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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y 15. 2021

내가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을 세력들에게

응 절대 안 속아


 지난 목요일 아침. 언제나처럼 눈을 뜨자마자 업비트 앱을 켜서 현황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코인 창에 온통 시퍼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대형 메이저 코인 및 그나마 '근본 있는' 코인이라 생각했던 이더리움 클래식 등도 같이 하방으로 내리꽂고 있었다. 최근 들어 꾸준히 올라왔던 상승분을 모조리 반납한 채로 형성된 코인 시세를 보니, 마치 코인 시장이 태초마을로 회귀한 것 같았다.


눈떠보니 태초마을 이벤트가 찾아왔을 때의 내 심경을 서술하시오.jpg



 이더리움을 제외하고는 수익률이 올 -가 떠 있긴 했지만, 그다지 공포스럽거나, 패닉 셀을 할 마음이 들진 않았다. 그저 화가 났다. 그렇잖아도 최근 비트코인이나 도지코인 등 이런저런 코인 시세 변동에 보이지 않는 세력의 장난질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특히 일론 머스크의 SNL 출연 이후로 지난 일주일간의 그의 행보와 비트코인, 도지코인의 시세 변동을 보면 그런 액션 하나하나가 표면적인 이유와는 다른 속내가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트코인 아직 매집 덜 끝났나 본데?'


'아, 얘가 도지코인 아직 다 못 팔았구나'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학창 시절, 나는 반골기질이 무척 심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시험공부를 하거나 시험을 볼 때에도 내가 정직하게 외우거나 풀어야 할 그 문제의 정답 자체에 집착하기보다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더 집착하는 편이었다. 


 보통 시험문제에 보기 5개가 나오면, 딱 봐도 너무 정답이 아닌 오답은 3개 정도가 걸러지고, 둘 중 하나로 후보가 좁혀진다. 이 최종 후보 중 정답이 아닌 것이 바로 '매력적인 오답'이다. 나는 그 '함정답'을 찾는 과정을 더욱 즐기곤 했다.


 '어, 선생님이 1, 4번 보기 헷갈리라고 이렇게 내놨네. 어떻게 보면 4번이 답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안'되는 것을 찾는 것이니까 이건 아니야.'


 '대충 읽고 지나가면 답이 3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안 통하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찌 보면 나는 공부 그 자체보다 시험을 더 재밌어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 정답을 찾아내는 것은 너무 밋밋하고 시시했다. 정답은 그저 바른 답일 뿐, 그 자체에는 아무런 스토리가 없었다. 대신 '매력적인 오답'에는 이것을 설계하기 위해 고민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무한한 스토리가 생겨났다. 15분 만에 시험 문제를 다 풀고 시험지를 다시 한번 찬찬히 검토하며 시간을 보낼 때마다, 그런 스토리를 속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겨우 이런 얕은 수로 나를 낚으려 하다니! 나라면 이렇게 더 헷갈리게 냈을 거야. 이러면서.


 이렇게 시험지를 사이에 둔 출제자와 나의 두뇌 싸움 패턴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봤던 모든 시험 - 중, 고등학교 시험, 수능 시험뿐 아니라 자격증 시험이나 토익 시험, 승진 시험까지 -  에 공통으로 적용되었다. 시험지 하나만 던져줘도 이렇게 오만 상상을 하며 혼자 재밌어하던 내게,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 이면의 메시지를 파악하고, 그 일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상상해 봐야 하는 시장은 너무도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코인 시장이 하루아침에 태초 마을로 회귀한다고 해서 그 현상만 보고 내가 겁에 질려 들고 있는 물량을 던질 거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오산이다. 내 입장에서는 현재로서는 -30%가 됐든 -50%가 됐든 비트코인을 던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꾸준히 우상향 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장기적 전망을 보면, 최근 들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하락장에 낙폭이 더 커지면 커질수록 보이지 않는 세력이 개미들의 매도 물량을 받아내려고 위아래로 탈탈 털어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지금 장이 수익 내기 어려운 장인 것도 많고, 여태까지 내가 코인을 하면서 큰 수익을 못 본 것도 맞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여기서 그들의 의도대로 얌전히 물량을 내놓고 물러나 줄 뜻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의 어지럽게 요동치는 코인 시장을 보면 나는 어릴 때 봤던 이솝우화 <북풍과 태양>이 떠오른다. 태양과 북풍이 지나가는 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한다. 북풍은 나그네를 향해 강풍을 날려 바람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고 한다. 그러나 바람이 거셀수록 나그네는 더욱 경계하고 외투를 손으로 꼭 여민채 몸을 웅크리고 길을 간다. 결국 북풍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데 실패한다. 뒤이어 도전한 태양은 나그네에게 따뜻한 햇볕을 내리쬔다. 온몸이 따뜻하고, 더워지는 것을 느낀 나그네는 외투뿐 아니라 속옷까지 전부 벗고 근처 강가로 뛰어든다.


 나는 요즘 매섭게 등락을 반복하는 비트코인 시세에서 북풍 같은 세력의 모습이 보인다. 2, 3월 이후 대거 유입된 개미들을 겁박하는 그들 모습이. '이래도 늬들 물량 안 버릴 거야? 이래도 패닉셀 안 할 거야? 개미 주제에 이래도 비트코인 계속 사 모을 거야?' 이렇게 겁 주면서 계속 위로 아래로 혼란스럽게 개미 털기를 해대는 그 심술궂은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시세가 하락할 때마다 언론에서 앞다투어 쏟아지는 언제라도 급락할 수 있다느니, 가상 화폐의 안전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느니, 거래소 문을 언제라도 닫을 수 있다느니 하는 불안을 조장하는 후려치기 뉴스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저것들도 어지간히 사고 싶은가 보다.' 보이지 않는 세력은 지금도 계속 메이저 코인을 매집해 가고 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이슈 메이커들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한 마디씩 툭툭 나올 때마다 구실 삼아 과도하게 가격을 내리누르면서. 세계 여러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하락 후 저점을 찍을 때마다 틈틈이 비트코인을 저렴한 가격에 매집해 가고 있다. 언젠가는 비트코인이 제도권 안에 들어올 그때가 오기 전에 미리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고래 같은 세력 입장에서는 고작 0.001g의 무게도 나가지 않을 하찮은 개미인 내가 가진 0.00001BTC까지 모조리 털어내고 말겠다는 세력의 북풍 같은 운전을 보며 나는 더 이를 악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응, 더 해봐, 더 흔들어봐 어디!
내가 내 물량 내놓나. 더 사면 더 샀지,
지금 내가 가진 물량 너네한테는 절대 못줘~





 기왕 내 돈을 털어먹으려거든 이렇게 양아치같이 시세 떨구며 공포 유도하지 말고, 5%, 10%라도 햇볕 같은 따땃한 수익을 주던가!






 최근,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보았다. 이 영화에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권선징 악형인 응징 구도도, <빅 쇼트> 와 같은 신랄한 풍자도 없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남는 메시지는 그저 이것뿐이다.


"내가 속을 것 같지? 난 너네가 하는 말에 절대 안 속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위기의 상황이 닥쳤을 때 나를 구해주는 것은 바로 그 '의심하는 힘' 뿐이기에.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매드아이 무디가 늘 하는 말처럼, 시장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지속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일론 머스크 고마해라 진짜 이젠 재미없다 ㅋㅋㅋ (이러다 누가 또 들고일어나서 게임스탑 같은 사태 또 한 번 생길지도 몰라....)


본인이 초래한 패닉을 two syllable로 수습하려 하다니 대단히 건방진걸?




인스타그램 : @100.fire.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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