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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습관 Apr 05. 2016

행복한 기다림이 있는 곳

가라츠에서 떠올린 시간들

작년 겨울, 12월의 끝자락 엄마와 언니와 함께 후쿠오카 여행을 떠났었다. 언니와 처음으로 떠났던 여행지가 후쿠오카였는데 언니와 또 후쿠오카에 가게 되었다. 여느 여행자가 그렇듯 처음 갔던 여행지에 또다시 가게 되면 으레 그 여행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외곽지역을 찾곤 한다. 그렇게 떠난 곳이 후쿠오카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가라츠였다.


화려한 도심의 시내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니 바다가 보였고 매일 바다를 보며 살겠구나 싶을 만큼 바다와 나란히 빼곡한 집들이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해 미리 찾아놓은 식당에 가서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나와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엄마와 언니와의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평소에 하지 않는 이야기도 여행을 하며 자연스레 꺼내게 된다는 것이었다. 워낙 가까운 사람들인지라 필요한 말, 필요하지 않은 말을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렇다 보니, 워낙 가깝다 보니 정작 필요한 말들은 으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당연한 이야기들을 여행 중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족이기에 알 수 있는 그런 대화들 말이다.


그렇게 엄마와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어린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어리지 않은 이제 혼자서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와 학원 시간도 척척 맞춰 갈 수 있을만한 그런 나이였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가 좋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진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질문에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곤 했다. 그리고 그 날, 엄마와 언니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던 그 날 그 답을 찾은 것 같았다. 한 번이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그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도 잠깐 다녀온 후 친구들이랑도 실컷 놀고 집에 돌아와 혼자 집을 지키는 그 시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을 떠올리면 항상 창 밖으로는 이제 막 해가 지고 있어 유난히 눈부셨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난 혼자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할 시간에 맞춰 집에 꼬박꼬박 돌아왔던 그 어린 시절로 말이다.


사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던 것 같다. 친구집에 놀러가면 친구집에 엄마가 계시는 것만으로 그렇게 부러웠고 우산을 두고 학교에 간 날 비라도 내리면 학교가 끝날 때까지 비가 그치게 해달라고 빌었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기 시작하고 네 살 터울의 언니는 이제 막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즈음 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철부지 막내였지만 자연스레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내는 방법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해가 질 무렵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며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번호키 보다 열쇠가 익숙했던 그 시절 현관문의 열쇠 돌리는 소리가 반가워 텔레비전 앞에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강아지처럼 현관문에 뛰쳐나가 엄마를 맞이하더 그 시절로 말이다.


어른이 된 지금, 혼자라는 시간에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졌을 뿐이지 역시 혼자가 아닌 누군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좋다. 내 어린 시절은 유난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분명 난 괜찮았는데 엄마는 아니었나 보다.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여느 초등학교 여자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엄마에게 편지를 썼고 그 날도 역시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한 손에는 편지를 들고 이제 막 들어오는 엄마에게 편지를 내밀었었다. 쑥스러움도 없이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만으로 엄마 아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에게 당장 편지를 읽어보라며 졸랐다.


나의 칭얼거림에 편지를 읽은 엄마는

곧 흐느껴 우셨다.

엄마의 울음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왜 우는지!


내가 기대했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엄마는 왜 우는 걸까 어린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된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내 편지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엄마였다. 그 일은 엄마도 나도 꽤나 뚜렷한 기억이었나 보다.


"엄마 그때 왜 울었어?"
"엄마는 그때 너를 두고 일을 나가는 게 마음이 편지 않고 미안했어. 그런데…"
"왜?"
"그 어린 게 편지에 자꾸만 괜찮다고 하니까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나더라"


그 말을 하며 엄마는 또 울컥하셨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은 아직 어린 나를 혼자 두는 게 여간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학교를 마치면 혼자 밥을 챙겨 먹기도 하고 간식을 사 먹기도 하고 학원도 가며 친구들이랑 놀고 텔레비전도 보던 나였는데 그런 내게 엄마는 계속 미안해하고 계셨던 거다.


그때는 말씀드리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시절 엄마처럼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집은 참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이었다고, 행복한 기다림이 있는 우리 집이 좋았다고 말이다. 기다리면 온 식구가 집으로 돌아와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이다.


가리츠 여행을 하며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며 어릴 적 세모난 지붕에 네모난 집을 그렸던 그 그림과 가라츠의 집들이 꼭 닮아있어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그렇게 집을 떠올렸나보다. 행복한 우리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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