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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10. 2021

행복은 NOT TODAY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원하지만, 사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왔을 때 단숨에 바로 답을 끄집어내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 고민할 때, 사람은 반대의 개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불행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게 있어서 불행은 '막연함'이다.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이렇게 명확히 뭔가가 맞아떨어지거나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게 아닌 그저 막연하고 희뿌옇게 존재하는 어떤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답답함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서 불행의 동의어는 결국은 무지함이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인간은 불행해지는 것 같다. 일단 내가 무엇을 손에 넣었을 때, 혹은 어떤 상황에서 기쁨이나 행복, 충만함을 느끼는지 정도는 알고서야 행복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꽤 오래도록 불행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내가 어떻게 해야 내게 없는 행복을 손에 넣게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막연함 때문에.






 최근, 책을 한 권 읽었다.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현장에서 생존했던 한 사람의 수기였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던 것은 그저 단순하고 솔직히 궁금해서였다. 일전에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글을 통해 고백했듯이, 어린 시절 TV 화면으로 목격했던 삼풍 백화점 참사 사고는 내가 살아오면서 봤던 몇 안 되는 가장 강렬한 기억 중에 하나였다. 아직까지도 내가 본 것이 실제 일어난 일일 것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날의 살풍경 속에서도 분명히 힘겹게 목숨을 건졌던 이들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이후로 그들의 삶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생존자들의 이후의 삶과 근황을 애써 찾아보지 않으려 했다. 저 참사를 겪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고의 기억을 잊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려 애쓰고 있을 것이고, 그런 그들을 궁금해하는 것은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평온히 살아가고 있기만을 바랐을 뿐.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던 서점의 에세이 코너에 전시되어 있던 이 책을 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건 내가 그동안 내심 궁금했지만 궁금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이야기구나. 이건 과거의 기억을 덮어두고 잊으려는 생존자로부터 억지로 괴로운 기억을 들춰내는 인터뷰 같은 게 아니라, 생존자가 본인 스스로 참사 이후 스스로 겪어왔던 삶에 대해 털어놓은 책이었다.


 길지 않은 분량이었음에도 이 책은 유독 천천히 읽혔다. 읽으면서 점점 이 책을 그저 참사에 대한 생존자의 기록으로 치부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라는 참사 자체가 그녀의 인생에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이것은 그녀가 단지 그 참사의 생존자로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어떤 것이든, 본인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스스로의 인생이 통째로 부서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글 한 줄 한 줄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므로.


 그렇기에 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종 손을 멈추고, 몇몇 문장을 유심히 들여다보곤 했다. 한 장에 한 두 줄씩은 있던, 유독 마음에 채이던 그 문장들은 이상하게도 최근에 읽고 보았던 어떤 것들보다도 내 가슴에 명징하게 새겨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들여다보았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전에는 행복에 대해 대단히 착각하고 살았다. 내가 겪은 불행들이 너무도 선명해서, 행복도 불행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창문을 깨고 안방으로 들이닥치는 것인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행복은 요란하지 않게 삶에 스며들었다. 그러니까 행복은 생각만큼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다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해 여태 살아오면서 슬프지 않았던 모든 날이 전부 행복한 날들이었다.

-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중에서



 어쩌면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규모의 참사 현장에서 살아난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면, 와닿는 진정성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었을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 비해 한없이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 습관적으로 불행을 입에 담았던 나의 피상적인 삶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왜 지금 이 순간의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을까. 지금 몸이 아프지도 않고, 마음이 슬프지도 않으면서. 그저 조금 공허하고 심심할 뿐이면서.






 행복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Happy이다. Happy는 형용사로,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니 어찌 보면 수동적이다. 그러나 행복을 동사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BE'가 아닐까. 미래의 시점도, 과거의 시점도 아닌 지금 현재 이 시점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온전한 형태 그 자체.


 생각해보면, 내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일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반려조들도 아직 아프거나 죽지 않았다. 언젠가 닥칠 일에 대해 두려워하며 오늘 하루를 '나는 불행하다'라고 생각하면서 보내도, 혹은 '그렇구나. 오늘은 그럭저럭 행복한 거였네'라고 생각하며 보내도, 어쨌든 시간은 똑같이 흐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누가 아파도 아플 거고, 점점 기력이 쇠해질 거고, 쉽게 다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영영 내 곁을 떠나버릴지도 모를 일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나는 이 세상에 정말로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행복한 것이다. 아직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대상이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무사히 존재해 준다는 사실 덕분에.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미래의 근심을 오늘로 당겨서 슬퍼하거나 걱정하며 오늘 하루의 기분까지 낭비하지는 않으련다. 살면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슬픈 일들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기에, 언젠가는 불행한 날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이 오늘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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