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아내는 2002년 미스코리아에 참가했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열린 지역 예선을 통과해 본선까지 진출했다. 나를 만나기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처음 만났을 때 아내의 친구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대회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런 무대와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만나는 상대가 그런 이력을 가졌다고 하니 호기심이 먼저 들었다. 이성적으로는 고상한 척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나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내는 자신의 그 과거를 좀처럼 먼저 꺼내지 않는다. 함께 산 지 12년이 되었지만, 아내의 입에서 미스코리아 이야기가 먼저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늘 친구들이나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만 당시의 상황을 덧붙여 설명해 준다. 친구 따라 미용실에 갔다가 미스코리아 참가를 권유받았다는 이야기, 본선에 진출한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본인이었다는 이야기. 그 모든 일은 아내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외모로 선발되는 세계와는 아무 접점도 없이 살아온 나나 우리 가족은, 담담하게 풀어놓는 아내의 경험담을 그저 신기한 이야기처럼 듣고 있을 때가 많다.
첫눈에 아내에게 빠진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외모였다.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맥줏집에서 처음 본 아내는 TV에 나오는 연예인 같았다. 그런 사람이 나와 교제를 시작하자, 가까운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걔는 왜 널 만난다냐?”라는 놀림에도 나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친구들이 아내 같은 여자친구를 데려왔다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그런데 만남을 이어가면서 나는 자주 놀라게 됐다. 아내의 성격 때문이었다. 예쁜 외모의 여성이 가질 거라고, 내가 멋대로 상상해 왔던 성격과는 전혀 달랐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수준 낮은 선입견을 반영하는 인식이었다. 나는 아내의 털털함과 시원시원함에 점점 더 끌려들었다. 이전의 연애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매력이었다. 그러면서 첫 만남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외모는 아내의 매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희미해졌다. 나중에는 오히려 미스코리아 출전 경력이나 외모가 아내의 매력을 반감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녀가 다소 마른 편에 다소 나이 들어 보일지 모르고, 좀 더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니지 못해 아쉬울지 몰라도, 그런 게 뭐 어쨌다는 거야. 그런 건 그녀가 실제로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지. 그런 결점들이 마음에 거슬리는 자는 그로써 자신에게 더 커다란 것을 보는 안목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할 뿐이야.”
프란츠 카프카 『성』
작년 이맘때 카프카의 『성』을 읽었다. 엄마가 혈액암으로 투병하던 시기였다. 서울대병원 문턱에서 마주한 거대하고 비인간적인 관료주의의 공기가 소설 속 세계와 겹쳐 읽는 내내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카프카를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늘 불편한 지점을 정확히 찌른다.『성』의 주인공 K는 외모적 결점으로 냉대를 받는 한 여성의 솔직함과 호의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조건보다 그녀의 내면에 깃든 강인함과 진실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권위와 규칙에만 매달린 사람들의 ‘안목 없음’을 비판하는 이 문장은, 내가 아내를 바라보며 뒤늦게 도달한 생각과도 닮아 있었다.
아내의 외모는 어쩌면 사람들로 하여금 엇갈린 평가를 끌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조건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지닌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주인공 K의 지적은, 아내를 바라보는 나의 입장을 정확히 대변한다. ‘미스 제주 출신’이라는 이력은 자랑이 되기보다 또 하나의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후로는 아내가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말을 꺼낼 때면 늘 한 번 더 조심하게 된다.
얼마 전 대학 시절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한 친구가 내 탈모를 두고 “넌 지금 같았으면 결혼 못 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아내에게 감사하며 살라는 농담이라는 걸 알기에 웃으며 넘겼지만, 동시에 탈모가 그렇게 결정적인 결점인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머리숱이 줄어들고도 탈모약을 먹지 않겠다고 선택한 나 자신의 판단에 대한 불안과도 맞닿아 있었다. 카프카의 그 문장은, 외모를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거나 스스로를 재단하려는 이런 순간마다 반복해서 떠오른다.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와 살면서 이런 문장을 마음에 붙들고 있는 일이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에 접어든 지금, 나와 아내는 외적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는 젊음에서 분명히 멀어지고 있다. 머리는 빠지고 몸에는 살이 붙는다. 그것은 우리 둘만의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삶의 질서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런 잃어가는 것들을 사소하게 만들어버리는 변하지 않는 것들로, 삶을 채워야 할 본격적인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짧게 말하자면,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를 두었다는 자랑이다. 다만 그 이력은 아내가 지닌 수많은 매력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