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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r 20. 2021

가상현실 속에서의 죽음

인생이 <어바웃 타임> 일 수 없다면


 어젯밤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서로 집도 직장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지라 이렇게 만난 것은 아마도 대략 1년 만이었던 듯하다.

 

 30대 중반의 한 해는 20대의 그것과 다른 느낌 이어서일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저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할 때 다치게 된다, 과거에 '당연하다'라고 생각했던 동작이 더 이상 당연하다는 듯 수월하게 되지 않는다. 한 번 생긴 상처가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다, 피부가 얇아진 것 같다.. 등등.


 "30대 중반인데도 우리의 몸 컨디션이 이렇게 약해지기 시작하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얼마나 약한 존재인 걸까? 게다가 우리 때는 수명도 늘어나서 그런 몸 상태로 100살 120살까지 살아야 해!"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서서히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생 세 번에 거쳐서 늙는다고 한다. 34살, 60살, 78살을 거치며 급격한 노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특히 34세쯤 되면 노화 관련 단백질 수치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작년과, 재작년과는 다른 분명한 몸의 변화에 선명한 충격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런 연구 결과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30대 중반인 우리는 인생의 전반기를 마무리하며, 생애 최초 주기의 '늙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기에 당황하고 있는 것이고.


 처음으로 하루하루가 다른 급격한 노화를 경험해 보니, 우리의 인생에 젊은 시기는 짧고, 노년은 길어진다는 사실이 어쩐지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 시대의 인류는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전을 누리며 천천히 늙어가고자 발버둥 치지만, 그럼에도 결국 인체 속에 프로그래밍된 노화의 프로세스는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서 착실하게 작동하여 우리는 분명 과거의 인간들과 비슷한 주기로 늙어가고 있다.


 정년이 50대인데, 60대 이후가 거의 반평생으로 남는다는 것은 역시 공포다. 생활을 누릴 때 불편한 점이 생기고, 일상이 불편해지는 부분이 생기고,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좀 더 불편해진 삶 속에서 내 장기와 신체가 소모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그때는 이미 두 번째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노화는 원웨이니까.


 그런 생각과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 우리의 생각은 갑자기 미래로 급발진했다.


 그래도 미래에는 우리가 반 정도는 사이보그화 되지 않을까. 무릎 연골도 갈고, 안구 수정체도 갈고, 유전자 가위도 그때쯤이면 나오지 않을까. 최대한 오래 살아서 보면 그런 모습들 볼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늘을 날아다니는 차 같은 거, 가능하면 오래 살아서 죽기 전에 보고 죽을 수 있다면 참 멋질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 우리가 하는 식으로 움직이고 운동하고 스포츠를 즐기긴 어려울 수도 있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삶과 육체의 고통에 적응하기 바빠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여유조차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과연 그때 가서 또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일을 도모할 에너지가 우리에게 남아있을 수 있을까?


 그러자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VR 기술이 발전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실감 나게, 마치 내가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걸로 젊음을 다시 체험해보는 거지."

 

 최근의 VR  게임처럼 얼굴에만 무거운 VR 글라스를 쓰고 실제로 팔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형태가 아닌, 아예 매트릭스처럼 캡슐형으로 생겨서 들어가서 눕기만 하면 신체 전체에 자극을 주는 VR 기기가 나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Young하지는 않더라도 Rich 한 노년층의 수요가 많이 집중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상상.


이미지 출처 : https://myvrgc.wordpress.com/



 사실 이런 상상을 다룬 콘텐츠들도 이미 좀 있다.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라는 소설을 보면, 경제력을 갖춘 노인들이 10대의 신체를 대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체 공여자가 잠든 사이, 해당 육체에 자신의 의식을 연결하여 젊은이의 몸으로 각종 유흥을 즐기는 것이다.


<스타터스> 북트레일러 (UK)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잠깐 노인이 된 나 자신을 상상해봤다. 노인이 되어 매트릭스 같은 거대한 캡슐 안에 몸을 누이고, 가상현실 속에서 다시 젊은 나로 돌아가 모험을 펼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런 기계가 있다면 난 영원히 거기서 나오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가상현실 속에서의 잠깐의 유희를 즐기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젊음과 청춘을 만끽하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서 눈을 뜬 순간 기계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의 나의 늙고 쪼그라든 육체를 보고 '아, 이게 현실이었어'라고 체감하게 된다면.. 그것을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더욱 우울감이 커지기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기계가 있다면 차라리 안락사 전에 쓸 수 있는 기계였으면 좋겠어. 인생 N회차 느낌으로다가, 가상현실 속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번 생에서 살아보고 싶었지만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실제로 쭉 경험해보고 죽는 거지."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임사체험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죽기 전 주마등처럼 지난 삶이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혹은 저승사자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반려동물이 자신을 데리러 나온 걸 본다고도 하고. 하여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결국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반쯤은 현실 세계의 고통을 벗어나며, 또 반쯤은 현실의 사람들에게 가상의 존재로 여겨지는 무언가와 조우하는 체험을 하며 죽는 것 같다. 죽기 전에 경험하게 되는 그 미지의 체험 또한 일종의 가상현실 체험이 아닐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사람은 평생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지들이 품고 있는 미지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억제하며 살아간다. 내가 선택한 이 선택지가 최선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처럼, 타임 워프를 하며 인생을 2번, 3번 되풀이하며 살아갈 수 없기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을 판도라의 상자 속에 봉인하고 한 번뿐인 인생을 가급적 신중하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죽기 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은 그런 플랜 B들에 대한 미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괴롭지 않을까. 그때 역시 이걸 해봤었어야 했어. 그때 그걸 하지 말았어야 했어. 이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만약 지금 다시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면, 인생을 살아오며 겪었던 수많은 실패들과, 실수가 없는 완벽한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미련 말이다.


 아마도 저런 마음 때문에, 최근 회귀 물이나 전생 물 같은 현실 판타지 소설들이 유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주식 투자에 실패해서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했는데 10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다던지 하는 그런 소재의 '인생 N회차' 판타지 소설들 말이다.


 결국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가장 강하게 경험하는 감정이 회한이라면, 가상현실 캡슐 안에서 그런 미련을 해소시켜 주어서 죽는 사람의 회한을 줄여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현재 안락사가 허용되는 나라는 소수이고, 미래에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하게 되어 그런 최고의 죽음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형태가 되면 그것도 나름 멋진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계획하는 안락사 희망자 중, 가상현실 속 죽음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시나리오 작가를 매치해주는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는 그 사람이 인생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 후회되는 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 혹은 지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을 꼼꼼히 인터뷰하여 그 사람만을 위한 최고의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가상현실 시나리오를 설계해 준다.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안락사 희망자는 약속된 날짜에 가상현실 기기로 들어간다. 자신이 원했던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며 삶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정말 되어 보고 싶었던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볼 수도 있다. 토니 스타크에 빙의하여 일평생을 영 앤 리치로 살다가 지구를 구하고 죽는 그런 삶을 실제로 내 삶처럼 경험해보고 죽을 수도 있을 것이고, 온갖 영화 속에서 지구를 구하는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살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어 세계를 구하는데 활약할 수도 있고, 인류학자나 모험가가 되어 오지를 탐험하며 아직 지구 상에서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인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혹은 아예 우주를 탐험하는 우주비행사가 되어 외계인과 조우하는 체험을 하고 지구로 돌아올 수도 있다.


세계를 제패한 스포츠 스타나, 올타임 레전드라 불리는 연예인, 가수 등 셀럽의 화려한 삶을 살아보고 죽을 수도 있겠지. 혹은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이 되어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에 '모닝커피가 식어서요'라고 시크하게 답하고 끊어버리거나.


 혹은 그저 소박하게,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처럼 딱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돌려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못다 한 말을 하는 시간을 구할 수도 있다.


 언어의 한계도, 내 능력의 한계도 없는 가상현실 안에서 달콤한 성공에 취해 죽을 수 있다면. 비록 완벽하게 미련을 없앨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가벼운 죽음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법 아이템 중, Mirror of Erised(소망의 거울)이라는 거울이 있다. 이 거울의 최상단엔 'I show not your face but your heart's desire'라는 말이 쓰여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아닌, 자신이 소망하는 현실 속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해리는 그 속에서 부모님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을 경우,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사랑을 듬뿍 받고 컸을 자신의 모습을 본다. 론은 현실보다 훨씬 인기 있고, 주목받게 된 자신을 본다. 덤블도어는 그 속에서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본다.


 해리가 이 거울에 빠져서 거울 앞을 헤어나지 못하자, 덤블도어는 이런 말은 남긴다.


현실을 잊고 꿈속에서만 사는 건 아무 쓸모도 없단다. 기억하렴.



 그렇지만, 죽음이 임박한 순간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현실보다 자신이 원하는 가상현실 속 죽음이 더욱 행복할지도 모른다. 소망의 거울에서 그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어쨌든 미래에 그런 VR 안락사 서비스가 나온다면 나는 진지하게 그 속에서 삶을 끝내는 것에 대해 고려해 볼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그전에 지금의 생을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아야 된다는 모범생스러운 생각도 같이 해보지만서도.


 정 안되면 실감 나는 꿈이라도 계속해서 꿔봐야겠지. 그런 점에서 인생을 꿈으로 꿔보고 일찍이 깨달음을 얻은 <구운몽>의 성진은 어찌 보면 행복했던 인생이다. 죽음까지 가기 전에 일단 꿈을 조작해 주는 VR 기기가 더 먼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영화 <달콤한 인생> 중에서




+


관련하여 이미지 자료를 찾아보던 중 발견한 아티클.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재밌겠다 싶어서 글을 써본 것이었는데 역시 누군가도 이런 생각을 진작에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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