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기준

by 세템브리니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저는 대체로 세 가지 기준을 먼저 떠올립니다.

첫 번째는 칸트의 정언명령입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제 식으로 풀면 결국 이런 질문입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행동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저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이 질문을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늦는 건 다들 하잖아.” “나는 집이 머니까 늦어도 괜찮아.” 이런 생각은 당장에는 그럴듯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약속 시간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결국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저는 약속 시간을 지키는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반복해서 약속을 가볍게 여긴다면 그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작은 일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내가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 대하는지가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언명령에서 제가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사람을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는 생각입니다. 누군가를 이용해서 내 이익만 챙긴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됩니다. 누군가가 저를 찾는 이유가 저 자체가 아니라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한 과정처럼 느껴질 때 제가 그 관계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관계를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표현에도 쉽게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목적이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저는 늘 한 번 더 묻습니다. 이 선택이 누군가를 이용하는 방식은 아닌가.

두 번째 기준은 내가 바라는 궁극적인 결론에서 출발해 지금의 결정을 거꾸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직을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지금보다 연봉이 약 3천만 원 낮은 조건의 회사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처우만 놓고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먼저 제가 어떤 경력의 끝에 도달하고 싶은지를 생각했습니다. 인사 업무 전반을 경험한 실무형 리더가 되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경력에서 비어 있는 경험을 채워야 했습니다. 바로 집단적 노사관계, 다시 말해 노동조합을 직접 상대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관련 경험이 부족했던 제게 그런 기회는 흔치 않았고, 당시의 안정적인 조건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얻기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장의 손해보다, 장기적으로 제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저는 늘 마지막에 도달하고 싶은 모습을 먼저 그려놓고, 거기에서부터 지금의 선택을 되짚어 봅니다. 이것이 두 번째 기준입니다.

마지막 기준은, 내가 하는 선택에 저만의 책임과 결을 남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니까 더 책임 있게 하자.” “내가 맡았으니 더 균형 있게 판단하자.”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 기준은 특히 선택권이 많지 않을 때 더 중요해집니다. 살다 보면 내가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일보다,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조건이 이미 주어진 상황에서는 그저 흐름에 떠밀려 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순간일수록 다짐합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하기에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해보자고 말입니다. 이 기준은 대개 쉽지 않은 결정 앞에서 작동합니다. 뒤에서 다시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잘한 선택이라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법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아직은 조심스럽게 업무를 배우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서류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자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입사하기 전, 인수합병을 했던 회사의 인사 자료였습니다. 당시 어떤 조건과 처우로 직원들이 편입되었는지가 정리돼 있었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직원의 직급과 급여가 잘못 반영된 채, 그 상태로 2년 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직급과 급여는 인사에서 가장 민감한 영역입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이 문제를 바로잡는 일은 인사 조직 전체에 부담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것은 한 개인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 점이 제게는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먼저 사수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문제의식에는 공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부담스러운 건 사수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사자는 임원급 인물이었고, 성향도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인사팀 전체가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니어였습니다. ‘이걸 지금 굳이 건드려야 하나’ 하는 망설임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당시 제 사수는 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신중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즉각 결론을 내리지 않고 제 생각을 물었습니다. 제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했고, 팀장과 인사 임원에게 보고하는 절차 역시 제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당사자라면, 늦었더라도 바로잡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한 가지를 요청했습니다. 이 문제를 발견한 사람도, 맡은 사람도 저인만큼, 당사자를 직접 만나 제가 설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마침 그가 근무하는 국가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내부 준비를 마친 뒤 현지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인사팀 담당자가 다른 업무로 출장 와서 갑자기 면담을 요청하니, 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인사팀을 대표해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긴 경위와 이를 바로잡는 절차를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함께 이 결정을 고민하고 지지해 준 사수와 팀장의 사과도 함께 전했습니다. 인수합병 당시 이 업무의 책임자는 이미 회사를 떠난 상태였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어쩌면 사후적으로 이 문제를 마주한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설명이 끝났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자신에게 보장되었어야 할 급여와 보상이 인사팀의 실수로 훼손되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지금이라도 직접 찾아와 설명하고 사과한 점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결국 그 문제는 누구도 얼굴을 붉히지 않은 채 마무리되었습니다.

물론 이 일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조용히 넘어가거나, 한 번 욕을 먹고 형식적으로 정리하는 선택도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조직 안에서는 그런 방식이 더 흔하고, 더 안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그 문제를 그렇게 두고 지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알고도 외면하는 순간,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부서를 대표해 임원급 인사를 직접 만나 사과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조직에 적응하던 주니어였고, 그 선택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정확히 가늠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늦었더라도 바로잡는 것이 맞다고 스스로를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선택은 단순히 하나의 실수를 수정한 일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문제를 바로잡았다는 사실보다, 인사팀이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편의보다 원칙을 택했고, 조직의 실수 앞에서 책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결정은 지금까지도 제 안에 잘한 선택으로 남아 있습니다.

훗날 아직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수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당사자가 인사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인사라는 역할도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 방식대로 증명해 냈다고 느꼈습니다.


반대로, 어려웠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경험을 꼽으라면 직원을 내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인사팀에서 커리어를 쌓는 동안 끝내 피할 수 없었던 역할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인사팀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원 감축을 진행하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에게 이제 그만 나가 달라고 말하는 일은, 인사팀에 오래 몸담아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과거에 다녔던 회사에서의 일입니다. 그룹 차원의 결정으로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 하나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사업부는 서울에 영업팀을, 수도권에 연구소를 두고 있었습니다. 영업팀 직원들은 대부분 다른 사업부로 이동이 결정됐지만, 연구소에는 마땅히 옮길 부서가 없었습니다. 저는 연구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제안하는 일대일 면담을 맡게 됐습니다.

한 사람씩 면담을 진행하다 마지막 순서가 되었습니다. 팀 내 막내였고, 제 또래로 보이는 직원이었습니다. 그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지난주 돌을 맞은 아기의 사진이 떠 있었습니다. 가볍게 대화를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문과였고 그는 이과였기에 학창 시절에는 서로를 알지 못했습니다. 졸업한 지 한참 지난 뒤 회사에서 이렇게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반가움은 곧 조심스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해야 할 말은 회사를 나가 달라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분노가 밀려왔습니다. 나는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기업은 수익이 떨어지면 개인의 삶을 이렇게 정리해도 되는 건가.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제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할 수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어떻게 회사로 돌아왔는지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마음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사수와 술을 마셨습니다. 사수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을 정도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결코 좋은 역할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을 맡은 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의 결정을 지금 우리가 뒤집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이 무엇인지는 고민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일개 사원이던 제가 회사 전체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결정으로 인한 억울함과 상처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입장에서 회사가 제시할 수 있는 보상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렸습니다. 당사자들에게는 그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 쉽게 합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전했습니다. 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자격 미달에 가까운 인사담당자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회사에 그 금액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고, 개인에게는 삶의 방향을 다시 정비할 시간을 벌어주는 돈이기도 했습니다. 어려웠지만 제게는 꼭 필요했던 첫 경험이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인사팀에 있는 동안 비슷한 역할은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이후 다녔던 회사에서는 직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정에 맞서다 퇴사를 선택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제가 맡는 편이 모두에게 덜 아픈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 주어지면, 그 상황에서 가장 덜 해로운 방식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어려웠던 경험을 통과하며 배운 것이었고, 지금까지 붙들고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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