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Apr 01. 2021

일기장을 버리는 완벽한 방법

만년 다이어리 잔혹사

 

 5년 전, 다이어리를 한 권 샀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에, ‘Q&A a Day’라는 타이틀이 새겨져 있던 그 다이어리의 생김새는 마치 작은 성경책을 떠올리게 했다.

 

이미지 출처 : amazon.com



 이 책은 그동안 다이어리라고 하면 무조건 1년짜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만년 다이어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5년 간 매일 같은 질문에 짤막하게 답하면 된다는 컨셉의 이 다이어리는 당시에 큰 화제를 일으키며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여러 가지 에디션으로 배리에이션 되어 출간되기도 했다. 이렇듯 당시로선 꽤나 획기적인 상품이었지만, 그 구성은 심플했다.



이미지 출처 :  amazon.com


 매 페이지마다 일력처럼 날짜만 쓰여 있었고, 그 밑으로는 연도란이 비워진 채 일정한 간격을 두고 3~4줄의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각 페이지의 최상단에는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그 날짜의 지정 질문이 쓰여 있었다.


 예를 들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라든지, ‘가장 최근에 한 키스는 언제인가요’라든지. 하다 못해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었나요?’라든지. 그런 딱히 특정 범위를 가리지 않는 백문백답과 같은 질문들이었다.


 이런 구성 덕분에 작성자는 매년 동일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게 되는데, 그렇기에 매 해가 지날수록 다시 작년, 재작년의 그 페이지로 들어와 본인이 이전 해에 동일한 질문에 대해 어떤 답변을 기입했는지 다시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내가 일기를 쓸 수 있는 재질의 인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형태의 일기장을 구매하든 뭔가를 좀처럼 꾸준히 쓰지를 못해서, 앞장만 새카맣게 손때가 묻은 채 책장에 방치되어버린 일기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게 버림받고 잊혀진 일기장들은 나란히 모여 집의 책장 한구석에 꽂힌 채로 한껏 어두운 기운을 내뿜으며, “열심히 쓴다며?”하고 나를 책망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뭔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부채감이 나를 은근하게 자극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5년 전 서점에서 번쩍번쩍하게 빛나고 있던 이 만년 다이어리를 본 순간, 이건 연쇄 일기장 방치범인 나라도 왠지 어떻게든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의 질문이 궁금해서든, 하루 3,4줄만 써도 되는 부담스럽지 않은 양 덕분이든, 매년 한 번씩은 돌아올 ‘과거의 오늘’과의 조우이든. 어떤 것이든 다양한 방법으로 이 일기장은 내게 그 존재가 잊히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제 와서 당시의 내 심리를 돌아보자면 그때 난 막 서른이 된 참이라,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만 한다는, 이제부터의 삶은 '진지'해야 한다는 턱도 없는 비장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 그런 생각.


 인생이 그냥 생각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아지긴 하지만 이게 사는 걸까? 뭐 이런 일기장이라도 쓰게 되면 나도 최소한 어느 정도의 사색이라는 걸 좀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를 품고 나는 그 다이어리를 구입하고 말았지…만.


 결론적으로,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다이어리를 샀던 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 그 5년짜리 다이어리를 산지 5년이 지났지만, 지금 내 손에는 그 다이어리가 없으니까.






 돌이켜보면 내가 당시에 그 다이어리를 구매했던 건 그저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나를 아는 주변의 인연들은 내게 더 이상 궁금한 점이 별로 없을 정도로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도 별로 없고, 새로 친해질 사람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누군가 내게 순전한 호기심으로 아무 질문이나 막 던져볼 일은 점점 묘연해졌다.


 또 학창 시절에야 친구들과 시시콜콜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마련이지만, 최근에는 친구들과 만나기도 쉽지 않고 그나마 있는 친구도 사라져 간다. 각자 삶의 상황이 달라져가는 만큼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장벽이 생긴다. 전체적으로, 누군가와 그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게 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이런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그저 누가 나에 대해 궁금해해 주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도 백문백답 같은 질문지에 답을 적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심심풀이로 날아드는 MBTI 심리테스트들을 보고 ‘뭔 질문이 이리 많아?’ 하고 투덜거리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며 답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는 그 질문에 대답해 가는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범생이었던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울 때, 그런 질문에 답을 하면서 스스로를 객관화해보는 경험이 무척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웬만해서는 누구도 나에게 그토록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점점 아무도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 지구 상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나뿐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5년 전의 나는 저 다이어리를 구매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의 내 삶은 무척 단조롭고 지루했으며, 그렇게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나의 5년은 오늘이나 5년 뒤의 오늘이나 전혀 다를 것 같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래도 이 일기장을 한번 써보기로 결심했다.


'그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를 궁금해 해주자. 이런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혹시 아나? 치매 예방이라도 될지.'


 그런데 어쩌다 보니 딱 다이어리를 구입하자마자 때마침 이직도 하고, 연애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이전의 일상대로라면 너무 무료해 그 다이어리의 내용을 다채롭게 꾸밀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다이어리를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채워보라며 다이어리가 큰 맘먹고 내게 선물을 준 것 같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변화들에 때마침 매일매일이 새롭고 다이내믹한 감정들로 넘쳐났다.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인 감정에서나 생동감이 넘쳐났던 그때의 내 일상은 확실히 기록으로 남겨둘 만한 일들이긴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다이어리를 쓸 첫 1년은 무척 성실하게 기록했던 것 같다. 하루도 안 빼놓고 쓰진 않더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2번 정도는 그 일기장을 펼치곤 했으니까.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첫 해에 비해 조금 뜸해지긴 했지만, 띄엄띄엄 그 일기를 작성했다. (때로는 그 일기장의 취지에 맞지 않게.. 좀 성실하지 못하게 벼락치기하듯 한 번에 몰아서 쓰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꾸준히 2년 반 정도 다이어리를 썼을 무렵,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일기장이 내게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물처럼 만나게 되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별은 급작스럽게, 벼락처럼 찾아왔다. 그 이별의 방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별 그 자체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나는 한동안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고, 그 시기 동안 많이 아팠다.

 

 이별을 통보받은 날 밤. 기진맥진해진 채 집으로 들어온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그와 관련된 물건들을 다 내다 버렸던 것이다. 그로부터 선물 받은 물건은 물론, 그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도 전부 정리해서 버렸다. 그러나 단 하나, 버리지 못해 나를 난감하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2년 반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는 그 5년 다이어리였다.

나는 일기장을 열어 스윽 내용을 훑어봤다.


Q. 이번 주말에 뭐 할 거야?
A(2017). 오빠와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어. 오랜만에 가는 거라 너무 기대돼!

Q. 5년 뒤의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아?
A(2017). 글쎄, 아마도 오빠와 결혼을 했겠지? 아이도 하나나, 둘 정도 낳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좋겠어. 사실 나는 지금도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어릴 땐 내가  이 나이 때쯤이면 아이가 둘 정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늘 그렇게 생각했었거든.


 울컥 눈물이 차 올라 일기장을 덮었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굳이 연애와 관련된 질문이 아니더라도, 그는 다이어리가 내게 던진 365개의 질문 중, 웬만한 질문마다 계속 등장했다. 그는 지난 2년 간의 시간 동안 그러했듯 내 일기장에서조차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푹 빠져 있었고,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우린 서로의 집을 오가며 가족에게 인사했고, 자주 만났다.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편하고 좋았다. 그와의 관계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애에서 왠지 모르게 느꼈던 미묘한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그가 내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불편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오히려 아쉬워서, 내가 머무는 이 공간이 그가 머무는 공간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은 남자와의 관계에서는 내 인생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아, 다들 이렇게 자연스럽게 결혼하는구나’ 하고, ‘나 이 사람과 결혼할 것 같다’고. 너무 자연스럽게 철석같이 그렇게 믿어버렸다. 내겐 운명이었던 것이, 그에게는 그저 대체 가능한 수많은 옵션 중 하나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렇게 다이어리의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1년 전 그와 함께 보냈던 날들의 일상이 마치 구글 포토나 페이스북의 1년 전 오늘 기능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 일기장만 보더라도 헤어지기 전, 그와 내가 얼마나 일상 속에서 서로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는지 느껴졌다.


 그와 헤어지기 바로 전날까지의 나는 그 일기장에 포함될 5년의 시간과, 그 이후의 5년, 또 그 후의 5년을 계속해서 그와 함께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한 장 한 장마다 꾹꾹 쓴 내 글자에서 느껴지는 나의 마음이, 우리가 함께 하는 미래에 대한 한치의 의심도 없는 나의 순수한 신뢰감이 보는 내 눈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렇게 그가 떠난 그 날부터, 나는 더 이상 그 일기장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그 뒤로부터 더 이상 이어서 쓰지도 못하고, 펼쳐보며 과거를 추억하지도 못할 일기장은  하루아침에 나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 또한 그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인 이상, 내 책장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끔 둘 순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을 대체 어떻게 버려야 한단 말인가? 이토록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물건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노트나 책 종류의 물건을 잘 버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중고책은 책방에 팔고, 노트는 웬만하면 다 집에 두었으니까.


 재활용 종이와 함께 내어놓자니 뭔가 좀 찝찝하고, 일기장의 한 장 한 장을 찢어서 태우기에는 나에겐 청승맞게 쪼그리고 앉아 뭘 태울만한 땅 한 뙈기도 없었다. 결국 그렇게 그 일기장은 한동안 내 책장의 가장 구석에 책등이 보이지 않게 거꾸로 꽂힌 채로 봉인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애써 존재를 지웠던 그 일기장의 존재를 다시 상기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가을 무렵이었다. 그와는 여름에 헤어졌고, 눈 깜짝할 새에 가을이 되었으며, 추석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연휴를 틈타 홋카이도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늦은 밤까지 캐리어에 짐을 꾸리고 있는데, 문득 뒤집어진 책들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 왠지 외국에서는 일기장을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해외는 어차피 언어가 다르니까, 한글로 쓴 일기장은 누가 읽지도 못할 거 아닌가. 어쩌면 그것은, 나름대로 내 추억이 들어있는 일기장에 어느 정도 낭만적인 이별을 고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그 문제의 다이어리를 들고 일본으로 떠났다.  2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의 끝에 치토세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의 캐리어 속에 꽁꽁 숨겨져 있던 일기장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일기장을 버리기 직전, 나는 마지막으로 일기장을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서점에서 책처럼 판매되었던, 미니 성경책만 한 크기의 작은 일기장. 표지에는 영어만 쓰여 있어서 웬만한 사람들은 얼핏 보면 책으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고본으로 책을 보는 일본인들에게는 이 다이어리가 무척 화려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 일기장을 습득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이 한글을 알 거라는 보장은 없고. 운이 나쁘게 한국인 여행객의 손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뭐 이 일기장 안에 내 주소가 쓰여 있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어찌 됐든, 이 일기장이 다시 내게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치토세 공항의 한 구석에 나의 일기장을 슬쩍 유기했다. 혹여 누가 볼세라, 캐리어를 끌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신속히  벗어났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붙잡히지 않고 공항 문 밖으로 나와 시내로 향하는 트레인에 올라탔을 때 나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세상의 스케일로 보자면 한없이 사소하기 그지없을 나의 비밀을 그곳에 버리는 것뿐이었는데, 마치 내가 테러리스트라도 된 것 같은 이 하찮은 긴박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새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가끔가다 한 번씩 그 날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때, 내가 일본에 두고 온 그 일기장은 어디로 갔을까?


 뭐, 아무래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확률이 제일 높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만에 하나 그 일기장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진 않았을까? 는 상상을 해보면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기도 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쓰레기통 엔딩 말고, 기적적으로 어떤 일본인의 서재에 들어가 조용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혹은 어디 희귀한 수집품을 구하는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혼자 낭만적인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더 이상 내게는 필요 없어진 나의 이야기를 담은 채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역시 일기장을 해외에 버리는 것은 정답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에겐 그 추억을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 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저 Delete 키를 눌러 지우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인터넷 공간의 글이라면 모를까, 이 세상에 뭔가를 손에 잡히는 물질의 형태로 남기는 것은 영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브런치에 밤늦도록 이런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


......라고 썼었는데, 최근 이와 비슷한 기록을 시작했다. <오늘부터 300일>이라는 책을 사서 첫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일기라기보단,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도록 매일 하나씩 주어지는 미션을 300일 동안 완수하는 미션지(?)에 가깝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는 일상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부터 친구와 함께 한 페이지씩 도전해보기 시작했다.


 첫날인 오늘의 미션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친구에게 한 장의 사진을 전송했다.




 비록 첫날이고, 오늘 막 시작했을 뿐인데 기분이 그다지 나쁘진 않다. 어쩌면 내 지독히도 똑같은 매일매일의 일상에는 이렇게 억지로라도 뭔가 할 일을 욱여넣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똑같은 내 삶에 무슨 특별한 변화가 있겠어,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5년 전, 일기장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내 인생엔 마법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었던 것은 사실이다. 나의 5년 후의 하루가 지금의 하루와 같을 것이라는 체념을 걷어가 주었던 5년 전의 그 날처럼, 나는 300일 후의 내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의 기록을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부디 이 새로운 일기장의 결말은 새드 엔딩이 아니길. 내가 300일을 무사히 완주해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 책의 처분을 고민할 일이 데자뷰처럼 또다시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레트로 수영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