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알림이 온 것은 왠지 오랜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브런치 앱에 접속한 난 이내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브런치 인용 중 "(큰따옴표) 기능을 사용하여 인용한 부분이 이렇게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가득한 어느 날, 서울의 저 어딘가에서 보이는 남산타워 실루엣처럼 희미한 이 글씨를 보라!
나는 무척 당황했다. 비록 오늘 내게 알림이 왔던 이 글이 조회수 1만, 2만을 찍으며 쭉쭉 조회수가 한창 위로 솟아 올라가는 기세의 도중은 아니었더라도, 그래도 이 잠잠한 브런치 가운데 오랜만에 조회수가 1천을 넘은 귀한 알림의 주인공이었단 말이다. 어딘가에 이 글이 노출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SNS에 그 글을 올린 것일 수도 있는데.
브런치를 운영하다 아주 가끔씩만 맞닥뜨리게 되는 이 조회수 떡상의 기회를 이렇게 가독성이 좋지 않은 글로 맞이하다니!
당황한 나는 글을 수정해보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편집 화면에서는 또렷한 검은색으로 잘 보이던 글자가 '발행'만 누르고 나면 다시 저 브런치의 기본인 흰 배경과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는 아련한 색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좌 : 편집 화면 / 우 : 브런치 앱(안드로이드) 최신 버전 화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혹시 저 글만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해당 큰따옴표 인용을 사용한 다른 글들도 모조리 뒤져봤다. 근데 전부 다, 큰따옴표 인용을 한 부분마다 다 저렇게 희멀건하게 나오는 것이다. 내 글이 아닌 다른 작가님들의 글도 마찬가지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잘 보이던 글이 왜 갑자기 안보이기 시작한 걸까?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나는 플레이스토어에 들어가서 브런치 앱을 검색해 보았다. 앱의 최신 업데이트 날짜는 2021년 11월 18일로 기록되어 있었다.
11월 18일이라.
잠시 생각하다, 최근 브런치에서 단행한 업데이트에 생각이 미쳤다.
7년 만에 브런치 결산을 한다며, 브런치 활동을 결산 짓고 작가 카드를 발급해준다던, 브런치 앱 메인을 팝업으로 장식하던 그 요란스러운 이벤트가 생각이 났다.
물론 나도 당일에 바로 해보긴 했지만..
아, 설마... 그것 때문인가?
무척 허탈했다.
브런치 팀은 그동안 자신들의 서비스를 '글쓰기에 최적화된, 작가들을 위한 플랫폼'으로 어필해 왔다. 나 또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좋은 플랫폼을 제공해 준 브런치 팀에 감사한다. 그렇지만... 이 황당한 사태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여기가 작가를 위한 플랫폼이라고 해서 여기에 글을 썼고,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페이지 꾸미기 옵션 - 구분선, 제목, 폰트, 인용, 발췌 등... - 을 최대한 활용해서 나의 메시지를 담은 글을 정성스레 하나하나 써서 쌓아왔었는데. 이게 뭐냔 말이다.
특히 나는 저 큰따옴표 인용 기능을 무척이나 자주 사용하는 작가이기도 했다. 특히 큰따옴표 기능이 주는 강조 효과 때문에, 함부로 남용하지 않고 글을 쓸 때마다 무척 중요한 부분에 전략적으로 배치하곤 했었다. 나는 누군가가 엄지손가락으로 슥슥 화면을 내리며 내 글을 읽다가, 눈에 걸리고 채이는 문장 하나를 남겨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글의 주제나 메시지를 담은 주요한 문장들을 큰따옴표 안에 넣었었다. 때문에, 무려 140편이 넘는 내 글들의 큰따옴표 인용이 저렇게 보이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무척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는 극대노했다.
아니, "수고했어 올해도"라며 리포튼지 결산인지 뭔지 한다고 앱 업데이트하다가 정작 브런치 앱의 시작점이자 정체성과 직결되는 '가독성'을 잃어버리게끔 만들다니?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피고름 짜내며 쓴 원고까지는 아닐지라도 그간 한 땀 한 땀 쌓아온 소중한 글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확실히 슬픈 일이었고, 결국 나는 브런치 팀의 브런치에 찾아가서 장문의(...)댓글을 남기고 말았다.
이런 건 난 또 못참지.jpg
저곳에 댓글을 남긴 이유는 이미 익히 잘 알려진 카카오 고객센터의 악명 높은 딜레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내 댓글에 대한 피드백은 없는 상태고, 브런치 팀이 해당 사태를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나는 브런치를 시작한 이래 정말로 브런치 앱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었고 브런치 앱이 내게 안겨준 수많은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런데도 이번 일만큼은 꾹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내 글을 손상시켰으니까.
나는 애초에 브런치 팀이 내 지난 6년 간의 활동의 결산을 그럴싸한 카드와 문구로 포장하여 보여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오로지 서비스의 본질을 유지하고, 작가들에게 쾌적한 플랫폼으로 남아줬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본인의 글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 한순간에 뻥 뚫린 공백으로 보여지는 순간 그 작가가 느꼈을 감정을 서술하시오.
그런데브런치 팀은 '결산'이라는 형태의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정작 작가의 글을 훼손하는 행위를 했다. 그게 정말 화가 나고 속상하고 슬펐다.
가장 최근에 쓴 글에서도 나는 내 글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골라 큰따옴표 인용을 사용했는데... 조회수가 어디서 유입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지금이 평소에 내 글을 보지 않던 사람들도 내 글을 처음 접하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렇게 뻥 뚫린 글들이 가득한 상태로 그런 기회를 맞이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글을 하나하나씩 열어 수정하는 궁여지책을 택했다. 당시까지 발행되었던 내 글은 141개였고, 그중 대부분의 글에서 큰따옴표 인용이 한 번씩은 나왔다.
그 글들을 하나하나 열어 '큰따옴표 인용'을 '제목3' 서식으로 고치는데 한 70개쯤 하니까 어지럽고 짜증이 나서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뭐 어떡하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결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글을 수정하는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시간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장장 1시간 반 동안 그간 발행한 141개의 브런치 글들을 전부 수정하여 재발행했다.
비록 '큰따옴표 썼나 안 썼나'를 찾기 위해서 긴 했지만 눈에 불을 켜고 예전에 썼던 글들을 하나하나 다시 훑어봤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써둔 그 수많은 큰따옴표 인용들을 일일이 다시 읽어야 했다.
'이건 제목3으로 대체될만한가? 제목3으로 대체되어 볼드 처리될만한가?'를 3초에 한 번씩 고민하면서.
그리고 그 지난한 작업을 다 마친 지금, 큰따옴표 인용 기능이 싹 다 빠진 내 브런치 글들은 조금은 심심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미 노가다로 다 바꿔버렸으니까.
강조는 유지하고 싶어서 '제목3' 서식으로 바꿨더니 정렬도 임팩트도 덜해져서 속상하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는 브런치 앱에서 큰따옴표나 특수 인용 기능을 쓰지 않기로. 여태까지 내가 브런치 글을 쓸 때, 나름 강약 조절을 한답시고 큰따옴표나 구분선, 인용 박스 등 브런치 서비스가 제공하는 구성요소에 상당히 의존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한순간에 그것들을 전복하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만약 내 글들이 정말 좋은 글이었고, 잘 읽히는 글이었다면 저런 큰따옴표 강조 표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브런치에는 오늘 아주 많이 화가 났지만, 결국은 작가로서 저런 요소들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글로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글을 쓰라'는 넛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도 화는 난다... 오죽하면 새벽 2시가 훌쩍 넘은 이 시간에 이렇게 졸린 눈 비벼가며 분노의 글을 쓰고 있겠나!)