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존버만이 답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나의 도망의 역사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연합고사를 통해 어렵게 합격한 고등학교에는 그 지역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첫 중간고사를 보자마자 중학교 때와 앞자리가 현저히 차이 나도록 달라진 등수에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원래 예고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의 내 가정 형편을 고려해 봤을 때 그것은 별로 적절하지 않은 선택처럼 느껴졌다. 예고의 높은 학비와 통학 거리, 그리고 '문예창작과'라는 과로 너무 일찍 나의 진로가 특정되어버리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나는 차선으로 지역에서 가장 입결이 높은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글을 썩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도 내가 원한다면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송반 신입 기수를 모집하는 공고가 1학년들의 반이 모여있는 복도 한가운데에 붙었을 때, 그날 바로 집에 들어가자마자 원고를 써서 제출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글 쓰는 데 꽤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 그때 쓴 A4 2장짜리 원고로 나는 방송반에 작가로 합격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8명인가 동기가 있었는데, 그중 나를 포함한 3명이 작가였다. 문제는 첫 상견례 날 일어났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기억나지는 않는데, 첫 상견례 날의 전통인지 뭔지 방송반 선배들이 신입을 호출했다. 학교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날 처음 소집된 방송반의 상견례 자리는 다소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었다. 신입들은 서 있고, 선배들은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군기'를 잡아야 한다며, 일부러 트집을 잡아서 혼내고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점심을 최대한 빨리 먹고 갔음에도 너희들에게는 시간관념이 부족하다, 이런 것은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너희는 무조건 이 일을 우선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 30분의 시간 동안 나는 생각했다.
아, 내가 뭔가 잘못 생각했구나.
방송반이 되면 글을 원 없이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매 순간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구나.
후반이 되니 그것은 일종의 '신고식'이었고, 이후로 선배들은 딱딱하게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느닷없이 농담을 던졌다. '그냥 한번 놀려봤어. 다 그런 거야' 라며. 선배들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방송반이라는 동아리가 유독 서로 끈끈하게 결속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안다. 그만큼 적응하고 나면 선후배 관계도 돈독해질 것이고, 서로 챙겨주고 챙김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그 선배들이 취해 있는 심각하고 단체주의적인 분위기에 내가 좀처럼 동조하고 어울려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의 시간과 스케줄이 소중한 사람이었고, 그들은 그런 나에게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고 헌신하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 동아리 활동이라고 했다.
그날 자리로 돌아간 나는 계속 생각을 했다. 나는 여전히 나였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누군가의 눈치를 봐가면서 엮인 관계 속에서 그것을 쥐어짜 내듯이 쓰고 싶진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잘 알았다. 그렇게 나는 첫 상견례 후 바로 방송반을 탈퇴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방송반을 그만두고 나서, 문득문득 아쉬울 때도 있었다. 매일 점심시간 때마다 있었던 방송반의 방송을 들을 때나, 매주 월요일마다 있었던 아침 조회 때나 학교 축제 때 그들이 큰 스크린에 비치는 화면을 중계하는 카메라를 움직이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그때 나도 그냥 한 번만 참았으면 저 속에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꿈꾸듯 생각해보곤 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 속에서 마냥 행복하게만은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후로도 가끔씩 아쉬움은 있었을지언정, 적어도 나는 나에게 가장 좋은 방향의 선택을 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등학생 때의 방송반 해프닝으로 인한 아쉬움은 항상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나는 도망쳤으면서, 가끔씩은 도망쳤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내 삶에 다가오는 것들에 있어서는 웬만하면 존버를 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내가 그토록 처절하게 붙잡고 버텨보려던 모든 것들을 나는 끝끝내 회피하고야 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은 도망 엔딩. 이것은 나라는 사람의 인생으로 한정하여 봤을 때 언제나 클리셰처럼 적용되는 결말이다.
인생에서 주요한 변곡점을 맞을 때마다, 그 전후에는 항상 무엇인가로부터 절실히 도망치고 싶어 하는 내 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대 중반에 취업에 실패한 나는 취업 준비를 하기 싫어서 도피성으로 대학원에 갔다. 대학원에 가서는 논문을 쓰기 싫어서 취업하여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대학원에서 내 존재는 사라졌다. 하루아침에.
27살에 첫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나는 여태까지 총 3개의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퇴사와 이직의 사유는 언제나 '도망치고 싶어서'였다. 첫 번째 회사를 더 이상 못 다니겠다 싶어서 그만두고 싶어 졌을 때, 두 번째 회사를 발견했다. 그렇게 난 두 번째 회사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그럭저럭 다니던 두 번째 회사에서도 탈출 욕구가 무럭무럭 올라왔을 때, 세 번째 회사가 나타났다. 나는 또 도망을 쳤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그렇게 도망치듯 세 번째 회사를 퇴사하려는 참이다. 문제는, 이번에는 다른 도피처를 마련해두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타잔은 정글의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늘어뜨려진 덩굴들을 타고 이동할 때, 다른 한 손에 새 덩굴이 잡힐 때까지 손에 쥔 덩굴을 먼저 놓지 않는다. 내가 타잔이라면, 나는 지금 다른 덩굴이 손에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냅다 손만 놓는 격이다.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미쳤다고 한다. 누군가는 혀를 차고, 누군가는 대책이 없다고 한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이들에게 뻔뻔하게 반문하고 싶다. 때로는 회피도 현명한 생존의 방식이 아닐지. 왜, 드라마 제목도 있지 않은가.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고.
2주 전, 지난 5년 간 몸을 담아 왔던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사실 상사는 나의 진짜 퇴사 이유가 도망이라는 것은 모른다. 일단 내가 여태까지 2번의 퇴사를 해봤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퇴사 케이스를 접해봤던 입장에서 퇴사 사유가 '너무 힘들어요. 도망치고 싶어서요'라면 회사에서 호락호락하게 놔줄 리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서 상사에게는 다른 거절할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이유를 댔다.
그러니 서론은 길었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어쩌면 차마 제출하지 못한 나의 진짜 사직서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실 나도 내가 이렇게 식상한 퇴사를 할 줄은 몰랐다. 직장인으로서 은퇴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도, 막연히 40대 초중반까지는 직장 생활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나의 퇴사는 그래도 이것과는 좀 다를 것이라고 상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조차도 이번 나의 퇴사는 매우 갑작스럽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역시 진리다. 나의 퇴사 사유는 위에 잡코리아 X 알바몬 설문조사 결과인 '직장인들이 차마 밝히지 못한 퇴사 사유 TOP7'와 그 사안의 중요도 및 순서까지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아니, 어쩌면 이 회사가 아니라 상사(와 상사를 그런 캐릭터로 육성해 버린 괴물 같은 시스템)으로부터 도망친다고 해야 더 맞는 말일 것 같다.
내가 '존버'가 아닌 '도망'을 선택한 결정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었다. 나의 문제는 내가 일에서 여전히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지난달 퇴사를 결심하기 전 마지막으로 상사와 진행했던 면담에서, 나를 '차기 관리자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그의 말을 듣자 내 안에 강렬한 도망 본능이 끓어올랐던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너를 미래의 관리자로! 우리 회사의 기둥으로!'라는 말을 듣자마자 퇴사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물론 직장에서 꾸준히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 관리자의 자리에 올라선 나의 상사들의 삶은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어쩐지 그것이 나의 삶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막연히 40대까지 회사생활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회사의 관리자가 된 내 모습만큼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어쩔 수 없이 그런 날이 오더라도, 그날의 내 모습이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앉은, '위에서 시키는데 뭐 어쩌겠어. 너도 회사 오래 다니고 싶으면 영혼 없이 일해'라고 말하는 상사의 모습과 닮아있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 조직에 계속 있으면 나는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회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씩 나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으니까. 정신없이 회사의 일을 쳐내고, 주로 상사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 허덕이다 진이 빠져 집에 돌아가면 그나마도 있는 나머지 시간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으로 바뀌어버리곤 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5년 간 반복되어 온 이 일에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미없는 일을 하려니 고역이었고, 자꾸 나도 모르게 영혼이 없어졌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패턴화 된 시간은 바람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주간보고, 월간 보고로 이어지는 직장인의 타임라인에서는 늘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갔다. 이번 주 보고를 하고 나면 금세 월간 보고를 해야 하고, 10월이면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분기별/반기별 마감을 치고. 변화가 별로 없는 업무가 매 해 반복되다 보니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시간은 점점 더 가속도가 붙었다. 올해도 벌써 언제 9월이 다 되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정말로, 이 회사에 있다 보면 어느새 눈 깜빡할 사이에 40도 50도 되고 어느 순간 정년퇴임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지하철에 탔을 때, 열차가 굽어진 구간을 지나 일렬로 나열되는 순간. 통로를 통해 첫 칸에서 끝 칸까지의 모습이 바로 보이는 그런 순간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도 똑같이 살아가고 있고 그러는 새 그저 거울 속의 내 모습만 하염없이 늙고 있었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 딱 5년만 더 버텨볼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래도 마흔까지는 회사를 다니는 게 좋다'는 진심 어린 주위의 조언도 있었다. 나 또한 40대까지는 최대한 회사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봤을 때 지금 이 시기에 회사를 나와 백수의 신분이 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직은 무엇인가를 열렬히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른이 넘으면서 느낀 것은, 무엇인가를 열렬히 원하고, 좋아하고, 재미를 느끼는 몰입과 열정의 감도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떨어져 간다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고, 너무 많은 것들을 경험해버린 나는 좀처럼 20대 시절의 나처럼 무엇인가에 과몰입하거나, 열렬한 애정을 바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아직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조금은 남아 있다.
최근 내가 급속히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조직 내에서 나의 연차가 올라가며 회사가 나에게 요구하는 에너지 레벨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는 나에게 정신적인 소속감과 헌신을 요구했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에너지 자원을 회사를 위해 우선적으로 소비해야만 했다. 나의 회사가 나의 목줄을 잡아 쥐고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내가 이렇게 그럭저럭 숨도 쉬고 글도 쓰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5년을 더 버틴다면? 마치 가만히 있어도 빠지는 근육량처럼, 내 에너지 총량은 점점 줄어드는데. 회사에서는 그것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다 못해, 50대의, 60대의 내가 느낄 수 있을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는 마음까지 땡겨 쓰길 원할 것이다. 그럼 나는 지금보다 더 무엇에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재미있는 것, 하고 싶은 게 없어진 채 영혼 없는 빈 껍데기인 채로 회사와 집만을 왔다 갔다 하지 않을까. 나이 40에 그런 좀비가 되면, 최소 80대까지 이어질 삶을 내가 견딜 순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멈춰도 된다.
아직은 재미있는 게 있을 때,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아직은 내가 내 영혼의 주인일 때.
그러니 지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일단은 쳇바퀴에서 좀 내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뭐 어떤가. 나에게는 남편도, 자식도 없는데.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건 오직 내 한 몸뿐인데.
그러니 일단은 내 본능이 이끄는 대로 도망부터 치고 볼 일이다. 어쨌거나 도망은 나의 본능이니까. 나 같이 미련한 곰 같은 사람은 적재적소에 도망치는 것도 재능이다. 때로는 이런 나답지 않은 비이성적인 결정이 나같이 사고도 잘 안치고, 안정 지향적인 노잼 모범생의 인생에는 강제적인 전환점이 되어주기도 한다니까.
누군가는 대책 없는 퇴사라며 혀를 끌끌 차겠지만, 놀랍게도 나는 지금 불안감 대신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의지와는 그다지 상관없이 누가 올려놓은 듯했던 궤도를 벗어나니, 바로 당장 다음 달, 다다음 달의 내가 뭘 할지 모른다는 게 오히려 기대가 되는 것이다. 여태까지 나를 끌고 가던 세월의 모가지를 지금부터는 내가 비틀어 잡고 가는 셈이니까.
직장 생활 8년 만에 쳇바퀴를 벗어날 생각을 하니 비로소 보였다. 당장 내일의 내 삶이 어떻게 될지, 10월, 11월의 내가 뭘 하고 있을지 지금의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는 매우 좋다. 무엇이 다가오든 그것을 마주하는 나에게는 적어도 영혼과 패기는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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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내게 묻는다.
'너 이렇게 회사 나가면 뭐 해 먹고살래?'
이렇게 내게 물어오는 그 모든 이들에게, 나는 그저 이 한 장의 이미지를 보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