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다. 밥 먹을 때 편식하는 건 혼났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회로부터 좋게 받아들여지는 행위였으므로 내가 매일매일 소설만 읽으며 독서 편식을 해도 혼내거나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내내 문학책만 읽으며 커온 나는 현실감각이 다소 떨어지는 몽상가로 자라났다. 아직도 나는 대체로 문학만 읽는다. 다만, 이 나이쯤 되니까 오직 '재미'를 위해서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쩐지 성인으로서 나이브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성인의 삶에 얼마 나지 않는 귀한 시간을 그저 재미에 몰빵 하여 낭비해 버리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찔린다고 해야 하나. 그런 만큼 지금의 내가,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이 필요한 사람들의 전유물로만 보였었던 투자라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가끔은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준히 문학 외길만을 걸어왔던 나의 독서 인생을 그다지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꾸준히 투자의 힌트를 얻는 대부분의 책들은 경제경영 쪽, 직접적으로 투자에 관련된 책들이 아니라 주로 내가 좋아하는 문학 책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고 찾아본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책을 보고 방사능 폐기물이나 요오드 테마 관련주가 어떤 것이 있나 찾아보고 <레디 플레이어 원> 원작 소설을 보면서 XR, VR 테마주를 매집하거나 가상 지구에 플랫폼에 투자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MZ세대들이 직접 쓴 에세이나 독립출판물들을 읽으면서 그들이 관심을 가진 사회적인 이슈나 욕구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살펴보기도 한다.
과몰입이 체질인 나는 책을 읽을 때 상당히 몰입하여 읽는 편인데, 나 자신을 주인공이나 화자에 대입해서 읽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세계관, 설정 등에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공감하고, 나의 삶과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보는 그 모든 몽상의 과정을 기꺼이 즐긴다. 그러다 보면, 소설 속의 어떤 것들이 실제로 내 현실의 어떤 것과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스마트팜 산업에 최초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한 <마션>이라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신체조직으로 배양해 만든 'MeBurger(내 살 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며 현재 투자 중인 비욘드 미트의 차기 비전인 대체육 및 배양육 사업이 이렇게 미래에 우주에서도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투자는 내가 문학을 읽으며 한없이 펼쳐가는 몽상들을 현실에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무엇으로 바꿔주는 행위이다. 만약 내가 문학을 읽다 얻은 아이디어를 보고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몽상은 결코 생산적인 가치를 획득하지 못하고 그저 쓸 데 없는 노력을 쏟아부은 몽상에 그쳐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라는 행위를 통해 나의 몽상은 비로소 현실 속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가 되고, 나는 오로지 재미만을 위해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해 버렸다는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다.
때로는 이렇게 문학으로부터 특정 투자 소스 발굴에 대한 힌트뿐 아니라, 투자를 할 때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배울 때도 있다. 최근 내가 투자를 하며 이런저런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무심코 떠올리는 것은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이다.
예를 들어 죽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조각조각 나누어 '호크룩스'를 만드는 볼드모트의 행동을 보라. 그야말로 리스크 회피를 위한 안정적인 분산투자의 정석 아니겠나.
그 모습을 명심하며 나도 항상 호크룩스를 만드는 마음으로 영혼과도 같은 귀한 시드를 주식, 코인, 금 현물, 부동산 등 여기저기 나누어 분산 투자한다. 언론에서 뭔가 미심쩍은 뉴스를 읽게 됐을 땐 매드 아이 무디 교수의 캐치 프레이즈나 다름없는 ‘지속적 경계!(Constant vigilance!)’를 맘 속으로 다짐하듯이 외친다.
이렇게 해리 포터 시리즈같이, 어쩌면 가장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마법 세계를 다룬 판타지 소설로부터도, 보기에 따라서 이렇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투자자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그러니 이 나이 먹고도, 그것도 투자자라면서, 경제경영서보다 문학책을 더 많이 읽는 게 한심해 보여도 뭐 어쩔 것인가? 이미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독서 패턴을 억지로 바꿔 현실 세계를 분석적이고 정확하게 다룬 경제경영서만 주구장창 억지로 꾸역꾸역 읽어 나간다 하더라도 나의 집 나간 현실감각이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나는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냥 재미있게 문학을 즐기는 투자자가 되련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영화든. 어떤 이야기에서든 나는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 몽상을 조금 더 현실과 관련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면 된다. 그것만이 몽상가인 내가 이 비정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원활히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