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가 가르쳐준 투자 태도

2026년 2월 2일 월요일

by 세템브리니


최근 코스피가 5천을 돌파하며 주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상승장의 수혜를 보는 이들이 늘어나자, 그동안 주식과 거리를 두던 사람들까지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나 역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포르투의 민박집에 누워 주식 계좌를 열었다. 그리고 약 십 개월이 지난 지금,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을 검색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루틴을 이어가고 있다.


나도 수익을 좀 냈다. 이제 막 주식을 시작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그래서인지 과거에 주식을 하찮게 여겼던 시간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산이 늘어서만은 아니라, 주식시장을 들여다보며 우리나라 산업 구조를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물류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IT 기업을 거쳐 글로벌 화학 기업에서 오래 일했다. 이후에는 소비재와 유통, 2차 전지, 바이오·제약 회사에서도 일했다. 이렇게 거쳐 온 회사들의 사업군만 떠올려 봐도, 주식을 시작해 볼 만한 배경은 충분했다. 다만 인사 업무의 특성상 산업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적었고, 그만큼 관심도 없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특정 산업에 오래 몸담았다고 해서 반드시 주식의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 다닌 회사에서 만난 선배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화학을 전공했고, 화학 회사에서 평생을 일하며 업계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관련 주식으로 수익을 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회사에 투자했다가 여전히 고점에 묶여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반대로 경력과 무관하게, 자신의 분야에서 얻은 고급 정보로 수익을 낸 지인들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이런 부류 덕분에 수익을 거뒀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식시장 전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보다, 특정 기업의 진행 중인 사업이나 신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인사이트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일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정보를 얻는 경로는 하나에 갇혀 있지 않았다. 결국 주식은 경험의 길이가 아니라, 지금 얼마나 밀도 높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가 승패를 가른다는, 너무도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최근 자신의 분야에서 관록이 있는 한 선배가 주식 투자에 대한 우려를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후배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진심 어린 충고였다. 그런데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자신의 생각을 일반론으로 삼아 미래를 단정하는 태도가, 솔직히 말해 꼰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최근 수익을 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종목을 흘리듯 말하던 내 모습과도 겹쳤다.


마침 오늘 읽고 있던 책에서 이런 반성을 붙잡아 주는 문장을 만났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대해, 당시에는 누구도 그 위험을 정확히 예견하지 못했고 러시아 역시 전략적으로 유인하지 않았는데, 사후에 이르러 양측의 역사가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 과정을 해석한다고 비판한다.


“진행 중인 각 사건의 결말에 대해서는 언제나 많은 예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건이 어떻게 끝나든 ‘그때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늘 존재한다. 그 무수한 예상들 가운데 완전히 상반되는 것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깡그리 잊은 채 말이다.”


나 역시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단지 운이 좋아 내가 말한 방향으로 주가가 오르면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그때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 이는 결과가 나온 뒤에야, 자신의 예측이 옳았음을 과시하는 문장에 불과하다. 최근 주식이 조금 올랐다고 이런 말을 부쩍 많이 하던 내 모습은, 사회에서의 성공 경험을 근거로 타인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미래를 단언하는 말을 줄이려고 한다. 특히 주식에 있어서는 무엇이 오르고 내릴지를 쉽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한다면, 아내에게만 조심스럽게 꺼내는 정도로 충분하다. 이 글은 그런 다짐이자, 최근의 경솔함에 대한 나름의 반성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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