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습관 Apr 06. 2016

TO BE WITH YOU

런던,  이슥해질 무렵 차가운 밤

TO BE WITH TOU


장시간 비행을 마치고 유난히 까다롭다던 히드로 공항의 입국심사도 잘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마중을 나와 주시니 숙소를 찾아 헤매는 걱정은 덜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장시간의 비행으로 지쳐있을 몸을 추스를 틈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조명의 게스트하우스 안에서 그저 휴식을 취하기에는 그날 런던의 날씨는 말도 못 하게 좋았다. 흐린 하늘이 더 어울리는 런던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어두컴컴한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파란 하늘을 봤을 때 그것만으로 런던의 시작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우리와 마주친 사장님은 우리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래 몸소 경험해보면 알겠지!"
"네?"
"런던의 추위 말이야!"


이렇게 화창한 날 설마 그렇게 추울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반팔티에 가디건을 챙겨 입고 나가던 찰나였다.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을까 고민했지만 갈아입을 옷도 별반 다를게 없었기에 그렇게 빅벤을 향해 걸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빅벤은 정말 가까웠다. 빅벤, 런던아이 등 런던의 상징들을 마주한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사장님의 충고처럼 우리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서머타임이라 해가 길었던 7월의 런던, 설마 이렇게 추울까 싶었다. 화창한 날도 이렇게 쌀쌀한 날씨라면 비가 오는 런던은 어떨까? 캐리어 안에 있는 얇은 옷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첫날의 런던은 첫 유럽여행의 감동과 런던의 상징들을 마주한 기쁨과 더불어 간간이 찾아오는 견디기 힘든 추위에 아까운 시간을 숙소로 돌아가야 할까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결국 다음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을 사러 가는 일이었다. 캐리어 안에 챙겨 온 예쁜 옷들은 쳐다도 보지 않고 두꺼운 후드티를 하나 사 입었다. 어쨌든 그건 다음날의 일이었다. 추위에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우린 빅벤을 뒤로 하고 빨간 버스를 타고 타워브리지로 향했다. 빅벤, 런던아이, 타워브리지까지 첫날은 그저 상상 속의 런던을 현실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나 보다. 타워브리지에 도착할 무렵 해가 다 지고 있었다. 런던에서의 첫날 깜깜한 밤이 될 시간에도 해가 떠 있는 게 신기했다. 내가 이렇게 내 나라에서 정말 먼 곳에 와 있구나를 알게 해주는 시간과 하늘이었다.


타워브리지에 도착할 즈음 컨디션 조절을 위해 결국 숙소로 돌아가자고 결심했다. 오늘은 시작일 뿐이니까!

하지만 돌아가겠다는 굳은 다짐은 타워브리지 앞에 한 번 더 무너졌다. 내일 다시 오자던 그곳에서 한 번만 볼보고 가자! 하는 마음은 이미 타워브리지에 푹 빠져 그곳의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런던의 보랏빛 하늘도, 반짝반짝 이제 막 빛이 나던 야경도, 타워브리지 주변에 행복한 관광객들도 그곳을 떠나기에 떠나는 발길을 붙잡을 이유들이 너무 많았다.


써머타임, 해질무렵 런던의 하늘
런던의 상징, 타워브릿지

그리고 우리를 핌리코까지 데려다 줄 택시 생각이 간절했다. 물가가 비싼 런던인걸 알기에 택시는 사치라는 걸 알기에 유난히 멀었던 버스 정류장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런던의 밤은 무섭지 않았다. 늦은 밤에도 새벽에도 안전하다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말씀이 떠올랐다. 말씀처럼 런던의 거리는 무섭지 않았다. 또 말씀처럼 런던의 추위는 무서웠다.


버스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숙소에 무사히 갈 수 있겠지 불안해질 무렵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냥 노랫소리가 아니라 다 함께 모여 부르는 떼창이었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은 맞은편에 위치한 펍이었다. 다 함께 부르는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불안감이 사라졌다. 오지 않는 버스를 바라보던 그 불안함은 온데간데없고 펍에서 들려오는 그 노랫소리에만 집중했다. 조금 더 그 노랫소리를 크게 듣고 싶었다.


"i'm the one who wants to be with you deep inside i hope you fell it too.."

많이 들어온 노래였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였다면 이 노래가 그렇게 힘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그저 노랫소리가 잘 들리는 곳에 서서 노래 한 곡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펍에서 들려오던 노래가 끝나고 그 순간의 추위도 오지 않는 버스에 대한 불안감도 잊을 수 있었다. 노랫소리와 다 함께 모여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마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눈으로 본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만큼 행복한 노랫소리였다.


지금도 그 순간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후로 유난히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머릿속이 깜깜한 밤처럼 느껴질 때 이 노래를 듣는다. 그렇다고 머릿속의 걱정과 불안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이 깜깜한 밤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깜깜한 밤이 지나면 깜깜함이 점점 밝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불안한 순간에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바뀐 것이라곤 그저 내 기분, 마음이었지..


런던에서 보낸 첫날의 추위도

이슥해진 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혼자였다면 더 두려웠던 순간에 함께 였기에 나는 괜찮았을 것이다. 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함께 하기에 행복할 수 있는 노랫소리였다. 함께 있음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에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랫소리…


TO BE WITH YOU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한 하루를 기대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