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저는 『문장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제는 ‘수많은 문장을 만나며’입니다. 살아오며 만난 문장들과, 그 문장에 얽힌 제 삶의 장면들을 함께 기록하는 글입니다. 저는 문장을 통해 어떤 시간을 떠올리고, 반대로 어떤 장면은 한 문장으로 기억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방식의 기억과 기록은 오래된 취미이자, 제가 비교적 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소설』이 자기소개서의 형식을 빌려 저를 설명하는 글이라면, 『문장일기』는 제가 어떤 문장들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언젠가 이 두 글이 서로를 보완하는 작품으로 나란히 묶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는 질문 앞에 서니, 그동안 제 삶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문장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말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 선택지는 금세 좁아집니다. 우선 오래전, 삶의 의지가 과하게 부풀어 있던 시절에 만난 문장들이 떠오릅니다. 재수생이던 시절, 수능을 백일 앞두고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니체의 문장을 보내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복을 입은 친구의 허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이후 힘든 시기가 올 때마다 저는 그 문장을 마음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나 강해지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장은 저를 설명하는 한 문장으로 남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몇 개의 문장을 떠올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저는 결국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단어를 고르게 됩니다. 바로 ‘콩자반’입니다.
DJ DOC는 한 시대를 뜨겁게 달군 가수였습니다. 록 음악을 주로 듣던 저와는 결이 다른 팀이었지만, 기성세대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그들의 노래는 당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들의 춤을 따라 추는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그들을 그저 제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그들이 2000년, 5집 『The Life… DOC Blues 5%』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큰 기대 없이 CD를 틀었는데, 첫 트랙부터 끝까지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전의 곡들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사회에 대한 분노를 차분하게 눌러 담은 랩 가사와, 그 감정을 세련되게 감싸는 멜로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록 음악에만 몰두해 있던 저를 랩과 힙합 쪽으로 이끌었던 앨범이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예민한 고3이었습니다. 유난했던 사춘기가 서서히 저물어가던 시기였고, 이미 손을 놓아버린 공부로는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십 대 특유의 사회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에 올라 있었고, 그때 제 앞에 저항의 찬가처럼 나타난 음악이 바로 이 앨범이었습니다. 나도 아직 뭔가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의지를 제 안에서 다시 흔들어 깨우는 노래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남은 곡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Alive〉였습니다. DJ DOC 외에도 여러 힙합 팀이 함께한 이 곡은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콩자반’은 이 노래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였습니다. 중심이 되는 가사를 각 문장의 첫 글자로
콩,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우리네 인생.
자,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야. 바른말이지, 모두 옳은 말이지.
반, 반찬 없는 밥은 맛이 없듯이 노력 없는 성공은 그 빛이 바래지 않을까 하는, 내 짧은 생각.
그 문장이 다가온 계기는?
‘그 문장이 다가온 계기’를 떠올리면, 예전에 썼던 3화 「나의 선택」이라는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한 친구가 먼저 생각납니다. 청소를 피해 돌아가려던 저를 불러 세웠던 친구입니다. 그는 고3 때 부반장이었고, 방황의 끝자락에 서 있던 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인물이었습니다. 고3이나 된 녀석이 철도 없이 날라리처럼 군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저는 공부 좀 한다는 이유로 그가 유난히 건방져 보였습니다. 선생님도 아닌데 감히 저를 지적한다는 생각에 작은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가까워졌습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이 넘도록 같은 학교에 있었지만, 제대로 친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그에게 다가간 것은 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반에서는 늘 1등이었고, 전교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뛰어났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저와 달리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자기 무리 안에서는 분명한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동창들로 꾸린 축구팀에서 활동했고, 음악에 대한 취향과 이해도 깊었습니다.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색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자리를 그의 책상 옆으로 옮겼습니다. 원래 제 자리는 노는 학생들이 주로 앉던, 교탁에서 사선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맨 뒷자리 구석이었습니다. 그의 자리는 교탁 바로 앞, 교실 한가운데의 맨 앞줄이었습니다. 그 자리로 옮겨 앉는다는 건 제게도 적잖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이없다는 듯 냉소적으로 보던 그도 시간이 지나면서 저를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었고, 그는 성실하게 답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교실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DJ DOC의 〈Alive〉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모범생이던 그가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열정적으로 따라 부르는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가사를 곱씹는 태도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 안의 분노와 닮은 무엇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제 눈에 그는 부족한 것 없는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집도 잘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노래를 저렇게 진심으로 부를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이런 노래까지 듣고 외우냐.”
한참 저를 바라보던 그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사업을 하던 어머니가 홀로 자신을 키웠다고 했습니다. 가정환경만 놓고 보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그런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공부를 놓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를 저보다 단단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이나 매점으로 향하며 그 노래를 수도 없이 흥얼거렸습니다. 제가 한 소절을 부르면 그가 이어받았고, 그가 시작하면 제가 다음 소절을 채웠습니다. 우리는 ‘콩자반’을 외치며, 이 엉망인 세상을 언젠가는 바꿔보겠다는 막연하지만 진지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아직 어렸고, 그래서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콩자반’은 그렇게 제 삶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삶을 견디는 말이었고, 제게는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보려는 말이었습니다. 같은 단어였지만 각자 다른 사정 위에 놓여 있었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졸업 후 그는 좋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 덕분에 마음을 다잡은 저는 삼수와 편입을 거쳐 가까스로 대학 문턱을 넘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결성한 인디 밴드의 보컬이 되어 예술가의 길로 나아갔고, 저는 여러 회사를 거친 끝에 이제는 글을 쓰겠다고 나섰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가끔 만나 ‘콩자반’의 마음으로 인생과 예술, 정치와 사회에 대해 떠들어댑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 단어는 우리를 다시 같은 자리로 불러앉힙니다.
앞으로 그 문장을 바꾸고 싶나요?
최근 그 노래를 다시 들어보았습니다. 젊었던 DJ DOC와 그 노래를 듣던 어린 시절의 제가 함께 떠올라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노래에는 “아직은 이렇다고 말할 수 없는 짧은 20년의 인생”이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그 노래에 깊이 빠져 있던 시점으로부터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지금의 저 역시 여전히 “아직은 이렇다고 말할 수 없는 짧은 40년의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콩자반’을 떠올려 보니, 그 의미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뿌린 대로 거두는 삶이니 제대로 뿌려 세상을 바꿔보자는 다짐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삶이 결국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라면, 욕심을 조금 덜어내고 살아야겠다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예전에는 바깥을 향해 있던 말이, 이제는 제 삶의 리듬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삶을 20년 단위로 나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의 20년이 태어나고 자라고 방황하던 시기였다면, 그다음 20년은 첫 번째 20년을 보충하겠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했던 것을 따라잡고 싶었고, 뒤처졌다고 느꼈던 삶을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공부를 했고, 일을 했고, 사람을 만났고, 제 삶의 방향을 조금씩 다시 세워 왔습니다.
이제 두 번의 20년이 지나고, 저는 마흔을 넘어 세 번째 20년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이 시간을 지나 네 번째 20년까지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지난 두 번의 20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또 앞으로의 20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지금의 제 생각은 단순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뿌리고 가꿔 온 것들을 이제는 무리하게 흔들지 말고 잘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주어졌던 제약에 시달리던 시기도 있었고, 그 한계를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전전긍긍하던 시기도 이미 지나왔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시간을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느낍니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처음이나 두 번째 출발선에 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무엇이 잘 사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자주 흔들립니다. 나이만 먹고 오히려 더 불리해진 것은 아닐까 걱정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어려운 유년 시절을 지나왔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앞으로의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기대가 됩니다.
결국 ‘콩자반’은 제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어주는 말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문장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문장을 예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품고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