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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r 30. 2021

레트로 수영장

약간의 거리를 둔다


 어린 시절, 나는 물을 무척 무서워했다. 스스로 씻지 못하던 어린 시절, 눈과 코에 물이 들어가 어푸어푸하면서도 연신 어머니에게 무자비하게 벅벅 씻겨졌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 기억 탓인지, 너른 물이 푸르게 펼쳐져 있는 수영장을 처음 봤을 때, 처음 그 안에 들어가 봤을 때도 나는 좀처럼 물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물속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귀를 막는 웅웅거림도 싫었고, 숨을 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코로 들어가는 염소 맛이 나는 수영장 물도 싫었다. 그래서 기껏 수영장이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년간 의무교육으로 수영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뻣뻣한 몸 때문에 ‘접-배-평-자’ 중에서 ‘접’은 끝내 마스터하지 못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나는 누가 시키지 않는 한 수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던 20대 중반의 어느 날, TV에서 커다란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없는 무력감에 한동안 우울했다. 내가 가장 큰 좌절감을 느꼈던 부분은, 배 안에 타고 있던 그들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동네 수영장의 수영 강좌에 등록했다. 고등학생 때 배웠던 지식은 이미 다 까먹은 지 오래였으니까. 딱히, 그것이 내게 유용할 것이라던가,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는 꽤나 성실히 수영을 다녔다. 적당히 다니다 보니, 고등학생 때 배웠던 몸의 기억이 금방 돌아왔다.


 그렇게 물속에서 헤엄치는 감각을 어느 정도 즐기게 되었을 무렵, 인생에서 처음으로 연인과의 이별을 경험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대체 내 몸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술을 먹고도 울고, 맨 정신으로도 울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한다.


 ‘그렇게 펑펑 울다가는 아주 눈물로 그냥 수영장도 만들겠어!’


 텅 빈 집에 혼자 틀어박혀 있다 보면 그의 부재가 주는 허전함에 자꾸만 눈물이 줄줄 났다. 시도 때도 없이 너무 울어서 눈이 다 아플 정도가 되었을 때, 문득 내 몸이 아주 작게 변해서 낮동안 받아둔 내 눈물이 모인 작은 욕조 안에서 헤엄치는 상상을 했다. ‘이러다가 정말 내 눈물로 집이 수영장이 되겠구나. 이럴 바에는 차라리 진짜 수영장에 몸을 담그는 것이 낫겠어.’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와 헤어진 후 맞이한 첫 주말에 나는 수영장에 갔다. '물속에서는 그래도 눈물은 이렇게 펑펑 안 나오지 않을까?' 하는 자포자기한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차가운 물 위에 유유자적히 떠서 수영을 하다 보면, 지금 화병 난 듯 홧홧하게 들끓는 속이 조금은 진정되길 바랐다.


 마침내 도착한 수영장에서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갔을 때, 나는 이 곳에 온 것을 즉시 후회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수면 밑으로 머리를 내리 박자마자, 당장이라도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이렇게 헤엄치기 전 물속에 머리를 넣으면, 귓구멍에 물이 차오르며 사방이 조용해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묘한 긴장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그러나 당시의 나에겐 그 모든 것이 너무도 무서웠다. 숨은 쉴 수 없었고, 가슴께는 뻐근해졌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늘 나를 평온하게 감싸주던 물이 그 날따라 무척 차가웠다. 물은 마치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너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늘 이렇게 계속 혼자일 거야.
그러다 언젠가 고독에 질식해 죽을 거야. 지금 네가 숨쉬기 버거운 것처럼.’




  그중에서도 가장 미칠 것 같았던 것은, 물속에 머리를 꼬르륵 넣고 잠겨있는 상황에서도, 내가 여전히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내가 다시 수영장을 찾은 것은, 30대가 된 후 했던 연애가 황망하게 마무리된 뒤 반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 동네로 이사 온 뒤, 집 근처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크고 시설 좋은 수영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발길이 가지 않아 존재조차 잊고 있던 참이었다. 때마침 찾아온 무더위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내가 수영장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그렇게 계속 살았을는지도 모른다.

 

 몸이 녹아서 땅에 녹아 흐르다 달싹 붙어버릴 것 같던 어느 여름날. 나는 고민하다 그 수영장에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수영을 했던 게 언제였더라, 6년 전이었던가. 자전거는 몇 년씩 안 타도 다시 페달 위에 발을 올리면 금방 그 감각이 살아나던데, 수영하는 법은 이상하게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나마 자유형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몸이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팔을 있는 힘껏 휘저어 보았지만 숨을 어느 타이밍에 쉬어야 하는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우스꽝스럽게 자유형 팔 동작을 휘두르며 팔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요리조리 돌려 어푸어푸 숨을 쉬고 있자니 스스로도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왠지 모를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옆 레인에서 조오련 선생님을 닮은 물개 같은 몸매의 아저씨가 버럭!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부른 것은.


 “아가씨! 이리 좀 와봐요! 한 수 배워야겠네.”


 아저씨는 레인의 한쪽 끝에서 나를 향해 손을 까딱까딱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못 참겠다며, 손수 내게 자유형에서 팔을 휘두르는 각도와 숨 쉬는 방법, 방향까지 빠르게 시범을 보여주셨다. 아저씨는 자신의 두 딸도 어릴 때부터 본인이 직접 수영을 가르쳤다고 했다. 단언컨대, 여태까지 내 인생에서 경험했던 맨스플레인 중 그토록 도움이 되는 맨스플레인은 없었다. 열정적인 개인 강습(?)의 말미에, 그 아저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 주에도 이 시간에 또 올 거지? 나는 항상 주말 이 시간에 수영장에 있으니까, 그때 보자고. 한 12시쯤!”



 그러고는 아저씨는 몸풀기가 끝났는지 상급자용 레인으로 홀연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렇게 아저씨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방금 무엇이 휩쓸고(?) 지나간 건지 찬찬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 여기 수영장이었지. 생각해보니 수영장이라는 공간이 굉장히 애매했다. 핸드폰도 없고, 필기구도 없다. 오로지 맨몸에, 머리카락은 한올도 삐져나오지 않게 차단한 수영모를 쓴 쌩얼의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기억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단 말인가?


 방법은 하나였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여기에서  만나’ 하고 약속하는 것. 나는 핸드폰이라는 것이 그다지 흔한 존재가 아니었던 초등학생 시절 이후 누구와도 저런 약속을 해본 적이 없었다. 거의 십몇 년 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순간, 수영장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무척 재미있게 다가왔다.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번호를 교환하면 끝인 것을, 수영장이라는 공간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으로 바꿔버리는구나.


 어쩐지 1990년대로 돌아간 듯한 구식의 약속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수영장에서 단 한번 마주친 아저씨의 이름도, 성도 필요 없다. 그저 ‘다음 주 일요일에 여기서 만나’라는 말 한마디로 이어진 그와 나의 느슨한 관계가 마음에 들었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책의 표지에는 까치발을 든 채 수영장의 바닥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왜 이 제목에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를 매치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쌩얼에, 몸에 딱 붙는 수영복. 머리털의 위장도 없는 채로, 물고기처럼 같은 물을 마시고 뱉으며 서로의 애처로운 허우적거림을 관찰하는 관계. ‘다음 주 일요일에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봐!’라고 큰 소리로 약속하지만 정작 누구 한쪽이 나타나지 않아도 그다지 아쉬워하지는 않는 관계.

 

 태생적으로 약간의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수영장의 그 레트로한 거리감이 나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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