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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pr 20. 2021

폭락장에 존버하는 투자자를 위한 안내서

잔액은 못 지켜도 멘탈은 지켜야지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대공황이라는 둥, 도망쳐야 한다는 둥. 눈에 띄는 곳마다 사람들이 패닉에 질린 채로 악을 쓰고, 카톡방엔 '한강대교 정모 장소 최신 업데이트 버전' 짤이 돌아다닌다. 2021년 들어 유래 없는 코인 대폭락장을 맞이한 개미들은 마치 쓰나미에 휩쓸린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우왕좌왕 난리다.


 나 또한 이 폭락장에서 탈출할 타이밍을 놓쳤다. 코인으로 벌었던 돈은 진즉에 다 까먹었으며, 이젠 마냥 그렇게 작지만도 않아진 시드의 10% 넘게 손해를 보고 있다.



실화냐...? (심지어 그나마 좀 회복해서 이 정도임)



  뭐 코인을 시작한 이래로 한두 번쯤 급격한 하락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계속된 폭락 대행진은 좀 정도가 심했다.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만 쭉쭉 빠지는 음봉을 보고 있자면, '대체 코인판에서 차트를 본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행동이긴 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나름 수면 매매하면 좀 회복해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엔 그렇지도 않았다. 어쩐지 이 상황은 아무래도 '조정'이라는 말로 정신 승리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만 급기야는 오늘 하루 동안 비트코인 음봉 차트가 한번 더 하방으로 강하게 내리꽂으며 나의 마지막 남았던 희망까지 부숴버렸다. 


이런 장은 닥터 스트레인지도 못 살려.



 그러면서 내 안의 걸무새가 슬금슬금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 어제 돈 더 넣지 말걸. 손절할 걸. 사지 말고 기다릴 걸.' 등등..  나름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던 멘탈이 원금 손실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망한 차트,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뭐 어쩌겠나? 내가 들여다본다고 해서 다 죽은 시퍼런 잔고가 다시 볼빨갛게 물들이며 양전(*잔고의 수익률이 -에서 +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함. 손익분기점 비슷한 그런 느낌이랄까?) 하는 것도 아닐 테니.


 

 그래, 맘 단디 잡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남은 선택지는 존버밖에 없잖아?

 



 그래서 나는 업비트 앱을 내 스마트폰의 활성화된 창에서 꺼버렸다.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나와 같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존버를 선택한 이들을 위해 하락장 존버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일단 하락장 존버의 모든 방법론에 있어서는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거리 두기.



 이것은 폭락장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가장 베이스가 되는 태도이기도 하다. 차트 흐름이나 잔고 수익률을 확인하다 내가 너무 못 볼 꼴을 봤다 싶다면, 일단은 황급히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내 잔고 눈 감아... (출처 : <책상 생활자의 요가>)



 이렇게 도저히 눈 뜨고 못 볼 하락장을 맞닥뜨려 멘탈이 부서질 때쯤 되면 일단은 코인 과몰입 VI타임(*VI : Volatility Interruption : 일종의 변동성 완화장치로, 특정 종목의 체결 가격이 일정 범위를 벗어날 경우 주가 급변 등을 완화하기 위해 잠시 단일가 거래만 가능하도록 제한하여 과열된 시장에 냉각기간을 갖게 해 줌) 이다. 잠시 업비트 앱을 종료하고 스마트폰을 멀찌감치 둔 채 '거리두기'를 실행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면 오늘만큼은 현생에 한껏 충실해보는 거다.


 직장인이라면 평소에 회사가 원수같이 느껴지고, 그래서 속으로 몰래 '이 놈의 회사, 코인만 대박나봐라. 내가 당장 때려치운다!' 하는 꿈을 꾸며 현생에 조금 덜 몰입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폭락장에는 그래도 오직 회사만이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믿는 구석이 되어줄 것 같이 느껴진다. 회사에 대한 애정도에 단기적 펌핑이 오는 것이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면, 코인 잔고가 꼴도 보기 싫은 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바로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업무에 몰입하고, 실적을 쌓을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기왕 찾아온 이런 기회에 오랜만에 회사 일에 감사함을 느끼며 평소보다 훨씬 노력해서 업무에 집중해보는 게 어떨까. '가상'의 화폐가 내게 꿈을 꾸게 해주지 못한다면,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당장 내 밥값을 결제할 수 있는 체크카드 연결계좌에 매달 한 번씩 꼬박꼬박 돈을 부어주는 '월급'을 주는 회사에 최대한 충실해보자. 어쨌거나 돈은 남으니까.


 그리고 사실, 만약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이런 절망적인 폭락장에서 당신이 직장인이라는 것을 오히려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전에 <허영만의 주식타짜>라는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다. 슈퍼개미 '바람의 숲'의 전업 투자자 친구가 CGV 영화관의 VVIP라는 것이다.

<허영만의 주식 타짜>  바람의 숲 편 중에서



  직장인은 직장에 다니기에 알아서 본인의 정신을 분산 투자할 수 있지만, 전업투자자들읔 오히려 다른 집중할 곳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를 박탈할 어떤 강제적인 '거리두기'상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의 사례에서 나온 전업 투자자는 CGV 영화관의 VVIP가 될 정도로 영화를 봐야만 했다.


 이전 글에서 나는 투자자들에겐 자기 만의 감옥이 필요하다고 쓴 적이 있다. 주식이나 코인 잠시 빠르게 돌아가는 시장과 단절되어 혼자 고요히 생각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직장인들은 그런 점에서는 훨씬 유리한 셈이다.


 만약 내가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다면, 하루 종일 주식, 코인만 들여다보면서 폐인이 되거나 잘못된 투자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 않나. 그러자면 주식, 코인을 안 보기 위해서 다른 몰두할 만한 걸 찾는 데 또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그런 별도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서도 회사에서 생산적인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하락장 멘탈 수호에 도움이 되는 거리두기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럴 때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정말 축하할 일이다.  따로 뭔가를 애써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몰입할 것이 생긴다는 것. 이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 하루 현생에 지독히도 충실해보자.


 그러나 혹시 현생을 열심히 산다 하더라도 퇴근 후에 코인과 '거리두기'가 안될 것 같다면? 그렇다면 퇴근 후의 자신에게도 뭔가 즐거운 일을 만들자. 저녁 약속을 잡고 지인을 만난다던가, 아니면 <허영만의 주식 타짜>에 언급된 전업 투자자처럼 극장에 가자.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오늘 심란해서 충동적으로 표 끊어서 영화 한 편 보고 왔다. 일하다 슬쩍슬쩍 들여다본 장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아서, 그대로 퇴근하면 분명히 집에 누워서 잔고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낼 것 같더라. 혹시라도 손이 잘못 나가 시드를 더 충전한다거나... 손절해버리는 사고를 칠지도 모르고. 오늘 본 영화는 따지고 보면 별로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극장에서는 핸드폰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동으로 거리두기가 되고 좋더라.


 그런데 유독 오늘따라 만날 사람도 없고 영화도 보기 싫고 넷플릭스는 집중이 안될 것 같은가? 그렇다면 차라리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해라. 기왕이면 하는 동안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드는 아주 빡센 걸로. (예를 들면 빌리부트나 버피 같은 거?)


이럴 땐 차라리 게임을 해야.. (출처 : 카카오TV  '개미는 오늘도 뚠뚠' 시즌1)


 나도 마리오 카트 게임을 하고 랭크를 올려가며 이 시기를 잘 견뎌가고 있다. 그리고 또  최근에는 Earth2 라는 가상 부동산 투자를 하나 시작해서, 비트코인 때문에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실제로 내 현금을 넣고 하는 땅따먹기 게임 같은 느낌인데, 가상의 지구에서 땅주인이 되어 세금 받아 재산을 불려 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아직 론칭된 지 6개월밖에 안된 서비스로 비트코인 초창기 느낌이라는데 혹해서 들어갔다. 내가 비록 가상 화폐 시장에선 얼리 스테이지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메타버스 시장에선 얼리 스테이지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코인이 떡락해도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대박 혹은 쪽박이나 다름없는 이게 뭔가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고 있달까.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에 글을 하나 따로 올릴 예정이다.


비록 일시적인 펌핑이긴 하지만 가끔 이런 기적의 수익률도 보여주고..



이도 저도 안되고, 도저히 내 잔고에 건국된 파란 나라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면?




그럴 땐 일단 한 잔 해..

 

그냥 술 먹고 한숨 자라. 자는 게 최고다.


 누구나 점심시간에 15분만 낮잠을 자도 낮잠을 자기 전과 자고 난 후의 하루가 같은 날이 아닌 다른 날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잠은 자기 전후 인간이 갖게 되는 시점에 적당한 거리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건 무엇보다 내가 예전에 황망한 이별을 경험하고 식음을 전폐한 상태에서 한창 불면증에 시달려봐서 잘 아는데, 일단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살 만하다는 거다. 배고파서 밥 먹고, 술 먹고서 졸리면 '아 나 아직 그래도 좀 괜찮구나. 멘탈 최저점을 찍진 않았구나.' 하고 안심하고 그냥 자면 된다.


 그렇게 하룻밤 자고 이틀밤 자고 열 밤 자고 천일 밤을 자면 설마 안 올라있겠나?


그러니 다들 오늘은 일찍 접고 그냥 자자.

다들 폭락장 존버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잘 자요! (Sleep Tight!)



+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나의 투자자로서의 또다른 자아인 100불녀로 부캐를 생성했으며, 매일매일 그 날의 투자 드립을 좀 가볍고 부담 없이 올려볼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 @100.fire.girl


예를 들자면 이런 거...

<하락장과 나비>

아무도 그에게 저점을 알려준 일 없기에 나비는 도무지 하락장이 무섭지 않다.

조정인가 해서 물타기 했다가는
작고 귀여운 시드가 떡락에 물려서 호구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사월달 코인장이 불바다가 아니라 서글픈
나비 잔고에 새파란 수익률이 시리다.


※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 를 패러디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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