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Feb 13. 2016

나는 아버지와 동갑이 되었다

젊은 날의 내 아버지는 때론 내 가엾은 아들처럼 느껴진다.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젊은 날의 내 아버지가 때때로 내 가엾은 아들처럼 느껴진다.


 저 부분을 읽고, 나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나 자신과 같은 나이에,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인생의 변화를 겪은 서른의 청년.



서른이 되던 해, 그는 내 아버지가 되었다.



 당시의 아버지가 나와 같은 나이였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내 아버지가 서른이었을 당시 갓난아이였던 나는, 당시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 속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게 너무도 아쉽고 속상하다.  요즘따라 나는  그때의 아버지가 부쩍 궁금한데.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이후 여태까지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텐데, 나는 그의 서른을 기억해 줄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왜 이리도 섭섭한 것인지. 이 세상에 눈을 뜬 순간부터 그에 대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제, 이 무렵의 아버지와 동갑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한 번도 숨 쉬어 보지 않았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 세상엔 아버지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인생에는 내가 없었던 순간도 있다. 아버지와 내가 공유하지 못했던 그 30년의 시간은 아마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일 것이다.

 그렇지만 서른 이후의 아버지의 삶은 다르다. 나는 탄생 직후부터 내 아버지의 삶에서 꽤나 주요한 등장인물이었기에. 항상 아버지의 곁에 붙어 있었던 나는 내 아버지의 힘겨웠던 삶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아버지의 모습이 몇 살 무렵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꽤 성공한 축에 속했던 삼십대 중후반의 젊은 사업가를 기억한다. 남들에 비하면 이른 나이에 성공의 정점을 찍었던 그는, 그 성공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졌고, 그 후로 15년의 세월을 힘들게 보내야 했다.

 나는 몰랐다. 아버지는 늘 내가 봤듯이 그렇게 날 때부터 강한 존재인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는 원래 그렇다고, 아버지는 어른이니까.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강하고 힘들게 사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내 맘대로 생각하고 기대어 왔다.


 그러다 나 자신이 막상 서른이 되고 나니, 아버지가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갑자기 한 순간에 쿵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약 나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 지금 내 인생에 동갑내기 친구로 등장한다면, 나는 그가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엄청난 경의와 함께 받아들였을 것이다. 자신의 사업을 하며, 한 집안의 가장인 서른이라니. 그에 비해 지금, 서른을 맞이한 나 자신이 느끼는 삶의 무게는 얼마나 가벼운 것이냔 말이다.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한 살 한 살 더 나이가 들어갈 때마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동갑내기 친구처럼, 동생처럼, 그리고 언젠가는 나 자신의 자식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다. 내가 중년에 접어들게 되면, 때때로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나이보다 어린 순간들이 올 것이다. 그 때, 나는 어떤 것을 느끼게 될까. 아버지의 힘들고 쓰라렸던 삶이 마치 내 가엾은 자식의 삶처럼 느껴져, 마음이 한없이 쓰릴 것이다. 그 시절의 아버지를 안아주고 싶을 것이다. 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사셨어요. 어쩜 그렇게 사셨어요. 나는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는 점점 늙어간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기에, 나의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젊어질 수 없다. 오늘이 그의 남은 생 중에서 그가 가장 젊고 활기찬 날이다. 늘 가까이 있기에 현실에서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진 속 그의 모습은 해가 지날수록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질 않은가. 60을 넘긴 나이에는 각 한 해가 더욱 다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나이듬보다 그의 늙어감이 더욱 슬프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가정에서의 가장의 짐을 대신 지어주는 것이 아닐까. 어려운 세상의 풍파 속에서 아버지가 우리 가족의 중심을 지켜주었던 그 나이에 접어든 내가. 그의 의지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늦기 전에, 한 순간 순간 흘러 가는 그의 모습을 나 자신의 것처럼 소중히 눈에 새겨두는 것일 것이다. 10년 후의 그의 모습은 지금의 그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한정적이기에.




 죽음은 우리에게 이런 걸 가르친다.

다른 모든 게 사라졌을 때,
우리의 계획이 실패하고
당신에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살아남을 것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것이다.
친구들과 웃을 것이다.
사랑에 빠지고, 일하고, 꿈을 가질 것이다.
당신의 어머니가 살고 웃고 울고 죽었기 때문에 당신은 살 것이다.

언제나 최후의 진실은 결국 고마움뿐이다.

- '죽음이 나에게 가르쳐 준 교훈'

 

매거진의 이전글 안 맞는 건 안 맞는 대로 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