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저녁 식사 중에 기억에 남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내가 무심코 “아름답다”거나 “경이롭다”는 표현을 썼을 때였다. 그녀는 내가 뱉은 단어가 남성의 언어와는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다고 했다. 마초적 문화가 깊게 자리 잡은 팀에서 오랜 시간 일해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 동료는 낯설었을 것이다.
회사 간 인수합병으로 당시 나는 기존 부서를 떠나 새로운 조직에 합류했다. HR 리더로서 빠르게 적응하려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우선이었다.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말을 걸었다. 커피를 마시고 회의 뒤에 남아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다.
그즈음 우연한 계기로 영업팀 중간관리자인 그녀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회사에서 신입으로 입사해 10년 넘게 같은 팀에서 일해온 사람. 정식 회식이 아닌 가벼운 식사 자리였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영업팀 특유의 강한 문화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었다. 강단 있고 판단이 빨랐다. 직설적인 말투를 쓰는 경우도 잦았다. 그래서 주변인들이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저녁 자리가 처음이라 초반에는 마주 앉아 있기가 불편했다. 그러나 술이 한두 잔 오가자 대화의 결이 바뀌며 분위기가 나아졌다. 업무 이야기를 지나 내가 평소 즐겨 읽는 책 이야기로 넘어갔다. 무의식 중에 문학과 철학에서 전달된 감정의 언어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말했다. “그 장면은 아름다웠어요.” 또 어떤 순간에는 “경이롭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놀란 듯 웃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말 너무 어색해요. 무뚝뚝하고 딱딱한 HR 팀장이 그런 단어를 쓰니까요.”
처음엔 농담이거나 가벼운 놀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낯선 사람 대하듯 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딱딱하게 보였나. 왜 그런 표현이 어색한 걸까. 왜 우리는 언어에 성별을 씌우는 걸까.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남자는 왜 감정 표현이 어색한가.” 그녀는 말했다. “남자가 감정 표현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낯설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이해됐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이 묘하게 아려왔다. 그 말은 내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어 시간 시 한 편에 울컥하기도 하고, 수학여행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가 끝난 뒤 이어진 촛불 의식에서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감수성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게 두려웠다. 감정을 표현하면 비웃음을 살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멋진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멋진 사람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쿨해야 했다. 친구들에게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남자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소한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런 말들은 내면에 새겨졌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배웠다. 분위기와 눈빛과 침묵이 그것을 가르쳤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거친 말투를 흉내 냈다. 감정을 감추며 강한 척을 했다. 그렇게 나는 ‘사내답다’는 평가를 ‘리더십’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학창 시절 내내 겉으로는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속은 전혀 달랐다. 나는 세심했고 소심했다. 감정 기복이 컸다. 사소한 장면에서도 의미를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절에도 자신을 숨기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드물었지만 내 주변에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남들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때로는 무딘 감응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태도가 내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도 그들처럼 내 모습 자체를 인정하고 싶었다.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이런 신년 계획을 세운 적도 있었다. 유치했지만 간절했다. 그만큼 나를 부정하는 시간도 길었다. 나를 되찾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책을 많이 읽었다.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다. 책 속에는 나처럼 자신을 믿지 못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도 흔들렸고 아팠다. 나처럼 버티며 살았다. 그들의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함께 질문했다. 그리고 함께 고민했다. 그 시간은 내게 긴 수행 같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 앞에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건 그 수행의 결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대화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내게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가 얼마나 낯선 존재인지를 말해주었다. 나는 그 낯섦에 오래 길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쩌면 비슷한 풍경을 지나온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억누르며 어른이 된 사람. 감정을 말하지 못한 채 강해져야만 했던 사람.
그녀가 던진 한마디는 자신의 오래된 균열을 건드렸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 덕분에 우리는 감정과 언어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나 역시 나의 오래된 껍질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김상봉과 고명섭의 『만남의 철학』을 읽고 있었는데,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울면 안 된다. 상처받으면 안 된다고 할 때. 구체적인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을 결국은 잊어버리게 되고. 그래서 세계는 다시 추상화되지요.”
그 문장을 읽고 나는 ‘잊어버린 인간’을 떠올렸다. 감정을 잊고 언어를 잊고 결국 자신을 잊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거기엔 나도 있었다. 내가 몸담았던 조직 안에도 그런 모습은 많았다. 감정은 비효율로 취급됐다. 감수성은 사사로운 것으로 간주됐다. 상처받는 사람은 약자로 분류됐다. 멋진 사람은 묵묵히 버티는 사람이라 여겨졌다. 나 역시 그 규범 안에 있었다. 순응했고 때로는 그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은 나에게 던져진 늦은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김우창 교수의 『깊은 마음의 생태학』에서 한 문장을 마음에 세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 문장이 그날의 그녀와 나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큰 마음의 눈은 세상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그렇다면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일도 큰 마음의 행동일 것이다. 예전의 나는 그 눈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그 시선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꿈꾸는 멋진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매일 스치는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 창밖으로 피어난 계절을 바라보는 사람. 익숙한 말투 속에서 따뜻함을 알아채는 사람. 퇴근길 침묵 속 피로마저 알아보는 사람. 그 모든 순간은 큰 마음의 눈이 있어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내가 본 풍경을 생생한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