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기상 알람은 6시 반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6시쯤 눈을 뜹니다. 2025년 봄, 글을 써보겠다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더 이상 출근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잠드는 시간이 조금 달라도 기상 시간만큼은 어김이 없습니다. 수면 리듬이 뚜렷한 어머니 쪽 체질을 물려받은 덕분인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느긋하게 늦잠을 자보는 게 작은 소망입니다. 반대로 깨우지 않으면 끝까지 잘 수 있는 아내의 체질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눈을 뜨면 바로 이를 닦습니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부터 이어진 습관입니다. 후반기 교육대에서 신경질적인 미군 교관이 아침 점호 때 양치를 했는지 직접 확인하곤 했습니다. 이른바 morning breath, 그러니까 아침 입냄새를 가려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낯설고 불쾌한 문화라고만 생각했지만, 일어나자마자 입을 헹구거나 양치를 하는 습관이 구강 세균의 번식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지나고 보니 제법 고마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싱크대로 갑니다. 물을 틀어 잠시 흘려보낸 뒤 바구니에 받아 둡니다. 농약 제거용 파우더를 뿌려 사과를 담가두고 블루베리도 함께 씻습니다. 손질해 둔 당근과 말려둔 마 가루를 더해 믹서기로 갑니다. 이른바 ‘명안주스’입니다. 눈에 좋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본 뒤부터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어머니 쪽으로 눈이 약해 신혼 초부터 이어온 식이요법입니다. 최근에는 갈아 마신 과일이 혈당을 높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과와 블루베리의 양을 많이 줄였습니다. 그래도 워낙 오래 아침마다 마셔서인지 재료가 떨어져 며칠 거르면 눈이 더 건조해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착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은 이미 이 루틴을 기억하고 있는 듯합니다.
신선한 달걀로 프라이를 하고, 아내가 미리 만들어 둔 빵을 굽습니다. 화장실을 잘 못 가는 아내를 위해 요거트에 견과류도 곁들입니다. 주스까지 준비한 뒤 아내를 깨웁니다. 아내는 일어나는 데 저보다 다섯 배는 더 오래 걸립니다. 겨우 식탁에 앉으면 함께 아침을 먹습니다. 아침의 아내는 대체로 기분이 좋습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루를 같이 시작하는 기쁨이 분명해집니다. 이렇게 맞이하는 아침도 어느덧 12년째입니다.
아내보다 조금 먼저 집을 나서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입니다. 늦어도 8시까지는 도착해야 옆 사람과 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신식 도서관입니다. 퇴사한 뒤로는 하루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냅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재수 시절 남산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던 경험 이후 이어진 도서관 사랑은 지금도 제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습관이자 정체성입니다. 이사를 갈 때도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합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보통 7시 반쯤 출근했습니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집중력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철학이나 양자역학 같은 비문학을 주로 아침에 읽었습니다. 추상적인 사유로 머리를 먼저 예열해야 하루의 사고가 원만하게 흐른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침에는 가급적 쉽지 않은 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전에는 주로 글을 씁니다. 퇴직 후 한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작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글쓰기 강연을 들으며 내가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12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글이 바로 『자소설』입니다. 작가로서 나를 알리고 싶은 욕망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남에게 보여주기 이전에 제가 저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됩니다. 저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재미있는 글이길 바라지만, 저를 아는 사람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하고 새롭게 보였으면 합니다. 실제로 친한 누나는 제 글을 읽고 “어머, 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네”라고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도 아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알게 돼 좋다고 하십니다. 이런 일을 업으로 삼는 작가는 제게 여전히 꿈에 가까운 직업입니다.
점심은 집에서 먹습니다. 아내는 주말마다 밑반찬을 만들어 둡니다. 백수 남편을 위한 배려입니다. 저는 아내가 만든 멸치볶음과 어묵볶음을 특히 좋아합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잡곡밥에 간소한 반찬으로 차린 집밥이 가장 좋은 식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먹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냐 싶다가도, 잘 먹고 건강한 것보다 삶에서 더 중요한 게 또 있나 싶습니다. 소박한 점심상을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직전 회사에서는 점심을 먹고 복도를 걸었습니다. 쇼핑몰을 개조한 건물이라 출구로 이어지는 외부에 원형 복도가 있었는데, 실내라 덥지도 춥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3층이 걷기에 좋았습니다. 선물로 받은 지압 슬리퍼를 신고 점심시간에 읽는 소설을 읽으며 복도를 걸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직원들이 괴짜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하루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점심을 먹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갑니다. 오가는 30분 걷기가 혈당을 낮춰주고 소화도 돕습니다. 길에는 점심 무렵의 햇빛이 비칩니다. 따뜻한 볕 아래서 한 발 한 발 천천히 걷다 보면 밥을 먹으러 오가는 일조차 귀찮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돌아오면 일기를 씁니다. 최근에는 『문장일기』라는 브런치북으로 연재도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거나 과거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읽다 보면 여러 상념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 순간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지금 이 시간을 놓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짧게라도 적어 두고 그것을 매일 브런치에 올리다 보니, 이것 또한 하나의 작품 같은 일기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제 만족에서 나온 판단이지만요.
한 시간쯤 일기를 쓰고 나면 책상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입니다. 20분 남짓의 낮잠은 회사에 다닐 때도, 주말마다 지켜온 습관입니다. 잠이 오지 않아도 일부러 눈을 감습니다. 그렇게 쉬고 나면 확실히 집중력이 좋아집니다. 짧더라도 눈을 붙이면 아침에 다시 일어난 것처럼 몸이 가벼워집니다. 하루를 두 번 나눠 쓰는 기분입니다. 스페인의 낮잠 문화인 ‘시에스타’가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후 오후 6시까지는 다시 책을 읽습니다. 오후에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서나 소설을 주로 읽습니다. 서사가 있으면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져도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주말 독서모임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있습니다. 왜 대작이라고 불리는지 몸으로 체감하는 중입니다. 제목과 분량만 보고 위축되는 분들이 있다면 괜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만 조금 어렵지 내용은 의외로 잘 읽힙니다. 개인적으로는 『안나 카레니나』보다 더 쉽고 재미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기다립니다. 아내는 요즘 7시에 퇴근합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서머타임’과 ‘윈터타임’이라는 이름으로 평일에 한 시간씩 더 근무하고, 그렇게 쌓은 시간을 금요일 오후에 쉽니다. 덕분에 금요일은 자연스럽게 오전 근무만 합니다. 집에 와서도 일을 놓지 못하고 주말에도 컴퓨터를 켜는 아내를 보며 마냥 이상적인 제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금요일 오후를 확보하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되는 방식입니다. 언젠가 저도 다시 일하게 된다면 회사에 한번 제안해 보고 싶은 제도이기도 합니다.
아내가 오면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간단하게 먹습니다. 아내는 집에 있는 고구마나 감자를 오븐에 구워 두유와 함께 먹고, 달리기를 마치고 온 저는 밑반찬으로 저녁을 먹습니다. 마주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눕니다. 아내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참 잘도 이야기합니다. 회사원일 때도 지금도 저는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입니다. 남편의 가장 큰 의무 중 하나가 아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가끔은 졸리기도 하지만요.
하루를 마무리하고 10시쯤 자리에 눕습니다. TV를 켭니다. 하루 중 유일하게 TV를 보는 시간입니다. 아내 때문에 보기 시작한 〈나는 솔로〉를 제외하면 특별히 챙겨 보는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금세 꺼버립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누우면 10분 안에 잠들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많아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죽음에서 시작되는 상념은 자연스럽게 미래와 남은 삶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집니다. 아이가 없다 보니 결국 둘만 남게 될 시간에 대한 생각도 잦아집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금세 코를 곱니다. 저도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어느새 잠에 듭니다.
꾸준히 유지해 온 습관과 그 효과는?
꾸준히 유지해 온 습관은 근육을 단련하는 일입니다. 신체적 근육뿐 아니라 정신적 근육도 함께 단련해 왔습니다. 정신적 근육은 독서를 통해, 신체적 근육은 달리기를 통해 길러졌습니다. 얼핏 전혀 다른 활동처럼 보이지만, 두 가지를 함께 이어가면 정신과 몸이 맞물려 돌아가는 선순환이 생깁니다. 이 습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지각 인생입니다. 공부에도 늦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는 공부는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외우는 방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왜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더 가깝습니다. 작년에 뒤늦게 시작한 주식 공부도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물질 경제를 이해해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회사와 산업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왜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투자도 했습니다. 다만 공부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고, 욕심은 부리지 않았습니다. 운도 따랐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제법 만족스러운 수익을 얻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공부의 효용을 분명하게 체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부란 내가 관심을 가진 대상을 깊이 이해하려는 과정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이겠지만, 저는 독서를 택했습니다. 영상은 빠르지만 생각할 틈을 충분히 주지 않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정리해 둔 결론을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독서는 다릅니다. 한 문장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바로 멈출 수 있고, 관련 책이나 기사로 곁가지를 뻗을 수도 있습니다. 관심사가 넓어질수록 세상은 덜 지루해집니다. 가끔은 세상에 공부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달리기는 전혀 다른 계기로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군 복무를 준비하며 학사장교 시험을 보게 되었고, 오래달리기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불광천을 달리다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이상하게 짜릿한 기분이 찾아왔습니다. 몸은 힘든데 머리는 맑아졌습니다. 달리고 난 뒤의 개운함과 정리된 사고가 저를 다시 뛰게 만들었습니다. 체력이 좋아지는 것도 분명 좋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답답한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가 어느덧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마라톤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 취미도 예전보다 훨씬 설명하기 쉬운 것이 되었습니다.
독서와 달리기를 함께 이어오며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생겼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꾸준히 지속하는 감각을 몸으로 익혔다는 점입니다. 저는 원래 성격이 급한 편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 바로 효과가 보이지 않으면 금세 흥미를 잃곤 했습니다. 그런데 독서와 달리기는 정반대의 활동이었습니다. 오늘 한 번 달린다고, 오늘 책 한 권을 읽는다고 삶이 곧바로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대신 어느 순간부터 누적된 변화가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달리기는 몸으로, 독서는 머리로 꾸준히 지속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 관리에 대한 태도의 변화였습니다. 달리기와 독서는 남과 경쟁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라기보다,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루틴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속도보다 리듬이 중요해집니다. 빨리 읽거나 빨리 달리는 것보다, 내 페이스를 지키는 일이 핵심이 됩니다.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자기 관리란 특별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태도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합니다. 다만 그 고독을 견디지 못할 때 외로움이 됩니다. 독서와 달리기는 본질적으로 혼자 하는 행위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성취와 충만을 경험하는 일은,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티는 힘을 길러줍니다. 고독을 외로움으로만 느끼지 않고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통과하다 보면 결국 생각하는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독서와 달리기를 함께 이어오며 제가 가장 반갑게 얻은 변화도 바로 그것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가 발견한 가치는?
훌륭한 삶은 고상한 사유나 위대한 성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먹고, 치우고, 씻는 반복적인 노동을 통과하지 않은 삶은 어딘가 공허하기 쉽습니다. 매일 되풀이되는 이 사소한 과업들은 눈에 띄지 않고 성과로 기록되지도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의 토대를 실제로 떠받칩니다. 작고 단조로운 일들이지만, 그 지루한 반복 속에서 저는 몇 가지 분명한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첫째, 반복은 나를 설명하지 않고 나를 증명합니다. 정체성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만으로는 나를 알 수 없습니다. 하루의 집안일, 독서, 달리기, 도서관으로 향하는 걸음 같은 행위들은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말없이 쌓입니다. 그리고 그 쌓임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설명합니다. 결국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생각이나 결심이 아니라, 오래 반복해 온 행동의 흔적입니다. 나는 무엇을 말해왔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계속해왔는지로 남습니다.
둘째,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유지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흔히 마음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정은 늘 일정하지 않습니다. 지치는 날도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멈추지 않습니다. 밥은 먹어야 하고, 집은 치워야 하며, 빨래는 다시 쌓입니다. 집안일은 대부분 기분이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특별한 마음이 없어도 반복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반복 덕분에 일상은 유지됩니다. 아침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사랑을 증명하는 행위라기보다 사랑이 사라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도 이런 반복이 이어지기 때문에 사랑은 다음 날에도 계속됩니다.
셋째, 사소함은 삶을 가장 안전하게 만드는 골조가 됩니다.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은 크고 특별해야 한다고 믿곤 합니다. 하지만 삶을 진짜 지탱하는 힘은 화려한 대들보가 아니라 벽을 채운 수많은 벽돌 같은 사소함에서 나옵니다. 하루 한 번의 달리기, 몇 쪽의 독서, 식사 후의 뒷정리. 하나하나는 너무 작아 보여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은 이런 미세한 행위들이 모여서 비로소 견고해집니다. 사소한 루틴이 무너지지 않을 때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삶의 비바람 앞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넷째, 반복은 조급함으로부터 나를 구해내는 정지 화면입니다. 반복되는 과업에는 즉각적인 보상이 없습니다. 오늘 한 번 달린다고 당장 몸이 바뀌지 않고, 오늘 몇 페이지를 읽는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은 효율과 성과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몹시 불친절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불친절함을 묵묵히 견디다 보면, 당장 증명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생깁니다. 지금 바로 성과로 환산되지 않아도 내 안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반복은 나를 남보다 빠르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불필요하게 서두르며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다섯째, 반복은 또한 나를 단련하기보다 나를 신뢰하게 만듭니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제가 얻은 마지막 수확은 거창한 성취감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눈이 와도 러닝화를 신어보는 일, 눈꺼풀이 무거워도 책장을 넘기는 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집안일을 묵묵히 해내는 일.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비로소 제 자신에게 건넬 수 있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나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쉽게 저버리지는 않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입니다. 반복은 저를 특별한 영웅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풍파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소한 반복적 과업 속에서 제가 발견한 가장 큰 진리는, 삶이 끊임없이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묵묵히 유지해 가야 할 상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삶을 지루하게 가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삶을 과장하지 않게 도왔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실패로 여기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지켜낸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