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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습관 Mar 25. 2016

내 뒤에 당신이 계셨기에..

와카야마, 자전거 여행

와카야마 기시역, 자전거 여행


와카야마 여행의 시작으로 찾았던 타마역을 떠나 향한 곳은 타마역에서 출발해 두, 세 정거장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기시역으로 갔다. 기시역은 타마역보다 더 작은 역이었으며 타마역과 마찬가지로 역 주변은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런 기시역에 일부러 내린 이유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였다. 기시역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는 정보를 알게 된 후 와카야마 여행 일정에 조심스레 기시역을 끼워 넣었었다. 날씨가 좋다면 기시역에서 내리고 그렇지 않다며 그대로 돌아오자며!


와카야마를 여행하던 날의 날씨는 자전거를 타야 하는 날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부서지는 햇살에 기분좋은 바람이 불었던 날이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시역에서 내렸다. 기시역에 내리자 우리와 함께 내린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일본인 여행객 세 명뿐이었다. 그만큼 한적한 기차역이다 보니 자전거를 대여해준다는 정보가 거짓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그런 걱정은 기시역에 내려 기차가 떠나는 순간 사라졌지만 말이다. 작고 빨간 귀여운 자전거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으니!

와카야마 기시역에 위치한 자전거 대여소

이렇게 작고 귀여운 자전거였다니!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내게는 딱 알맞은 자전거였다. 해가 질 무렵인지라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서둘러 역무원을 찾았다. 역무원을 만나 자전거 대여에 필요한 간단한 정보를 적은 후에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었다. 대여 비용은 100엔!


반납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았기에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확인하는 역무원에게 우리에게는 충분한 시간이라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시역의 작은 시골 마을을 빨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자전거를 탈 줄 알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서는 타지 못한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미처 내 명령을 따르지 못한 자전거가 그대로 돌진해버릴까 봐 두려운가 보다. 덕분에 자전거란 항상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 타는 것으로 만족했었다. 하지만 기시역의 시골 마을에서는 나의 그런 두려움은 잊힌 지 오래였다. 물론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인지 넓지 않은 길로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오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내 작은 자전거가 다니기에는 충분한 길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며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동네만 해도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울퉁불퉁한 길에 차가 쌩쌩 다니는 커다란 도로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까지 그렇다 보니 자전거를 탈 때면 내게 여유란 없었다. 그렇기에 한적한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며 이 맛에 사람들이 라이딩, 라이딩하며 자전거를 타는구나 하고 처음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허리를 펴고 앉아 두 발을 구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순간,

두 발을 굴러 나아가는 만큼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세기와

드라마와 영화의 장면이 바뀌는 것처럼 시시각각 눈에 들어오는 다른 풍경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마음에 들어오는 풍경에 잠시 멈춰 바라보기도 하는 그런 순간들


그렇게 자전거를 타며 기시역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보았던 풍경들은, 그리고 그 순간의 감각들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생생하게 살아나

금세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이 후로 자전거를 탄 적이 없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지만!

자전거를 타는 부자

"따르릉, 따르릉 "


멀리서 달려오는 자전거 두 대가 보였다.

'여기 보세요. 조심하세요'

를 알리는 신호였다.


그렇게 따르릉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봤을 때, 천천히 다가오는 어린 꼬마의 자전거와 커다란 자전거!

어린 꼬마의 뒤에 얼마나 든든할지 느껴졌기에 작은 두 발로 힘껏 페달을 밟고 있는 꼬마가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두 발자전거를 처음 배우게 되었던 순간, 그리고 내 두 발로 처음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던 순간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자전거 타는 법은 아빠에게 배웠다. 어린 딸아이가 스스로 페달을 굴러 나아갈 수 있을 때까지 아빠는 내 자전거의 꽁무니를 잡고 몇 걸음이나 달리셨을까?


그렇게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아빠가 계셨기에 흔들흔들 언제는 나를 바닥에 내던질 수 있는 자전거 위에서 열심히 페달을 굴렀다. 그리고 그런 아빠에게 끊임없이 확인했다.


"아빠 잘 잡고 있지?"

"앞에 봐!!"


퉁명스럽게 말하는 아빠의 말에 내심 서운했지만 아빠가 뒤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자전거 타기를 배우던 어느 날, 그 날도 어김없이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잘 잡고 있지?"

. . .

"아빠! 아빠!!..."


불안한 마음에 더 힘껏 소리쳤다. 아무리 소리쳐도 나를 안심시키는 아빠의 목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는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고 저 멀리서 아빠가 뛰어오셨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뛰어오셨다. 아빠에게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왜 잡아주지 않았느냐며 울며 소리를 질렀지만 아빠의 얼굴은 어쩐지 웃고 계셨던 것 같다. 한참을 뛰어오신 만큼 난 꽤 오래 스스로의 힘으로 자전거를 탔다. 내 생의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탔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혼자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유년시절,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의 추억이다. 기시역에서 우연히 만난 꼬마와 아버지 덕분에 나는 그 순간 아빠에게 처음 자전거를 배웠던 꼬마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 뒤에서 자전거를 잡고 뛰시던 아빠가 뒤에 계셨을 때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운 게 없었으니까!

뒤에 계신 것만으로 느껴지는 그 든든함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꼬마를 벗어나 점점 자라나며 아빠와 데면데면 해진 요즘, 아빠에게 자전거를 배우던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보아야겠다.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는 누구의 도움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지금도

여전히 아빠가 계셔서 내 뒤는, 내 마음은 항상 든든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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