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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y 05. 2021

서른다섯, 해리 포터를 읽는 시간

해리 포터 시리즈 : 사의 찬미

 

 나와 해리 포터 시리즈와의 첫 만남은 내가 중학생일 때 이뤄졌다.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읽은 뒤 나는 이 시리즈에 꽤나 깊이 빠졌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중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해리 포터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도서위원의 권력을 남용하여 가장 먼저 빌려보곤 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해리 포터를 읽는 것을 멈추었다. 아마도 <불의 잔>쯤인 것 같다. <아즈카반의 죄수>까지 흐름을 잘 따라갔었지만, <불의 잔>부터 나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는데 처음으로 버거움을 느꼈다. 아마도 4권이나 되는 권수의 압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입시에 전념하게 되고, 독서 취향도 바뀌면서 나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아예 손에서 놔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후로 꽤 오랫동안, 나의 해리 포터 시리즈의 개인적 마지막은 <불의 잔>까지였다. 이후로도 뭔가 간간히 새로운 시리즈가 나온다고는 들었지만, 이미 한차례 흥이 식어서 그런가 그렇게까지 읽고 싶어 안달이 나진 않았다. 자연히 영화 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최근 해리 포터 시리즈를 무려 한 달 반에 걸쳐 영화 & 책을 동시에 완주했다. 그동안 브런치에는 아무 말도 없이 잠적한 채.


 사실, 정확한 계기는 내가 주로 사용하는 OTT 서비스인 왓챠의 마케팅이었다. 작년 연말부터 왓챠에 해리 포터 시리즈 전체가 한 번에 들어왔다고 하도 떠들썩하게 동네방네 광고를 해대기도 했고, 무엇보다 왓챠 앱을 켤 때마다 해리 포터로 도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모든 종류의 마케팅이 상당히 잘 먹히는 유형의 소비자이다. 그러니 이런 미끼를 내가 안 물고 넘어갈 리가 없었다. 8부작짜리 드라마도 시작하기 부담스러워서 블로그 요약본이나 짤로 찾아보는 주제에, 총 8편이나 되는 시리즈가 있는 영화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충동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를 봤다. 그랬더니 예전에 한번 봤던 기억과 읽었던 책의 내용, 어설픈 지식이 섞여서 뭔가 더 답답했다. 복잡하게 답답했다고나 할까? 마치 등이 가려워서 누군가에게 긁어달라고 하는데, 내가 가려운 그 지점만 피해서 긁어주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나는 그냥 동시 진행을 하기로 했다.


 영화 1편을 보고, 원작 소설 1편을 읽은 다음, 영화 2편을 보고 원작 소설 2편을 읽는.. 이 과정을 7편까지 반복하기로 한 것이다.


 책은 원서로 보기로 결심했다. 영화를 보다 보니 오역이 종종 눈에 들어왔는데, 내용의 오역뿐 아니라 시리즈가 길다 보니 전편과 표현이 맞지 않거나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도 있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벤져스 '가망 없어' 급은 아니긴 했지만...) 어릴 때와는 달리 지금은 내가 영어를 바로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영화뿐 아니라 책도 한글판 번역에 약간 오역들이 있는 것 같아서, 그냥 헷갈리지 않게 애초에 영어로 읽기로 결심했다.


 다 읽고 난 지금,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은 꽤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영화를 보니 마법 주문이나, 설정 등에 언어유희가 많아서 어설프게 번역된 것을 읽으면 오히려 이중으로 해석하느라 더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서른다섯의 나는 해리 포터를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달 반 동안의 마법세계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왓챠로 다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처음 해리 포터 컴플리트 컬렉션을 전자책으로 펼쳐 들었을 때는 사실 조금 고민이 되었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이걸 읽는 게 맞나? 20년 전 중학생 소녀였던 나는 이 책을 보고 '진짜 세상 어딘가에 이런 마법세계가 있을지도 몰라!'라며 설레어했다지만, 지금 이 책을 다시 펼쳐 든 나는 이미 너무 이 세상에 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나는 모험과 꿈, 사랑이 가득한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이입할 대상을 굳이 찾아보자면 그것은 해리를 구박하는 페튜니아 이모 정도일 텐데.


 혹시라도 책이 유치하게 느껴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다. 사실, 30대 중반이 되니 그저 재미를 위한 읽기 치고는 조금 투자 시간이 과한 것 같기도 했고.


 이렇게 이런저런 찜찜한(?) 구석이 있었지만, 막상 시리즈 도장깨기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언제 이런 걱정을 했냐는 듯 하루도 안되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리즈의 첫 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완독 하자마자, 혹시 내용이 유치하지 않을까 싶었던 내 걱정 또한 완벽한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10대 소녀 시절에 내용에 흠뻑 빠져 읽었을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어른이 된 다음 다시 읽으니 확실하게 와 닿았다. 이 시리즈는 표면적으로는 마법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1권의 말미에서 덤블도어는 '마법사의 돌'의 소유주였던 니콜라스 경이 그 돌의 존재를 세상에서 없애기로 결심했다고 그에게 알리면서, 해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To one as young as you, I'm sure it seems incredible, but to Nicolas and Perenelle, it really is like going to bed after a very, very long day. After all, to the well-organised mind, death is but the next great adventure.

너 같이 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아주 긴 하루를 보낸 뒤 잠자리에 드는 것과 같단다. 어쨌든, 준비된 자에게 죽음이란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나는 20년 전 출간된, 이 세상의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던 이 전설적인 시리즈 제 1권의 결말이 이토록 심오한 문장을 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간 난 스스로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 시리즈를 과소평가해왔는지도 모른다.


 이후로도 이 시리즈는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히려 애들이 보기엔 좀 내용이 너무 무겁지 않나? 생각이 들만큼 뒤로 갈수록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The last enemy that shall be destroyed is death.

파괴되어야 할 최후의 적은 죽음이다.



"Dying? Not at all,' Said Sirius.

'Quicker and easier than falling asleep.'

'죽는 거? 잠드는 것보다 쉽고 빠르단다.'



'I must die. It must end.'

난 죽어야 해. 끝내야 해.



as if he were passenger, not driver, in the body he was about to leave.

그는 그가 곧 떠나게 될 자신의 육신의 운전수가 아닌 승객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주인공들의 7년 간의 여정을 45일 만에 단숨에 따라와, 마침내 해리 포터 컴플리트 컬렉션의 마지막 책장을 막 덮은 순간. 머릿속에 바로 이 단어가 떠올랐다.



사의 찬미



 30대가 되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어봤더니, 결국 여기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인간의 '죽음'이라니. 이것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그냥 마법세계를 빙자한 죽음에 대한 우화가 아닌가.


 심지어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해리 포터는 최종 권에서 자기 자신의 죽음을 극복하고, 진정한 죽음의 지배자(master of death)가 된다. 단지 스스로 그 능력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리뿐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도 이 죽음의 시험에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시리즈는 시리즈 내내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맞이해야만 하는 '죽음' 앞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의 자세,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보여준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친구를 팔아넘기는 사람, 죽지 않기 위해 영혼을 나누는 사람, 차라리 죽음이 더 나은 상태로 느껴질 정도로 영혼을 앗아 가는 디멘터의 키스, 볼드모트를 따라 죽음에 저항하는 자들 (Death Eaters),  모두를 위한 결과(The greater good)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설계하는 자, 소중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 등....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결국 한 번씩은 자신이나 자신의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일지를 선택해야 한다.


  바로 그 점이 이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살아 숨 쉬도록 해준다. 이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너무 전형적이거나 평면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이 '죽음'이라는 주제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체면을 차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고결하고 존귀한 존재라도, 심지어 신과 같은 존재라도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고 초라해진다. 세계관 최강자에 가까웠던 덤블도어는 평생 죽은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스네이프 또한 릴리에 대해 속죄하며 평생을 살았다. (특히 스네이프 교수 캐릭터는.. 결말을 못 봤다가 이번에 도장깨기로 처음 정주행을 했던 입장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캐릭터가 흡인력이 있었던 이유는 이렇듯 그들이 살면서 한 번씩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등장인물은 모두가 양면적이다. 언제나 사람들의 가장 좋은 점만을 보려고 노력했던 덤블도어의 반달 안경을 끼고 본다면, 모두가 좋은 점이 있긴 하지만 그들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기에 악한 행동을 하거나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특히,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주인공의 적수로 등장하는 볼드모트는 아름답고 총명한 소년에 심지어 우월한 실력을 갖춘 마법사로 태어났음에도,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집착하는 존재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타인의 삶을 빼앗고 끔찍한 고통을 견뎌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각조각 낸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의 모습은 점점 더 추하게 변해 간다.



어릴 땐 너무 무서웠는데 지금 보면 약간 하찮아 보이기도(?) 한 조금은 허술한 빌런... 그의 이름은 볼드모트...



 어릴 때는 '볼드모트'하면 괜히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해서 벌벌 떨었었는데, 이번에 볼 땐 나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여서 그런가, 왠지 그의 모습이 처음으로 짠하게 느껴졌다. 마냥 절대 악처럼 보이진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의 어린 시절도, 불행했던 과거도, 생에 대한 집착도 마냥 '빌런이니까 그렇지'라고 단순하게 취급해 버리기에는 어딘지 개운하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덤블도어는 볼드모트와 대치하는 씬에서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Indeed, your failure to understand that there are things much worse than death has always been your greatest weakness-

사실, 이 세상엔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것이 많다는 걸 깨닫지 못한 것이 너의 가장 큰 약점이었지.'


 이렇게 이 시리즈는 내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죽음을 초월하는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사랑'이다. 덤블도어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해리에게 항상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You are protected, in short, by your ability to love!'

 너는 사랑에 의해 구원받은 거야.


 심지어 그들의 마지막 시간이 될 킹스크로스의 한 장면에서도, 그는 해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은 자를 동정하지 말아라, 해리.
산 자, 그중에서도
사랑 없이 살아가는 자들을 동정하렴.'



 그 말에 덤블도어가 살짝 야속하고, 한없이 쪼그라든 채 죽어가는 볼드모트의 영혼이 좀 불쌍해 보였다면. 내가 너무 세상에 찌든 어른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나 또한 아직은 죽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믿는, 볼드모트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랑 없이 살아가고 있는 자이기 때문인 걸까.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글을 올리지 않던 한 달 반의 시간 동안 나는 밤낮없이 해리 포터 시리즈만 읽었다. 당시의 내 신경은 오직 해리 포터 시리즈였다. 결과적으로 2021년 1분기의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귀중한 시간을, 30대 중반의 나란 인간은 다른 생산적인 일이 아닌, 오직 해리 포터를 읽는 데만 쓴 셈이다.


 이 시리즈 도장깨기가 과연 내 인생에서 이만큼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할만큼 가치있는 행동인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나는, 책을 재미있게 흠뻑 빠져 읽으면서도 내내 왠지 모를 은근한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이러다 꾸준히 글 쓰는 리듬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다. 원래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으면서도 중간중간 브런치에 글도 쓰고 다른 영화도 보고 현생도 좀 챙겨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하나도 안됐으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이렇게까지 자기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일단 책도 영화도 너무 재미있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어서 이 주인공의 여정의 최종장까지 도달하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당시엔 그렇게 시간을 오락거리에 빠져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결과적으로 그 시간은 분명 가치가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달까?


 해리 포터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 1월 즈음. 한창 무기력에 빠져, 도전했던 게 결과가 안 좋아서. 지루한 내 삶에 절망해서.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해리 포터만을 읽기 위해 나의 잉여 시간을 통째로 바쳤던 한 달 반의 시간이 결국 나에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글을 쓸만한 추진력을 준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는 동안 나의 무의식 속에서 쓰고 싶은 것들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내 안의 상상력이 자극받아 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났을 때. 다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끼적이고 싶은 에너지가 내 안에 다시 돌아온 것을 느꼈을 때. 그제야 비로소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이전의 나와는 조금 뭔가 달라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글이 아닌 영어 원서로 읽어서 왠지 내가 글 쓰는 데에도 그다지 보탬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다르다.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지만, 주구장창 영어 문장만 읽었더니 오히려 예전보다 문장이 쉽고 명확하게 나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문장을 간결하게 쓰기 위해 먼저 영어로 작문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마법 단어들은 라틴어 어원 같은 데서 따온 것도 있어서 좀 어렵지만, 사실 문장 자체만 놓고 보자면 해리 포터 시리즈 원서 내에서 구사되는 문장들은 매우 쉬운 편이다. 영어 원서로 글을 읽고 싶은 해리 포터 덕후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한번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위에서 내가 표현했던 것처럼, 해리 포터는 간접적으로 쓰여진 '사의 찬미'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언제든 잠드는 것보다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언젠가는 동반자로 생각해야 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일종의 경전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결국 내게 다시 시작할 힘을 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죽음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늘 그렇듯 말이다. 결국 우리 머글들은 덤블도어처럼 150세까지 살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니까.


 <아즈카반의 죄수> 편에서도 덤블도어가 말하지 않던가. '중요한 건 바로 시간'이라고. 누구나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나, 타임 터너를 소지한 헤르미온느처럼 2번, 3번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중에 죽음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러 올 때까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는 것.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그것이 바로 해리 포터 시리즈가 35살의 나에게 남긴 의미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설사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냥 만들어낸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면 어떤가? 이야기가 진짜든 아니든, 현실적이든 그렇지 않든, 내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상관없다. 나에게 영감을 준다면 아주 어린아이가 읽는 책이어도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킹스크로스 씬에서 해리와 덤블도어가 주고받는 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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