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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r 10. 2021

주식하는 (작고 귀여운) 마음

수익이 작아도 결코 작지 않다


아버지는 내게 항상 말씀하셨다.



“너는 어쩜 애가 그렇게 그릇이 작니?”



 맞는 말이다. 나는 본디 소심했다. 아버지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30대 중반의 나이에 사업으로 성공과 파산이라는 쓴 맛을 봤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정반대로 극단적인 모험은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미래가 예측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평생을 사자의 심장으로 급등과 급락을 오가며 살았던 아버지의 인생 그래프에 비하면, 내 인생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박스권에만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그런 내가, 2020년 1월에 단타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것은 내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엄청난 모험의 세계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그것은, ‘사고는 얼마든지 쳐도 좋으니 주식 투자만큼은 절대 하지 마라’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내 인생 최초의 반항이기도 했다.


 전 세계가 예상하지 못했던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존재했던 2020년의 요동치던 시장은 초보 개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시장에 뛰어들었던 내게는 오히려 엄청난 기회가 되어주었다. 코로나 19, 언택트, 팬데믹, 백신, 치료제 등… 시장에 만연한 공포와 기대감에 코스피 지수 1400부터 3000을 돌파하기까지, 다른 투자자라면 적어도 5년에서 10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안에 겪어볼 만한 수많은 이슈들을 단 1년의 시간 동안 속성 학습처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500만 원 ~ 1,800만 원 (조금씩 씨드를 늘렸다) 정도를 투입하여 총 600만 원의 실현 수익을 올렸다. 2020년에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초보 개미 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익률이다. 그렇지만 이 시국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수많은 자극적인 성공담- 빚투 해서 돈을 몇 배로 불렸다거나, 집을 샀다거나 - 을 듣다 보면, 어쩐지 그 황금 같은 시기에 남들처럼 몇 배로 돈을 불리지 못한 나의 계좌 잔고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거래 내역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남들은 100만 원, 500만 원씩 ‘풀 매수’하는 종목들을 나는 하루에 2,3만 원씩 자잘하게 사 모았으니까. 매일 꾸준히 사 모으다가, ‘불기둥’ 한번 치솟으면 수익 실현하고, 또 때로는 5%만 수익을 보면 팔아버리기도 했다. 2020년 나의 주식 투자 목표는 ‘씨드를 몇 배로 불리자’가 아니라 ‘그 날 그 날 커피값, 밥값으로 일 실현손익 5,000원~10,000원만 벌자’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내 2020년 실현손익 그래프를 보면 정말 그렇다.





보다시피 내 익절 그래프는 계단식 성장을 기록하지도 못했고, 마법의 복리효과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이 그래프가 꽤 뿌듯하다. 비록 드라마틱한 급경사는 없을지언정, 결과적으로 중요한 건 기울기가 아니라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는 그 방향이라고 생각하니까.


예전에 우울할 땐 주식투자라는 글에도 썼었지만, 예전에 알프스 산맥 중 한 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그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처음 한 생각은 ‘생각보다 경사가 낮다’는 것이었다. 굳이 지팡이를 짚고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평지 같은 길을 꾸준히, 한참을 올라가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높은 위치까지 도달해 있어 무척 놀랐다. 멋진 경치는 덤이고.


당시 내가 올랐던 산. 완만한 경사를 따라 쭉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해발 2200미터였다.


 하루 한 번 장을 마치고 MTS 앱의 평가 조회 메뉴를 체크할 때마다, 나의 익절 그래프는 항상 비슷하게 완만한 우상향이다. 그렇게 딱히 화려하거나 재미(?) 있어 보이는 경사가 없는 내 소소한 익절 그래프를 볼 때마다, 나는 그때 알프스에서 내가 올랐던 그 거대한 산을 떠올린다. 적어도 내 익절 그래프는 드라마틱한 급경사는 없을지언정, 계속해서 상승하고, 쌓여가고 있으니까. 매일 5천 원, 1만 원이면 어떤가? 잃지 않고 매일 꾸준히 +를 더해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개미 투자자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쨌든 작년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더라면 분명히 얻지 못했을 600만 원이라는 소중한 수익을 주식으로 얻지 않았는가.


보라, 내 수익은 작아도 결코 작지 않다!


 오직 야수의 심장들만이 환호를 받고 있는 이 시국에, 나처럼 소액으로 매일 조금씩 담아서 적립식 투자를 해서 수익을 거두는 그런 소심한 투자법은 어찌 보면 매우 하찮고 소소해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수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밖에 안 넣었냐, 더 넣었으면 더 벌었을 텐데’라고 오히려 안타까워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다. 처음엔 그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내가 지금 투자를 잘못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며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다. 그렇게 작고 하찮고 마냥 귀엽게만 보일지라도 개미에게도 나름대로 개미의 철학이 있다는 것을.


 난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지, 카지노나 로또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통해 당장 인생을 바꿀 정도의 돈을 벌 순 없을지라도 매일매일 소소하고 재미있게 꾸준한 보람을 개미처럼 벌어가고 싶다. 아직은 돈보다는 주식이 내게 주는 향상심을 즐기고 싶다. 아직은 고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재미있는 단계이기도 하고.


 또,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나의 이 소심함이야말로 바로 2020년 한해 동안 내가 600만 원이라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 준 MVP라고 생각한다. 소심한 마음에 작은 스케일로 움직이니, 초보 개미로서 투자 과정에서 생길 수 있었던 불안함과 번뇌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것이다.


 주식투자를 하면서 주위의 안 좋은 사례를 많이 보았다. 예수금 없이 풀 매수를 때리고,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분리 불안증에 걸린 것처럼 호가창에서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고 '아 혹시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며 계속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돌아보고… 그렇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만큼 투자해서 주식에 올인하고, 일희일비하고, 계속 두려워하고 신경 쓰면서 그러면 스트레스받고 주름 생기고 노안 오고 빨리 늙기밖에 더 하겠나.


 나는 내 인생에서 기쁨을 주는 다른 부분 – 대부분 덕질이지만 – 또한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각 영역의 파티션을 명확하게 세우기 위해서 주식에도 조금씩만, 작고 하찮은 마음으로 투자를 한다. 내가 주식투자를 하면서도 주식에만 매몰되지 않고 이렇게 가끔은 영화도 보고 덕질도 하고, 글도 꾸준히 쓰며 나 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내가 웅장한 가슴이 아닌 작고 귀여운 마음으로 주식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일찌감치 욕심을 내려놓고, 본인의 ‘깜냥’만큼 투자하고 적당히 이익을 얻으면서, 인생의 다른 즐거움을 같이 즐기는 이런 방식이 바로 안티에이징과 주식 투자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 뭐 이렇게 하다 보면 감도 생기고, 간도 커져서 언젠가는 나도 큰 수익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앞으로 별 일이 없는 한 내겐 살아갈 날이 아직 좀 더 남아 있고, 주식 투자를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남아 있지 않나.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머니 게임에 현역으로 종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아직은 막 걸음마를 시작한, 훈련하는 기간이라는 마음으로 조급해하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와, 작고 귀여운 스케일로 나아갈 것이다.


 



+


 몇 년 만에 브런치에 새 매거진을 만들었다. 브런치는 각 작가마다 발행이 가능한 매거진과 브런치 북의 수를 10개까지로 제한해 두었다. 그래서 매거진이든 브런치 북이든 굉장히 신중하게 생성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번 고민했지만, 결국 이렇게 생성하게 되었다.


 이 매거진에는 평소에 내가 쓰는 다른 글들과 조금 다른 스타일로 '재테크'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서 모아나가려 한다. 어쩐지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주식이든 뭐든 시작하게 된 정말로 평범한 한 명의 늦깎이 재테크 입문생으로서의 이런저런 재테크 경험과 생각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주로 주식 투자와 그 과정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다루게 되겠지만, 코인이나 해외 주식, 혹은 돈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올릴 수도 있겠다. 뭐 가끔은 '나는 회사 화장실에서 연봉의 절반을 벌었다'(희망사항이지만) 나, '주식으로 인생을 배웠어요' 같은 타이틀로 글들을 올릴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이 매거진에 올라갈 글들은 정말 작고 귀여운 스케일의 심장을 가진 한 찐 개미의 삽질 일기일 뿐이다. 주식 전문가도 아니고, 유구한 투자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자랑할 만큼 주식으로 어마어마하게 돈 복사를 한 것도 아니지만. 게다가 그저 그런 스펙의 평범한 한 명의 개미일 뿐인 내가 이런 글들을 써나간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저 누군가 앞으로 이 매거진에 실릴 글들을 보면서 '아, 세상에 이렇게 소소하고 하찮게 투자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신기한 마음으로 가볍게 봐준다면 좋겠다. 크고 웅장한 가슴이 아닌, 아주 작고 귀여운,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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