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나는 고모 댁에 맡겨져서 컸다. 당시 만으로는 7살이었던 나는 너무도 무서웠던 어머니로부터 해방된 것이 마냥 기뻤던 것 같다.
나를 맡아주신 고모 또한 바깥일을 하시느라 늘 집에 안 계셨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고종사촌들은 각자의 일로 항상 집에 없었다. 자연스레 늘 혼자 있을 수밖에 없던 집에서 나는 생애 최초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 자유는 당시 어렸던 내게는 좀 버거울 정도여서, 나는 도무지 그것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몰랐다.
일단 내가 제일 먼저 했던 것은 안 씻는 것이었다. 결벽증이 있었던 어머니는 늘 내 몸을 아플 정도로 때수건으로 밀어댔다. 내 몸에 있는 얼룩덜룩한 반점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머리를 감을 때는 강압적으로 고개를 숙이게 하고 물을 끼얹었다. 이 과정에서 코에 물이 들어가 켁켁거려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하루는 콧속이 너무 아파서 머리를 감기 싫다고 그녀에게 무릎꿇고 빌며 울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짜증 나게 한다고 어린 나를 발가벗겨 집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눈이 오는 날이었고, 나는 벌벌 떨며 아파트 경비실에서 경비 아저씨가 둘러준 담요를 덮고 난로를 쬐다 곧 찾으러 나온 어머니에게 또 혼났다. 밖에서 반성하지 않고 여우처럼 따뜻한 경비실로 숨어들어 불을 쬐고 있었다고.
어쨌든, 그 때의 내게 '씻는다'는 행위는 늘 고통을 동반했다. 매일 씻을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한없이 미워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자각은 한겨울에도 몸에 끼얹어지던 찬물처럼 슬프게 다가왔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어른들의 통제에서 벗어난 내가 처음 한 것이 마음껏 더러워지고, 스스로 몸을 씻지 않는 것이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이혼해서 집을 나가기 전까지 나는 늘 어머니가 씻겼기 때문에 혼자 샤워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이 닦고 세수하는 것 정도만 혼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고모도, 고모 댁의 고종사촌들도 그 사실을 몰랐다. 다들 아침에 눈 뜨면 나가기 바빴고, 저녁 때는 나보다 늦게 들어왔다. 그들은 막연히 '쟤도 클 만큼 컸으니 알아서 씻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방치된 나는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텼다. 옷을 다 벗고 몸에 찬물을 끼얹는 것도 싫었고, 머리를 어떻게 감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샴푸와 바디샴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가끔 답답할 때 몸에 물만 끼얹었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과 목 뒤에서 땟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매우 꾀죄죄한 아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방과 후에 친구 집에서 놀고 있는데, 나를 예뻐해 주시던 친구 어머니가 내 머리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내 머리 사이를 뒤지더니 까맣고, 수박씨같이 생긴 무언가를 잡아내었다.
그것을 본 아주머니는 기겁을 하셨다. 내 머리에서 나온 건 머릿니라는 벌레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머리는 얼마에 한 번씩 감냐고.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았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며 나를 그 집 욕실로 데려가셨다. 이전부터 그 아주머니는 아마 나의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을 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몸에서는 꼬릿한 냄새가 나는 꾀죄죄한 내 행색을 보고 선뜻 본인의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놀러 갈 때마다 맛있는 걸 주시고, 운동회 날에는 나를 보러 올 수 없는 내 부모를 대신하여 대신 도시락을 싸 주시고, 발 사이즈에 맞지 않는 내 운동화를 보고 본인의 운동화를 신고 가라며 내어주던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을 당시의 그 분을 생각하면 '나라면 과연 나같은 아이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날 아주머니는 자기 집 욕실에서 나를 정성스레 씻겨주셨다. 마치 당신의 딸에게 가르치듯이 내게 혼자서 고개를 숙인 채로도 무섭지 않게 머리를 감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하나만 약속하자고 했다. 앞으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물로 꼭 이렇게 머리를 감기로. 내 머리를 간지럽게 하는 이 모든 머릿니들이 사라질 때까지. 안 그러면 머리를 두피가 보일 때까지 빡빡 밀어야 한다고 하셨다.
머리를 보기 흉하게 빡빡 밀기는 싫고, 무엇보다 내가 더러운 탓에 몸에서 이런 게 나왔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던 나는 그날 이후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꼬박꼬박 지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한번. 나는 그렇게 매일 머리를 감고 샤워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 와중에 가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아주머니는 내 머리에서 아직 남아 있는 머릿니를 잡아주셨다. 하나, 둘, 머릿니가 잡히는 수가 점점 줄어갔다. 그렇게 꾸준히 뜨거운 물로 하루 2번씩 머리를 감은 지 마침내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혔던 머릿니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마침내 머릿니를 박멸한 날, 아주머니는 기뻐하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얼핏 눈가에 눈물이 비쳤던 것도 같다. 아주머니는 나를 안고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자랑스럽다는 듯 말씀하셨다.
"지난 두 달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넌 정말 꾸준한 아이구나!"
아주머니는 모든 것을 나의 공으로 돌렸다. 내게 머리를 감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내가 지켜야 할 discipline을 내려주신 것은 아주머니 본인이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행해서 머릿니 퇴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것은 결국은 나의 행동과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들어보는 타인으로부터의 칭찬이었다.
인생에서는 절대 잊을 수 없이 머리에 박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저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당시 채 10살이 되지 않았던 내가 머릿니를 완전히 퇴치하고 들었던 인생 첫 칭찬 - "넌 정말 꾸준한 아이구나!" - 는 그렇게 내 마음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경험이 무색하게도, 자라나면서 나는 사실은 내가 그다지 꾸준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천성은 오히려 그와 반대로 대체로 게으르고, 즉흥적인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나는 반복되는 것에 무척 지루함을 느끼는 변덕스러운 성격이기까지 했다.
다만, 그런 내가 살면서 아주 가끔씩 매우 이례적으로 꾸준함을 발휘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마다 나는 항상 뭔가를 이뤄내곤 했다. 신기하게도 그런 성과를 동반하는 꾸준한 행위에 한해서는 아무리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도 지겹지 않았다.
최근 비트코인 투자를 하면서 있었던 일도 그와 같은 이례적인 순간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 매거진의 지난 글(Slow But Steady Wins The Race) 에서 윤오영 수필가의 유명한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 나오는 노인의 자세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매일 꾸준히 1만 원씩 매수하겠노라고 공언한 바 있다. 코인 시세가 급락하여 내가 매수한 대부분의 코인 수익률 또한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저 그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당장 크게 물 탈 돈도 용기도 없지만 매일 1만 원씩이라면 시세에 상관없이 꾸준히 매수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투자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매일 1만 원씩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매집하는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실제로 꾸준히 그 다짐을 지켜오고 있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혹은 생각날 때마다 꾸준히 비트코인/이더리움을 시장가로 각 1만 원어치씩 매집했다.
지독한 기분파에다 변덕쟁이인 내가 어떻게 내가 매일매일 이렇게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꾸준하게 매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인지 나도 신기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본능적으로 이 시기가 바로 내가 꾸준함을 발휘해야 할 몇 안 되는 이례적인 케이스라는 것을 스스로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매일 시장가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1만 원씩 매수'.
나의 꾸준함을 유발하는 이 지령은 너무도 명확해서 오히려 다른 어떤 잡생각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내 의지를 벗어난 영역에서 내 행위를 무의식이 조종하는 느낌이었달까? 평소 상승장에 업비트 앱을 보며 코인을 매수 매도할 때에는 내 뇌가 주도적으로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뇌는 생각을 셧다운 하고, 손가락이 자체 의지를 가지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마치 어릴 때, '아주머니가 머리는 반드시 감아야 하는 거고, 매일 머리를 감아야 머릿니를 없앨 수 있다고 했으니까' 착하게 곧이곧대로 매일 뜨거운 물에 머리를 담갔던 그때의 나처럼. '지겹다, 아니다'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지독히도 칸트적으로 그 행위를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꾸준함의 비결은 어쩌면 이렇게 그저 해야 할 행위만 최대한 단순한 명제로 남기고, 이외의 모든 잡생각을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그런 꾸준함은 최근 비트코인의 상승과 함께 조금씩 결실을 맺을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조금씩 상승하던 비트코인 시세가 마침내 내 매수 평균선 위로 상승하여, 완벽하고 안정적인 양전(*수익률이 음수(-)에서 양수(+)로 전환되는 것)을 이뤄냈으니까!
안정적 양전☆
그러나 이렇게 양전한 차트에도 오늘도 나는 흔들리지 않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시장가로 1만 원어치씩 매수했다. 한 달이면 60만 원이 되는 돈이고, 비트코인이 양전 한 것을 생각하면 굳이 머리를 굴려서 아직 -인 이더리움만 2만 원어치 사서 물타기에 충실해도 될 것 같지만. 일단 코인에 있어서는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이라는 것을 일절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코인..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니 어차피 내가 머리 굴려도 안 되는 거라면 나는 그저 무식하게 꾸준해보기라도 하련다. 이렇게 매일 1만 원씩 사면 1년에 730만 원이고, 10년이면 7300만 원이 된다. 평단이고 뭐고 그냥 난 무식하고 꾸준하게, 우직하게 가보련다. 모르는 일이다. 낙숫물이 주춧돌을 뚫듯이, 이렇게 소소하게 쌓인 돈이 언젠가는 내 인생을 바꿀 돈이 될지도 모르고.
남들이 보기엔 답답하고 느린 방법처럼 보일지라도, 행동도 굼뜨고 공부도 버거운 내겐 아마도 이게 정답일 것이다. 방망이 깎던 노인이 결국 마음에 드는 방망이를 완성할 때까지 뜸을 들였던 것처럼, 방망이 깎는 여인이 되어 불기둥을 완성할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매일 1만 원씩 담가볼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지루한 것을 싫어하며 즉흥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반대로 게으르고 즉흥적인 내가 한번 꾸준해지기로 마음을 먹으면, 그 꾸준함은 언제든지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