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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Nov 25. 2021

메타버스, 꼭 알고 뛰어들어야 할까?

아직 블록체인이 뭔지도 모르지만.


 퇴사한 지 이제 2달이 다 되어간다. 사실 퇴사를 지르고 9월 말에 회사 문밖을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별다른 깊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출간하기로 한 은 10월에 나올 거였고, 단기 계약직을 구했으니 일단은 12월 말까지는 꽉 채운 월급 생활자이긴 하고. 2022년 1월부터는 조금 쉬면서 느긋하게 넥스트 스텝을 생각해 볼까, 뭐 그런 정도의 막연한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넥스트 스텝이 메타버스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그런 결심은 정말로 한순간에, 계시처럼 왔다는 것이다.


 시작은 지인과의 만남이었다. 평소 내 브런치나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보고 있던 그녀는 내게 <어스 2>를 알려달라고 했고, 대신 나는 그녀에게 제페토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들고 한 카페에서 만났고, 서로가 살고 있는 메타버스 세상(?)에 각자를 초대해 주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입성하게 된 제페토는 완전 신세계였다. 사실은 작년부터 계속 제페토를 한번 해봐야지, 해봐야지 생각만 했는데 막상 혼자 만들려니 진입장벽이 느껴져서 망설이고 있었던 차였는데, 이렇게 지인이 바로 옆에서 가르쳐주고 이것저것 세팅해 주니까 그 모든 과정들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인은 내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여 설정하는 방법, 무료 코인 이벤트에 참여하는 방법 등등 기본적인 방법들을 알려주었고 각 맵에 입성하고 그 안에서 다른 사용자들과 인터랙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오징어게임 맵에서 셀카 찍기 도전!


그렇게 이런저런 맵을 돌아다니며 셀카도 찍고, 춤도 추며 신나게 놀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 이거 진짜 돈 되겠다. 나는 이걸 해야 해."



 내 글을 익히 봐온 독자들이라면 이미 잘 알겠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매우 소심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영향인지 극도의 안정성을 추구하며,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에 더 이상의 풍파나 모험은 바라지도 않는다. 때문에 내 인생의 키워드를 한 가지로 정의하자면, 'STAY(현상 유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쳇바퀴에 오른 것 같은 잔잔한 삶을 추구한다.


 그렇게 노잼 인생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가다 한 번씩은, 진짜 앞뒤 안 재보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때가 있다. '나'라는 사람을 잘 알던 지인들은 그런 폭탄선언에 항상 놀란다.(사실은 내가 제일 놀란다. 아마도 누군가의 인생에서 잔잔바리로 추구할 수 있는 다양성을 나는 모아두었다가 한 번에 몰빵으로 추구하는 게 아닐까?) 근데 인생에서 어떤 순간들은 그렇게 벼락처럼 온다. 마치 일종의 어떠한 계시처럼.

신기한 것은, 지나고 보면 그때 내가 그렇게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미친 결정을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내게 있어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이러한 기질의 기반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케어 없이 혼자 자라야 했던 상황에서 체득하게 된 생존 본능이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이 정도 되면 이것은 사실 어떤 짐승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에 따른 결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렇게 가끔씩 폭탄을 투하하듯 나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나를 제외한 내 주변 사람들이 다들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회까닥 돌아서 안 하던 짓을 한다'며 걱정을 태산같이 해도. 어수선한 가운데 오직 나는 '괜찮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뿐이다. 아마도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나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부터 지인들에게 '저 메타버스 쪽으로 진로 잡아보려고요.'라고 선언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인들의 반응은 대개 떨떠름하다. 메타버스가 너무 뜬구름을 잡는 사업 아니냐는 사람부터, 자기로서는 도통 그런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물론, '멋지다'거나 '잘 될 것 같다'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메타버스'라는 것이 핫한 분야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어서인지 자기도 그 분야를 알아야 할 것 같다고, 자기도 뒤처지지 않으면 얼른 메타버스라는 것을 '공부'해야 할 것 같다는 위기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지인들이 앞다투어 내게 '세상이 왜 이렇게 빨리 바뀌는지, 쫓아가야 하는 게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할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나 이제 메타버스 할 거다'라는 선언을 했다가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메타버스를 한다고? 그럼 카이스트 가야 하는 거 아냐?"



 그분은 내가 '메타버스를 한다'니까 당연히 대학원을 가서 공부를 하려나보다 생각한 것이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타버스 쪽으로 나가야지!'하고 생각을 했을 때, 애초에 대학원에 가서 그것을 연구할 생각은 내 머리를 스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메타버스'라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향후 몇 년 간 내 인생의 생존을 책임질 '밥줄'이자 '생계'의 영역이었지 '학문'으로 접근하고 싶은 영역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자리를 빌려 당당하게 말한다. 사실 나는 메타버스 관련된 책 한 권도 안 읽어봤다. 가끔씩 유튜브나 온라인에서 하는 강의를 깨작거리듯 듣기는 하지만 사실 그중에 명확히 머리에 들어오고 기억되는 개념 하나도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공부하기 싫어서 어른이 된 사람'이다.)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오로지 나의 직관을 믿는다. '나에게 좋은 것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는, 여태까지 나를 지탱해 온 그 확신 하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의 짐승적이고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 외치고 있다. 돈이 되는 거대한 물길이 려오고 있다고.



 내년 메타버스 관련된 정부 예산안만 무려 올해의 25%가 증액된 1,600억의 예산이 편성되어 있고, 웬만한 기업들의 내년 사업계획에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홍수가 쏟아져 거대한 물길이 마을을 덮칠 때, 운 좋게 내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 거대한 물결을 관조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거대한 물이 밀려오는데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흐름을 논하는 삶은 심심하다. 나는 언제나 그 흐름에 직접 뛰어들어 몸소 헤엄을 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속한 물이 얼마나 큰 물이든, 내가 그 안에서 얼마나 미시적인 존재이든 상관없다.


 즉, 나는 '메타버스'를 학문으로 접근하고, 논문을 쓰는 학자의 영역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제페토 맵에 쌓을 수 있는 벽돌 하나 만들고, 메타버스 플랫폼에 판매할 수 있는 3D 소스 사이트에 아이템 하나 만들어 올리는 철저한 노동자의 을 원한다. 그러니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을 다 알 수 없어도 괜찮다. 물속에 속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물 밖의 경치를 알겠나. 나는 그저 물이 물인지도 모르고 그 흐름에 기꺼이 몸을 내맡기고, 메타버스 세계의 기술자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꿀뿐이다.


 또 한 가지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블록체인 개념도 아직 잘 모른다. 그런데도 코인 투자를 하고 있고, 투자 경험들을 엮어서 책으로 내기도 했다. 꼭 어떤 대상을 완벽히 파악해야만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살면서 인생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 것도 어차피 불가능한 일인데.


 이것은 보통의 물길이 아니다. 잘못하다간 휩쓸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에 돈 한 푼 못 쥐고 끝나거나, 비싼 돈을 주고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사람이 모는 배에 올라타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에 관심이 있지만 개념이 어려워서, 잘 몰라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일단 제페토라도 한번 깔아서 사용해 보길 권한다. 때로는 두뇌보다, 스마트폰 액정에 붙어 있는 엄지손가락의 피부를 통해 와닿는 무언가가 더 직관적인 결정을 도와줄지도 모르니까.




인스타그램 : @100.fire.girl  



Cover Image by @michael.po (via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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