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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un 14. 2021

비욘드 미트 주주는 버거킹에 간다

가치 투자자 = 가치 소비자


 얼마 전, 버거킹에 갔다. 패스트푸드를 그다지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나에겐 반드시 버거킹에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바로 버거킹에서 올해 출시한 플랜트 와퍼를 꼭 한 번 먹어보는 것이었다.



 플랜트 와퍼는 버거킹에서 출시한 채식 버거이다. 이 버거에 들어가는 패티는 콩 단백질이 주원료인 대체육으로, 인공 향료 및 보존제도 사용하지 않은 식물성 패티라고 한다.


 나는 한때 채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 채식을 하기 시작했던 것은 호주에서였으니까, 아마도 한국에 귀국한 23살 무렵부터 한 5,6년 정도 지속했던 것 같다. 비건 채식처럼 엄격하게 하지는 못했고, 가끔은 생선까지는 허용하는 정도의 페스코 채식이었지만 그래도 한 6년 정도는 육고기를 전혀 입에 대지 않았었다.


 가끔 고기가 먹고 싶어질 때는 콩고기 같은 대체육을 사 먹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 근처에는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채식 전용 마트가 있어서 대체육을 구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채식주의자들이 이뤄 놓은 대체육의 눈부신 발전을 목격하곤 했다. 콩으로 만든 스팸부터 콩단백을 오뎅 같이 길게 압축해 놓은 베지 슬라이스라던지, 콩치킨이라던지, 콩까스라던지, 베지 장조림 같은 것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심지어 육식주의자들만의 전유물로만 느껴지는 삼겹살을 본떠 만든 삼겹채라는 식품도 있었다.


http://www.vegefood.co.kr/


 사육장에 가둬진 삶도 없고, 성장촉진제도 없고, 피도 없고, 무엇보다 '절망'이 없는 고기. 비록 희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더라도, 공장식 축산업의 절망적인 삶으로부터 태어난 고기를 먹고 싶진 않았던 나에게 콩단백이나 쌀, 밀로 만든 각종 채식용 고기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다만, 채식 고기를 먹을 때마다 역시 진짜 고기가 아니기에 맛과 향에서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은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와중에 그나마 가장 맛이 진짜 고기에 비해 덜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이 바로 채식 버거였다. 패티에서 콩고기 특유의 맛이 아예 안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소스를 끼얹고 야채들을 얹어 한꺼번에 한 입 베어 물면 가끔은 진짜 고기같이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이번에 버거킹에서 플랜트 와퍼가 출시되었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그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험난했던 나의 20대 시절 채식 라이프를 떠올려보았다. 당시 채식은 비주류였고, 콩고기는 맛없지만 뭐 그럭저럭 먹을만한 것이었는데. 세계적인 버거 프랜차이즈에서 채식 고기를 활용한 햄버거가 출시되다니. 10년이면 정말 세상이 많이 바뀌긴 바뀌는구나, 하면서.

 

 그럼에도 이번에 내가 플랜트 와퍼를 사러 간 것은, 단지 채식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10년 전에 비해 채식 고기의 맛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물론 궁금하긴 했지만, 오직 그것만이 100%의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버거킹에 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식물성 대체육 분야의 선도 주자인 비욘드 미트라는 업체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식물성 육류를 개발하는 회사의 비전을 믿고 가치 투자 중인 주주로서,  대체육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 그 현주소를 한 번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



 주식과 관련된 대가들의 책을 보면 거의 항상 공통적으로 나오는 조언이 있다. '행동하는 투자자가 돼라'는 것이다.  단순히 원거리에서 기사나 분기 보고서,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만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주로서 투자 중인 기업을 직접 방문해 보거나 주주 총회에 참석해서 질문이라도 직접 하나 던져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투자한 회사와 지독하게 엮여 보라고.


 그러나 나처럼 직장에 다니면서 투자를 병행하는 경우에는 그와 같이 본격적으로 '행동하는 투자자' 루트를 타는 것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개미 투자자가 뭐 어디 가서 기업 탐방을 요구할 수 있는 규모의 시드 머니로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기업들이 주최하는 주주 초청 행사들에 초청된다 해도 다 따라다닐 수 있을 만큼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그러니, 작고 귀여운 시드로 투자하는 작고 귀여운 투자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행동'은 결국 이렇게 가치를 담아 소비를 하는 행위가 아닐까.



 사실 버거킹의 플랜트 와퍼가 내가 투자 중인 비욘드 미트사의 제품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뭐, 내 입장에서는 꼭 비욘드 미트의 식물성 패티를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 대체육 시장은 이제 막 초기 단계이기에, 일단은 어디서든 화제를 일으켜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시장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게 중요하니까. 그러니  결국 이 시점에서 내가 대체육 가치 투자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은 어디서 대체육 관련해서 뭔가를 출시했다고 하면 일단 가장 먼저 달려가서 기꺼이 내 돈을 내고 사 먹는 소비자가 먼저 되어 보는 것이다.



버거킹에 이어 노브랜드 버거의 노치킨 너겟도 먹어보았다.


 그렇게 대체육 가치투자자로서 최근 나온 대체육 식품들을 이렇게 찾아서 먹어 본 소감은 음.. 뭐랄까,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는 데 더 가깝다. 확실히, 진짜 고기를 따라잡으려면 아직도 많이 멀었다.(그나마 다행인 건 10년 전보다는 맛이나 식감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렇기에 더욱 지금 이 시점에 대체육 시장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맛적인 면에서 부족할지 몰라도, 점점 공장식 축산이나 지구 온난화, 식량 불균형 등의 사유로 대체육을 찾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대놓고 부정하지 못한다. 대체육의 필요성과 지향하는 점에는 별로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사회적인 분위기의 변화도 한몫한다. 10년 전에 비해서는 채식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누그러졌다. 그렇다면 현재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맛뿐이다. 이거면 오히려 얼마나 심플한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지향점에 공감한다면, 맛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개선해나가면 되는 영역이 아닐까.





 내가 비욘드 미트에 투자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너 그거 한번 먹어보고는 투자하는 거니? 먹어보면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 텐데.."라며 비웃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 저는 먹어보고 투자하는데요."



 가치 투자를 완성시키는 방법은 결국 이렇게 내가 먼저 가치 소비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나중에는 고기든 대체육이든 다 고기서 고기 아닌가. 그러니 궁금하다면 일단 한번 먹어보는 수밖에.


 그리고 그렇게 먹어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대체육 시장의 트렌드에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쫓아가 볼 것이다. 지금도 꼭 식물성이 아니더라도 대체육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곤충을 원료로 쓴다거나, 동물 세포로 배양육을 만든다던가 하는 방식들 말이다. 대체육 시장은 길게 보면 아직도 초기 단계에 불과하기에, 얼마든지 하루아침에 기존의 상식을 깨는 전혀 새로운 방법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는 곰팡이 고기에 조금 기대를 걸어보고 있기도 하고..



 가치 투자자로서 성장주에 투자하면서 좋은 점 하나를 골라보라면, 인류에 대한 신뢰 회복인 것 같다. 인간의 잘못으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송하기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고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이 세상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아도, 앞으로는 지구에 좋지 않은 일만 벌어질 것만 같고 내 눈 앞에 계속해서 못 볼 꼴만 펼쳐질 것만 같아도.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신박한 기술들을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뉴스들 속에서 나는 내심 알게 모르게 다시 인류애를 회복한다. 인간들은 정말 뭐든지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쩌면 아직 이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 계속 이 땅에 희망을 가지고, 지구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기술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하루씩 하루씩 더 살아보련다. 투자자로서도, 지구인으로서도. 그런 희망은 아주 중요한 거니까.


어차피 나중에는 대체육을 포함해서 '다 고기서 고기다' 소리를 듣게 될 그날까지!



+


여기서 반전 하나.



 사실은 얼마 전에 뱅카우(Bancow)라는 소테크 플랫폼을 통해 실물 한우에도 투자했다. 시범 삼아 한 번 투자해봤는데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좀 더 봐야겠다.


그렇게 대체육과 한우 자산을 모두 포트폴리오에 담은 나...


이것이 바로 나이팅게일 매수법..!


 어쩔 수 없지.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이렇게 모순과 싸우는 것 아니겠나.


 그래도 한편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살아 있는 송아지를 되도록 건강하게 키워내는 것과, 가급적 무분별한 공장식 축산을 통해 생산된 고기를 거부하고 대체육을 먹는 것은 아주 근본적으로 파고들어 가 보면 어느 정도 그 맥락이 서로 이어지는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설득력이 다소 떨어질 순 있지만... 하여튼 그렇게까지 대척되는 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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