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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y 29. 2021

Slow But Steady Wins The Race

테트리미노를 기다리며, Take it Slow.

  

또 시작이다.

비트코인이 지옥의 하락장에서 조금 회복하는가 싶었는데, 안심하기 무섭게 또다시 하락장이 찾아왔다.

 

아니 어디까지 가십니까...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호기롭게 "존버 하겠다" "HODL!!"을 외쳐댔지만, 주말에 비트코인의 호가가 업비트 기준으로 4천만 원이 깨졌을 때는 정말 멘탈 잡기가 좀 힘들더라. 나도 사람인지라 괜찮은 척해도 별로 괜찮지가 않았다. 거기서 횡보해줄지, 반등할지, 내려가면 얼마나 더 내려갈지, 이게 바닥인지 내핵인지 외핵인지 도저히 예상도 못하겠고.


 이쯤에서 나 자신을 속이려고도 해봤다. '괜찮아, 오를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근데 주말을 마무리하는 일요일 밤, 월요일 출근을 위해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 거다. 계속 뒤척이는 와중에 울컥, 분노와 같은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괜찮은데, 괜찮아야 되는데,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아드레날린인지 도파민인지 모를 감정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런 걸 울화통이라고 부르는 건가? 내가 만약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이었다면, Anger가 내 마음의 컨트롤 타워를 잡은 상태였을 것이다.

 

비트코인 너어...!


 밤새 뒤척이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업비트 앱을 켜서 시세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 그렇다. 볼 때마다 늘 새롭고 짜릿하더라.) 충격을 받고 또 잠을 못 이뤘다. 그 새벽에 일어나서 팔굽혀펴기나 스트레칭을 해보고, 방을 정리하면서 조금 움직여보기도 했는데도 잠이 안 왔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것도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결국 그 난리 부르스를 추다가 새벽 4시쯤 겨우 지쳐서 잠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날 취했던 3시간의 쪽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 몸은 눈만 감겨 있었을 뿐, 그 속은 아마도 지속적인 분노로 인한 실질적 각성 상태였던 것 같다. 그날 수면 부족의 여파는 이후로 최소한 3~4일간 지속적으로 나의 컨디션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쳤으니까.


 그 사이 손댈 틈 없이 지속되는 평가금액의 추락에 나는 안으로부터 점점 말라가며 의욕을 잃어갔다. 그동안 틈틈이 물을 타 온 나의 업비트 계좌 잔고에는 이미 내가 처음에 코인 자금으로 운용하기로 결심했던 금액의 2배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더 이상 씨드를 붓고 싶진 않았다. KRW는 0원이었다. 지난주에 월급을 통해 채굴했던 나의 KRW는 이미 비트코인에 들어가 기어이 마이너스를 보고 있었다.


 만약 이게 주식 계좌였다면, 나는 모든 종목에서 일괄적으로 비중을 조금씩 덜어내어 반등 시 회복이 빠른 우량주에 묻는 전략을 취했을 것이다. 알트코인들을 현재 수익률과 상관없이 전체에서 각각 10%씩 비중을 덜어내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의 우량주로 바꿔놓아서 반등 및 상승 시 손해를 만회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이것도 손실률이 정도껏이어야 손절을 하지.. 알트코인들은 이미 -50%~70% 선에서 놀고 있어서 도저히 손절할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내 잔고는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네?' 이런 T.T 같은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너스 잔고에 수면 부족은 최악의 조합이다. 거기에 '가망 없음'까지 추가된다면...?


 

 바닥을 뚫고 아래로 향하는 내 잔고의 미실현 손익과 달리 나의 우울함과 심란함은 펜트하우스를 찍고 있었다. 가슴이 자꾸만 답답했다. 이 하락장으로부터 오는 어두운 에너지가 내 생활 전반에 파고들어 내 균형 잡힌 일상을 파괴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겠어.'




 30대 중반쯤 되면, 그리고 관심이 분산될 인간관계없이 고립된 채로 혼자 살다 보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다루는 어느 정도의 매뉴얼이 생기는 법이다. 나는 맨날 공상만 하는 것 치고는 꽤나 실질적인(Practical)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항상 '그래서 내가 뭘 해야 하지?'를 먼저 생각했고, 단번에 그 답을 찾아내고 그 답을 실행하는데 집중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노답' 상황을 제일 못 견뎌했다. 상황이 암담한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 무력감은 언제라도 내 인생을 가장 심각하게 파괴할 수 있는 빌런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뭔가 할 일을 던져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코인 시세가 올라올 때까지 초 마이크로 분할매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각각 1만원어치씩 매수하기로 한 것이다. 단, 이더리움은 평단이 비교적 나쁘지 않아 가만 내버려두어도 수익권으로 올라올 때도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시세를 확인하고 당일 이더리움이 +수익률일 경우에는 기타 알트코인 중 하나를 골라서 1만원어치를 매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물려 있던 코인이 하나 평단 위로 올라와서 '탈출'을 하거나 수익이 생기는 날에는 1만원 매수를 쉰다. 이 방식은 내가 팔로우하는 투자 관련 인스타그램 운영자 중, 시세에 관계없이 매일 꾸준히 1만원씩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매수하는 계정이 있는데 그부터 힌트를 얻은 것이다.

 

 코인은 주식보다 변동성이 심하기 때문에, 중간에 씨드를 부어서 매수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저점이라는 보장이 없다. 큰 맘먹고 30만원을 입금하여 비트코인을 '풀매수'했는데, 다음날 비트코인이 나락에 가 버린다면? 손도 묶인채고, 돈도 없는 나에겐 울화로 인한 불면증이 찾아올 뿐이겠지. 나는 수면부족으로 루틴이 망가져버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코인 시세가 어떻게 변하든 휘둘리지 않는 초연함을 갖지는 못할지라도, 상황이 어떻든 나 자신에게 뭔가 '대응'할 수 있는 대응책을 쥐어준다면 적어도 나 자신을 무력감의 마수로부터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에 30만원은 부담스럽고, '타이밍'을 철저히 노려야 하는 금액이지만 하루 1만원이라면? 카카오뱅크 적금 넣는다 치고 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시장의 요동침에 상관없이 적어도 하루 1만원씩이라도 물을 타든 불을 타든 꾸준히 매집하다 보면, 언젠가는 테트리미노(*테트리스 게임을 플레이할 때 나오는 4칸짜리 막대 기둥 모양의 블럭) 같은 불기둥이 내 종목에 강림하여 나를 한 방에 탈출시켜줄 수도 있지 않을까?


불기둥 한 방 나와주면 다 끝난거지.jpg


 생각해보면, 2020년에 한창 요동치던 주식 시장에서 내가 하락장에 취했던 전략 또한 '보유종목 전종목 2만원씩 물타기'였다. 뭐 하나 어떻게 손댈 수 없이 급격하게 빠지던 그런 장에서, 그 때 그때 실시간으로 보면서 이것저것 종목별로 대응하는 것은 직장인 투자자인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2만원씩 물을 타다 보면 어느새 불기둥이 한 번씩 나와주곤 했다.


  수익을 보기 위해 특정 종목을 매집하는 과정을 테트리스 게임으로 비유해 보자면, 나는 하락장에 그때그때 매수 매도를 반복하며 바로바로 5%, 10% 선에서 단타로 수익을 실현하며 한줄한줄 지워나가는 게 아니라, 불기둥 같은 테트리미노의 빈자리를 만들어두고 신중하게 5주, 10주씩 매집하여 물량을 쌓아가고자 한 것이다. 마침내 테트리미노가 왔을 때, 공들여온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4줄을 한꺼번에 지우는 쾌감을 느낄 정도의 큰 수익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4배로 기쁘지!


 최근에도 주식 장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하락장에 굴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떨어질 때마다 하루 2주, 3주, 5주씩 꾸준히 매집했더니 결국 주 후반에 일부 속 썩이던 종목들에 테트리미노 같은 불기둥들이 떠 줬다! 그중 하나는 금 현물이었는데, 꽤나 오랜 시간 -수익률이었음에도 헷지라고 생각하고 계속 보유하고 월급을 받을 때마다 추가로 꾸준히 사모았더니 결과적으로는 수익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금 같은 경우에는 수익을 봤다고 매도해서 수익을 실현할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최근에 본 불기둥들.jpg



 이제 나는 코인으로도 이러한 테트리스 게임에 한번 도전해보려고 한다. 사실, 주식의 경우에는 종목 선정 단계에서 이것저것 참고할 자료도 많고, 펀더멘털과 소재들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락할 때 조금씩 모아가는 유형의 매집 전략이 유효했던 것 같다. 신중히 생각하고 제대로 된 종목을 골랐다면 지수가 출렁거릴 때마다, 평단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나중에 지수가 회복되면 주가는 결국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기 마련'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꺼이 매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코인은 그런 게 없어서, 이 전략이 과연 통할지는... 나도 한번 해봐야 알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 지금 이대로 무력한 내 모습을 보며 시장에 한없이 패배한 기분을 느끼며 잠 못 자고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하루 1만원씩이면 그다지 부담스러운 돈도 아니다. 커피 한잔 덜 마시고, 점심밥 도시락 싸 먹고 그러면 되니까. 매일 단돈 1만원씩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사기라도 하면, 그래도 이 상황에서 '내가 마냥 손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늘 하루 그래도 뭐라도 했다'라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 면죄부 값이 하루 단 1만원이라면 그건 좀 할만하지 않나.


 하루 1만원이 너무 감질난다고? 그래도 뭐, 이 매거진의 이름이 <주식하는 작고 귀여운 마음>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나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소심한 전략이 잘 맞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잘 알려진 미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Slow But Steady Wins The Race.




 주식이든 코인이든 투자를 하는 데 있어서, 무조건 큰 시드로 빨리빨리 크게 크게 보폭을 내딛어야지만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어차피 규모의 경제로는 고래같은 세력과 게임이 되지 않는 한낱 개미투자자인 내가 보이지 않는 세력에 대항해 가진 무기는 결국 시간과 꾸준함 밖에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빚투는 안 하니까, 내 시간을 온전히 내 뜻대로 쓸 수 있다. 이번 하락장에서도 비록 평가 손익은 -지만 단 한 푼도 손절 안 했다. 10년 20년 물려있어도 된다. 기회비용은 좀 아깝겠지만, 나는 Take it slow 할 수 있다.


 그러니 한번,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꾸준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며 물을 타보련다. 매일 1만원씩이라도.


 이러다 탈출하면 좋은 거고 못한다면? 뭐, 언제나 인용하는 커트 보니것의 문구를 또 인용할 수밖에.



 뭐, 그런 거지(So it goes). 



그래도 나는 할 만큼 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덜 괴로울 거라 믿는다.



물론 이렇게 와르르 맨션이 되면 안되겠지만....



인스타그램 : @100.fire.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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