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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an 17. 2021

식당이라는 세계

일주일에 한 번, 육체노동의 맛


 여태껏 굳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나는 사실 투잡러이다.

 평일에는 사무직으로 일을 하고, 주말 중 하루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식당일을 시작한 계기는 심플하게 혼자 살다 보니 주말마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였다. 또래의 기혼 친구들처럼 주말마다 시댁/친정 등등 방문할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 시국에 은둔형 외톨이 생활의 연속인지라 만날 친구도 없고, 누군가와 연애 중도 아니다.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 음... 안 한다. 이 이상 내 인생에서 더 이루고 싶은 것도, 꼭 성취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누차 말하지만 나는 공부하기 싫어서 어른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도는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항상 다짐은 하지만 (운동을 한다던지, 주식 투자 공부를 한다던지, 글을 쓴다던지..) 다짐만 했을 뿐, 뒹굴뒹굴 영화 보면서 게임이나 좀 하다 보면 어느새 월요일이 코앞이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주말이라는 이틀의 시간을 그냥 집구석에서 멍하니 보내버리는 것은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일주일 내리 재택근무를 진행하던 어느 날. 그 날따라 자려고 누웠는데 꼬리뼈가 무지하게 시큰거렸다. 워낙 엉덩이에 살이 없는 편이기도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에 거의 5,6시간씩 연속으로 앉아 있는 경우도 있으니 이대로라면 정말 꼬리뼈에 염증이 생길지도 모를 지경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어디에서 얼핏 듣기로는, 2시간 이상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것은 거의 흡연만큼이나 몸에 안 좋다던데..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평일에 충분히 움직일 수 없다면 주말에라도 종일 서서 일을 해보면 어떨까? 나는 게으르고 굼떠서 잠깐 걷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일로 써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서있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어차피 이 시국에 어디 가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겸사겸사 한 번 해보지 뭐.


그렇게 나는 주 5일 사무직, 주말 1일 식당 노동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일하는 식당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주로 입구에서 들어오는 손님에게 방역 지침에 따라 자리를 안내하고, 기본 밑반찬이나 뷔페의 메뉴가 비지 않도록 체크하는 일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식당은 할인이나 포장 이벤트, 신메뉴 개발 등등 꽤나 역동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아무래도 띄엄띄엄 일하는 내가 오자마자 직접 주문을 받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나는 손님에게 자리를 안내한 뒤, 안쪽에서 이 쪽을 쳐다보고 있는 직원들에게 재빨리 외친다.



 "3번 테이블, 세 분 오셨어요!"



 그렇게 나와 서버의 눈빛 교환이 이뤄지면 주문받을 준비를 마친 종업원이 손님에게 가서 주문을 받아온다. 그렇게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세팅이 나갈 수 있도록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주방 앞에 비치된 바에서 카트에 밑반찬들을 인원수에 맞춰 올려두고, 다음 손님을 위해 또 밑반찬을 담아둔다.


나의 주 활동(?) 무대. 특히 이 날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뷔페 선반에 올릴 귤을 수북히 썰어야 했다.


 주방에서 설거지되어 나온 식기나 집게, 가위, 그릇 등을 각 테이블에 세팅하고, 손님들이 왔다 나간 테이블을 치우고 소독한다. 손님들이 들고 날 때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자리에 명부와 펜을 가져다 드리고 다시 가져온다. 뷔페에 메뉴가 떨어져 있으면 직접 세팅하기도 하고, 포장용 밑반찬이 떨어져 있으면 서둘러 만들기도 한다. 바깥에 대기 중인 손님이 있으면 번호표를 만들어 전달하고, 추운 날씨에 밖에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을 대기 손님을 찾아 뛰어다니기도 한다. 이 '식당'이라는 세계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한순간도 앉아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인다. 마치 부레가 없어서 계속해서 헤엄치지 않으면 바다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만다는 상어처럼. 이것은 분명 하루에 9시간을 사무실에 앉아있는 나의 생활 패턴과는 180도 다른 것이다.


 주말 점심 피크타임 조금 전에 도착해서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3시쯤이 된다. 그럼 슬슬 직원 점심시간이다. 주방으로부터 주방 이모가 큰 솥에 담아 끓여내는 그 날의 메뉴의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후각을 자극할 때쯤 되면, 피크 타임을 지나 손님이 빠진 식당 한 구석에 직원들이 밥 먹을 상을 차린다.


 직원 식사는 주말은 3시가 넘어서도 손님이 꽤 있는 편이기 때문에 반씩 인원을 나누어 먹을 때도 있고, 가끔씩 손님이 없을 때는 한꺼번에 다 같이 먹을 때도 있다. 그렇게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다. 대여섯 명이 먹을 양을 한 번에 조리해 내기 때문에 맛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거 조금 서서 움직였다고 극도의 피로를 호소하는 내 허약한 몸이 음식의 맛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것인지 그 원인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근 내가 일주일 중에 가장 밥을 맛있게 먹는 순간은 바로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라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식당이 시 외곽지에서 주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이 식당의 직원들의 연령대는 꽤 높은 편이다. 밥을 먹다 보면 주변엔 30대 중반인 나보다 나이가 최소 10살, 20살 이상 차이 나는 '언니'들 뿐이다. 언니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인 나를 무척 신경 쓰고 챙겨주신다.



 "고등어조림 좋아해?"



 직원 식사를 담당하는 주방 이모는 꼭 그렇게 내게 그 날의 메뉴에 대한 의향을 물어본다. (나에게 결정권이 있는 건 아니고, 이미 다 조리한 다음에 물어보신다. 그냥 취향 파악 용도인 듯) 사실 대부분은 답정너라, '네, 저 고등어조림 엄청 좋아해요!'라고 기대에 찬 답변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답이지만. 사실, 그 시간쯤 되면 설사 내가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이 메뉴로 나온다 해도 한 사발은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다. 오죽하면 알레르기 등 건강상의 이슈로 인한 것이 아닌, 그저 단순 기호에 의한 편식은 주 1회 육체노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교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혼밥같이 찍혔지만 식당 식구들과 같이 먹는 밥! 나는 굴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날 식사로 나온 굴 떡국은 국물까지 완식했다.


 철저히 내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보면, 나로서는 오전 내내 바쁘게 홀을 뛰어다니다 처음으로 자리에 앉았는데 맛있는 밥이 차려져 있고, 심지어 그 밥상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밥상이다. 그렇게 언니들의 관심을 한 몸에 듬뿍 받으며 하하호호 밥을 먹다 보면, 힘들었던 몸도 한껏 리프레시가 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도 쭉 고립된 삶을 살았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악화된 이후로는 더더욱 고립된 삶을 살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래도 일주일을 살아가는 중에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일과 중에 반드시 있었다. 그 '누군가'는 때로는 회사 동료들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고, 이외 사회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된 이후로는 나는 거의 밥 먹으면서 누구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혼자 먹었으니까. 회사에서 먹는 점심도 따로 도시락을 싸와서 먹고, 저녁 약속도 잡지 않고 집에 와서 혼자 먹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감각을 점점 잊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식당에서의 일과 증 식사시간은 코로나 이후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행동을 규칙적으로 하게 해 준 귀한 경험이 되어주었다. 밥을 같이 먹는 사이.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것을 '식구'라고 하던가.


그래, 만약 지금의 내 삶에 '식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언니 들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순간 같은 테이블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언니, 언니, 하고 서로를 부르며 대화를 나누는 이 테이블의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우아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나는 <나는 왜 일하는가>라는 글에서, 내가 일하는 이유는 세상 사람 중 누군가는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서라고 쓴 적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에, 지독한 내향인에, 관계 맺기에 서투른 나는 어쩌면 인간관계가 강제로 맺어지는 학교나 일터가 아니면 그러한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획득할 능력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최근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식당에서 일을 하는 일상이 꽤 즐겁고 신이 난다.


 나의 본업이 사무직이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비교적 루틴 하고 안정적인 업무만 하다가 식당이라는 '몸'으로 뛰는 세계를 경험하니 이건 또 완벽한 신세계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다르다. 뭔가 내가 늘 뇌와 정신의 한 부분만 쓰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주말 중 단 하루, 식당에서 일할 때만큼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뇌의 영역과 나의 신체적인 능력을 한꺼번에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사무직 노동자로서의 나 자신과 몸으로 일하는 나 자신 사이의 괴리감이 내 일상에 신선함을 더해주는 것 같다.


 평일에 출근하는 사무실에서의 나의 위치는 중간 실무자이다. 때문에 어느 정도 내 업무에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어 나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간섭을 하는 사람이 적지만, 여기에서 나는 철저히 초짜이기에 경험이 부족한, 그리하여 챙겨줘야 할 막내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하는 나는 일주일 내내 가게를 지키는 언니들보다 일의 습득이나 처리가 확실히 느리다. 고작 일주일 간격으로 왔을 뿐인데, 그 사이에 바뀌어 있는 일들이 의외로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뷔페로 차려놓은 밑반찬의 종류라던지, 행사 메뉴의 가격이라던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배달 앱 서비스의 주문을 처리하는 방식이라던지.


 오직 이 곳이 '식당'이라는 세계이기에, 이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들과 역동성이 나를 끊임없이 매료시킨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눈빛이나 제스처 만으로 서로가 필요로 하는 사항을 알아듣고, 누군가가 하다 손님의 급한 호출로 비운 자리는 금세 다른 '언니'가 다가와 채운다. 식당 일은 보다 근사하면서도 직접적인 분업 체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때로는 투닥거리기도 하고, 바쁠 땐 날카로워져서 서로 투닥거릴 때도 있지만 결국은 피크 타임이 지난 뒤 함께 모여 점심을 먹고, 그 날 따라 한가한 타이밍이 맞아 다 같이 커피 한잔 할 시간이 주어질 땐 그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순수하게 행복해할 수 있는 이 '언니'들의 생태계가 나는 너무도 좋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고, 떠들고, 일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난다. 집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고 영상만 보던 나도 식당일을 하는 동안에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놓게 된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디지털 디톡스와 육체노동을 병행한 뒤 집에 돌아오면 몸이 힘들어서 그런지 뭔가 밥을 차려서 먹고 싶다기보다는 시원한 무언가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일과를 끝낸 다음 집에 와서 샤워를 끝내고 맥주 한잔 시원하게 때리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대충 알겠달까.


 오늘 육체노동을 하고 온 나의 마감 세리머니의 축배를 들 술은 달달 새콤한 레몬 청을 잔뜩 올린 조니 레몬 한 잔이다.




 이렇게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끝내고 조니 레몬 한 잔을 말아 시원하게 쭉- 들이켜고 나면, 그 날은 드물게도 아주 달디 단 잠을 잔다.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마실 수 있게 해 주고, 기분 좋게 지쳐서 푹 잠들 수 있게끔 해 주는 나의 두 번째 직업이 나는 참 좋다.






  한 번은 식당 일을 마친 뒤 집으로 가기 전 식당 옆에 있는 화원에 들러 화분을 산 적이 있었다. 이 쪽 동네가 워낙 평소 인적이 드물고 특히 혼자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동네라 그런지, 내가 산 화분을 포장하던 화원 주인이 나를 곁눈질하며 불쑥,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왔다. 


 그때, 순간적으로 잠시 뇌에 버퍼링이 걸렸다. 투잡러로서의 근본적인 자아 혼란이 생겨, '당신은 뭐하는 사람입니까?(+뭐하는 사람이길래 이 시간에 여기 혼자 있는 거죠?)'라는 그 단순한 물음에 마찬가지로 단순하게 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글쎄, 나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나는 손님용 테이블에 나갈 밑반찬을 부지런히 담느라 겉절이 국물이 튄 자국이 선명한 나의 검은 레깅스를 보며 잠깐 고민하다 대충 대답했다.


"저 요 앞 식당에서 일하는데요."

"그래요?"


 포장한 화분을 내게 건네며, 화원 주인은 툭 덧붙이듯 말을 이었다.



"식당에서 일하실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식당일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니 그건 또 대체 무슨 말일까. 식당일하게 생긴 사람이 따로 있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게 대체 어떤 생김새란 말인가. 화분을 든 채로 우두커니 생각해보아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는 한 가지 생각은... 어찌 됐든 나는 식당 일을 하는 게 좋고, 내가 식당 일을 하는 사람이라 좋다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음, 그래. 이 정도면 됐지 뭐. 다른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지금 매주 이 일을 하며 내가 느끼는 재미와 무미건조한 일상에 조금씩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활기니까 말이다.


 그렇게 매주 주말마다, 식당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뒤에서 든든하게 나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언니'들에게 나는 오늘도 우렁차게 외친다.



"언니, 두 분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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