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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습관 Mar 26. 2016

마음속에 머무는 말들

FROM.엄마가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날이 있다.


따스한 봄날의 주말, 늦잠도 실컷 자고 일어나 아침도 아닌 점심도 아닌 그런 시간에 끼니를 때우고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내내 읽기도 하고 소파에 누워 티비도 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이 들기도 하는

그런 날. 


하루 종일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날이 필요한 날이 있다.

오늘은 꼭 그런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갑자기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 졌다. 방금까지 소파와 한 몸이었던 난 쫓겨나듯 집을 나왔다.

특별히 갈 곳이 없었기에 노트북과 읽고 있던 책 한 권을 챙겨 자주 가는 카페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아 좋아하는 밀크티 한 잔을 시켰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엄마 생각이 났다. 그렇게 뜬금없이 머릿속에 엄마가 불쑥 찾아왔다.


어쩌면 불쑥이 아니리라.


엄마와 다툼을 시작했던 일주일 전, 입 밖으로 나오는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쏟아냈던 칼날 같은 말들이

후회가 되었던 그 날 이후로 엄마와 데면데면 해졌으며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조차 숨이 막혔다.

그렇게 일주일을 온통 엄마와 대화했던 그 순간에 멈춰 지냈다.


엄마와의 다툼음 별 게 아니었다.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딸, 하지만 언젠가부터 매일 여행만 다니는 딸이 몹시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는 별 거 아닌, 엄마에겐 별 거인 그런 이유로 시작한 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그 순간에 난 진짜로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싶은 그런 말들을 쏟아내는 걸 마지막으로 

엄마와의 대화는 끝이났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 출근하려던 아침. 내 눈길이 닿은 곳에 놓여있는 분홍색 편지봉투가 놓여 있었다.

한참을 바라봤다. 편지를 집어 들고 가방 깊숙이 편지를 넣어두었다. 하루 종일 바쁘다는 핑계로 편지 봉투를 

뜯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길 집 앞에 주차를 한 후에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던 편지를 꺼내 읽었다. 

편지를 읽을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From. 엄마가


라는 편지 봉투의 '엄마가'라는 세 글자 만으로도 울컥하는 마음에 편지를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엄마를 만나러 가기 전,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좁은 차 안에서 편지를 읽었다.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닌데 생각 없이 했던 말들이 울 딸 가슴 아프게 했다니 미안하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았으면 해. 효경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마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데...'


엄마와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이었음에도 먼저 전하지 못한 내 마음이 고집스러움이 미워졌다.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가까울수록, 사랑할수록 그만큼 충분히 표현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을

왜 항상 잊어버리는 걸까?


엄마와 여행했던 해지던 시간의 가라쓰역


그리고 처음으로 이기적인 딸이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는 날의 설렘을 시작으로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행복함을 만끽하는 나와 반대로

부모님의 마음은 떠나는 날부터 비행기에서 내려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딸의 안녕을 바라고 내내 걱정하신다는 것을!


2박 3일, 7박 9일 아니면 더 오랜 시간을 그렇게 내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걱정으로 마칠 엄마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거기 좋아? 조심해. 늦게까지 다니지 말고!"

"응 걱정 마!"


엄마의 안부에는 소홀했던 무심한 딸, 처음으로 난 내 여행이 미워졌다.

여행을 떠나 보게 되는 몇 안 되는 멋진 순간들 앞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왜 그런 마음을 표현해보지 않았을까? 

언젠간 엄마와 함께, 아빠와 함께, 우리 가족과 함께.. 


마음속에 머무는 말들, 맴돌고만 있는 말들은 꺼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일주일이었다.

하지만 머물고 맴도는 말들 중 고인 말들은 화가 아닌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 또한 배우고 반성했던 일주일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만큼

감사하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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