게 한다. 반대 의견을 드러내고 일정 부분을 수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글쓴이의 사고가 더 깊고 넓어 보인다. 독자에게는 ‘균형 잡힌 글’이라는 신뢰감을 준다. 특히 논쟁적 주제를 다루거나 다양한 시각을 설득해야 할 때 유용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 구조를 즐겨 사용했다. 그는 자기주장을 밝히되, 반대되는 의견을 소개하고 일정 부분을 인정하며, 다시 자신의 입장과 비교해 절충점을 찾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이런 태도는 그의 정치적 스타일과도 맞닿아 있었다. “다른 의견도 귀 기울여야 한다"라는 열린 자세가 글쓰기 구조에도 반영된 것이다.
나도 글을 쓸 때 이 방식을 염두에 둔다. 단순히 내 주장을 밀어붙이는 글보다, 반대 의견을 잠시 소개하고 일부를 받아들이면 글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다음은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주제로 글을 쓴 예시다.
1단(주장): 재택근무는 장려해야 한다.
2단(이유): 업무 효율성과 워라밸이 높아진다.
3단(반대 소개): 그러나 협업이 약화되고 조직 결속이 느슨해진다는 우려도 있다.
4단(수용): 실제로 일부 기업은 이런 문제를 겪었으므로 부분적으로 타당하다.
5단(비교·분석): 하지만 협업 문제는 제도 설계와 기술 활용으로 보완할 수 있다.
6단(절충안): 따라서 재택근무는 전면 시행보다 부분적·선택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6단 확장법은 주장을 강화하면서도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균형 잡힌 글쓰기다. 단순한 설득을 넘어 대화적이고 민주적인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긴 글이나 논쟁적 글을 쓸 때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
4. 현상·진단·해법 글쓰기
현상·진단·해법 글쓰기는 어떤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현상), 그 원인을 분석한 뒤(진단),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해법) 방식이다. 문제 해결형 글쓰기의 기본 구조다.
이 방식의 강점은 글의 논리가 단계적으로 쌓여 독자가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인과 대안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글이 된다. 특히 사회 문제, 조직 문제, 정책 제안 같은 주제에서 설득력이 크다.
예를 들어 조직 문화 글쓰기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현상: 최근 회사 내에서 팀 간 협력이 원활하지 않고, 부서 간 불필요한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진단: 이는 목표가 부서별로 분절되어 있고, 성과 평가가 개별 성과 위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법: 성과 지표를 팀 단위와 조직 전체 성과에 연동시키고, 협업을 촉진하는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교차 프로젝트를 정례화해 협력이 일상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현상→진단→해법의 구조를 따르면, 독자는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한눈에 따라갈 수 있다.
나도 회사에서 HR 업무를 하며 문제 상황을 분석할 때 이 방식을 썼다. 예를 들어 “인사제도가 현장에서 왜 신뢰받지 못하는가”라는 글을 쓸 때, 현상(제도 불신) → 진단(불투명한 평가 과정) → 해법(평가 기준 공개와 피드백 강화)으로 정리하면 보고서가 훨씬 설득력을 가졌다.
현상·진단·해법 글쓰기는 문제 제기에서 해결책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글쓰기다. 독자에게는 명확한 구조로 이해를 돕고, 글쓴이에게는 사고를 정리하는 틀이 된다. 분석과 설득이 동시에 필요한 글에서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다.
5. 현상·진단·해법·기대효과 글쓰기
현상·진단·해법·기대효과 글쓰기는 문제 해결형 글쓰기에 ‘기대효과’를 추가한 방식이다. 문제를 제시하고(현상), 원인을 분석하고(진단), 해결책을 제시한 뒤(해법), 그 실행으로 어떤 성과가 가능한지를 전망한다(기대효과).
이 방식은 글을 단순히 분석에 그치지 않고 실행력과 설득력을 동시에 강화한다. 독자는 “이 방안을 실행하면 무엇이 달라질까?”를 미리 그려볼 수 있고, 글쓴이는 자신의 제안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정책 보고서, 기획안, 사업 제안서처럼 실천을 촉구하는 글에 특히 적합하다.
조직 문화 사례로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현상: 팀 간 협력이 원활하지 않고 부서 간 갈등이 잦다.
진단: 목표가 부서별로 분절되어 있고, 성과 평가가 개인 단위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해법: 성과 지표를 팀 단위와 조직 전체 성과에 연동시키고, 협업을 촉진하는 보상 체계를 도입한다.
기대효과: 협력적 성과가 인정받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장기적으로 조직의 신뢰와 성과가 함께 향상된다.
나도 HR 현장에서 기획안을 작성할 때 이 방식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성과평가 제도 개선안을 보고할 때, 단순히 현황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제도를 개선하면 직원 만족도가 몇 퍼센트 높아지고, 이직률이 얼마나 줄어드는가”까지 적시하면 경영진의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글이 단순한 주장이나 제안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처럼 받아들여진다.
현상·진단·해법·기대효과 글쓰기는 ‘왜 바꿔야 하는가’뿐 아니라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보여주는 글쓰기다. 독자에게는 실행 동기를, 글쓴이에게는 설득 도구를 제공한다. 분석적 글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행동을 촉구하는 글쓰기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구조다.
6. 모방의 글쓰기
모방의 글쓰기는 기존의 훌륭한 글을 분석하고, 그 구조와 표현 방식을 따라 써보는 방법이다.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글 속에서 공통된 소재와 논리를 추려내고 자신의 글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 방식의 핵심은 학습과 훈련이다. 글을 처음부터 스스로 짜내려 하지 않고, 이미 검증된 글의 구조를 빌려와 쓰다 보면 글쓰기의 기본기를 몸에 익힐 수 있다. 다양한 글을 비교하면서 글감도 풍부해지고, 문장의 연결이나 전개 방식도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강원국 작가는 칼럼을 쓸 때 같은 주제의 글을 30편 이상 모아 읽었다고 한다. 그중 20편을 추려 꼼꼼히 읽으며 소재를 뽑고, 다시 그 소재를 중심으로 글들을 재정리했다. 이렇게 모은 단편들을 연결해 하나의 글로 완성하는 방식이다. 연설문도 비슷하게 준비했다. 실제로 노무현 재단 홈페이지에는 약 800편의 연설문이 올라와 있는데, 그 자료들을 활용하면 거의 모든 형식의 연설문을 참고할 수 있다.
나는 아직 이 방식을 직접 활용해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경험담을 말할 수는 없지만, 글쓰기를 시작한 지금 시점에서 꼭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은 방법이다. 혼자서 글감을 짜내는 데 한계가 있을 때, 이미 쓰인 여러 글을 참고해 소재를 추려내면 훨씬 수월할 것 같다. 단순히 따라 쓰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 속에서 구조와 소재를 배우는 과정이라면 글쓰기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모방의 글쓰기는 초보자에게는 가장 좋은 훈련법이고, 숙련자에게도 여전히 유용한 도구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왕도는 없지만, 잘 쓰인 글을 반복해 읽고 따라 쓰는 과정은 분명 글쓰기 근육을 키운다. 남의 글에서 출발해도 결국에는 자기 목소리에 다가가는 길이 된다.
7. 3일 쓰기(사흘 쓰기)
3일 쓰기는 글쓰기에 숙성과 발효의 시간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첫째 날은 주제와 소제를 정하고 자료를 찾는다. 둘째 날은 실제로 글을 쓰고, 셋째 날은 초고를 고친다. 하루에 몰아 쓰지 않고 사흘에 걸쳐 글을 다듬는 구조다.
이 방식은 글을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으로 완성하게 해준다. 초고를 쓰는 순간은 불완전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시간을 두고 읽고 고치면서 글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첫 번째 초고는 언제나 쓰레기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좋은 글은 반복과 수정 과정을 통해 비로소 다듬어진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집필하면서 40번 이상 고쳤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우리에게 그 정도의 집착은 어려울 수 있지만, 최소한 하루의 간격을 두고 다시 읽어보면 글의 허술한 부분이 눈에 띈다. 강원국 작가도 글을 한 번에 완성하려 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고치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글을 한 번에 쓰고 바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그런 습관을 돌아보게 한다. 실제로 글을 하루만 묵혀도 표현이 어색한 문장이나 논리의 빈틈이 선명히 드러난다. 앞으로는 글을 쓸 때 하루 정도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보는 훈련부터 시작하려 한다. 완벽한 사흘 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초고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볼 생각이다.
3일 쓰기는 글쓰기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간과의 협업으로 만든다. 초고를 내일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모레의 손길로 다듬는 과정 속에서 글은 점점 무르익는다. 성급하게 완성을 서두르기보다, 숙성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글을 깊게 만드는 길이다.
8. 양을 불리기
양을 불리기는 글을 처음부터 잘 쓰려하지 않고, 일단 글의 분량을 확보하는 것에 집중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초고 단계에서는 완성도를 따지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문장을 이어가며 글의 덩어리를 키운다. 이후 고치는 과정에서 다듬고 덜어낸다.
이 방식의 장점은 출발선에서 오는 막막함을 줄여 준다는 데 있다. 글이 짧을 때는 빈약하게 보이지만, 양이 확보되면 비로소 고칠 여지가 생긴다. 즉, 쓰면서 늘리고, 다듬으면서 줄이는 과정에서 글이 성숙해진다. 초고를 얇게 시작하면 고칠 재료조차 없지만, 양을 늘려 두면 다듬는 과정이 훨씬 수월하다.
강원국 작가는 “글의 시작을 아무 데서나 하라"라고 말한다. 글을 완벽하게 시작하려다 보면 첫 문장을 쓰지 못하고 멈춰 서기 때문이다. 체호프 역시 “아무데서나 시작하라.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시작한 뒤에는 살을 덧붙이며 문장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양을 불리는 과정이 된다.
나는 글을 쓰다 보면 문장이 너무 짧아 금세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고치기조차 어려워진다. 앞으로는 초고 단계에서 완성도를 의식하지 않고, 중구난방이라도 좋으니 글의 분량부터 늘려볼 생각이다. 예를 들어 하루의 경험을 쓸 때, 단 한 장면만 기록하기보다 아침·점심·저녁의 세 장면을 모두 적어두면 훨씬 풍성해진다. 이후 필요 없는 부분을 덜어내더라도 최소한 ‘재료’는 확보되는 셈이다.
양을 불리기는 글쓰기의 두려움을 넘는 가장 단순한 전략이다. 처음부터 좋은 문장을 쓰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우선 글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많아진 글감 속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낼 때 글은 차츰 단단해진다. 결국 글쓰기는 줄이는 과정보다 먼저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9. 붙이기 글쓰기
붙이기 글쓰기는 짧은 문단이나 단상을 여러 개 써서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한 번에 긴 글을 완성하려 하지 않고, 생각 단위의 짧은 글을 쌓아 올려 긴 글로 확장하는 글쓰기다.
이 방법의 장점은 글쓰기를 시작하는 부담을 줄여 준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완성된 긴 글을 쓰려하면 막막하지만, 짧은 문단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이렇게 모아둔 단상은 연결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긴 글이 된다. 따라서 붙이기 글쓰기는 에세이나 칼럼처럼 짧은 생각 조각에서 출발하는 글에 특히 적합하다.
나는 예전에 ‘퇴근길’이라는 주제로 이런 단상을 남긴 적이 있다.
① 오늘도 퇴근길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지하철은 늘 붐비고,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다.
② 나는 자동으로 휴대폰을 꺼내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을 스크롤했다. 몇 정거장을 지나서야 창밖을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③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다가 처음 마주한 하늘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야 눈을 돌렸을까 싶었다.
각각은 짧은 단상이지만, 붙여 놓으면 ‘퇴근길에 마주한 노을’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진 글이 된다. 이것이 바로 붙이기 글쓰기다.
나 역시 글을 한 번에 길게 쓰려다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이 방식을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하루 동안 떠오른 생각을 세 문단만 적어두는 습관을 들이면, 그것들을 나중에 이어 붙여 글로 완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긴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줄고, 오히려 글감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나의 SNS에는 이런 종류의 글감이 매일의 단상으로 쌓여있기도 하다.
붙이기 글쓰기는 짧은 생각을 모아 긴 글로 키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거창한 기획 없이도, 단상을 쌓아두면 그것이 하나의 글로 이어진다. 긴 글은 작은 문단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기법이다.
10. 초벌구이 글쓰기
초벌구이 글쓰기는 글을 처음부터 잘 쓰려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직관적으로 써보는 방식이다. 문장 구조나 완성도를 신경 쓰지 않고,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꺼내어 기록하는 단계다.
이 방법은 글쓰기의 재료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매끄럽게 쓰려하면 손이 멈추지만, 초벌구이 단계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완성도가 낮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생각을 붙잡아 글로 옮겨두는 것이다. 이후 고치는 과정에서 의미가 더 선명해지고, 글은 차츰 단단해진다.
나는 예전에 ‘퇴근길’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직관적으로 써본 적이 있다.
“오늘도 퇴근길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지하철은 늘 붐비고,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자동으로 휴대폰을 꺼내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을 스크롤한다. 몇 정거장을 지나고 나서야 창밖을 본다. 노을이 지고 있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다가 마주친 하늘이다. 왜 이렇게 늦게야 눈을 돌렸을까 싶다. 저녁 공기가 생각보다 선선하다. 그냥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걸어보고 싶다.”
이 글은 다듬어진 에세이가 아니라, 떠오르는 대로 쓴 초벌 원고다. 문장은 거칠지만, 그 속에서 글의 씨앗이 자란다.
나는 초벌구이 글쓰기를 할 때 SNS 단상이나 일기를 활용한다. 정제되지 않은 문장이라도 기록해 두면, 나중에 글로 확장할 때 좋은 출발점이 된다. 특히 ‘오늘 있었던 일 중 하나만’ 적는 습관은 글감을 꾸준히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초벌구이 글쓰기는 완성된 글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재료를 꺼내고 저장하는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다. 다듬기 전의 투박한 문장이 있어야만, 나중에 고치고 확장할 수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써보는 것이다.
11. 자기감정을 쓰기
자기감정을 쓰기는 머릿속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기보다, 그때 느낀 감정 자체를 기록하는 글쓰기다. 기쁨, 분노, 슬픔, 외로움 같은 감정은 글의 가장 직접적인 출발점이 된다.
이 방식의 강점은 글에 진정성과 생생함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독자는 글쓴이의 내면에 공감하게 된다. 논리적 글쓰기와 달리 감정의 기록은 개인적 경험을 독자의 경험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나는 “사람은 모두 불완전하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사람은 모두 불완전하다. 중요한 것은 이 불완전함을 단순히 숙명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나 역시 늘 흔들리며 살아왔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은 감정을 가공하지 않고, 불완전함에 대한 내 감정을 그대로 옮긴 기록이다. 설명이나 분석보다 내 안에서 솟구친 느낌을 먼저 적은 것이다.
나는 평소 글을 쓸 때 논리적 구조에 집착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감정을 그대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 글을 더 살아 있게 만든다는 것을 느낀다. 예컨대 분노를 느낀 경험, 고독에 사로잡힌 순간, 불완전함을 인정해야 했던 기억을 글로 적으면, 그것이 글의 씨앗이 되어 확장된다. 앞으로는 하루에 한 줄이라도 내 감정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자기감정을 쓰기는 글을 시작하는 가장 솔직한 방법이다. 감정은 때로는 거칠고 정리가 안 되어 있지만, 바로 그 거침 속에서 글의 진실성이 나온다. 결국 좋은 글은 잘 꾸며진 문장이 아니라, 진짜 마음에서 출발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12. 마감을 정해서 쓰기
마감을 정해서 쓰기는 글을 쓸 시간을 스스로 정해두고, 정해진 기한 안에 반드시 글을 완성하는 방법이다. 마감은 글쓰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마감은 글쓰기를 막연한 계획에서 현실의 행동으로 끌어내린다. 기한이 없으면 글은 쉽게 미뤄지지만, 데드라인이 주어지면 집중력과 몰입도가 높아진다. 글의 완성도는 부족할 수 있어도, 일단 완성된 글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강원국 작가는 지금도 2주에 한 번씩 칼럼을 마감해 온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기한을 정해두었기에 꾸준히 글을 써낼 수 있었다. 또 대통령 연설비서관 시절에는 중요한 연설문 마감이 다가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글쓰기에만 몰입했다고 회고한다. 연설의 마감 시간은 타협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 압박이 오히려 최고의 집중을 이끌어냈다.
나 역시 글쓰기에 마감을 적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지금까지는 “시간 날 때 쓰자”는 태도였지만, 그 결과 글은 늘 미뤄졌다. 한때 브런치 글을 격주 업로드로 정해두니, 그 일정에 맞춰 글을 완성하는 훈련이 됐던 경험이 있다. 마감은 글을 ‘완성해야 하는 일’로 바꾸어 주는 강제 장치가 된 것이다.
마감은 글쓰기의 적이 아니라 친구다. 글을 다듬고 고민할 시간을 제한하지만, 그 제약 속에서 오히려 글이 완성된다. 강원국 작가가 칼럼과 연설문을 마감으로 지켜낸 것처럼, 나 또한 스스로 기한을 정하고 글을 꾸준히 써나가야 한다. 결국 글쓰기는 영감이 아니라, 시간과 약속을 지키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13. 습관으로 쓰기
습관으로 쓰기는 글쓰기를 특별한 사건이나 영감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의 습관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위대한 작가들이 하루 일과처럼 글을 썼듯, 글쓰기는 꾸준함에서 비롯된다.
모든 작가는 습관적으로 쓴다. 어떤 이는 정해진 시간에 책상 앞에 앉고, 어떤 이는 아침 산책이나 차 한 잔 같은 루틴으로 글을 시작한다. 중요한 건 글쓰기를 ‘예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생활 속의 일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글은 습관의 틀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며 성과를 남긴다.
강원국 작가는 대통령 연설비서관 시절, 글을 쓰기 위해 늘 일정한 준비 습관을 유지했다고 한다. 때로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한 뒤 글에 몰입했다. 어떤 사람은 뭔가를 하고 나서 글을 쓰고, 어떤 사람은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무언가를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행동과 글쓰기를 연결하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나니 글감을 찾기 위해 산책을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아졌다. 글을 쓰는 행위가 생활과 연결되면서, 일상적인 행동 하나하나가 글쓰기의 준비 과정이 되었다. 앞으로는 이런 습관을 더 의식적으로 이어가고 싶다. 작은 습관이 결국 글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
습관으로 쓰기는 글쓰기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영감은 우연하지만 습관은 반복된다. 모든 작가가 습관적으로 썼듯, 글을 쓰는 나 역시 일상의 행동을 글로 이어가는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글쓰기는 영감의 번뜩임이 아니라, 습관의 힘에서 태어나는 일상적 창조다.
14. 말로 쓰기
말로 쓰기는 글을 곧바로 쓰려하지 않고, 먼저 말해본 뒤 그 말을 옮겨 적는 방식이다. 말하기를 통해 글감을 정리하고, 구어체의 단문을 활용해 글의 뼈대를 잡는 방법이다.
말은 단문 중심이라 쓰기가 훨씬 편하다. 긴 문장을 곧장 쓰려다 막히는 경우도, 말로 풀어내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또 말하다 보면 생각이 흩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한다. 그래서 글쓰기 초안으로 말하기는 매우 유용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글을 쓰기 전, 연설비서관에게 먼저 여러 차례 말을 풀어놓곤 했다. “지금은 적을 단계가 아니니 대화부터 하자”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뒤, 그것이 글로 옮겨졌다. 주장을 말하고, 이유를 설명하며, 사례를 덧붙이는 과정은 결국 글쓰기의 구조로 이어졌다.
나는 아직 말하듯 쓰는 게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글을 쓰다 막히거나 문장이 매끄럽지 않을 때, 직접 말해보는 방식을 종종 활용한다. 소리 내어 읽고 말하다 보면 어색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문장의 흐름이 정리된다.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 쓰지는 않더라도, 막힐 때마다 입으로 풀어내는 습관은 글을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말로 쓰기는 글을 시작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말해보고, 말하듯이 쓰라는 원칙은 글쓰기의 막막함을 풀어준다. 말을 이어가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생각이 정리되면 글이 된다. 결국 글은 말에서 비롯되고, 말은 글로 완성된다.
15. 메모로 쓰기
메모로 쓰기는 글의 출발점을 거창하게 잡지 않고, 일상 속에서 떠오른 생각이나 단편을 기록해 두는 방식이다. 작은 메모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글쓰기다.
메모는 글쓰기의 씨앗이다. 메모들이 점처럼 흩어져 있어도, 나중에 연결하다 보면 선이 되고,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메모 습관은 글의 지속성과 창의성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반이다.
일상에서 메모하는 습관은 특히 중요하다. 지하철에서 들은 한마디, 책을 읽다 밑줄 그은 문장, 산책 중 떠오른 단상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메모해 두면 글의 재료가 된다. 예컨대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차갑다. 이런 날은 인간관계도 더 차갑게 느껴진다”라는 짧은 메모는, 나중에 고독이나 관계에 대한 글로 확장될 수 있다.
나는 대화에서 들은 문장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흘려 쓴 단상 속에서 글감을 자주 발견한다. 실제로 브런치에 올린 여러 글도 과거 SNS 메모를 바탕으로 확장해 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메모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창고다. 앞으로는 더 의식적으로 작은 메모들을 모아두고 연결하는 훈련을 하고 싶다.
메모로 쓰기는 글의 시작을 가장 가볍게 만드는 방법이다. 메모는 점이지만,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결국 이야기로 확장된다. 거대한 글도 작은 메모에서 출발한다. 글쓰기는 결국 하루의 메모를 놓치지 않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16. 첫 문장 쓰기
첫 문장 쓰기는 글의 시작을 여는 문장을 어떻게 쓰느냐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글의 첫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글의 톤과 방향을 결정짓는 출발점이다.
좋은 첫 문장이 나오면 글이 술술 풀린다. 마치 막힌 수도꼭지가 열리듯, 첫마디가 흘러나오면 나머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글을 쓰는 데 가장 힘든 순간은 첫 문장을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첫 문장이 지닌 힘은 크다.
첫 문장을 떠올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머릿속에 전체의 그림이 잡히면, 그 그림에서 출발하는 문장이 생긴다. 반대로 머릿속에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 듯이 문장을 찾아낼 수도 있다. 안톤 체호프는 “실타래를 찾을 수 없다면 가위로 잘라서 시작하라"라고 했다. 즉, 난데없는 첫 문장이라도 괜찮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글이 흐르도록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다.
첫 문장만 수집해 보면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건으로 시작하거나, 대사로 시작하거나, 묘사로 시작하는 유형들이 있다. 이를 ‘돌려 막기’하듯 활용해도 충분하다. 첫 문장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암시하는 복선의 기능을 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가 가장 높은 수준의 첫 문장이다.
문학사에는 유명한 첫 문장이 많다. 예컨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이렇게 시작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짧고 단호한 이 문장은 곧바로 독자를 눈 덮인 세계로 끌어들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언젠가 사르트르의 『말』에서 인용된 문장을 첫 문장으로 써보고 싶다.
“세상에 훌륭한 아버지란 있을 수 없다.”
이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붙잡고, 동시에 글쓴이의 문제의식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나도 글을 쓰다 보면 첫 문장을 고르느라 시간을 오래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다 쓴 뒤 첫 문장을 다시 쓰는 방식을 시도한다. 이렇게 하면 글 전체를 쓴 뒤 드러난 핵심을 담아내는 첫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또 글의 마지막 문장 역시 중요하다. 비행기가 이륙과 착륙을 통해 여정을 완성하듯, 글도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맞물려야 한다. 때로는 마지막을 처음으로 돌아오는 문장으로 맺으면 글의 구조가 더 단단해진다.
첫 문장은 글쓰기의 문을 여는 열쇠다. 호기심을 자극하든, 암시를 담든, 심지어 난데없는 시작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글이 흐르게 만드는 것이다. 첫 문장을 붙잡는 순간 글은 이미 절반은 완성된 셈이다. 마지막 문장이 이 글의 착륙이라면, 첫 문장은 이륙이다. 출발이 힘차야 여정이 흔들림 없이 이어진다.
강원국 작가의 수업은 내게 화려한 영감이 아니라 동작을 가르친다. 열여섯 가지 방법은 머릿속에만 두는 이론이 아니다. 격주 마감(12번)을 다시 걸고, 매일 점 하나(메모, 15번)를 찍어 선으로 잇고, 초고(10번)는 빠르게 내고, 사흘(7번) 동안 식히고 고친다. 막히면 말한다(14번). 주장과 이유와 사례(2번)로 뼈대를 세우고, 때로는 반대 의견까지 포함한 6단(3번)으로 길게 밀어붙인다. 처음부터 잘 쓰려하지 않는다. 쓰고, 붙이고, 줄이고, 다시 쓴다.
이 글을 쓰며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그동안 “읽는 사람”이었지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읽는 사람으로 견뎠던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역할 바꾸기를 시도해 본다. 습관으로 쓰고(13번), 마감으로 완성하고(12번), 첫 문장(16번)과 마지막 문장까지 책임진다. 남의 좋은 글을 따라 배우되(6번), 결국 내 목소리로 돌아온다.
더 미룰 말이 없다. 오늘 첫 문장을 쓴다. 그리고 마감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