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Apr 14. 2021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소식을 보고



 예전에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고, 요오드 관련 테마주를 찾아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체르노빌 사태가 터졌을 때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찾았던 것이 바로 아이오딘(*요오드) 정이었기 때문이다.


 3.11 대지진 이후, 세상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되었다. 일본에서 원전이 터졌는데, 우리나라 원전은 과연 무사할까? 또, 서해안 쪽에 쫙 밀집해서 세워둔 중국 원전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런 내 걱정을 증폭시켜줬던 게 작년의 긴 장마였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비가 쏟아졌고, 지속된 장마에 중국의 샨샤 댐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샨샤 댐이 붕괴할 경우, 근처에 위치한 원전이 파괴되어 그 방사능 오염수들이 죄다 서해바다로 흘러들어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본격적으로 실감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하루아침에 끝나버릴수도 있다는 것을. 


 당시 나는 매일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했다는 중국 설화의 기우처럼 걱정에 휩싸였다. 매일 아침 또 잔뜩 비를 쏟을 것처럼 꾸물대는 하늘을 보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도했었다. 



 "제발 비 좀 그치게 해 주세요. 전 아직은 더 살고 싶거든요."




 나의 원전에 대한 두려움은 어린 시절  <맨발의 겐> 이라는 만화를 본 이후로 더욱 심해졌다. 이 만화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당시 생존자가 그린 작품으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일본의 참상을 드러내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만화 속, 원자폭탄이 남긴 방사능의  후유증을 겪으며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울고 또 울었다. 방사능이 인간의 몸에 끼칠 수 있는 해악은 너무 강력했고, 그 안에서 서로 배척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이 책 안에 묘사된 갖은 형태의 고통들은 이 지구 상에 원자폭탄이 존재하고 원전이 존재하는 한 언제고 현재의 우리에게도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세상은 그렇게, 언제라도 끝날 수 있었다.



늘 다니던 학교 담벼락을 등진 채, 세상의 종말을 맞이한 맨발의 겐처럼.

한순간에.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이런저런 단톡방에 올라온 여러 기사 스크랩 이미지들을 확인한다. 그중에서도 웬만하면 매일 빼놓지 않고 확인하는 게 있는데, 바로 뉴스 기사 1면 모음이다. 보통 1면은 각 신문들의 정치색이나 주요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오늘만큼은 모든 신문들이 1면 지면의 상당한 부분을 이 소식을 싣는 데 할애하고 있었다.



日,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



 사실 이 건에 대해서는 작년부터 이미 얘기가 있었긴 했다. 후쿠시마 지역에 쌓아두는 오염수 저장 탱크는 이제 수용 한계 수준까지 다 차서, 더 이상 땅 위에 오염수를 쌓아두고 버틸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작년에는 일본이 한창 오염수 바다 방류를 주장할 무렵, 태풍이 휩쓸고 가며 어째 저째 유야무야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고는 하지만 결국 '방사능 오염수 처리'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계속 남아 있었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일본에서는 언제고 다시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주장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고, 어제오늘 그것이 현실로 드러난 것뿐이다. 


  다만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일본에서 기어이 진짜로 방류해 버릴 것 같다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랄까. 


 방사능 오염수 방류. 정말 싫다. 그런데 어쩐지 그런 싫고 무서운 감정과는 별개로, 마음 한구석이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았다.


 작년 이맘때쯤의 나였다면 그저 100% 패닉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심리적으로 정말 약해져 있었다. 자연재해 수준의 비를 보며 하염없는 허무주의에도 빠졌었다. 어차피 지구는 지금 다 망해가고 있다고, 세상이 무너져가는 와중에 나 혼자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어쨌거나 당시에 나는 죽지 않았다. 지구가 멸망하지도 않았고,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샨샤 댐은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결국 무너지지 않았고, 일본은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 방류할 수도 있었지만 방류하지 않았다. 나는 자연재해를 이기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운이 아주 나쁘진 않았던 것이다. 


 작년의 일 이후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모든 상황들은 어차피 내가 스스로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아니었다고. 내가 사는 평행세계의 어디쯤에선 샨샤댐이 무너지고 원전이 하나 더 폭발해서 이 쪽 지역의 인간들이 다 시한부의 삶을 사는 극단적인 미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이 메인 세계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뭐 어차피 그런 일이 있어도, 없어도. 결정적인 '뭔가'를 내가 바꿀 순 없더라.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머리로. 일단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본이 국제 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방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방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두려워하고, 싫어해도 그 일은 결국 벌어질 일이다. 그러니 작년처럼 그렇게 무서워서 벌벌 떨고 우울해하는 건 오히려 나에게도 시간적, 정신적으로 손해가 아닌가. 


그래서 난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가 방류되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명 세상엔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질 테지만, 어쨌든 인간은 살아남으려 할 거고 그 와중에 수혜를 보는 종목이 분명히 있을 거다. 전쟁통에서도 돈 버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된 거, 나는 절망을 거두고 내 나름의 시나리오를 그리며, 그런 수혜 종목들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 사람들이 오염수가 방류된 이후에 잡힌 생선은 더 이상 먹지 않으려고 하겠지. 식당들 보면 생선이나 해산물은 중국산의 경우 미리 1년 치를 계약하여 급랭 창고에 넣어두고 공급받는 형태로도 사업을 많이 하니까,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까지 잡힌 수산물을 쟁여두려는 수요가 많을 것이다.


 다만 이건 너무 예상 가능한 단계였다. 게다가 나는 작년 저염분수 사태 때부터 수산물 관련 종목을 이미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두었다. 이후로 수익이 날 때마다 팔고, 떨어지면 다시 모으면서 꾸준히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생선 말고 다른 소/닭/돼지의 수요가 오르려나? 그렇지만 최근 오랜 시간 내 속을 썩이던 계육주인 마니커를 전량 정리한 상태라 해당 종목을 다시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뭐, 따지고 보면 바다에 풀린 오염수가 결국은 비를 타고 풀밭에 뿌려질 텐데. 그걸 먹고, 밟고 자란 지상의 동물들을 먹는다고 해서 방사능을 피할 수 있나? 그러니 이것도 아웃.


무파사는 말했다. 그게 바로 The circle of Life라고.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 생각을 시작햇을 때 수산물보다도 더,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떠올린 게 있긴 했다. 


'만약 이대로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강행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보험사들 수익성이 안 좋아지겠는걸? 암 발병률이 늘어날 거고, 발병 연령대도 젊어질 것 같아. 그만큼 정기 건강검진에서 조기 암 진단을 받는 경우도 늘어날 것 같은데.. 그 경우 보험사에서 암 진단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아냐, 오히려 사람들이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시점 이전에 암 보험에 미리미리 가입하려고 할 수도 있어. 그렇다면 단기적으로 봤을 땐 보험사 실적은 좋아지지 않을까? 그렇지만 보험사도 바보는 아니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이후 10년 뒤, 20년 뒤의 대한민국 국민의 연령대별 암 발병률에 대해서 시나리오를 짜 보고, 유병력자의 암 보험 가입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설계하거나 월 납입 보험료를 올리거나 하는 식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썩 유쾌하진 않다. 사람들이 아플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사람들이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사태를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왔을 때 가지는 위험성 때문이니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결국 이런 불편한 문제까지 생각이 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실질적으로 생각을 한번 해볼까? 어차피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에 방류되면 그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면 체내에 흡수된 방사능을 희석시켜줄 수 있는 약 같은 건 없을까? 그러나 이에 대해선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글 첫머리에 언급했듯이, 예전에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고 요오드 관련 테마주를 찾아본 적이 있었으나 국내에 요오드 관련 테마주는 선택지가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2,3개 정도?) 그리고 누가 구하기도 어려운 요오드 정을 먼저 떠올리겠나? 나처럼 드라마 본 사람이나 좀 알진 몰라도. 대중 픽은 아닐 것 같았다. 


 그렇다면... 체내에 들어온 방사능을 알약 같은 것으로 간편하게 빼내거나 정화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아예 애초에 방사능의 체내 유입을 막는 데 더 집중하지 않을까?


 지금 스타일러에 외투에 묻은 바이러스를 소독해주는 기능이 있는 것처럼, 어쩌면 10년 내로는 일상생활 속에서 방사능을 차단하거나 방지하게끔 할 수 있는 가전제품 같은 장치가 보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정수기, 그래. 정수기 같은 거. 물속에 잔존되어 있는 세슘, 삼중수소를 비록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해도 나중에는 그런 것까지 걸러준다는 정수기가 출시되지 않을까. 좀 좋은 아파트는 물탱크에 그런 걸 설치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기능을 구현하지 못해도 괜찮다. 불가리스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멸에 효과가 있다는 보도자료 하나로 남양유업 주가가 상한가를 치는 요지경 같은 주식 시장 아닌가. 2020년대 대한민국의 누군가는 이 건으로 마케팅을 할 것이다.


 결국 나는 방사능 오염수 처리에 꽂혀버렸고, 오늘 점심시간을 꼬박 바쳐 방사능 오염물을 정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는 우진과 방사능 계측기를 생산하는 오르비텍의 종목분석 보고서를 읽었다. 사업구조도, 차트도 보고, 재무제표도 보면서, 나의 포트폴리오에 이들을 추가로 투입해야 할지 말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솔직히 너무 무섭다. 피할 수 없는 물을 타고, 수산물들을 타고, 내린 비를 맞고 자란 농작물을 타고, 그 풀을 뜯어먹고 큰 소 닭 돼지 들을 타고 몸 안으로 들어와 소리 없이 내 몸을 손상시킬 그 존재가 너무 무섭다.


 그러나 내겐 오늘도 살아내야만 할 하루가 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무서워도, 그것 때문에 벌벌 떨고 패닉에 빠진 채로 귀한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버릴 순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점심시간,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사능 테마 관련 기업들의 보고서를 살펴보고 투자 결정을 내렸다. 이 혼란한 시기에 일개 투자자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고작 오늘 내가 할 일뿐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지구가 방사능 오염수에 휩싸여 멸망하더라도 일단 나는 오늘의 투자를 하겠다.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절망 대신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KEEP CALM AND 줍줍 ON



+


 사실, '일본 방사능 오염수' 관련하여 종목을 찾아봤을 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검색 결과가 나오는 것은 '수산'주 아니면 '애국주'였다. 그러나 나는 애국주라는 테마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국주 테마는 다른 테마주와 달리 실적이 기반하지 않은 100% 국민감정에만 기대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수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뭐라고? 일본이 기어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뿌려버리고 말겠다는 것인가?'라는 분노라는 감정만으로는 투자 근거가 빈약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것도 아웃시켰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한가! 상한가! 신나는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