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이는 힘

by 세템브리니

어떤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나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일까요. 저는 그 질문을 생각하다가, 적극성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개인의 성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주 떠올립니다. 아무리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도, 형식만 남고 변화는 남지 않는 구조 안에서는 쉽게 몸을 사리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이 한 일이 아주 작게라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느껴질 때는 평소보다 더 힘을 내게 됩니다. 적극성은 성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이라는 말의 뜻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주어진 일에 반응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 영향을 만들어내려는 태도입니다. 시키면 하는 수동과도 다르고,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소극과도 다릅니다. 스스로 개입하고, 그 결과까지 감당하려는 자세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조직 안에서는 이런 적극성이 늘 환영받는 것만은 아닙니다. 절차와 형식을 중시하는 구조에서는 변화를 만들려는 태도보다, 문제를 만들지 않는 태도가 더 안전하게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약간의 모순을 느낍니다. 저는 조직에서 비교적 적극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인사팀에서 일했고, 언젠가는 공적 조직에서도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사나 공적 조직은 일반적으로 적극성보다 절차와 신중함이 먼저 떠오르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히려 더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유난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일까.

돌아보면 저는 늘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이 맞을 때 유난히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첫째는, 제 행동이 제가 속한 집단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느낄 때입니다. 세상을 단번에 바꾸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모임 안에서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그 역할을 피하지 않는 편입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보일 때 저는 평소보다 훨씬 더 힘을 냅니다.

둘째는, 저로 인해 특정 개인이 겪는 부조리를 줄일 수 있을 때입니다. 이 경우는 첫 번째보다 더 구체적입니다. 조직 안에서 우리는 늘 어떤 구조 속에 놓여 있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부당함을 겪습니다. 그 정도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누군가는 나서서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고 바꾸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이유 없는 불편과 부당한 대우를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장면 앞에서 쉽게 물러서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대신해 말해야 하거나, 누군가가 해야 할 말을 아무도 하지 않을 때 저는 오히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됩니다. 때로는 그 일이 다툼의 모양을 띠더라도 말입니다.

마지막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역할을 맡을 때입니다. 이 부분은 제 안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성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나만 즐거운 일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 그리고 우리가 함께 조금 더 좋아질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친구들 사이에 배움을 일상으로 만드는 일, 걷는 여행을 제안하는 일, 단체 마라톤 출전을 기획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조금씩 번져 갈 때 저는 큰 만족을 느낍니다. 어쩌면 그래서 저는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사례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 회사에 입사해 근로계약서를 확인하던 중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월 소정근로시간이 시간 외 근로를 포함한 법정 최대 근로시간에 맞춰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사전에 합의한 연봉 역시 기본급이 아니라 포괄임금제 구조로 짜여 있었습니다. 근로시간 산정이 특별히 어려운 직무도 아니었고, 더구나 인사팀 중간관리자를 채용하면서 이런 계약서를 내민다는 사실이 제 기준에서는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례와 노동부 기준에도 맞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담당자는 문제의 본질보다 절차를 따르는 데 더 익숙해 보였습니다.

입사 후 조직에 적응해 갈수록 포괄임금제가 만들어 내는 직원들의 불만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나 저녁을 먹고 다시 자리에 앉는 일이 당연한 문화처럼 굳어져 있었습니다. 상사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해도, 왜 이렇게 야근을 하는데 수당이 없느냐는 불만이 제 귀에는 계속 들어왔습니다. 포괄임금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이미 수당을 받고 있다는 설명만 반복되는 현실은 인사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 순서대로 성과평가를 한다는 경영진의 농담 섞인 말까지 더해졌습니다. 저는 더는 이 상황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상사와 경영진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반응은 예상대로 차가웠습니다. 오랫동안 문제없이 운영해 온 제도를 왜 이제 와서 바꾸려 하느냐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포괄임금제를 손볼 경우 늘어날 인건비는 경영진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습니다. 어느 하나 쉬운 조건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관례가 되어버린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 보였습니다.

저는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도를 바꿨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를 정리했습니다. 인건비 상승과 조직문화 개선, 비용 증가와 노무 리스크 감소를 비교한 자료를 반복해 만들었습니다. 수십 번은 다듬어 만든 자료였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더뎠지만, 제 의견에 공감하는 결정권자가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끝까지 기존 방식을 유지하려는 경영진에게는 개선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위험을 판례와 사실에 근거해 설명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그 위험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더 분명하게 보이도록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며 매일 밤늦게까지 남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직원들의 얼굴이 더 자주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간 외 근로수당이 제대로 지급된다면 업무 효율도 달라질 수 있고, 일찍 퇴근하는 직원을 두고 눈치를 주지 않는 문화도 가능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이 일은 단순한 제도 손질이 아니라 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라는 확신이 커졌습니다. 외로운 과정이었지만, 그 확신 덕분에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 가까이 되었을 무렵, 드디어 최종 책임자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후 전 사업장을 돌며 설명회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직원들은 인사팀이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동안 근무시간을 따로 입력하지 않아 편했는데 왜 굳이 귀찮게 만드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속으로는 “당신에게 시간 외 근로수당을 제대로 주기 위해서입니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인사 담당자로서 다양한 반응을 감당하는 일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설명과 의견 수렴을 마치고 새로운 제도가 실제로 적용되던 날에도, 격려보다는 비판의 시선이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분명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개인이 홀로 감내하던 불합리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고, 조직문화가 달라질 수 있는 출발선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한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적극적 행동을 이어가는 힘은 무엇인가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하나가 아닙니다. 어떤 행동은 환경이 만들고, 어떤 행동은 내 안에서 올라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특정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힘은 대체로 제 안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질일 수도 있고, 성향일 수도 있고, 살아오며 쌓인 감정과 신념일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저의 기질과 성격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제 안의 기준과 맞닿을 때, 훨씬 더 강하게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중 첫 번째는 욕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와 결핍 속에서 움직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존중받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동시에 언젠가는 제 삶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랐습니다. 생존이 더 급했던 성장 환경을 생각하면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는 욕구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결핍 때문에 저는 존중이라는 가치를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존중받고 싶었던 만큼, 다른 사람 역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직 안에서 누군가가 부당한 처우를 받는 장면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 순간 저는 손해를 보더라도 약자를 돕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두 번째는 감정입니다. 사람은 이성으로 판단하기 전에 먼저 감정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두려움은 멈추게 하며, 연민은 위험을 감수하게 만듭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기질적으로 분노의 에너지가 큰 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해 스스로도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은 불합리한 관행, 시대에 뒤처진 문화, 근거 없는 편견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다듬어졌지만, 부조리를 마주하는 순간 여전히 반발심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저를 침묵보다 행동 쪽으로 밀어냅니다.

세 번째는 신념과 가치관입니다. 이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살아오며 겪은 일들이 쌓여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행실에 실망했던 경험은 제게 ‘어른’에 대한 높은 기준을 남겼습니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 느꼈던 회의도 오래 남았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납득할 만한 어른을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된 뒤 역사와 사회를 공부하며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공통점을 보게 됐습니다. 방식은 달라도,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대개 변화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도 아주 작게라도 의미 있는 흔적이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제 행동의 방향을 정해 왔습니다.

마지막은 자기 효능감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길 때 사람은 실제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예전과 조금 다른 이유로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예전에는 기질이나 감정이 먼저 앞섰다면, 지금은 살아오며 쌓인 경험과 성취의 기억이 더 큰 힘이 됩니다. 모든 시도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한 일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한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결과 이전에 행동 자체가 남긴 의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나는 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제 안에 생겼습니다. 그 믿음이 지금의 저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고, 한번 시작한 행동을 끝까지 이어가게 합니다.


적극적 행동이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요?

삶을 지탱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행위 속에서 사람은 자기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저 역시 어떤 상황에서 먼저 움직이고, 끝까지 해보려 했던 선택들이 쌓이며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일과 삶 모두에서 형식에 머무르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그 태도가 직장생활의 방식이 되었고, 개인적인 삶의 습관이 되었고, 결국은 저라는 사람의 결로 남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저는 늘 성과를 형식보다 딱 반 발자국 앞에 두고 생각해 왔습니다. 모든 일을 결과에서 출발해 과정을 설계하는 성향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형식과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 발자국 앞이라는 말에는 그 거리감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결과와 절차의 균형을 지키려 했습니다. 관리 부서에서 오래 일한 사람다운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종적으로 무엇을 더 중시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늘 성과라고 답해 왔습니다. 그것이 제 직장생활을 관통해 온 기준이었습니다.

그 결과 조직 안에서 상대적으로 덜 적극적이라고 여겨지는 부서에 속해 있으면서도, 저는 종종 이례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욕구가 저를 계속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만 내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절차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선택이 쌓이면서 저는 절차 관리가 중요하면서도 분명한 결과가 요구되는 역할을 자주 맡게 됐습니다. 시스템 도입이나 M&A 같은 프로젝트가 그랬습니다. 적극적인 사람들과 한 팀을 이루어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제게 잘 맞았습니다.

개인적인 삶에도 비슷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범을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닙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이어온 독서, 부족한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계속한 운동,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움직여야 한다고 여겼던 마음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부족함에서 시작한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며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이 어느새 제 삶의 한 능력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저를 설명하는 특징으로 남게 된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제 정체성이 결국 반복된 적극적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나 개인의 삶에서나, 먼저 움직이고 끝까지 해보려 했던 태도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대체로 만족합니다. 다만 이 정체성을 완성된 결과로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형식에만 머무르기보다 결과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해 온 시간이 제 삶에 남긴 것은 결국 하나의 태도였고, 지금의 저는 그 태도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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