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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Dec 31. 2020

연말이 뭐라고

내가 연말을 기념하지 않는 이유

 

언제였을까. 아직 내가 호주에 있었을 때니까, 아마도 2009년의 12월 31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애 처음으로 남반구에서 무더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나는 연이어 해가 바뀌는 순간을 맞이하고자 하고 있었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들고 입국하여 미친 듯이 일만 하던 나는, 돈돈 하면서 옷 한 벌도 함부로 사지 않고, 돈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지냈었지만, 크리스마스부터 모두가 Holiday mood에 돌입하는 그 나라 특유의 분위기에는 나도 오랜만에 마음이 들뜨고 말았던 것이다. 마침 내가 일하던 카페도 연말연시 시즌에 맞춰 잠깐 문을 닫게 되었고, 나는 이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직 '돈을 모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호주에 입국한 이후로 여행 한번 가지 않고 돈만 벌던 내게, 참으로 오랜만에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 것이다.


 12월 31일에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곧바로 Noosa 해변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당시 내가 있는 곳에서는 그나마 갈만한 바다였다. 바다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바다에서 1월 1일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침무렵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혼자 길을 떠났다.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던 기차 여행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나는 거의 어두컴컴해질 때쯤에야 Noosa 근처의 어떤 역에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다소 흐릿하다. (뭐 일기라도 좀 써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당시 나는 워낙에 매일을 똑같이 살았던지라 별다르게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일단 짐을 내려놓으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호주의 호스텔 환경이 그토록 열악하다는 것에 먼저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다음날 낮에 찍은 사진. '호스텔'이 유럽의 호스텔 수준이 아니었다....


 일단 숙소가 컨테이너 박스같이 더러웠다. 급하게 구한 혼성 도미토리 방 안에는 온갖 짐들이 널려져 있어 무척 지저분했다! 여기저기 널린 짐들과 흔적들로 미루어보건대,  4명 정원인 이 방에서 나를 제외한 3인의 룸메이트들은 무조건 남자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일단 짐을 대충 내려놓고 차림을 가볍게 한 나는 어딘지 모를 바다를 찾아 도심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버스가 다니는 것 같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서 한 30분 정도 나갔을 무렵 삐까뻔쩍한 Noosa 해변 근처 시내가 나왔다. 시간은 한 8시, 아니 9시쯤 되었을까. 사람들은 이미 여기저기서 "Happy New Year!"를 외칠 준비를 하며 잔뜩 취해 흥청망청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쯤 되니 완전히 지쳐서 배가 고팠던 나는 서둘러 식당을 찾았다. 그러나 모든 식당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그룹 단위로 모여 있던 손님들 사이에서 오직 혼자였던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자리를 찾고 찾아, 한 PUB의 어두운 구석자리에 겨우 한 자리 난 자리에 앉아 혼자 허겁지겁 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나니, 조금씩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단언컨대 그날 밤, Noosa의 그 해변에서 일행 없이 혼자 있었던 것은 오직 나뿐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이미 일행들과 함께 있어,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고 떠들며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혼자 있는 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혼자서 여행한다는 것이 이렇게 외롭고 당황스러운 일일 줄은 그전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 해에는 인도에서, 이탈리아에서 각각 새해를 보냈었는데, 그렇게 혼자 있다는 느낌이 처절하게 와 닿는 연말연시는 정말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 봤던 것이다. 심지어 그 날 그곳을 돌아다니며 본 사람 중에서 동양인도 한 명도 없어서 더욱 철저히 외로웠다. (내가 있던 지역에서 더 가까웠던 골드코스트는 너무 한국인이 많다고 해서, 일부러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Noosa 해변까지 온 건데 심지어 이렇게까지 동양인이 한 명도 없을 줄도 몰랐다!)


 이전까지 스스로 꽤나 혼자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런 분위기에서 혼자 있는 것은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게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선도 향할 곳이 없고,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었던 나는 공연히 슬퍼졌다. 호주에 온 지 거의 1년 만에 큰 맘먹고 떠난 첫 여행이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할 줄이야. 심지어 오늘은 New Year's Eve인데 말이다. 잔뜩 흥분해서 즐겁게 떠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인파를 뚫고 어디 놀러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는 우물쭈물 피자를 먹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호스텔로 돌아가 조금 잠을 자고 나온 다음에 일출을 보러 갈 생각이었지만.. 이 어두운 시간에, 나를 제외하고서는 다 남자 투숙객이었던 그런 지저분한 도미토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밖에서 해가 뜰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다행히 남반구의 12월 31일 밤은 따뜻했다. 밥도 먹었겠다, 시간도 아직 여유가 있었는지라 나는 일단 사전에 조사해 둔 일출이 보인다는 바다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도 인산인해였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호주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정말 정말 열악하다. 그중에서도 버스가 정말 최악이다. 쓸데없이 땅이 넓어서 여기저기 다 비슷하게 생긴지라, 버스를 타고 다니다 길을 잃은 적도 많다. 그날 밤도 나는 그것을 여실히 느꼈다. 어쩌면 나는 그날 밤 버스를 타선 안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버스 안에 타 있던 흥청망청하던 젊은이들은 대체 여기가 어딘지, 이런 곳에 버스정류장이 있긴 한 건지 모를 어두컴컴한 동네에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스는 점점 바다가 아닌 산속 주택가로 향했고, 점점 승객들이 사라져 갔다. 나는 불안했다. 1월 1일의 떠오르는 첫 해를 보고 싶긴 했다. 그렇지만 2009년이었고, 나에겐 스마트폰이 없었다. 길을 잃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결국 버스가 중간에 어느 커다란 마트 겸 극장 근처에서 섰을 때, 나는 거기서 내려서 다시 원래 내가 있던 Noosa 해변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려서 잡아 탔다. 콩나물시루 같은, 술냄새가 잔뜩 풍기는 그런 버스 안에서 나는 1월 1일을 맞았다.


 적어도 그날, Noosa 해변으로 향하면서 내가 꿈꿨던 1월 1일이 되는 순간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Happy New Year! 를 외쳐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로서, 이 넓은 땅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우여곡절 끝에 원래 내가 버스를 타고 출발했던, 호스텔 근처에 위치한 해변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게와 술집들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 호스텔로는 도저히 바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나는 결국 터덜터덜, 상가 너머 보이는 해변으로 걸어가 무릎을 감싸고 쪼그려 앉았다.


밝아질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일출이 보이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날이 밝아질 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기다렸다 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멍하니 해변에 앉아있었다. 주변에는 술인지 마약인지 대체 뭐에 취했는지 모를 사람들이 널브러져 끙끙 앓고 있었다. 새벽이라 덥진 않았지만, 습한 바닷바람이 지독한 술냄새를 품고 찐득하게 불어왔다. 하룻밤의 모험(?)으로 잔뜩 땀범벅이 된 몸을 씻고 싶었지만 도무지 씻을 수가 없었다. 씻으려면 호스텔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결국 그 날 나는 누구와도 "Happy New Year!"라는 인사를 나눌 수 없었고, 새로운 해의 아침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안고 떠오르는 태양도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해가 뜨는 방향도 저 쪽인데 그나마도 언덕에 가려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바닷가에서 밤을 꼴딱 새운 뒤 다음날 아침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데 '혼자 온' 손님인 나를 난감해하는 웨이터들의 모습에 또 기분이 상했다. 1월 1일 아침 식사 대목에 혼자서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밥을 먹는 게 맘에 안 드는 것이었는지 어쨌는지. 기분 탓이었는지 그 날 먹었던 음식은 심지어 바가지 가격에 느끼하고 맛도 없었다.


2010년 1월 1일 아침 나의 첫 끼.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엄청 비싸고 맛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스텔에 짐을 찾으러 돌아갔더니 팬티만 입고 잠을 자고 있던 남자가 지저분한 침대에서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눈꼽도 떼지 않은 눈으로 내게 윙크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 남자가 지나간 방향에서 담배 냄새와 술냄새가 섞인 찌든 내가 났다. 아침이라 어제보다 밝아서 그런지 내게 배정되었던 도미토리 룸의 끔찍한 실상이 한결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잔뜩 지쳐서 바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냥 집에나 있을 걸. 그놈의 연말이 뭐라고.
괜히 의미 부여한답시고 나와서 개고생만 했네.'



 그 날의 그 끔찍한 경험 이후 나는 연말이라고, 언제라고, 갑자기 나 답지 않은 '안 하던 짓'을 하다가는 개고생을 하게 된다는 처절한 삶의 교훈을 얻었다. 비록 Holiday Season이라고 온 세상이 들뜬다 해도, 사실 '나'에게만 포커스를 두고 생각해보면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들뜰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해는 똑같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때부터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다가오는 것들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생일이든, 혹은 신년맞이이든. 그것은 그저 반복되며 다가오는 날들 중의 하루이지, 결코 내가 스스로 성취해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결국  나  역시 종국에는 '생일은 스스로 일궈낸 성취가 아니기 때문에 축하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브라이언 키니의 시니컬한 신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일 뿐이지만!)





 

 나는 지금 혼자 집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확실히, 사람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라면 10년 전의 그 끔찍했던 새해 전야 이후로 나는 꽤 성장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외톨이인 것은 똑같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는 어떻게 이 들뜬 연말연시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채, 글을 쓰며 혼자 차분하고 편안하게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까.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한없이 심심하고, 초라해 보이더라도. 적어도 10년 전의 그 '나'답지 않았던 새해 전야보다는 확실히 편안하고 효율적인 선택인 것 같다.


 해마다 연말이면 방송에서 각종 시상식을 한다. TV를 잘 보지 않으면 누군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TV 화면에 얼굴을 비추며 서로 1년 간의 공로를 칭찬하고, 온갖 이름을 붙여서 서로 상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뭔지는 잘 모르지겠만 어쨌든 자기들끼리 무척 즐거워 보인다. 만년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나로서는 저렇게 명목을 붙여서 상을 줄 사람도, 잔뜩 축하해 줄 사람도 없으니, 오늘은 그런 것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냥 이렇게 조용히 나 스스로 지난 2020년간 이루었던 것들에 대해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보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한 해의 마지막날 혼자 방구석에서 누군지도 잘 모르겠는 타인이, 뭘 해서 받는지도 잘 모르겠는 상을 받는 것을 지켜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봤을 때, 나 스스로 기념할만한 일들은 아래의 4가지 일들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그 일들이 전부 이 브런치에 기록이 되어 있기에, 관련한 내용과 감상은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브런치 글 링크로 대체한다.)



1. 인생 최초로 수술을 받았고, 별 탈 없이 좋은 경과로 회복했다.

관련 글  : LIFE, TO BE CONTINUED_정말 암 걸릴 뻔한 이야기


2.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했다.

관련 글 1: 내 첫 책,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를 출간하며

관련 글 2: 아무것도 아닌 내가 클라이밍 에세이를 출간한 이유


3. 집을 샀다.

관련 글 : 얼떨결에 내 집 마련_네, 제가 패닉 바잉 한 30대입니다


4. 주식 투자를 시작했고, 1년간 600만 원을 벌었다.

관련 글 : 우울할 땐 주식투자_6개월 차 주린이 루틴



 보다시피 이러니 저러니 해도, 2020년 한 해 동안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해냈고, 죽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무사히 살아 있다!


 사실 현시점에서만 생각해보자면 2020년이 내 지난 인생에서 각별히 행복했던 해였다 거나, 특별히 무엇인가를 성취한 한 해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먼 훗날 돌이켜 봤을 때는 분명 2020년의 이 상태를 '아, 그때 나 정말 행복했구나!'라고 느낄 때가 반드시 올 것 같다. (멀리서 봐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랄까.)


 앞으로도 나는 연말을 단순히 '한 해의 마지막이니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기쁜 듯이 말하니까'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기념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나의 노력 없이도 저절로 다가오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휩쓸리듯 기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 나는 '올해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이것을 극복했고, 아직 살아있다'는, 돌이켜본 시간 속에서 내가 이뤄낸 것들에 대해 기념하며 이런 날들을 보내고 싶다. 그렇기에 다음 한 해도 나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이 다가오는 것들에 현명하게 대응하며, 그 안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이뤄나갈 것이다.


 내년 이 맘때쯤이면 또 이렇게 방구석에서 혼자 1년을 돌아보고 있을지 모를 나 스스로에게, 그럴 만한 성취가 있었기에 기꺼이 기념할 수 있는 2021년을 선물하기 위해서!





 나이가 들수록 해가 갈 때마다 바라는 건 늘 하나인 것 같다. 바로 '아프지 말자'. 나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든. 누군가가 아프고 병들어가는 모습을 보거나, 누군가를 잃는 것은 너무도 가슴이 아픈 일이니까.

 다가올 2021년이면 나의 새 중 한 마리는 11살이 된다. 세계 기록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초장수하는 문조가 되길 바라며. 내년에도 새들과 함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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